여행(Travel)이야기들/홍콩 마카오 대만

대만 동부/ 낯선 대만을 만나는 즐거움

향기男 피스톨金 2007. 2. 23. 13:31

 

      대만 동부① 낯선 대만을 만나는 즐거움

 

중세시대 대만에 발을 디딘 포르투갈 제독은 '아름다운 섬'이란 뜻의 '일라 포모사(Ilha Formosa)'라고 명명했다. 그의 눈에 비친 동양의 섬은 험준하고 높은 산과 깊은 골짜기, 드넓은 평야가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는 신비한 곳이었다.
 

비좁은 땅덩어리 안에는 자연의 모든 아름다움이 응축돼 있었다. 추측건대, 제독이 들렀던 곳은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아 순수함을 간직한 동쪽이었을 것이다.

지형 탓에 여전히 개발되지 않고 있는, '미지의 땅' 대만 동부로 발길을 옮겼다. 가이드북에도 자세한 설명이 나와 있지 않은 곳이기에 더욱 호기심이 일었다.

 

◆ 감추어진 대만으로의 여행

타이베이(臺北)에는 서울처럼 국제선과 국내선을 위한 공항이 따로 있다. 인천을 이륙한 비행기는 타이베이 시내에서 한 시간쯤 떨어져 있는 중정국제공항에 착륙한다. 하지만 대만 국내로 이동하려면 대만에서 비행기가 가장 많이 뜨고 내린다는 '쑹산(松山)'공항으로 이동해야 한다.

 

타이베이와 제2의 도시 가오슝(高雄)을 잇는 항공편만 해도 하루에 70편이 넘을 정도니 쑹산공항은 들락날락하는 항공기들로 항상 부산스럽다. 면적이 우리나라의 절반도 안 되는 나라에서 항공교통이 발달한 이유는 국토가 길쭉한데다, 고봉(高峯)이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기 때문이다.

대만을 여행하고 돌아온 사람들은 흔히 '한국과 대만 사이에는 흡사한 점이 참 많다'고 말하곤 한다.

일본의 침략을 받은 뒤 미국의 도움으로 경제를 부흥시켰던 역사도 그러하고, 편의점에 들어갔을 때 체감하게 되는 물가도 그러하다. 그런데 지도를 유심히 관찰하면 '동고서저(東高西低)'의 지형도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학창 시절 '지리' 시간에 재미없게 배워야 했던 얘기를 새삼 꺼내는 것은 지형이 대만 동부의 지역적 특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후지산(3776m)보다 높은 위산(玉山)은 해발고도가 3952m에 이르는데, 우리네 태백산맥처럼 위산에서 뻗어 내려오는 산맥은 죄다 오른쪽으로 쏠려 있다.

경기도와 강원도의 격차마냥, 대만에서도 서부 지역은 인구가 많고 농산물이 풍부한 반면, 동부는 개발의 속도가 느려서 자연의 풍광을 온전히 유지하고 있다. 땅의 모양새에 기인한 동서간의 차이는 오히려 대만 쪽이 큰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동부의 중앙에 있는 도시 '화롄(花蓮)'에서 자동차를 몰고 정서쪽에 있는 '타이중(臺中)'에 가려면 섬의 반을 일주해야 한다. 쉽게 설명하자면 경상북도 울진을 떠나 같은 위도에 있는 서해안의 당진으로 가는데, 동해안을 따라 내려가 부산을 들렀다가 남해안 도로를 달린 뒤 목포부터 서해안고속도로로 올라가는 것과 같은 이치다.

 

물론 높다란 산 사이로 굽이치는 도로를 횡단하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시간도 오래 걸리고 운전하느라 피곤해지기 십상이다. 이렇듯 불편한 도로사정 때문에 항공편을 선택하는 사람이 많은데, 재미있게도 이 역시 30분이면 닿을 거리를 한 시간이나 걸려서 가야 한다. 시가지 뒤로 가파른 산세를 자랑하는 중앙산맥이 버티고 있어서 비행기가 섬을 에둘러 가야 하기 때문이다.

