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OKTA 천용수 회장
“삶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과 열정은
나를 청춘으로 살게 하는 원동력 입니다.”
지난 12일 스트라스필드에서 차로 15분 가량 떨어진 KOAST 회의실에서 만난 천용수 회장은 인사를 마치자 마자 취재 도구들을 꺼내 드는 기자에게 “천천히 하죠~”(웃음)라며 오히려 취재기자의 긴장을 풀어주려는 모습을 보여줬다.
천 회장은 인터뷰하기 이틀 전에 시드니에 도착했다. 출장차 중국, 북한, 한국, 유럽을 방문 중이었는데 다행히 그가 시드니에 도착한 다음 날 인터뷰 요청을 하게 되었고 그 또한 흔쾌히 요청을 수락해 주었다.
음악을 사랑하는 자유로운 영혼에서 열정적인 사회인으로….
청년시절 그는 전공보다 음악에 심취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의 그의 모습으로는 기타를 치며 노래 부르는 모습이 상상이 되지 않지만 여느 대학생들이 자유 분방함을 음악으로 표현하듯이 그도 자유로운 영혼이고자 했던 것일까?
그는 군대에 입대하기 위해 음악에 대한 마음을 접었고, 제대 후 ‘세상을 열심히, 긍정적으로 살자’라는 마음으로 직장생활에도 열정적이었다고…
한국의 경기가 지금보다 비교적 좋았던 1978년, 천 회장은 장교로 전역한 후 독일계 제약회사에서 마케팅 담당으로 일했다. 마케팅 부서로 입사한 건 아니지만 본래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천 회장은 마케팅 부서의 일이 적성에 맞았고 입사 일 년 만에 우수 직원에게 보내주는 해외 여행권을 거머쥘 정도로 회사에서는 인정받는 인재였다.
그런 그가 1983년 돌연 이민을 선언했을 때, 회사에서는 다른 회사에 스카우트 되어 회사를 떠나는 것이 아니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한국에서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했었다고…
83년 이민 당시, 언어 때문에 고생도 많이 했지만 그는 호주 도착한지 3일 만에 돈을 벌기 위해 일을 시작했다. 우연히 서부 호주에서 배를 구경하던 중 한 선원이 알부민을 주문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언어도 통하지 않은 상태에서 떠듬떠듬 약국에서 약을 구입해다가 선원에게 배달시켜줬고, 그 선원은 수고비 명목으로 그에게 약간의 돈을 건넸다고 한다.
그 당시 알부민은 국가의 보조를 받아 필요한 사람에게 무상으로 주는 약으로, 천 회장의 말을 빌리자면 ‘대동강 물을 돈을 받고 팔았던 봉이 김선달 처럼’ 그는 기발한 아이디어 하나로 배에 물품을 납품하는 일로 호주에서의 첫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85년, 예상치 못한 좌절…
천 회장은 호주에 이민 온지 3년 만에 집을 지을 정도로 단기간에 사업은 성장 궤도에 올랐고, 그 후 2년 만에 다른 사업을 시작할 정도로 사업이 번창했다. 그 당시에는 하루 24시간도 모자랄 정도로 바쁜 시간을 보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그에게 첫 번째 시련이 찾아왔다. 믿었던 직원이 수십만 불의 회사 재정을 횡령해 지갑에는 달랑 1달러 뿐이었던 때가 있었다고…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그 동안 쌓아온 신용으로 회사를 다시 일으킬 수 있었지만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고 잊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일을 통해 많은 교훈을 얻었고 지금의 KOAST는 Missha, Eximtech, Koast Pyong Yang 등 전세계에 14개의 계열사를 가지고 있으며, 연 매출액 1억 4000만 달러에 이르고 시드니에만 해도 4개의 사무소가 있다.
