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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풍산과 풍천의 맛과 멋, 된장과 한지

향기男 피스톨金 2007. 5. 21. 13:03

  

     풍산과 풍천의 맛과 멋, 된장과 한지
풍산과 풍천은 말 그대로 산(山)과 내(川)가 풍요로운 땅이다. 그래서인지 산 좋고 물 좋은 고장이다. 예부터 산이 좋으면 어진 자가 많고, 물이 좋으면 지혜로운 자가 많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곳 풍산과 풍천 땅에 어질고 지혜로운 자가 많아서인지 지금도 안동 지방에서 가장 풍요로운 땅이다.

▲ 된장을 숙성시키는 3000여 개의 항아리
ⓒ2007 이상기
풍산하면 질 좋은 쌀이 유명하고 최근에는 김치가 유명해졌지만, 알음알음 입소문을 통해 유명해진 게 또 있다. 바로 한지와 된장이다. 풍산은 산에서 나는 닥나무를 이용하여 한지를 만들고, 풍천은 들에서 나는 질 좋은 콩을 이용하여 장(醬)을 만들고 있다.

하회마을을 보고 나오다 보면 상주와 안동 방향으로 갈라지는 하회마을 입구 3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안동 방향으로 가다 보면 길 왼쪽으로 바로 '하회 된장마을'을 만나게 된다.

된장마을이라고 해서 동네 전체가 된장을 만드는 곳은 아니고 최근에 시설을 갖춘 일종의 농원 겸 공장이다. 이곳에서 600년의 비밀을 간직한 안동 반가(班家)된장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곳 출신인 류탁씨가 20여년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어린 시절의 꿈을 실현해가고 있다. 어머니 정연희 여사와 함께 600년 이어 온 양반가의 된장 비법을 현대적으로 되살리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 재래식 가마솥
ⓒ2007 이상기
100톤 정도의 콩을 저장할 수 있는 황토 저장실, 100㎏의 콩을 삶을 수 있는 10기의 대형 가마솥, 메주를 매달아 말리는 대형 유리 건조실, 메주를 숙성시켜 된장, 간장, 고추장을 만드는 3000여개의 대형 항아리가 공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황토, 가마솥, 항아리와 같은 전통적인 기법과 처리, 보존, 숙성이라는 현대화된 과학을 접목시켜 가장 맛있는 장류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곳의 된장에서 우리는 짭짜름하면서도 부드러운 발효음식의 진수를 맛볼 수 있었다. 아직은 초기 단계라 음식까지 제공하지를 않아 된장찌개, 간장을 이용한 반찬, 고추장의 참맛을 알 수는 없었지만 혀에 남는 개운한 느낌을 통해 전통의 맛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하회 된장마을'은 <동아일보>에 <식객(食客)>을 연재하는 허영만 화백의 <식객> 제86화 '말날'의 취재 장소로 골랐던 곳이기도 하다. 그 만화에 보면 류진 사장과 어머니 정연희 여사가 등장한다.

▲ 안동 한지 공예생활관: 탈이 아주 이색적이다.
ⓒ2007 이상기
이곳을 나와 안동 방향으로 계속 가다 안교 3거리 조금 못 미쳐 왼쪽에 보면 '안동 한지 공예전시관'이 보인다. 멀리서 보면 공장 건물처럼 보이지만 이곳은 전시관, 공예관이 있는 복합 문화공간이면서 생산과 거래를 하는 공장과 판매 공간이다. 길에서 다리를 건너 들어가면 먼저 한지 공예관 겸 생활관이 나온다.

이맹자 여사가 관장으로 있는 한지 공예관에는 한지를 이용해 만든 생활용품이 가득 전시되어 있다. 부채, 접시, 차받침, 함과 통, 상, 서랍장과 경대 등이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한지로 어떻게 이렇게 아름답고 튼튼하며 실용적인 물건을 만들 수 있는 건지 정말 감탄스럽다. 더욱이 한쪽에서는 지금도 한지를 이용해 공예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공예관이자 생활관이다.