 

화롄 시에 들어가면 뒤쪽으로는 3000m가 넘는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고 앞으로는 수심이 5000m에 달하는 바다가 출렁이고 있다. 좁쌀만 한 좁은 땅에 도시가 형성된 것이 신기해 보인다. 비좁은 평지에 도시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탓에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화롄 시 위쪽으로는 아예 깎아지른 절벽과 바다밖에 없으니 감사할 노릇이다. 그곳에는 인간이 생활의 터전으로 삼을 수 있는 땅이 전무하다. 기껏해야 차들이 오갈 수 있도록 터널을 만드는 것이 고작이다. 타이베이에서 화롄까지는 기차로 3시간이 소요되지만, 버스로는 구불구불한 2차선 도로를 6시간 동안 달려야 하는 고행길이다.

 

교통이 불편하다면 당연히 인간의 왕래도 쉽지 않다. 대만의 현(縣) 가운데 가장 넓은 화롄과 타이둥(臺東)은 뒤늦게야 문명을 접할 수 있었다. 일본인이 도로를 놓기 전까지는 원주민들이 화전을 일구고 물고기를 잡으며 살아가던 미지의 땅이었다.

 

그래서 이곳은 여전히 한족(漢族)의 흔적보다는 원주민의 문화가 많이 남아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소박하고 단순하면서도 꾸밈이 없는 자연으로의 여행은 대만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다.

여하튼 대만의 동부는 타이베이와 가오슝을 잇는 서부의 친숙함과는 거리가 먼 곳이다. 과연 어떤 여행지가 길손을 기다리고 있을지 자못 궁금했다.

사진/이진욱 기자(cityboy@yna.co.kr)ㆍ글/박상현 기자(psh59@yna.co.kr)

 



                    대만 동부②

     신선이 노닐던 바다를 따라 북상하다

[연합르페르 2007-02-23 09:57]

빠르면서도 느린 타이베이의 아침에는 정반대의 사실이 공존한다. 오토바이와 자동차를 타고 시내를 질주하며 출근하는 무리와 공원에서 느릿느릿한 동작으로 태극권을 추는 사람들이 보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것이다.
 

흥미로운 광경을 지나치다 보니 어느덧 시내의 쑹산공항에 도착했다. 국내선 수속은 발권에서 짐 검사까지 10분 만에 마무리됐다. 모든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절차도 간소해서 오래 걸릴 이유가 없었다.

 

대만 동부의 가장 남부 도시 타이둥 공항을 나서자 타이베이에서 체험하지 못했던 한산함이 느껴졌다. 덩그러니 심겨진 야자수 몇 그루만이 길손을 맞이할 뿐 인적이 거의 없었다. 이곳에서는 빠르게 돌아가는 타이베이의 일상을 쫓을 필요가 없었다.

도시에서 시골로 순간이동을 한 것처럼 환경이 바뀐 탓에 자연스레 심신이 느긋해졌다. 길도 막히지 않았고 대도시 특유의 소음도 들리지 않았다.

 

사실 화롄의 남쪽에 있는 타이둥은 한국 사람들에게 가장 덜 알려지고 여행하기도 힘든 지방 가운데 하나다. 눈길을 잡아끄는 경승지가 없는 탓에 패키지 상품도 없고, 자유여행으로 가더라도 교통편이 좋지 않다. 대중교통인 기차를 이용할 수 있지만, 자동차나 오토바이를 빌리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타이둥에서 화롄까지 이어진 화둥해안도로의 곳곳에 볼거리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태평양을 끼고 달리는 해안도로의 왼쪽과 오른쪽으로 펼쳐지는 경관은 사뭇 대조적이다. 한쪽에서 험한 산세가 진을 치고 있다면, 반대편에서는 수평선 끝까지 바다가 넘실거린다. 이국적인 풍광에 지루해질 때쯤 첫 번째 명소인 싼셴다이(三仙臺)에 이르렀다.

 


조수의 흐름에 따라 몽돌이 자그락거리는 소리를 내는 해변은 관광객으로 붐볐다. 봉우리 두 개가 봉긋하게 솟은 싼셴다이는 세 명의 신선이 놀러왔던 곳이라고 전해진다. 두 신선이 사귀는 것을 질투했던 다른 신선이 그들의 사랑을 끊어놓기 위해 검으로 육지를 베어 분리시켰다고 한다. 바다를 향해 불쑥 튀어나온 싼셴다이는 썰물 때면 걸어서 건너갈 수 있다.

 

연한 하늘색과 짙은 파란색이 층을 이뤄내는 바닷물은 열대의 섬에서 보던 것처럼 예뻤다. 바닥이 그대로 비치는 맑은 물이 햇빛을 받아 찬연하게 빛났고, 때마침 흐리던 하늘에서도 구름이 걷혀 멋진 색조를 만들었다.

