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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속에 한국상인들 특별취재

향기男 피스톨金 2007. 3. 21. 14:29

 

 

               중국속에 한국상인들

 

 

 

<1>대북무역 교두보 '단둥' 상인들

"새거 없습네까" 北 큰손 문전성시

한류(漢流)로 불리는 중국 바람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삶의 터전을 아예 중국으로 옮기는 개인과 기업이 늘고 있다. 과거 ‘아메리칸 드림’ 열풍은 ‘차이나 드림’으로 바뀌고 있다. 지난해 1633개 기업이 생산기지를 중국으로 옮겼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좌절감을 맛보기 일쑤다. 소자본으로 중국 시장에 진출한 경우 특히 그렇다. 세계일보는 이에 중국 시장에 대한 심층기획 시리즈 ‘중국 시장을 여는 사람들’을 연재한다. 중국 시장의 벽을 뛰어넘어 새로운 지평을 여는 한국인과 중국 시장에 대한 심층분석을 통해 소자본으로 차이나 드림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편집자주

 

 

◇북한 신의주와 중국 단둥을 잇는 조중우의교를 건너 신의주에 들어선 건물과 공장 굴뚝이 보인다. 얼마 전만 해도 밤이 되면 암흑으로 변했던 신의주의 밤은 최근 크게 밝아졌다.

 

북한에 개방의 기운이 일면서 압록강 끝자락에 단둥(丹東)에는 대북 교역에 나서는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북한에 물건을 실어 나르는 남한 상인부터 중소기업인, 단둥∼신의주 변경무역을 중계하는 화상(華商)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최근 부쩍 바빠지고 있다. 인천항에서 단둥으로 물건을 실어 나르는 보따리상도 크게 늘었다.

 

대흥상회의 정인철 사장. 그는 단둥에서 대북 거래를 한 지 5년이 됐다. 한국 교역상인이 모여 있는 단둥 최대 상권인 신류(新柳)와 얼마로(二馬路) 등지에는 북한의 큰손과 개인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는다. 정 사장은 “북한 대외거래의 30% 이상이 이곳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며 “단둥과 신의주를 잇는 중조우의교(中朝友誼橋)는 북한의 최대 교역로”라고 말했다.

 

이곳을 통해 컴퓨터 기자재와 TV, 전자레인지, DVD, 의약품, 신발, 의류, 타일, 과자 등 북한 내에서는 구하기 힘든 각종 물품이 북한으로 흘러 들어간다. 화공약품과 싱크대까지 반입된다.

 

단둥에서 물건을 조달하는 북한 사람은 중국으로 출장온 당 고위 간부부터 평양∼신의주를 오가는 화교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이다. 그 중에도 주목되는 사람은 북한의 무역상. 단둥에는 특히 광명성, 봉화총국, 대성총국, 능라총국, 승진무역 등 북한 무역회사 임직원들이 상주하고 있다. 이들은 필요한 물건을 조달해 북한으로 실어 나르고 있다. 조중우의교를 통해 단둥에서 신의주로 들어가는 물량은 하루 8∼10t 트럭 20대분이 넘는다. 이곳에서 산 물건은 평양 백화점에서 15∼30% 높은 가격에 팔리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흥상회에도 이들이 찾아왔다. 깔끔한 양복을 입은 이들은 매장을 둘러본 후 “신발 모양새가 좀 지났습네다. 새 거 없습네까”라고 말했다. 매장에 진열된 물건의 질이 그다지 뒤떨어지지 않건만 그들은 신상품을 찾고 있었다. 한국에서 유행하는 디자인에 대해 설명을 들은 후에야 고개를 끄덕이며 신발 3000켤레를 주문했다.

물건을 북한으로 보내는 것은 단둥 상인 몫이다. 정 사장은 주문을 받은 뒤 직원들과 함께 밤샘작업에 들어갔다.

신발에 붙어 있는 ‘메이드 인 코리아’ 라벨을 떼어내는 등 한국에서 만든 흔적을 모두 지우는 작업이 벌어졌다.

단둥에서 북한과 거래를 하는 한국인과 화교 상인은 적어도 5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평화시장으로 불리는 신류에서 이·얼·싼 마루 지역에 주로 모여 있다.

 

단둥을 드나드는 보따리상이 줄을 대는 곳도 이들 상인이다. 정 사장은 “단둥의 한국인이 고려와 조선 시대의 변경무역을 주도한 신의주 상인의 뒤를 잇고 있다”고 말했다.

