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Travel)이야기들/재밋는 베트남

베트남, 문화·자연의 보고 ,혁명의 기지 VS 동양의 파리

향기男 피스톨金 2006. 4. 7. 20:53

 

           문화·자연의 보고 배트남

 

        혁명의 기지 VS 동양의 파리

 
 
                        
                                        

북부의 하노이와 남부의 호치민은 사람도 다르고 풍경도 다르다.

 

베트남 수도이자 혁명 도시인 하노이의 시민들은 표정이 굳은 편이다. 혁명의 자부심이 배어있기 때문이란다. 반면에 사이공으로 더 유명한 호치민은 프랑스 식민시절에 건설된 유럽풍 도시답게 시가지는 물론 시민들의 표정도 밝다.

 

하노이의 자부심은 떠이 호수 주변에 밀집되어 있다. 베트남 통일에 평생을 바친 국민영웅 호치민은 1945년 그가 독립선언문을 낭독했던 바딘 광장에 잠들어 있고,그의 시신은 웅장한 대리석 영묘의 유리관 속에서 추모객과 관광객들을 맞는다. 사망 직전 거주했던 조그만 관저엔 나무책상과 시계 등 호치민의 애장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동양의 파리’로 불리는 호치민은 아름드리 가로수가 인상적이다. 동코이 거리에 위치한 고딕 양식의 성모마리아 교회와 중앙우체국 주변은 밤마다 오토바이를 탄 젊은이들로 불야성을 이룬다.

 

‘노란샤쓰 입은 사나이’가 흘러나오는 사이공 강의 선상 디너는 프랑스 세느강의 선상 디너가 부럽지 않을 정도. 벤탄시장 옆의 ‘PHO 2000’은 클린턴 방문으로 유명해진 쌀국수집이다.

 

도시는 달라도 백색미인을 꿈꾸는 베트남 여인들의 마음은 한결같다. 하노이와 호치민에서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오토바이를 타고 거리를 질주하는 이들은 대부분 여성이다. 오토바이의 불완전 연소로 인한 공해를 막기 위해서라지만 유독 여자들만 마스크를 착용한 것으로 볼 때 강렬한 햇볕에 얼굴이 그을리지 않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더 설득력을 갖는다.

 

 

 

 

    배트남, 천혜의 비경에 묻혀진 슬픈 역사

 

[국민일보 2006-04-06 16:21]

 


◇후에 유적(세계문화유산)

 

베트남 최후의 왕조인 응웬 왕조의 도읍지이자 베트남 전쟁의 격전지였던 후에는 ‘왕들의 도시’로 불릴 만큼 유적들이 즐비하다.

 

후에 여행은 응웬 왕조 왕궁인 후에성을 둘러보는 것으로 시작된다. 거대한 성벽과 해자에 둘러싸인 왕궁의 중심에는 중국의 자금성을 10분의 1로 축소 모방한 태화전이 화려한 자태를 자랑한다. 9개의 거대한 대포와 9명의 황제를 기리는 9개의 청동분향로,그리고 건물 잔해가 왕조의 흥망성쇠를 상징한다.

 

퇴위한 황제의 별궁과 무덤을 겸한 민망 황제릉은 좌우대칭미가 뛰어나고,장기집권으로 백성들의 원성을 산 뜨득 황제릉은 악명에 걸맞게 규모도 가장 크다. 프랑스 식민시절에 만들어진 카이딘 황제릉은 동양과 서양의 건축양식이 결합된 왕릉으로 예술적 가치가 뛰어나다.

 

상류의 화훼단지에서 꽃향기가 강물을 타고 내려온다고 해서 ‘향수의 강’으로 불리는 호언 강은 보트 여행의 명소. 수상가옥이 즐비한 강을 거슬러 오르면 원시적 방법으로 모래를 채취하는 보트들을 만나게 된다. 특히 노약자와 어린이들이 손과 발로 물레를 돌려 강바닥에서 모래를 퍼내는 장면이 가슴을 찡하게 한다.

 

 

◇미선 유적(세계문화유산)

 

투본 강 유역의 정글에 위치한 미선 유적은 베트남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1000년간 독특한 문화를 형성했던 참파 왕국의 성지이다. 4세기 말에 지어진 목조건물이 소실되자 7세기에 벽돌을 이용해 재건했으나 베트남 전쟁 때 호치민군의 보급루트로 이용되면서 미군에 폭격 당했다.

 

현재는 8세기에서 13세기 말까지 건축된 70여 개의 유적군이 잡초에 묻혀 잠들어 있다.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후 복원사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다낭의 ‘참 조각 박물관’은 미선의 참파 유적에서 출토된 300여 점의 예술품을 전시하고 있다.

