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들/골때리는유~머~들

유머/내 군대 이야기 2

향기男 피스톨金 2007. 3. 14. 10:06

 

         유머/내 군대 이야기 2" 입니다~!!



    내 군대 이야기 2



        지랄하는 연어들처럼... 다시 돌아가야 하는 그 맑은 골짜기는 추억으로나마 어느 정도는 회귀를 할 수 있을까.. 얼마나 끼올라가야하나... 현실은 내맘같지 않지만.. 추억은 그래도 내맘을 이끌어 줍니다. 그런데, 한 편으론 참으로 안타까운 생각이 드는 것은 연어가 메모리칩에 의해서 운명의 각본대로 움직이는 것처럼 내 팔자가 그런 곡선을 긋는다는 것은 밥맛 떨어지는 의구심도 생깁니다. 내 젊음은 젊음이 참 재미없는 젊음이였습니다. 돈도 없어 사랑도 비굴했던 그 시절, 곰팡내 나는 술집 벽에 기대어 힘 빠질 때까지 고래고래 내뱉던 말들... 그땐 왜 그리 ...못마땅한 것 투성이고.. 좌절과 좌절을 거듭했습니다. 첫사랑에 목숨걸어 대학도 떨어졌는데 내 사랑은 대학을 다니는 내 친구에게로 가버렸지요. 그 광경을 우연히 목격한 나는 추운 겨울밤 다리난간에서 한없이 서서 찬바람에 내 가슴을 갈기갈기 찢기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꼭 가야만 했던 대학은 목적없는 목적이 되어서 대학의 문턱을 이 대학 저 대학 기웃거리게 되었고 적응도 못하고, 꽤나 망가진 3수생이 되었었지요... 좌절도 레벨이 있어서 부러운 친구들은 시국에 대한 비판과 데모에 젊음을 불태우고 있을 즈음 나는 장발족과 섞여서 당구장에서 빌빌거리며 짜장면 맛있게 시켜먹는 친구들을 부러워 했고, 애인이 같이 와서 당구알을 놔주며 상냥하게 기다려 주는 것도 까무러치게 부러워 했습니다. "흥! 내가 여자라면 저 짓은 안하건만...끌끌끌...." 괜히 시기하고, 질투하고, 저주까지 했습니다... 젊음은 좌절의 시절이라고 누가 말했던가...진작 말을 해주지... 지금 생각해보면 자기 분수도 모르고 매일 담배꽁초가 쌓인 지저분한 방에서 머리도 안 감고 있다가 맨날 어떤 껀수 하나로 기어나와 무스도 없던 시절에 감지않은 머리로 개기름 바른 것처럼 하고 돌아다니면서 난 왜 애인이 없냐고 했으니 나는 한심이요 내 친구는 두심이었습니다. 하긴 그 젊음으로 지 못난 것까지 알았으면 난 살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지 잘난 맛에 그냥저냥 사나봅니다. ㅎ 더이상 당구칠 돈도 떨어지고.. 구수한 짜장면 냄새가 가자나 배고픈 창자를 꼬이게 만들어 허리가 직각으로 꺾이도록 움켜쥐고 힘없이 계단을 내려올 때는 다리가 빈혈에 후들거렸습니다... 배가 고파 빈혈이 생긴 것은 꼭 그 이유만은 아닌 것처럼... 그 계단을 한 칸 한 칸 내려올 때마다 친구 애인의 예쁜 미소가 떠오르면서 거의 쓰러질 지경으로 쏟아지듯이 계단의 벽을 타고 내려왔습니다. 계단 한 두개가 더 있었으면 못참고 아마도 가속도에 쓰러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딘가 아파서 눈물이 났을 것입니다. 돈없고 애인없어 정신까지 모자라는 놈들이 할 일이란 끼리끼리 모인 습관이 습관적으로 나쁜 습관이 생겨서 중앙시장에서 젤 싼 그 막걸리집을 항상 찾게 되었고... 노오란 양은 주전자가 찌그러질 때까지 퍼먹고는 여름 땡볕에 쓰러져 창피함도 모른 채 길거리에다가 빈대떡 향기의 파노라마를 연출했습니다. 아마 내 기억으로 막걸리 한 통에 300원을 했고 솔, 은하수, 한산도라는 담배가 220원 할 무렵이었습니다.... 물론 비싼 담배로 썬, 거북선 등도 있었지만 그림에 담배이지요. 막걸리도 빈 맥주병에 담아서 냉장고에 시원하게 씨아시해서 파는 집이 유행이었으나 우리는 그도 양이 적다고 해서 꼭 그 싼 순대국집을 찾았고 서비스 안주로 순대국물만 계속 리플시켜 먹었습니다.. 