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마시는 이야기들/세계음식 이모저모

중국인과 돼지고기

향기男 피스톨金 2005. 11. 24. 17:47
 

중국인과 돼지고기


중국 사람들에게 있어 돼지고기는 육류의 기본이다.

쇠고기보다 값도 비싼 편이지만 고기에 대한 사람들의 선호는 분명 돼지

고기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갈비라고 하면 쇠갈비를 뜻하지만

그들이 갈비라고 하면 돼지갈비를 뜻한다.

다시 말해서 중국의 음식점 메뉴에서도 쇠고기요리는 우육(牛肉), 양고기

요리는 양육(羊肉), 닭고기 요리는 계(鷄) 등으로 표시하여 주재료가 무엇인지를 알려 주지만 돼지고기가 주재료로 들어간 경우에는 그냥 고기 육(肉)자만을 쓰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들의 돼지고기에 대한 관념이 어떠한지를 보여 주는 예라

하겠다. 그들에게 있어 고기란 돼지고기이기 때문에 다른 고기처럼 구체적으로 수식어를 붙여 설명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중이 고기 맛을 보면 절간에 빈대가 남지 않는다는 고약한(?)

우리 속담에 걸 맞는 것으로 중국에는 돼지고기를 맛보면 중노릇을 그만둔다(看見猪 頭肉 緊要還俗)는 속담이 있다.

 

필자는 한번 중국인 친구에게 두 나라간의 육류 취향이 다른 것을 이야기

하며 그의 의견을 물어 본 적이 있었다. 그의 대답은 명쾌하였다.

"고선생, 소는 풀을 먹고 자라지만 돼지는 아무 것이나 먹고 잘 자랍니다.

 

사람도 아무 것이나 먹는 잡식성인데, 풀을 먹는 소의 고기가 좋겠오 아니면 아 무엇이나 먹는 돼지의 고기가 좋겠오?"

같은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중국사람들만큼 우유를 먹지 않는 민족도

드물 것이다.


<통돼지구이(고 乳猪, 카오르우주) >

 

광동 지방에서 요릿 상에 돼지구이요리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특히 새끼돼지를 통째로 구어서 내놓는 요리는 연회의 격을 한결 높여 주기 때문에 뺄 래야 뺄 수가 없는 필수 메뉴로 되어 있다.

 

통돼지구이는 광동성의 주강(珠江) 삼각지 일대가 유명한데, 잘 익은 돼지의 겉 색깔이 황금빛으로 아름다워 금돼지(金猪)라고 하며, 어미돼지는 대금저(大金猪), 새끼 돼지는 유저(乳猪)라고 한다. 유저는 우리의 애저에 해당하는 말이다. 그러나 음식점의 메뉴에서는 보통 취피유저(脆皮乳猪, 췌이피르우주)로 올 라 있는데 이는 바싹 구워 아삭아삭 씹히는 맛에 착안하여 붙인 이름이다.

 

그러나 이 요리가 광동 지방에서는 맛이 좋다 든가 잔칫상에 구색으로 놓아야 한다는 문제를 떠나서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갖 결혼한

여성으로서는 일생 일대의 명예가 걸린 처녀인정증서와 같은 역할을 하였기 때문이다.

 

광동 지방에서는 결혼 일이 되면 친정 집에서 하얀 천을 준비하여 첫날밤

잠자리 깔개로 사용토록 하였다. 다음날 아침이 되면 이 천을 벗기어 처마 밑에 내거는데, 이 천이 붉게 물들어 있으면 동네 사람들은 새댁이 처녀임을 인정하여 축하를 하고 시댁에서는 결혼 셋째 날 신부가 친정에 가면서 들고 갈 예물로 통 돼지를 구었다 한다.

이를 받아든 친정에서는 시집간 딸의 처녀성이 공인된 통돼지구이를 받은 기쁨을 친지들과 함께 나누었다.

 

별다른 근거가 없는 처녀성 확인 법으로 얼마나 많은 딸 가진 사람들이

통돼지구이를 받아먹지 못하고, 일생을 죄지은 기분으로 살았을까.

이 요리는 모든 중국인들이 존경하고 사랑하는 주은래(周恩來)와도 관계가 있다.

 

In Search of History라는 책을 쓴 T.H. White는 돼지고기를 먹는 것이

신 을 모독하는 행위라고 생각하는 유태인이었다.

그런 그가 돼지고기요리의 본 고장인 중국에 와서 몇 달을 체류하였으니

그 동안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은래 총리가 그를 초청하여 만찬을 베풀었고, 식탁의 가운데에는 화려한 황금빛 색깔을 자랑하는 취피유저(脆皮乳猪, 췌이피르우주)가 놓여졌다. 주은래는 전통적인 중국인의 식사예법에 따라 고기 한점을 집어들고 먹기를 권하였지만, 유태인인 White로서는 이러 지도, 저러 지도 못하고 난처하여 진땀을 흘리며 사양하다 보니 연회의 분위기가 식어버렸다.


이때 주은래가 특유의 재치를 발휘하였다. "드십시요. 여기는 중국입니다.

중국에서는 이것이 돼지고기가 아니고 오리 고기입니다."

참석자들은 모두 크게 웃었고, White도 용기를 내어 입에 집어넣었다.

뒷 날 그는 그때를 회상하여 교리에 어긋난 짓을 하고 있어 그의 하나님에게 용서를 빌었지만, 뛰어난 맛에는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다.

 

통돼지구이는 이미 3천년전 주나라 때의 기록에도 여덟 가지 진기한 요리(八珍料理)의 하나로 들어있고, 청나라의 공식 궁중요리인 만한전석(滿漢全席)에서도 으뜸이었다 한다.