 

다낭과 후에를 연결하는 하이반 고갯길은 베트남판 대관령으로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 1990년대 중반 미국의 트래블지에 의해 ‘완벽한 여행가가 가봐야 할 50곳’ 중의 하나로 선정했다. 구절양장 고갯길을 달려 구름도 쉬어가는 정상에 서면 남중국해와 구름 사이로 솟은 산맥들이 절경을 연출한다. 특히 하이반 고갯길 정상은 구름을 먹고 사는 온갖 야생화와 나비들의 천국.

 

하이반 고갯길 북쪽에 위치한 랑꼬는 베트남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손꼽히는 어촌으로 현재진행형인 사주와 석호가 한 폭의 풍경화를 그린다.

 

 

◇하롱베이(세계자연유산)

 

영화 ‘인도차이나’의 무대로 유명한 베트남 북부의 하롱베이는 인간의 손으로는 그릴 수 없는 수묵화다.

 

바이차이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고 호수처럼 고요한 바다를 미끄러지면 안개 속에 숨어 있던 기암절경의 섬들이 양파껍질을 벗기듯 하나 둘 윤곽을 드러낸다. 에메랄드색 바다에 뿌리를 박은 3000여 개의 섬은 같은 모양이 하나도 없다.

 

여자의 젖가슴처럼 봉긋하게 솟은 섬,사람의 얼굴을 닮은 섬 등 바다에 뿌려진 보석들은 제각각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석회암으로 형성된 섬엔 해적들의 은신처이자 게릴라들의 아지트로 이용된 석회동굴이 많다. 그 중에서도 천장이 달 표면을 닮은 천궁동굴은 1962년 호치민과 함께 하롱베이를 둘러보던 러시아 우주비행사 게르만 티토프가 “내가 생각하는 달나라 모습과 비슷하다”고 극찬한 곳이다.

 

호치민에 의해 티토프로 명명된 섬의 정상엔 전망대가 있다. 420여 개의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하롱베이의 전경이 파노라마 영화처럼 펼쳐진다.

티토프 섬에서 모터보트로 10분 거리에 위치한 항릉원은 하롱베이가 숨겨놓은 요새.

 

썰물 때 드러나는 동굴 속으로 들어가면 바위섬에 둘러싸인 타원형의 호수가 나타난다. 선상에서 맛보는 다금바리 회도 잊지 못할 경험.

베트남=글·사진 박강섭 기자 kspark@kmib.co.kr

 

 

 

 

[문화·자연의 보고 배트남] 호이안 올드 타운

 

[국민일보 2006-04-06 16:14]

 


호이안 골목길의 녹슨 시계 바늘은 16세기를 가리킨다.

 

동양과 서양,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베트남 중부의 작은 도시 호이안에 발을 디디면 오수를 즐기던 수십 대의 시클로가 앞다퉈 타임머신을 대신한다. 프랑스의 자전거와 일본의 인력거가 합쳐져 탄생한 시클로에 앉아 좁은 골목으로 빨려들자 수백 년 전의 풍경들이 주마등처럼 흐른다.

 

다낭에서 남동쪽으로 약 30㎞ 떨어진 호이안은 투본 강 하구의 삼각주에 자리 잡은 인구 8만 명의 항구도시. 그중 올드 타운으로 불리는 옛 마을은 1999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844채의 고가로 이루어진 올드 타운은 참파 왕국과 응웬 왕국 이래 중국·인도·아랍을 연결하는 중계 무역도시로 번성했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 땐 격렬한 전투로 도시 일부가 파괴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던 곳이다.

 

마을 전체가 영화 세트장이나 마찬가지인 호이안의 고가는 재래시장에서 내원교를 잇는 약 800m의 쩐푸 거리에 밀집돼 있다. 미술품점,골동품점 등 화려한 간판으로 치장한 고가들의 유혹에 넋을 잃은 관광객들은 보물창고 안을 기웃거리고 하얀색 아오자이 차림의 베트남 여학생들은 이방인들이 신기한 듯 흘끔거린다.

 

호이안 역사문화박물관 앞에 위치한 재래시장은 베트남 여인들의 억척이 오롯이 배어 있는 삶의 터전. 아오자이를 걸치고 원뿔형의 논(non)을 머리에 쓴 베트남 여인들이 어눌한 영어로 호객을 하고,오토바이와 자전거에 산더미처럼 물건을 실은 여인들은 투본 강의 선착장과 재래시장을 시계추처럼 바삐 오간다.

 

고색창연한 쩐푸 거리는 중국 색채가 짙다. 16∼17세기 일본 무역상들이 거주하던 일본인 마을이 에도 막부의 쇄국 정책으로 쇠퇴하면서 화교들이 대거 이주해 온 때문이다. 화교들의 향우회 장소로 이용되는 복건회관은 대표적인 중국식 건물.