 

싼셴다이와 육지는 8개의 아치가 놓인 다리로 연결돼 있다. 파도는 모두 교각 방향으로 전진과 후퇴를 반복했다. 집어삼킬 듯 강렬한 기세로 들어왔다가는 이내 고요히 뒤로 빠졌다. 다리를 해변으로 착각한 바닷물이 시원한 파열음을 뿜어내며 포말을 흩뿌렸다.

 

바다 위에 올망졸망한 돌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는 시유산(石雨傘)을 거쳐 바셴둥(八仙洞)으로 나아갔다. 석기 시대의 유적인 이곳은 바위에 크고 작은 동굴들이 파인 곳으로 신선이 노닐었을 만큼 경치가 좋다.


실제로 동굴에는 대만 사람들이 모시는 각종 신(神)들이 모셔져 있었다. 불교와 도교를 신봉하는 신자들은 첫 번째 동굴에서 향을 피운 뒤 절을 하고 돌아갔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이라고 쓰인 글귀 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은 신묘하고 흥미로웠다.

 

다음 동굴인 조음동(潮音洞)까지는 가파른 계단을 힘겹게 올라가야 했다. 바다의 파도소리가 천둥처럼 들린다는 동굴에는 아래와는 달리 찾는 이가 거의 없었다. 불상을 제외하곤 전혀 볼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머지 동굴들도 불상과 위패만이 고요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사진/이진욱 기자(cityboy@yna.co.kr)ㆍ글/박상현 기자(psh59@yna.co.kr)


대만 동부③ 회색 안개가 자욱한 태초의 풍광
[연합르페르 2007-02-23 09:57]

강원도의 영월이나 정선에서처럼 대만 동부의 길은 거개가 심하게 휘어져 있었다. 그만큼 산이 많다는 반증일 것이다.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는다는 설악산과 오대산을 익히 돌아봤던 터라, 여행하는 며칠 동안 '대만 동부는 강원도와 같다'는 등식을 성급히 성립시킬 뻔했다.

하지만 어설프게 적용시켰던 가설은 타이루거(太魯閣)에서 단번에 깨졌다. 한국에는 타이루거에 비길 만한 명소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원주민 말로 '종족'이라는 뜻을 가진 타이루거는 중국어로는 '웅장한 산'쯤으로 해석된다. 실은 산이 아니라 해발 2000m의 산들 사이로 깊숙이 들어간 대리석 협곡이다. 흘러내리는 물이 돌을 깎기도 하고, 산들이 솟아오르기도 해서 좁고 깊은 골짜기가 만들어졌다.

 

단순하게 기암절벽들이 약간의 틈을 두고 떨어져 있는 것으로 이해해도 좋다. 그런데 남한에서 가장 높다는 한라산 백록담도 1950m에 불과하니, 이곳에서는 명함도 내밀 수 없다. 규모와 높이에서 우리의 산보다 월등한 셈이다.

 

타이루거의 날씨는 변화무쌍해서 종잡을 수가 없었다. 아침에는 해가 떠서 뙤약볕이 내리 쬐더니 오후에는 구름이 몰려와 잔뜩 흐려졌다. 해변도로에서 보면 타이루거에는 언제나 회색 안개가 자욱하여 영험한 분위기가 풍겼다.

 

화롄을 떠난 버스는 현기증이 날 정도로 높이 솟은 협곡 사이를 곡예하듯 올라갔다. 타이루거를 관광할 때 이용하는 도로의 이름은 '중부횡관공로(中部橫貫公路)'. 장제스가 동서 간을 잇는 국도의 필요성을 절감한 후 건설토록 명령했다.

 

대만의 허리를 동서로 가르려던 시도는 역시 산 때문에 쉽지가 않았다. 퇴역군인과 죄수가 동원된 3년 남짓의 공기 동안 212명이 사망하고, 702명이 다쳤다. 하루가 멀다 하고 사상자가 발생한 것이다.


타이루거의 지질이 약해서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삽과 도끼만으로 길을 놓다 보니 사고가 일어나기 쉬웠다. 정부에서는 아쉽게 유명을 달리한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도로 초입에 창춘츠(長春祠)를 건설하고 위패를 모셨다.

 

봄이 오면 제비들이 날아온다는 동굴 '옌쯔커우(燕子口)'를 지나쳐 '

주취둥(九曲洞)'에 닿았다. 산을 깎아 만든 동굴은 밝음과 어둠의 중간상태에 있었다. 반대편 절벽은 환하게 보였지만 나머지 세 방향은 완전히 막혀 있었다.