▲ 채색 한지로 만든 다양한 생활용품
ⓒ2007 이상기
이곳을 지나 더 들어가면 한지 생산 공장을 만나게 된다. 우리는 안내인과 함께 현장을 돌며 한지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일일이 체험할 수 있었다. 우리가 가장 먼저 들어간 곳은 닥나무를 표백하는 장소이다.

껍질을 벗겨 부드럽게 가공한 닥을 약품 처리하여 하얗게 만든다. 다음 공정이 이것을 짓이겨 죽처럼 만드는 과정이다. 다음은 죽이 된 재료를 풀(접착제) 기운이 있는 용액과 섞어 아주 묽은 상태로 만든다.

그 다음에는 묽은 죽 용액을 체에 흘러가게 한다. 체에는 얇은 막이 형성되고 이것을 떼어 내 얇은 한지 한 장을 만들고, 이것을 켜켜히 쌓아 나간다. "쌓은 한지들이 붙지 않느냐?"고 내가 물어 보았다.

그러자 안내인은 풀기운이 있는 용액 속에 낱낱의 장들이 붙지 않도록 하는 성분이 들어 있다고 설명했다. 그 성분은 잔뿌리가 많은 식물에서 나온다면서 우리에게 그것을 보여 주었다.

▲ 한지를 만들기 위해 닥 용액을 흘러내리게 한다(좌)/한지를 염색한 다음 말리고 있다(우)
ⓒ2007 이상기
다음으로 간 곳은 이들 한지를 염색하는 곳이다. 빨간색, 연두색, 파란색 등 원색은 물론이고 점, 선, 무늬가 있는 다양한 색상의 한지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또 다른 곳에서는 한지를 두껍게 붙이면서 자연스러운 요철(올록볼록)을 만들고 있었다. 이것은 일본으로 수출되어 벽지로 사용된다고 한다.

이들을 다 보고 전시 판매관인 풍산 지예관(紙藝館)으로 오니 한지로 만든 탈, 연, 벽지류 등이 전시되어 있다. 그 중에서 한석봉의 천자문을 두 장으로 인쇄한 한지가 먼저 내 눈에 들어온다.

다음으로는 훈민정음을 인쇄한 한지도 보인다. 그러고 보니 어떤 식당에서 이 한지들을 벽지로 사용한 것을 본 기억이 난다. 또 그 옆을 보니 낯이 익은 글귀가 한지에 인쇄되어 있다. '원이 아버지께'로 시작하는 유명한 편지다.

▲ 한지로 만든 탈
ⓒ2007 이상기
1998년 4월 안동 시내의 400년 된 무덤에서 발견된 한글 편지가 큰 감동을 준 적이 있었다. 1586년 6월 1일 서른한 살 나이로 죽은 남편 이응태를 그리며 무덤 속에 넣었던 편지로, 우리에게는 '원이 엄마의 편지'로 잘 알려져 있다. 그 실물을 안동대 박물관에서 본 적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이곳 한지전시관에서 인쇄되어 배포되는 것이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안동땅 풍산과 풍천에서 하회 류성룡의 흔적을 찾고 그의 정신을 공부하는 것이었다. 두 번째 목적은 '이들 문화유산을 어떻게 하면 관광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을까?' 하는 점에 대한 연구였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된장과 한지를 통해 풍산과 풍천의 맛과 멋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거기다 덤으로 한석봉과 허목을 통해 글씨의 아름다움을 보았고, 원이 엄마를 통해 구구절절한 사랑을 배우기까지 했다. 이처럼 원래의 목적 외에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을 만나고 또 큰 배움과 깨달음을 얻는 것이 바로 여행의 즐거움인가 보다. [오마이뉴스 2007-05-21 10:49]    


덧붙이는 글
하회마을과 병산서원을 통해 안동의 문화와 문화유산을 소개한다. 그리고 인근에 있는 된장마을, 한지전시관을 통해 안동의 맛과 멋을 보여주려고 한다. 4번 연재 중 마지막 회이다.

    

 

  
                        Peter Piper - Frank Mil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