 

복건회관 옆에 위치한 ‘바다의 실크로드 박물관’은 침몰선에서 인양한 동서양의 도자기들을 전시하고 있다. 약 300년 전에 지어진 꾸언탕 가(家)는 폭이 좁고 길이가 긴 민가로 베트남 통일 이후에 획일적으로 건축된 집들과 비슷하다.

 

1953년 일본인들이 세운 내원교는 목조 지붕이 있는 짧은 다리. 일본인 마을을 바라보는 원숭이 조각상과 중국인 마을을 향한 개 조각상이 마치 견원지간처럼 등을 돌리고 있어 미소를 짓게 한다.

 

내원교 옆의 풍흥 고가는 베트남,중국,일본의 건축양식이 혼합된 목조 가옥. 약 200년 전에 무역상이 지은 집으로 현재도 8대째 후손이 살고 있다. 풍흥 고가부터 이어지는 화랑가는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으로 원색의 작품들을 전시한 수십 개의 미술품점이 마치 파리의 몽마르트 언덕을 옮겨온 듯하다.

 

쩐푸 거리 북쪽에 위치한 판쭈찐 거리와 남쪽의 응우엔타이혹 거리는 종일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로 분주하다. 이곳의 양복점이나 양장점에서 아침에 옷을 맞추면 저녁 무렵 근사한 옷이 완성된다. 베트남인들의 손재주가 돋보이는데다 가격도 엄청나게 싼 편이라 관광객들의 쇼핑장소로 사랑을 받는다.

 

중세풍의 호이안 거리는 밤마다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전깃줄을 비롯한 온갖 무질서한 사물들이 어둠에 묻히면 레스토랑과 카페,호텔로 변신한 고가들은 형형색색의 등을 밝힌다. 투본 강변을 따라 이어지는 박당 거리는 야경이 아름다운 곳.

 

바이올렛 색깔의 꽃으로 뒤덮인 카페에서 흘러나온 커피향이 골목길로 산책을 떠나고 형형색색의 물감을 풀어놓은 듯 투본 강은 호이안의 원색 낭만을 싣고 남지나해로 여행을 떠난다.

 

쩐푸 거리로 대표되는 호이안에서 만나는 동양과 서양,과거와 현대는 절묘한 균형을 이룬다. 내부는 베트남 건축양식이면서도 외부는 화려한 프랑스풍의 고가들,핫팬츠 차림의 서양 여대생과 아오자이를 걸친 베트남 노파,최신형 일제 오토바이와 녹슨 저전거가 함께 어울려도 호이안에서는 전혀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극과 극을 조화시켜 독특한 문화를 창조한 호이안 사람들의 지혜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해답은 의외로 베트남 여인들의 운반 수단인 까인에서 찾을 수 있다. 베트남 지도를 닮은 무거운 까인을 숙명처럼 어깨에 메고도 전혀 앞뒤로 기울지 않는 베트남 여인들의 균형 감각이 호이안 문화의 원동력으로 승화하지 않았을까?

호이안(베트남)=글·사진 박강섭 기자 kspark@kmib.co.kr

 

 

 

 

    [베트남의 속살] 하롱베이·후에·호이안

 

 

[한국일보 2006-04-06 19:21]    

 


갈대처럼 살랑이며 얇게 비치는 아오자이 물결에 잠시 넋을 빼앗긴다. 가냘프고 수줍음 많아 보이는 그들은 눈이라도 마주칠라치면 얼굴을 돌린다.

‘작고 순박한 이들이 열강 프랑스를 몰아내고 독립을 쟁취했다. 아무도 꺾지 못한 초강국 미국에 첫 패배를 안기며 통일을 이뤄냈다.’

“빵빵~” 날카로운 경음기 소리에 정신을 차린다. 도로를 가득 채운 오토바이들이 뱉어내는 매연과 소음이 비로소 코와 귀를 파고든다.

‘아, 베트남이다.’


▦ 베트남의 왕국 속으로-후에

베트남 여행하면 남부의 경제도시 호치민과 북부의 수도 하노이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베트남의 속살은 중부지역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베트남의 세계문화(자연)유산은 후에(1993년), 호이안(99년), 미손(99년), 하롱베이(94년) 등 4곳. 이중 하롱베이를 제외한 3곳이 바로 중부지역에 자리하고 있다.

후에는 왕도(王都)다. 베트남의 마지막 응웬(阮) 왕조는 1802년 하노이에서 후에로 수도를 옮겼다. 향수(香水)의 강을 따라 유람선을 타고 이동하는 왕릉투어가 후에 여행의 백미이다.

민망황제릉, 뜨득황제릉, 카이딘황제릉 등 많은 능들이 있지만 압권은 1920년부터 10년여 동안 지어진 카이딘황제릉. 다른 황제릉과 달리 동서양 건축양식이 혼합된 퓨전 스타일로 판타지 영화에 나올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짙은 잿빛의 첨탑 등 괴기스럽기까지 한 외관과는 달리 내부는 화려함의 극치다. 사치스러운 모자이크와 타일, 유리공예 등이 베르사유궁전을 연상시킨다.