 

주취둥의 어떤 지점에서는 계곡의 상승기류가 강해서 가벼운 물건을 던지면 가라앉지 않고 허공으로 떠올랐다. 주취둥에서 더 올라가면 절과 호텔이 보이는 '톈샹(天祥)'이 나오지만 이곳까지 올라가지 않아도 대자연의 위대함과 장엄함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 원주민과 한족이 공존하는 도시, 화롄

마오쩌둥(毛澤東)의 공산당에게 패배한 장제스가 대만으로 도피했을 때 동행했던 본토인은 200만 명에 육박했다. 중국 각지에서 모여들었던 이들은 문화와 전통이 상이했고 방언도 제각각이었다.

푸젠(福建)성 출신이 다수를 점했던 대만인은 새로운 이주민의 출현에 거부감을 느꼈고 그들을 '외성인(外省人)', 자신을 '본성인(本省人)'이라 불렀다. 하지만 당시 대만의 주인이라 생각했던 백성들 역시 한때는 이방인이었다.

 


재작년 대만 텔레비전에서는 최초로 원주민을 소재로 한 드라마를 방영했다. 젊은 원주민 형제가 타이베이로 상경해 겪는 어려움을 담은 이야기는 원주민방송을 통해 전파를 탔다.

 

그런데 원주민방송의 개국을 도운 인물은 공교롭게도 한족인 천수이볜(陣水扁) 총통이었다. 그는 중국의 통일 압력에 저항하기 위해 대륙과는 차별화되는 대만 고유의 정체성이 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고자 했다. 한족간의 분쟁에서 도구로 이용된 점이 안타깝긴 하지만 주류 사회에서 비켜나 있던 원주민에게는 나쁘지 않은 '정치적 전략'이었을 것이다.

 

산맥 동쪽에 흩어져 살고 있는 원주민 11개 종족 가운데 가장 수가 많은 것은 아메이(阿美)족이다. 동쪽 평야지대에 뿌리를 박고 생활하는 그들은 한족과의 동화가 가장 많이 이루어진 것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아직도 모계사회의 형태를 띠고 있고, 7~8월에는 '수확제'를 실시하는 등 독자적인 문화가 남아 있다.

 

여름이 아니어도 화롄에서는 아메이족의 춤과 노래를 감상할 수 있다. 화롄시 교외에 위치한 아메이문화촌(阿美文化村)에서는 매일 밤 관광객을 상대로 전통적인 춤과 결혼식을 선보인다. 부채춤을 떠올리는 귀엽고 앙증맞은 안무와 관객의 참여를 통해 흥겨운 축제의 장을 이끌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문화촌 인근의 '난삔(南濱)'에는 야시장이 열려 낮 동안의 열기를 지속시킨다. 중화권에 널리 퍼져 있는 야시장이 대만이라고 해서 없을 리 없었다.

놀이와 음식, 쇼핑을 한자리에서 해결할 수 있는 대만의 야시장은 디지털이 아니라 아날로그를 지향했다. 인형이나 장난감을 놓고 벌이는 게임은 다트, 농구, 마작 등 ‘심심풀이 놀이’나 마찬가지였다. 간식과 폭죽을 파는 상인도 자리를 차지하고 손님을 끌었다.

 

화롄 시내로 향하는 동안 작은 공원에서는 또 다른 아메이족 민속공연이 열리고 있었다. 내용은 대동소이했고, 복장도 거의 동일했다. 소수민족을 아우르는 중국인 특유의 기질이 대만에서도 발휘되고 있는 듯했다. 화롄에서 원주민과 한족은 같은 공간 속에서 활동하며 각자의 영역을 줄여가고 있었다.

사진/이진욱 기자(cityboy@yna.co.kr)ㆍ글/박상현 기자(psh59@yna.co.kr)

 



  대만 동부④ 이슬을 먹고 자라는 바오종차
[연합르페르 2007-02-23 09:57]

대만 사람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차를 즐겨 마신다. 의식주가 아니라 '식의주(食衣住)'라는 단어를 사용해야 할 정도로 먹는 것을 중시하는 그들은 '차'를 유달리 애호한다.
 

해마다 열리는 차 품평회에서 수위를 차지한 상품은 80만 원 이상을 호가하지만 언제나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식당이나 가정에서도 손님을 맞이할 때면 생수가 아니라 차를 제공한다.

