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기업에서 세계 5위의 가전업체로
하이얼은 중국 기업 순위 16위, 민영그룹 중 매출 1위, 세계 5위의 가전그룹이다. 또한 중국기업으로는 유일하게 2005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대 기업 브랜드’로 선정되었으며 세계 가전업체 가운데 성장속도가 가장 빠른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20여 년 전만 해도 하이얼은 중국에서도 가장 최악의 기업으로 손꼽혔다. 이런 하이얼을 중국의대표기업이자 세계적인 흑자기업으로 성장시킨 기업가가 장 루이민 회장이다.
1998년 하버드 대학 강단에 선 최초의 중국 기업가, 1999년 FT가 선정한 ‘비즈니스 리더 26위’, 2004년 비즈니스위크 선정 ‘세계 경제에 영향력을 미치는 8인’, ‘2005년 중국 최고의 기업경영자’ 등. 장 루이민은 그에게 붙는 화려한 수식어만큼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중국의 대표적 기업가이다.
중국인들은 사랑과 존경을 담아 그를 중국 경제를 선도하는 대스승(大師)라고도 부른다. 이는 한 기업을 기적처럼 회생시킨 그의 노력과 독창적인 경영 능력, 급변하는 세계 경제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고 미래의 기회를 포착해 가는 그의 식견과 안목에 대해 큰 신뢰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장 루이민은 현대 선진 경영이론과 동양의 고대 철학을 절묘하게 조합해 독특한 경영방식과 기업 문화를 창출했다고 평가받는다. 또한 그는 ‘철저한 관리주의’, ‘품질 중시주의’, 소비자를 중시하는 ‘고객 제일주의’, ‘경쟁원리에 바탕을 둔 성과주의’를 강조했다.
‘기업 발전의 핵심은 기업 문화다’
장 루이민은 1984년에 하이얼의 전신인 칭타오 냉장고 공장의 공장장으로 파견되었다. 당시 중국의 국유기업들은 근성과 창조적 정신의 부족, 스스로 변화하려는 의욕이 적어 부진을 면하지 못했다. 그 중에서도 칭타오 냉장고 공장은 147만 위안에 달하는 적자와 형편없는 제품으로 악명 높았으며, 직원들이 공장 아무데서나 대소변을 보고 공장 비품을 마음대로 가져가는 등 사회주의 기업 중에서도 최악이었다.
장 루이민은 유형적인 요소보다 기업 문화와 같은 무형적인 요소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그는 엄격한 규율과 효율적인 경영방식을 통해 의식 개혁을 시작하였다. 실례로 그의 부임 후 첫 지시사항은 ‘아무데서나 소변을 보지 마라’ 였다.
“기업 발전의 핵심은 기업 문화다. 그리고 기업 문화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가치관이어야 한다.” 하이얼은 독특한 기업 문화와 관리, 시장 이념으로 유명하다. 하이얼은 세계 최초로 CCO(Chief Culture Officer)를 임명하고 해외기업 합병시 기업 문화센터 직원을 가장 먼저 파견한다. 이 때문에 하이얼 그룹은 중국기업 중 최초로 하버드 대학의 사례연구 대상이 되기도 했다.
‘품질이야말로 기업의 생명선이다’
장 루이민은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 남으려면 품질이 최우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중국제품은 싸지만 형편없는 제품으로 혹평을 받고 있었고 장 루이민은 세계에서 인정받는 중국제품을 만들겠다는 신념으로 일대 개혁을 시작했다.
품질경영에 대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칭타오 냉장고 공장에 부임한 직후 장 루이민은 고객으로부터 클레임이 들어온 불량 냉장고 76대를 직접 쇠망치로 때려 부수었다. 이 사건 이후 종업원 사이에 ‘품질이야말로 기업의 생명선이다’라는 의식이 싹트기 시작했다.
‘소비자는 항상 올바르며,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만든다’
장 루이민은 또한 철저한 고객제일주의 경영으로 유명하다.