맘씨 좋은 아줌마는 욕하면서도 그래도 매번 거절은 안하셨고 우쩌다 순대 한 접시라도 어느 미친놈이 실수로 시키면 아줌마는 그 반가움에 얼굴이 꽃처럼 활짝 피셨었지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정말이지 내가 나중에 돈벌면 이 순대국집부터 찾아와 친구들과 순대를 맘껏 시켜 먹으며 그 동안 죄스러움을 말끔히 씻어 내리라 국민교육헌장을 낭독하는 것처럼 맘도 다부지게 먹었었는데 아직도 그걸 실천하지를 못했습니다. 무심한 세월... 추억으로만 보상받는 세월.... 그 아줌마가 아마도 중앙시장에 지금도 있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내가 이미 그 아줌마의 나이가 되어 버렸으니 말입니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 몸베바지만 입었던 아줌마... 죄송합니다..에고...맴이 지금도 애려옵니다. 빈 속에 벌건 대낮술을 퍼먹고 집근처까지 와서는 내 몸이 레미콘도 아닌 것이 남의 집 담 호박밭에다 시멘트 같은 거름을 쏟아내곤 내 방으로 와 영영 일어나지 못할 고목처럼 쓰러졌습니다. 그렇게 맨날 왜 그랫는지 모르게 젊음을 쓸 데없이 소비했고 그 후로 나는 십 몇 년동안은 순대를 먹지 않았습니다. 아니, 먹고 싶어도 먹질 못했습니다. 몸에 메모리가 순대충격으로 잘못되어 냄새만 맡아도 욕지기가 났습니다. 너무 공짜를 밝히고, 리플만 시켜먹었더니 머리가 안까지고 다행히 속으로 뭔가 까졌나보다 했지요. 나는 그래서 비슷한 입덧은 해도 순대는 못먹는 인간이 되어버렸습니다. 참으로 억지로도 안되고, 요상한 것은 군대를 일찍 가서 소위로 임관해 휴가나온 친구놈이 술냄새 팍팍 풍기며 여자가 있는 술집으로 나를 따르라고 하면 우리는 못사는 집 자식들처럼, 쫄랑쫄랑 신나게 따라 나섰습니다. 노래방이 없던 시절이라 그냥 젓가락을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었는데 그것이 뭐가 그리 재미있었는지...... 어쩌다 한 턱 쏜다는 친구 덕분에 여자들이 있는 술집에서의 그 행태란 남들이 하는 사랑의 육체언어는 왜 그리 닭살이 돋고 그러면서도 뻔한 것이 어떻게 뭐깐에 해볼려고 호시탐탐 궁리를 하고.. 왕년에 호랑이 안잡아 본 사람없다고 각종 감언이설과 호기로 광란의 밤을 지세웠습니다. 정말 남이 하는 짓은 촌시럽고, 넘 유치해 욕지기가 나지만 나의 속물근성도 어쩔 수 없이 술에 배를 띄우면 그 소용돌이를 헤멧지요. 그래도 내 정신은 이렇게 많이 쳐먹은 술값 어찌 계산을 할까?하는 걱정을 중간에 문득 점검하며 이제 그만 가자고 했었고 그러다 도망간 적이 몇번 있었으나 운이 좋게도 항상 어찌어찌 되어서 경찰서로 잡혀 간 적은 없었습니다. 이런 때에 정통으로 군대 영장이 날라왔습니다. 드뎌 올 것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바둥대다가 이루어 논 것은 하나도 없이 끌려가는구나 했습니다. 그래도 멍청한 우리 친구들은 4이서 회비 5만원씩인가를 걷어 그동안 가고 싶었던 술집에 가서 왕창 먹고 사창가로 유명한 H동에 가서 총각딱지를 떼기로 맘을 먹었습니다. 그 사창가에는 친구의 어머니가 하는 집도 있었고, 그 친구집에 놀러가서 사전답사 및 탐색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친구는 친절하게 자기만 아는 전망대를 구경시켜 줬지요. 높이있는 장독대 위로 올라가서 아스라한 집뒤 담장근처에서 문틈사이로 관계하는 장면을 훔쳐보기도 했습니다. 