스타벅스나 바리스타 커피 같은 커피전문점이 생겨나고 있지만 차에 대한 그들의 사랑은 여전하다. 청나라 황제가 대만에서 생산된 우롱차를 마셨다는 얘기가 전해올 정도이니 이들의 차에 대한 자부심은 유별날 수밖에 없다.

 

차로 이름난 대만에서도 핑린(坪林)은 대다수의 마을 주민이 차에 매달리고 있는 '다향(茶鄕)'이다. 이 지방에서 재배되는 '바오종차(包種茶)'는 이슬을 먹고 자라 부드러우면서도 순한 맛을 낸다. 풍부한 강수량과 배수가 잘 되는 토양이 차 농사에 적합한 환경을 제공한다.

 

핑린이 차의 고장이라 불리는 또 다른 이유는 차의 역사와 문화 등이 전시된 다업박물관(茶業博物館)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차에 대한 각종 설명을 지나치다 보면 '차(茶)' 글자가 다양한 서체로 새겨진 목판이 보인다. 세상에는 글씨의 모양새만큼이나 많은 차가 존재하겠지만 본질은 하나로 통일된다.

 

이 글자 안에는 차의 좋은 점이 모두 함축돼 있다. 멀리서 관찰해보면 차는 풀(十十)과 나무(木) 사이에 사람(人)이 끼어 있는 형국이다. 차에서 우러나온 자연의 빛깔을 감상하고, 향내를 맡고, 맛을 음미하는 동안 인간은 자연으로 돌아가 육체와 정신에 쌓였던 갈증을 해소하고 속세의 때를 털어버린다.


나무가 무성한 휴양림이나 새파란 초원에 들르지 않아도 차를 마시기만 하면 자연의 기운을 받아들여 '무위자연(無爲自然)'할 수 있는 셈이다. 좋은 차는 맑은 물과 공기를 머금고 성장한 '자연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대만 사람들은 바오종차나 우롱차처럼 반쯤 발효시킨 차를 좋아한다. 제조 공정의 차이에 따라 종류가 나눠지는데, 바오종차는 꽃 냄새나 나고 담백하지만 우롱차는 맛이 진하고 희미하게 과일 향이 풍긴다. 이 차들은 봄부터 초겨울까지 6번에 걸쳐 수확한다. 그 중에서도 봄에 따는 춘차(春茶)와 마지막에 걷는 동차(冬茶)가 가장 맛이 뛰어나다.

 

다업박물관에서는 '동방미인차(東方美人茶)'와 '공부차(工夫茶)'라는 재미있는 용어를 발견할 수 있다. 서양으로 수출되던 차 가운데 유독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아름다운 차가 동방미인차이다.

 

차를 잔에 넣고 물을 부으면 찻잎이 펴지는 모양새가 요염하고 매혹적이어서 '동쪽 나라에서 온 고혹적인 자태의 여인'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동그랗게 말려 있는 우롱차와는 달리 잎이 늘씬한 동방미인차는 호박색을 띤다. 은은한 꿀맛이 특징인데, 대만에서만 자란다.

 

공부차는 단어의 뜻처럼 차에 대한 공부를 요구하는 차 음용법이다. 단순하게 찻잎을 잔에 부어 마시는 것만이 아니라 물의 온도, 차의 양, 우려내는 시간을 모두 고려해 최상의 맛을 추구한다.

 

예를 들어 일반 차는 펄펄 끓는 물이 좋지만, 바오종차나 우롱차는 85∼90℃의 물로 마셔야 한다는 식이다. 까다롭고 복잡하지만 조금이라도 더 훌륭한 미감을 찾아내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이처럼 대만 사람들은 차에 관한 한 아직도 전통적인 방법을 고수하고 있다. 그들은 차와 마주했을 때 겸허하고 경건한 자세로 찻물을 따르고 손님에게 조심스럽게 권한다. 또한 찻잔이 빌 때쯤이면 어김없이 다기를 들고서 첨잔을 해준다. 그때마다 미묘하게 달라지는 맛과 향기를 감별하는 것도 대만의 차가 선사하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다.