1996년 쓰촨의 한 농민이 “하이얼의 세탁기로 고구마를 씻었더니 흙과 모래 때문에 파이프가 자주 막힌다”는 클레임을 제기했다. 이에 장 루이민은 임직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고구마세탁기’ 제작을 지시했다. 1998년 4월 이렇게 탄생한 세계 최초의 고구마 세탁기는 대성공을 이루었으며 지금도 1년에 10만여 대가 팔리고 있다. 또한 매년 6월~8월이 되면 세탁기 수요가 감소되는 이유를 조사했더니 5kg가 넘는 세탁기 용량 때문에 소비자가 수도와 전기요금이 많이 나오는 여름철에는 세탁기 구입을 기피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에 1.5kg 소형 세탁기를 제작해 소비자의 호평을 받았다.
에어컨과 PC 부문에서는 ‘최고의 A/S’를 외치며 24시간 대응수리서비스를 하는 등 중국 최초로 ‘일괄 서비스’ 개념을 도입했다. 성수기에는 비행기를 전세내어 A/S 직원을 파견시키기도 했다.
하이얼은 ‘고객의 불만이 가장 좋은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A/S를 제품 판매의 마지막 과정이며 제품 설계의 첫 과정으로 삼았다. 이처럼 하이얼은 고객과 품질을 중시하고 중국기업 중 가장 먼저 다양한 광고 및 마케팅 활동을 통해 자신만의 브랜드를 확립시킨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多勞多得, 少勞少得, 不勞不得
많이 일한 사람이 많이 받고, 적게 일한 사람은 적게 받고, 일하지 않는 사람은 받지 못한다(多勞多得, 少勞少得, 不勞不得).
장 루이민이 가장 중시하는 것은 인사이다. 기업의 핵심은 사람이며, 활력과 재능이 넘치는 사람들이 있어야 기업이 살아 움직인다는 것이다. 하이얼은 평생 고용을 뜻하는 철밥통을 타파하고 철저한 능력주의 인사와 목표관리경영(MBO)를 시행하고 있다.
“비즈니스 활동은 매일 100m 전력질주 시합과 같습니다. 최고경영자부터 말단 직원까지 세밀한 목표를 세우고 목표 달성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만 살아 남을 수 있지요.” 하이얼의 기본급 비중은 30% 정도에 불과하여 목표를 80% 이상 채우지 못하면 최저 생계비 정도만 줄 뿐이다.
또한 3공(공평, 공정, 공개) 원칙에 입각한 인재 선발을 통해 경영간부 평균 연령이 30세인 세계에서 가장 젊은 기업으로 바뀌었다.
글로벌 시장으로의 도약
하이얼은 세 개의 눈(三只眼)이란 이념을 갖고 있다. 과거 계획경제하에서 기업은 정부의 눈치만 보는 하나의 눈만 있으면 충분했지만 시장경제에서는 세 개의 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즉 한 눈은 외부의 시장을 주목하고 또 한 눈으로는 내부 직원을 지켜봐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책과 기회를 포착할 수 있는 눈 하나가 더 필요하다.
장 루이민은 “하이얼의 핵심 경쟁력이 바로 끊임없이 창조하고 경쟁자보다 한발 앞서 나가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하이얼은 지금 세계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그 목표의 배경에는 장 루이민의 이리론(이리와 맞서려면 우리도 이리가 돼야 한다)이 있다. 세계기업들이 중국에 몰려오는 것처럼 중국도 세계로 나가야 한다는 의미다. 또한 장회장의 선난후이(先難後易) 경영철학에 기초해 하이얼은 2000년 미국 사우스 캐롤라이나에 냉장고 생산공장을 세웠다. 이는 ‘뚫기 어려운 선진국 시장을 먼저 공략한 뒤 후진국으로 간다’는 뜻이다.
하이얼의 해외 진출은 철저히 현지화에 기반하고 있다. 현지에 공장을 세우고 현지 인력을 채용하고 현지화된 브랜드 마케팅을 통해 하이얼의 브랜드 이미지를 심고 있다. 이미 30개의 해외 공장, 제조기지와 8개의 해외 디자인 센터, 6만 개의 영업망 등 디자인, 제조, 마케팅, 서비스 분야에서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으며 이에 만족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그러나 하이얼의 모든 행보가 순탄치만은 않다. 올해 한국 시장에 본격 진출했으나 뚜렷한 실적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중국 브랜드는 저품질, 저가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어려움을 뚫고 장회장이 ‘세계 1위의 가전업체’라는 목표를 달성하고 하이얼을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기업으로 이끌 것인지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된다.
<작성 : 김자영 연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