단둥은 대북 거래를 중계하는 사람뿐 아니라 북한 투자에 나서는 한국 기업인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북한으로 직접 들어갈 수 없는 남한 기업인은 화교와 재중 동포를 앞세워 이곳을 근거지로 대북투자에 나서고 있다.

 

 투자하는 업종도 가지가지다. 신발, 의류, 라이터, 수건, 문방구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농산물 재배 등의 위탁생산까지 이뤄지고 있다.

단둥에서 농산물 합작법인을 경영하는 고철영 사장은 이곳에서 생산하는 농산물을 한국·일본·유럽으로 수출하고 있다. 그는 최근 들어 신의주에서 농산물을 시험재배하고 있다. 그는 “신의주에서 생산되는 과일은 복숭아, 살구, 포도, 밤 할 것 없이 맛이 뛰어나다”며 “신의주∼단둥 지역이 농산물 수출의 전진기지로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단둥의 중심 상업지역인 신류시장.이곳에는 각종 소비재를 구하는 북한 사람이 하루에도 100~200명씩 찾아 들고 있다.

 

북한에서 4개의 경공업품 생산기지를 갖고 있는 정도환 사장도 “한국의 자본·기술이 북한의 노동력과 합쳐지면 남북한은 어느 지역보다 강한 경쟁력을 가진 윈윈게임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 인력의 질이 중국보다 월등히 우수하기 때문이다. 정 사장은 “북한에 투자한 기업이 전기공을 필요로 하면 북한은 전문적인 전기기술자를 보내고 있다”며 “국내보다 싼값에 우수한 노동력을 구할 수 있다는 점이 대북 투자의 최대 장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은 대북 사업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아직도 ‘머나 먼 땅’이다. 북한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없기 때문이다. 위탁을 받은 북한 쪽 파트너가 무슨 생각을 하고, 북한 내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알기 힘들다. 북한 쪽 파트너를 잘못 만나는 날이면 빈손 털고 나오기 다반사다.

대북 무역거래를 하는 박성덕 사장은 “북한에 투자하는 사람 10명 중 7∼8명이 손해를 보는 까닭도 따지고 보면 이런 장벽 때문”이라고 말했다.

단둥=강호원특파원/hkang@segye.com

 

김정일 中방문후 개발 활기…"가자, 신의주로" 상인들 단꿈

■ 기지개켜는 신의주특구

 

중국 단둥을 근거지로 북한과 거래하는 한국인은 북한의 문이 열리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북한이 최근 신의주특구 건설에 나설 움직임을 다시 보이면서 이들은 단꿈에 젖어 있다. 단둥한국인회의 정병철 사무국장은 “신의주특구는 통일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하지만, 단둥 한인에게는 단둥의 새로운 역사를 여는 날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북한의 신의주특구 건설계획은 초대 장관에 임명됐던 양빈(楊斌) 어우야(歐亞)그룹 회장이 2002년 10월 중국 당국에 의해 구속된 이후 2년째 동면 상태에 빠져 있다. 그러나 최근 신의주특구 재추진의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양빈 회장이 활동을 재개했다는 소리가 들리고, 북한이 신의주특구의 새 장관에 사르샹 전 미국 캘리포니아주 풀러턴시장을 임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한편에서는 민족경제협력위원회(민경협)가 신의주특구 운영을 담당하는 부서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런 움직임의 전조는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 4월말 중국을 방문하고 나서부터다.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는 대신 중국이 그동안 반대해온 신의주특구 개발을 묵인하기 시작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민경협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민경협은 남한 기업과의 접촉 창구다. 그런 만큼 북한이 신의주특구 건설을 위해 한국 기업을 유치하고 이를 통해 경제 재건에 들어가려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베이징의 북한 소식통은 “개성공단 가동에 때맞춰 신의주특구가 전면에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2>뿌리 내리는 한국요리

'갈비' 앞세워 베이징시장 당당히 입성

 ◇베이징 둥싼환(東三環) 지역에 있는 베이루(北路) 중국 식당가. 중국에 진출한 한국요리는 최고의 경쟁력을 가진 이들 중국요리점의 장벽을 뛰어넘고 있다.<사진위> 한국 식당이 모여 있는 베이징 왕징(望京)의 ‘한국성’. 이곳에는 한인을 상대로 하는 크고 작은 식당과 가게가 성업 중이다.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 4월 중국을 방문했을 때다. 베이징의 톈안먼(天安門) 광장 서남쪽에는 중국과 북한의 경호요원이 깔렸다. 그 사이를 뚫고 김 위원장이 중국요리점인 취안쥐더(全聚德)에 들어섰다. 이곳은 김일성 주석이 중국을 방문할 당시 식사한 곳이기도 하다. 김 위원장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정 속에서 짬을 내 대를 이어 취안쥐더를 찾은 이유는 무엇일까.