운이 좋게도 우리들이 볼 때는 보라고 아예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관계를 하고 있는 손님때문에 적나라한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숨죽여 보는 우리는 무게중심을 지탱하는 다리가 후들거려 더이상 볼 수가 없어 잠시 내려와서 숨을 몰아쉬었다가 다시 올라가서 보곤 했지요. 맨날 그런 장면을 볼 수 있는 그 친구를 부러워 했습니다..ㅎ 계획대로 안되는 것이 스케줄이라..도져히 친구집에서는 할 짓이 아니라 생각되어 큰 길가 다리근처에서 담배를 물고 빌빌거리고 있을 즈음 미니스커트입은 왠 아가씨 둘이 오더니 따라오라는 것이였습니다..우리 4은 아무 말없이 무엇에 홀린 것처럼 일열종대로 따라갔습니다. 우리 겟돈은 오버를 해서 막상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는 돈이 모자랐습니다. 내가 양보를 했습니다...실은 내가 양보를 했던 것은 한 편으론 겁도 났었으며, 한 편으론 내심 내가 찍었던 아가씨를 내 친구가 먼저 찍었던 이유가 있기도 했습니다. 뎁빵 아줌마가 옆에 빈 방에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하길래 괜찮다고 밖에서 기다리겠노라고 했으나 기어이 나를 빈방으로 끌어 앉히고 음료수를 한 잔 주었던 것 같습니다. 얇은 베니아판 한 장으로 벽을 만든 옆방에서 담배나 피며 기다리고 있었는데 기분이 참으로 묘하고 요상한 것이 친구가 쇼를 하는 것을 상상을 하니 웃기기도 하고 내 머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내 밑의 다른 머리가 말을 안들어 그 말안듯는 머리를 움켜쥐고 양보한 것을 후회를 했습니다. 뒤늦게 알았지만 나를 궂이 빈방에 쳐넣어야만 했던 뎃빵아줌마의 의도는 고도의 영업전술이였습니다..ㅎ 그러나, 지금은 그 친구들을 만날 때 나는 항상 여유가 있습니다...ㅎ 한 달 가량이 지나고 드디어 군대입영하는 날... 눈물을 억지로 참으며 장발을 밀어 버리고 입영열차에 몸을 싣고 있는데... 잘난 놈은 애인도 나와서 울어 주는데... 하긴 애인없는 친구가 훨씬 많으니 슬플 것도 없으나.. 창가에서 밖을 보니 오직 아는 여자 하나... 눈이 나쁘셔서 나를 못찾으시고 두리번 거리시는 내 어머니만 많은 인파속에서 찾아 볼 수 있었습니다.... 뭐가 억울해서인지... 불쌍해서인지... 무서워서인지... 결국, 참았던 눈물이 줄줄 빗물처럼 흘렀습니다. <계속>


     

     

     

                     

     

        

                                           첨부이미지향기남그늘집 조심 조심요

     

                                                                                     




    향기남그늘집

                                                                      

                                     

                                                 추억속에 남을 즐거운 이시간을 위하여
                                                     따뜻한 가족 들과  마음과 마음에
                                                         기쁨이 함께 할 수 있도록
                                                        서로 이쁜 사랑들 나누시며
                                                   오손도손 행복한 시간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