지금도 식당을 빌어 연회를 할 경우, 웬만한 자리에는 테이블마다 네다리를 벌리고 납작 엎드린 새끼돼지가 한 마리 씩 오르게 마련이다.


<탕수육>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즐기는 중국요리중의 하나가 탕수육이다. 물론 당초육(糖醋肉)이라는 이름의 탕수육도 있기는 하나, 대개는 고로육 ( 肉 또는 古老肉, 광동말로 꼬로욕)으로 불린다.

 

청나라 말기에 광주(廣州)를 외국에 개방하였을 때, 그들은 중국요리중에서 당초배골(糖醋排骨, 탕추파이꾸)을 가장 좋아하였다 한다.

이것은 달고 새콤하게 요리한 돼지갈비인데 젓가락질이 서툰 그들로서는

갈비뼈를 발라먹는 것이 힘들었으므로 요리사들이 돼지갈비의 살만을 발라내어 술을 붓고 달걀과 전분을 섞어 설탕, 식초, 간수 따위로 간을 맞추어 바삭바삭하게 튀겨 낸 것이다.

 

외국인들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古老肉 또는 肉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고 한다.


<돼지족발(白云猪手, 빠이윈주서우)>


옛적에 광주에서 멀지 않은 백운산(白云山)에 절이 한 채 있었는데 하루는 주지 스님이 탁발을 나간 사이에 절에 있던 젊은 중이 돼지 족을 하나 구하여 절 앞 의 계곡에서 불을 피우고 삶아 먹으려고 했다.

 

알맞게 익어 마침 먹으려는 순간, 먼발치에 주지 스님이 돌아오는 것을

본 젊은 중이 화들짝 놀라 이를 물 속에 던져두었다. 요즈음 우리 나라의

몇몇 못된 승려들이 음식점에서 고기며 소주를 배불리 먹어 화제가 되기도 하지만 이 때만 해도 염치는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때 지나가던 나뭇 꾼이 이것을 보고 있다가 슬쩍 꺼내어 집에 가져가 양념을 발라먹으니 그 맛이 느끼하지도 않고 먹을 만 하였다. 적당히 익힌 것을 찬물 에 식힌 것이 이 요리의 비결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소문이 나면서 백운산의 이름을 따, 백운저수(白云猪手)라 부르게

된 것이다. 이 음식의 모양은 우리가 흔히 먹는 돼지족발과 거의 흡사하지만 초콜렛색으로 먹음직스러운 장충동 족발과는 달리, 약간의 양념을 넣고 뜨거운 물에 삶은 탓으로 허여 멀끔한 모양에 맛도 담백한 것이 특징이다.

 

<돼지 이야기>

 

옛날 요동(遼東)의 어느 집에서 기르던 돼지가 흰 돼지를 낳았다. 주인은

흰 돼지를 처음 보았으므로 신기하게 생각하여 이것을 임금에게 바치고자 그 흰 돼지를 끌고 길을 떠났다. 서울에 가까워지는데 집집마다 키우는 돼지가 흰 돼지였다. 흰 돼지는 다른 곳에서는 하나도 신기할 것이 없는 평범한 돼지였던 것이었다. 그는 발길을 돌려 집으로 돌아왔다.

그 뒤로 사람의 견문이 좁은 것을 일컬어 흰 돼지(白猪, 백저)라고 하게

되었다.

 

중국사람들이 돼지도 안 먹고 개도 안 먹는다(猪不吃 狗不吃)고 하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리고 돼지가 코에 파를 꽂고 코끼리인체 한다(猪鼻子里揷蔥裝象)는 말도 가끔 쓰는 표현이다. 별것 아닌 사람이 학식이 있거나 실력을 갖춘 양 행세함을 빗댄 말이다.

 

동한(東漢) 시대에 승궁(承宮)이라는 이는 여덟 살 때부터 남의 집에서 돼지를 키우는 일을 하였다. 그런데 같은 마을의 서자성(徐子盛)은 수 백명의 제자들에게 공부를 가르쳤다. 승궁이 서당을 지나다 강의를 엿듣고서 흥미를 느끼고 돼 지들을 한 곁에 풀어놓은 채로 강의를 듣게 되었다.

 

승궁은 땔감 따위를 마련 해다가 훈장과 학생들에게 선물로 주면서 양해를 얻었고, 수년을 학습에 열중한 끝에 공부를 마친 다음 고향 땅으로 돌아가 그 자신이 제자를 구해 훈장 노릇을 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돼지를 키우며 공부를 한다(牧豕聽經, 목시청경)고 하면 열심히 일하며 공부한다는 것을 뜻하게 되었다.

 

증자(曾子)라 하면 공자와 마찬가지로 춘추시대 노(魯)나라의 사상가로서

효행이 널리 알려져 있고 공자의 손자 뻘되는 자사(子思)에게 글을 배워

「효경 (孝經)」을 남겼다.

그의 처가 하루는 시장에 가려 하는데 아들이 따라 가고 싶어 큰 소리로

울자 그녀는 우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집에 있으면 돌아와서 돼지를 잡아 요리해 주겠노라고 약속했다.

 

그녀가 돌아오기를 기다려 증자는 돼지를 잡으려 하였다. 그녀가 놀라 말했다. "애를 달래기 위해서 그냥 해본 소린데 무얼 그러세요."

증자는 그녀를 바라보고서 이렇게 말하였다. "아이는 모든 것을 부모로부터 배우는 것이라오. 오늘 당신이 애를 속이면 이건 바로 애한테 거짓말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겠소." 증자는 곧장 나가서 돼지를 잡아 음식을 만들어 아이가 맛있게 먹도록 하였다.

 

이것이 돼지를 죽여 자식을 가르친다(殺猪敎子, 살저교자)는 이야기다.

 

 

***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 아다지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