북한사업에 대한 열정…
“많은 사업체들이 골고루 성장하고 있고, 애착이 가지만 앞으로 북한 사업을 좀 더 확장하고 싶습니다. 국제적인 환경도 좋아지고 있고 오랜 시간 경험도 쌓았고, 이제는 자신 있게 북한 사업을 할 수 있는 경험물들이 축적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러시아에서 기름을 수입해 북한에 주유소와 아파트를 건설하는 사업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천 회장은 유독 북한사업에 애착을 보이고 있다. 지난 93년, 외국인 최초로 북한에 3층짜리 건물을 지어 8명의 사무국 직원들이 15년 동안 근무하고 있다는 것은 전무후무한 일 이라고….
15년 동안 그는 순수 경제 목적으로 북한을 방문 했었고 그 결과 북한에서도 북한의 경제 발전에 이바지 했다고 판단해 훈장을 주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천 회장은” 지금은 훈장을 받을지 결정하지 못한 상태이지만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천 회장이 훈장을 받는 다면 순수 기업인으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World-OKTA 천용수 회장
“91년도부터 16년 동안 옥타 회원으로 활동해 오면서 이사, 부회장. 이사장을 단계적으로 거쳐 ‘옥타맨’으로 성장해왔고, 이제는 옥타를 위해 봉사해야 할 때라고 느껴 회장출마를 결심했습니다.”
그는 지난해 11월, 제11차 해외 한민족 경제공동체 대회에서 제14대 World-OKTA 회장으로 선출됐다. 회장 출마 당시 그가 공약으로 내걸었던, 옥타 회원카드제는 현재 실시되고 있으며 옥타 회원은 공항에서 입.출입이 간단하게 시스템이 정비 되어 있다고 한다.
또한 준비중인 회원인증제가 실시되면 인증을 받은 회원은 중소기업으로부터 혜택을 받게 된다며 올해 10월 중에는 선거 당시 내세운 공약들이 다 실행될 것이라며 옥타에 대한 열정을 내 보였다.
오는 10월25~29일까지 시드니에서 ‘제12차 한민족경제공동체대회’ 개최
“오는 10월 25일부터 29일까지 시드니에서 열리는 제12차 세계 한민족 경제 공동체 대회는 단군 이래 해외동포들이 해외에서 제일 많이 모이는 대회가 될 것입니다. 정치 행사건, 경제 행사건, 모든 면에서 최대 규모이고 600여명 정도가 모일 예정입니다. 이것은 전세계 6000여 회원들이 이런 행사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천 회장은 "평생에 아마 한번 있는 시드니 행사에 주최가 되어 준비한다는 것만으로도 저 자체도 영광이고 잊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이 기회를 통해 전세계 옥타 회원들과 더 좋은 유대 관계를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또한 “시드니 지회 김승 회장 외 임원들이 이번 대회를 위해서 열성적으로 일하고 있다”며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 시드니 지회에 감사하고 이번 대회에 자원봉사자로 일하겠다고 지원해준 많은 교민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천 회장은 경제 공동체 행사에 한번 오면 “우리 말로 옥타 바이러스에 옮는다고 표현한다”고 말했다. 경제 공동체 행사는 전 세계 친구가 생기는 것이고 인포메이션을 얻을 수 있는 좋은 네트웍을 형성하는 것이다고 말하는 역대 대회 중 최대 행사가 될 이번 시드니 대회에 대한 천 회장의 애착은 대단했다.
인터뷰 내내 천용수 회장은 개인적인 이야기 보다 월드 옥타 이야기에 심취해 있었고, 더 활기를 띠었다. 철저히 옥타 회장으로서 봉사하고자 하는 그의 의지를 엿볼 수 있었고 이번 시드니 대회에 얼마나 열정을 쏟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옥타 회원을 위한 회장이다. 나 자신을 위한 회장이 아니다. 나는 회원들이 뽑아준 회장이고 회원들을 위해 존재하는 회장이다” 월드옥타 천용수 회장이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인터뷰를 마친 후 기자의 머리 속에 미국의 16대 대통령 에이브라함 링컨이 남긴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 이 말이 떠올랐다.
Koglo news <호주 시드니 호주일보 김미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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