작은 자금성으로 불렸던 왕궁 다이노이는 베트남전쟁 때 폭격으로 대부분 폐허로 변했다. 티엔무사원도 후에에서 빠뜨릴 수 없는 곳. 400년이 넘은 사원에는 21㎙ 높이의 7층 석탑이 빛 바랜 다홍색으로 서있다.

▦ 고옥(古屋)의 도시 호이안과 참파왕국 고대유적지 미손

후에에서 다낭을 거쳐 버스로 3시간 정도 달리면 배낭여행객들이 한번 더 가보고 싶어한다는 남중국해의 작은 도시 호이안이 나타난다. 호이안의 올드타운은 15~19세기 해상 실크로드의 중심으로 번영했던 고색창연함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840여 채의 중국식, 일본식, 베트남식 고옥(古屋)들로 빼곡한 거리는 타임머신을 타고 수세기를 거슬러 온 착각에 빠지게 한다.

최근 호이안은 비치리조트가 많이 개발돼 휴양지로도 각광 받고 있다.

후에에서 다낭으로 넘어가는 하이반 고갯길은 글로벌트래블러지가 선정한 ‘완벽한 여행가가 가야 할 50곳’에 뽑힌 유명한 도로다. 안개를 헤치며 절벽 같은 굽이길에서 내려다보이는 남중국해는 절경이다. 베트남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손꼽히는 랑꼬마을은 잠시라도 머물러야 할 곳이다.

다낭과 호이안을 잇는 길은 베트남전 당시 이곳에 주둔했던 한국군이 건설해 따이한도로로 불린다.

고대 유적지 미손은 호이안에서 1시간 거리다. 2세기부터 15세기까지 이어졌던 참족의 참파왕국 신전이 남아 있다. 이곳은 참파왕국이 베트남에게 멸망한 뒤 정글 속에 묻혀 있다가 19세기에 발굴됐으나 1세기 만에 베트남전의 폭격으로 태반이 붕괴됐다. 힌두교에 불교가 일부 가미된 건축물과 조각 등이 신비롭다.

▦ 절경산수 하롱베이를 가슴에 담고…

‘신선이 있다면 이런 곳에 살지 않을까.’ 용이 내려와 앉았다는 전설조차 믿고 싶어지는 곳 하롱(下龍)베이. 원근과 명암을 달리하며 산맥처럼 끝없이 밀려드는 3,000여 개의 섬들은 과연 여기가 바다인지 의심하게 만든다.

하늘의 문이라는 천궁(天宮)동굴에 들어가면 억겁의 세월동안 만들어진 기상천외한 모습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띠?d섬의 전망대에 오르면 하롱베이는 한폭의 수묵화로 펼쳐진다.

유람선에서 내려 작은 보트를 타고 들어가는 호수동굴은 잔잔한 에머랄드 물빛이 평화롭기 그지없다.

하롱베이를 가슴에 안고 베트남과 작별했다.
글ㆍ사진 베트남=전성우기자 swchun@hk.co.kr


 


 

 

 

 

           [여행수첩] 베트남 여행법

 

[한국일보 2006-04-06 19:21]    

 

베트남 화폐단위는 동(Dong)이다. 미화 1달러가 약 1만5,000동이다. 관광지에서는 달러가 통용된다. 시차는 한국보다 2시간 느리다.

횡단보도와 신호등이 거의 없는 베트남의 도로를 건너는 것은 스릴 만점이다. 오토바이 운전자들이 잘 멈추려 하지 않으므로 양보를 바라면 하루종일 길을 건널 수 없다. 천천히 걸으면 세계에서 오토바이를 가장 잘 탄다는 베트남 사람들이 알아서 피해 다닌다.

시내버스는 유명무실하기 때문에 관광객들은 인력거와 자전거를 결합시킨 시클로나 영업용 오토바이, 택시 등을 이용한다.

남중국해에 접한 베트남의 국토는 폭은 좁은 반면 남북의 길이는 1,750㎞에 달하는 길쭉한 형태다. 중부여행의 관문은 후에와 다낭. 베트남항공이 하노이와 호치민에서 매일 운항한다.

처녀지와도 같은 베트남 중부 관광상품이 최근 한겨레투어에서 나왔다. 후에, 호이안, 미손에 북부의 하노이, 하롱베이를 묶은 6일 일정이 99만원(일급호텔ㆍ매주 화요일 출발)이다. 여기에 남부의 호치민까지 포함한 베트남 종단 7일 일정은 129만원(특급호텔ㆍ매주 토요일 출발)이다. 한겨레투어 (02)2000-6901, 6905



 

***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 아다지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