 

취안쥐더는 베이징 요리의 대명사인 카오야(페킹덕)로 이름난 음식점이다. 카오야란 오리구이 요리로 그 껍질을 밀가루로 만든 피로 싸먹는 맛이 별미다. 몽골의 쿠빌라이 칸이 중국에 원나라를 세운 이후 ‘황제의 도시’로 800년 이상 전통을 지닌 베이징인지라 중국인은 ‘베이징 요리는 세계 최고의 요리’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 중에서도 베이징 요리를 대표하는 카오야의 최고 브랜드가 취안쥐더다.

 

◆카오야의 벽을 뛰어넘어=한중 수교 15년째, 한국요리가 카오야의 벽을 뛰어넘기에 나서고 있다. 카오야가 철옹성처럼 버티고 있는 베이징의 요리 시장에는 ‘갈비’를 앞세운 한국요리가 고급 음식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베이징에는 접대 문화가 유난히 발달해 있다. 그런 베이징이지만 한국요리를 대접받은 중국인은 거의 예외 없이 ‘대접 한번 잘 받았다’는 말을 한다. 한국의 맛이 중국에 뿌리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베이징의 한국 음식점은 400곳을 넘어서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베이징에 상주하는 한국인도 5만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이들 한국 음식점은 한국인만을 상대하지 않는다. 고급 한국 음식점일수록 특히 그렇다.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중국요리에 맞서 한국요리 바람이 일기 시작한 것은 어떤 면에서는 기적이다.

 

베이징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최고급 백화점인 옌사(燕莎). 베이징에서 물건값이 비싸기로 소문난 곳이다. 이 백화점의 지하에도 한국요리점인 ‘서라벌’이 들어서 있다. 홀 면적이 1000평에 가깝다. 그러나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자리 잡기가 힘들다. 더욱 놀라운 것은 손님 10명 중 7명 이상이 중국인이라는 사실이다. 갈비와 등심 굽는 냄새가 진동하고 밑반찬으로 각종 김치가 나오지만, 중국인 손님은 신비한 맛을 감상이라도 하듯 정성스럽게 젓가락을 움직인다.

 

요리도 브랜드 시대다. 서라벌이 중국인으로 발 디딜 틈 없게 된 데에는 한국요리점의 브랜드화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서라벌의 중국 경영을 도맡았던 백금식 사장은 “중국에 진출한 지 15년이 지난 지금에야 중국인이 한국의 맛을 인정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1990년 초만 해도 옌사와 량마허(亮馬河)에만 있던 서라벌이 왕푸징(王府井)과 시단(西單) 진위다샤(金玉大厦), 왕징(望京), 팡좡(方莊) 등 9곳으로 늘어났다. 베이징 이외에도 상하이(上海), 톈진(天津), 다롄(大連), 선양(瀋陽), 창춘(長春) 등에 체인점이 들어섰다. 한국인은 물론 조선족조차 찾아보기 힘든 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의 후허하오터(呼和好特) 중심가에도 서라벌의 간판이 내걸려 있다.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시에 있는 한국 음식점은 900곳. 그러나 칭다오시 대외사업처의 리빈(李濱) 처장은 “칭다오에도 서라벌과 같은 곳을 끌어들일 수 없느냐”고 말했다. 요리도 요리지만 중국인의 가슴 깊이 새겨진 브랜드의 힘이 낳은 결과다.

 

서라벌뿐만이 아니다. 두산이 투자한 수복성과 수원갈비 전문점인 화춘옥도 중국 시장에 웅지를 튼 한국요리 브랜드다. 수복성은 중국 내 83개 뿐인 국가 특급식당 중 한 곳이다. 수복성이 중국에 진출한 것은 12년 전인 1993년. 한국의 대형 식당이 금융 위기를 맞아 하나둘씩 철수하는 속에서도 끝까지 버틴 수복성은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까지 식사하고 갔다. 지금도 중국의 내로라하는 고위 인사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고 있다. 수복성은 지난 7월 베이징 여인가 주변에 최고급 호텔식당을 뺨칠 정도의 고급 한국요리 2호점을 열었다. 3대에 걸쳐 60년 동안 수원에서 수원갈비를 만들어온 화춘옥도 중국에 진출해 맛 경쟁에 나서고 있다. 지난 4월 톈진(天津)에 2호점을 내고 시장 확장에 뛰어들었다.