 


이곳을 여행하는 동안 마시게 될 차는 무수히 많다. 며칠 만에 불초의 이방인이 종류를 완벽하게 구별할 수 있을 리 만무하지만, 맹물에 오묘한 맛을 발현시키는 차의 세계에 몰입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차는 다른 음료처럼 테이크아웃해서 가볍게 즐길 수 없는 물건이기에 반드시 한 자리에 앉아 사색하고 명상하며 마셔야 한다. 다예관에 앉아 몇 시간이고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그들의 여유는 차 문화로 인해 잉태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과유불급'이라 했던 것처럼 차도 지나치게 많이 마시면 독이 될 수 있다. 무조건 차만 마셨다가는 체내의 칼슘이 소실될 우려가 있다. 같은 찻잎으로 몇 차례씩 마씨는 것은 괜찮지만, 양은 하루에 600㏄를 넘기지 않는 것이 좋다. 중용과 절제 역시 차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다.

사진/이진욱 기자(cityboy@yna.co.kr)ㆍ글/박상현 기자(psh59@yna.co.kr)

 


       대만 동부⑤ 소망을 잉태한 불의 비상
[연합르페르 2007-02-23 09:57]

음력 설 축제의 마지막 행사가 펼쳐지는 원소절(정월대보름)이 오면 타이베이 시민들은 교외의 작은 시골 마을로 발길을 돌린다. 한해의 소원을 비는 등불축제에 참가하기 위함이다.

그들을 따라가는 동안 짧은 멀미가 날 만큼 꾸불꾸불한 고갯길이 계속됐다. 간혹 등장하는 건물들은 높은 온도와 습도 때문에 빛이 바랬고 무미건조하며 단조로웠다.

 

목적지인 핑시(平溪)의 스펀(十分)까지는 차로 들어갈 수 없었다. 등불축제를 찾아오는 차량이 많아 교통관제를 실시하고 있었다. 힘겹게 만원버스에 올라서자 운전수는 덜컹거리는 길을 재촉했다. 더 이상 사람을 수용할 수 없을 것 같던 버스는 여러 번 멈춰서 승객을 태웠다.

 

대만 각지에서 열리는 등불축제는 1년 동안 건강하고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기원하는 행사다. 어스름이 깔리면서 북적이는 사람의 수가 급격히 늘어났다. 그들의 손에는 얇은 종이로 제작된 원통형 등불이 들려 있었다. 등불은 전쟁에 나서는 군인의 총과 같이 원소절의 핑시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이었다.

 

높이가 허리만큼 올라오는 등불에는 각가지 사연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부자가 되게 해 달라'거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인연을 지켜달라'는 일상적인 주문은 물론이고 거창하게 '세계평화'를 소망하는 메시지도 있었다.

 

핑시 등불축제가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그리 오래지 않은 일이다. 소설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제갈공명의 모자를 닮은 탓에 '공명등(孔明燈)'이라고도 불리는 등불은 본래 한족들이 안전하다는 사실을 전하던 도구였다.

 

과거 이 지역에 거주하던 원주민들은 이민족의 침입을 거부하기 위해 적군의 목을 베던 습성이 있었다. 원주민의 눈으로 보면 눈엣가시였던 한족은 항상 생존의 위협을 느꼈고, 습격을 받고서도 목숨을 부지했을 경우에는 일종의 신호로서 등을 하늘로 띄웠다. 등불은 모든 사람들이 쉽게 알아볼 수 있는 편지였던 셈이다.


◆ 무수한 등불에서 희망을 발견하다

대만의 부총통과 타이베이 현의 지사가 올 정도로 유명해진 핑시의 등불축제는 완전히 어두워진 뒤에야 개회를 선언했다. 하지만 이러한 축제에서까지 고관대작의 명령을 들을 필요는 없는 법이다. 한참 전부터 사람들은 등을 하늘로 올려 보내느라 이리저리 옮겨 다니기 바빴다.

 

등불은 열기구와 같은 원리로 하늘을 날았는데, 기름으로 적신 작은 종이에 불을 붙이고 땅에서 서서히 팽창시키면 공기가 어느 정도 찼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 순간 하늘로 들어 올리면서 손을 놓으면 등불이 둥실둥실 떠오른다. 빠르게 비상하던 등불은 일정한 고도에 이르면 속도를 줄이고 바람의 흐름에 몸을 맡겼다.

 

반딧불이인지 유난히 밝은 별인지 분간할 수 없던 등불은 점차 멀어지더니 잠시 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시간이 흐르자 하늘로 솟아오르는 불의 숫자는 지상에 모여든 사람의 숫자만큼이나 많아졌다. 간절한 소원이 적힌 등불은 밤을 밝히고, 마음을 따스하게 보듬었다.

 

축제의 백미는 수십 개의 등불을 동시에 날리는 장면이다. 카운트다운을 하며 관람객의 숨을 죽이던 현장에서 한꺼번에 탄성이 터질 때는 고개를 들어 허공을 응시해야 한다. 하늘을 덮어버릴 것처럼 환한 불빛들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퍼지며 훨훨 날아갔다.

 

등불은 동시에 출발해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가더니 하늘에 무질서하게 선을 그어댔다. 지상에서는 빨강, 노랑, 파랑색으로 색상이 달랐지만, 하늘에 오른 이상 색깔은 무의미했다. 등불이 제멋대로 그린 그림의 내용은 현대 추상화만큼이나 형이상적이고 알 수 없었다.

 


'등불이 높이 날자 아름다운 꿈이 이루어진다(天燈高飛 美夢成眞)'는 축제의 문구처럼 하늘을 수놓는 등불은 셀 수 없이 많았지만, 그것들은 모두 소중한 의미를 갖는다. 핑시를 방문한 가족이나 연인은 염원을 담은 등불과 작별하면서 못내 아쉬움을 감추지 못한다.

 

정성 들여 키웠던 애완용품을 손에서 떠나보낼 때 느끼는 슬픔과 유사한 감정을 경험하는 듯했다. 그들은 천국으로 쏘아올린 등불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끝까지 하늘을 응시했다. 모두의 가슴에는 자신이 띄운 것이 무사히 비행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자리 잡았다.

 

가끔 등불의 종이가 타서 높이 날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땅으로 떨어지는 녀석도 있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기도했던 내용은 하늘까지 전달됐을 테니까 말이다.

사진/이진욱 기자(cityboy@yna.co.kr)ㆍ글/박상현 기자(psh59@yna.co.kr)

 

 



        대만 동부⑥ 알아두면 좋은 여행정보
[연합르페르 2007-02-23 09:58]

대만 동부는 번잡함과는 거리가 먼 땅이다. 시끄럽고 소란스러운 '중화'가 아니라 여유와 한가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 화롄을 기점으로 잡고 북쪽의 칭수이(淸水)단애부터 남쪽의 타이둥으로 남하하는 것이 좋다.
 

차창으로 스쳐가는 맑은 공기와 한적한 자연풍광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곳이다.

 

▲ 가는 법 = 대한항공이 매일 1편씩 인천-타이베이 구간을 운항하고 있다. 오전 9시 25분 인천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는 타이베이에 오전 11시 10분에 도착하며, 돌아오는 비행기는 오후 12시 20분에 출발해 오후 3시 45분 인천에 착륙한다.

이외에도 아시아나항공, 대만 원동항공, 푸싱(復興)항공, 에바항공 등이 인천, 김해, 제주, 청주에서 대만으로 항공편을 운영하고 있다.

 

▲ 현지교통 = 화롄이나 타이둥은 버스가 발달하지 않은 도시다. 따라서 개별여행으로 돌아볼 경우 오토바이나 차를 렌트하거나 택시를 빌리는 것이 좋다. 타이루거에서도 대중교통이 거의 없으므로 걸어 다녀야 한다.

화롄의 택시 요금은 기본이 80위안(2천400원)이며, 밤 10시가 넘으면 할증요금이 적용된다. 타이베이에서 화롄이나 타이둥을 가려면 항공이나 기차를 이용해야 한다. 국내선 항공기를 타면 화롄까지는 35분, 타이둥까지는 50분이 소요된다.

 

▲ 비자, 환율, 전압, 시차 = 체류기간이 30일 이내일 경우 무비자 입국이 가능하다. 다만 여권 유효기간이 6개월 이상 남아있어야 한다. 화폐 단위는 타이완 달러(NT$)이며 한자로는 위안(元)으로 표기한다. 현재 1위안은 약 30원이다. 전압은 110V, 60Hz이며 시차는 한국보다 1시간 늦다.

▲ 기후 = 대만 여행의 성수기는 '덥지 않을' 때이다. 온도와 습도가 높은 여름에는 여행하기 좋지 않다. 아열대 기후인 대만의 겨울은 우리 나라처럼 춥지는 않지만 밤이 되면 꽤 쌀쌀해진다. 타이베이의 2월 날씨는 서울의 5월 날씨와 비슷하다.

 

▲ 알아두면 좋은 여행정보 = 대만에서도 차와 사람들이 우측통행을 한다. 또한 신호등이 파란 불로 바뀌었다고 해서 무조건 횡단보도를 건너면 위험하다.


중국과는 달리 간체자를 사용하지 않아서 거리의 간판을 읽거나 필담을 나눌 때 이해하기 쉽고, 편의점이 많아서 여행이 편하다.

하지만 우리와는 다르게 일본에 대한 시각이 우리만큼 부정적이지 않고, 녹차보다 우롱차를 많이 마신다. 면세점 담배 가격이 저렴해서, 타이베이공항이 인천공항보다 3달러 더 싸다.

자세한 여행정보는 타이완관광진흥청 서울사무소에서 얻을 수 있다. www.tourtaiwan.or.kr 02-732-2357~8

 

▲ 가볼만한 곳

- 홍예(紅葉)온천 : 대만에 온천 붐이 일기 시작한 것은 10년 전쯤이다. 홍예온천은 화롄에서 1시간 3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아직까지도 일본식 건물을 사용하고 있다. 노천탕과 개인욕탕을 갖추었고, 탄산 온천수가 피부 미용과 관절염 치료에 좋다. 가격은 성인 100위안, 아이 70위안이며 노천탕에 들어갈 때는 수영복을 입어야 한다.

 

- 화동종곡(花東縱谷) : 화롄과 타이둥을 연결하며 중앙산맥과 해안산맥 사이에 종으로 놓인 계곡이다. 보기 드물게 두 개의 산맥 사이에 평원을 갖추고 있는 곳이다. 계곡을 따라서 전형적인 농촌마을이 자리 잡고 있고, 산악지대에는 폭포와 삼림, 온천 등이 발달돼 있다. 늦겨울에는 황금빛으로 물든 유채꽃을, 늦여름에는 금침화(金針花)를 볼 수 있다.

 

- 칭수이(淸水)단애 : 칭수이단애는 화롄에서 타이베이로 향하는 길에 있다. 대만 동부 연안의 절경이며 대만 8경 중 하나이다. 높이가 1천 여m에 이르고, 직각에 가까운 경사로 태평양에 인접해 있다. 한쪽은 절벽, 한쪽은 망망대해의 험준한 형세가 감탄을 자아낸다. 타이루거와 함께 돌아보면 좋다.

 

- 우허관광차밭(舞鶴觀光茶園) : 화동종곡과 북회귀선에 자리한 우허관광차밭은 맑은 공기와 수려한 풍경을 자랑하는 곳이다. 차의 성장에 적합한 기후와 토양을 가지고 있어서 사시사철 대지가 푸르다. 이 때문에 시골정취를 만끽하려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편이다.


- 리위탄(鯉魚潭) : 대만 동부 최대의 호수로서 리위샨(鯉魚山)에 안긴 모습을 하고 있다. 화롄시에서 가깝고 생태학습장도 있다. 호수 주변을 돌며 자전거 하이킹이나 산책을 즐겨도 좋다. 물 위에서 탈 수 있는 보트도 있다.

 

- 츠난삼림유락구(池南森林遊樂區) : 과거 임업 생산물을 나르는 운송기지였던 곳에 세워진 휴양림이다. 20년 전까지는 나무를 베는 작업이 활발히 진행됐는데, 정부에서 금지한 이후 휴양림으로 바뀌었다. 리위탄 근처에 있으며, 임업이 이루어지던 당시의 물품들이 전시돼 있다.

 

- 주리관(竹理館) : 30년 동안 차를 연구하고 있는 주인이 1996년 세운 찻집이다. 일반찻집과는 다르게 차뿐만 아니라 찻잎을 이용한 요리, 간식까지 제공한다. 찻잎이 들어간 음식은 맛이 담백하고 깔끔해 여성들이 많이 찾는다. www.istea.com.tw

 

- 즈텅루(紫藤廬) : 일본 통치 시대의 목조건물을 개조해 만든 다예관으로 등나무 덩굴이 정원을 둘러싸고 있다. 1981년 개장해 다예관 유행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아늑한 분위기 속에서 담소를 나누며 차를 즐길 수 있다. 차를 주문하면 직원이 차 마시는 법을 설명해준다.

사진/이진욱 기자(cityboy@yna.co.kr)ㆍ글/박상현 기자(psh59@yna.co.kr)

 


                               Giovanni Marradi   피아노 연주곡  

                            

 

                                                          행복한 하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