 

◆문턱 높은 중국 시장=중국 내 한국식당이 탄탄대로를 달리는 것만은 아니다. 실패의 쓴 잔을 마신 곳도 부지기수다. 1990대 중반 중국에 진출한 진로주가와 보배원, 고려원 등 대형 한국 음식점은 대부분 금융위기 이후 문을 닫았다. 작은 한국 음식점의 부침은 계속되고 있다.

 

한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왕징 부근에도 텅 빈 자리를 지키는 식당이 한두 곳이 아니다. 중국 시장의 문턱이 그만큼 높기 때문이다. 한국 요리의 최대 맹점은 메뉴가 다양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베이징 요리는 제쳐두고라도 광둥(廣東)·쓰촨(四川)·상하이(上海) 요리 등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중국요리점의 메뉴판에는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요리가 올라 있다. 서라벌의 백금식 사장은 “음식 종류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최대 난제”라고 말했다.

 

누구에게 음식을 팔 것이냐도 문제다. 화춘옥의 이광일 사장은 “중국에서는 한국인을 상대로 음식 장사를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망하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외식 문화가 발달한 만큼 중국인을 외면하고서는 중국에서 돈벌기는 애초부터 물 건너간다는 뜻이다. 신용도 최고 덕목 중 하나다.

 

수복성의 온대성 사장은 “ 중국에서는 신용을 잃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며 “고기 한 점이라도 속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고급 한국식당이 모두 마찬가지이지만 수복성은 푸싱(福星)과 화안(華安)이라는 중국 국영기업체로부터 한 근에 150위안짜리 소고기만 사 쓰고 있다. 일반 시장에서 파는 고기 값보다 15배나 비싼 가격이다.

‘카오야의 벽’은 높지만 벽을 뛰어넘기 위한 도전은 계속될 전망이다

 

<3>미용도 한류바람

'이가자·전덕현'등 유명체인 잇단 진출

 ◇한국 유학생이 많은 중국 베이징의 우다오커우(五道口). 이 거리에는 한국 미용 간판을 내건 미용실 10여곳이 성업 중이다. 베이징=강호원특파원

베이징 거리를 걷자면 ‘한국미발 한국미용(韓國美髮 韓國美容)’이라고 적힌 간판이 드물지 않게 눈에 띈다. 1990년대 중반부터 한두 곳 생기기 시작한 이 간판은 이제 동네마다 없는 곳이 없다. 베이징에 모여든 한국인이 거주하는 변두리에서 베이징의 중심가에 이르기까지 ‘한국’이라는 이름을 앞세운 미용실이 판을 친다.

 

베이징의 우다오커우(五道口) 거리. 이곳은 베이징대학, 칭화(淸華)대학, 어언문화대학 등 내로라하는 중국의 대학이 모인 대학가다. 이 지역에서 공부하는 한국 유학생은 지난해에만 7500여명, 올해에는 1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에도 한국 미용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한국인이 세운 미용실에서 재중 동포가 운영하는 미용실에 이르기까지 ‘한국미용’이라는 간판을 내건 곳이 10여곳에 이른다.

우다오커우뿐만 아니다. 한국인이 많은 왕징(望京)과 야윈춘(亞運村), 베이징의 중심가인 왕푸징(王府井) 인근 지역에도 어김없이 한국미용 바람이 불고 있다. 재일동포 미용실을 포함해 한국 미용기술을 내세워 문을 연 곳은 베이징에만 100곳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류의 한복판에 선 미용=중국에 상륙한 한국문화는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미용만큼 한류의 한복판에 서 있는 업종도 드물다. 잘살게 되면 멋을 내기 마련이다. 중국이 개혁·개방 이후 20년이 넘도록 고도 경제성장을 하는 동안 멋 내지 않기로 유명한 중국인의 습관이 바뀌고 있다.

 

베이징의 1인당 국민소득은 3000달러 안팎에 이른다. 그러나 돈 많은 사람은 한국인에 못지않다. 이런 상황이 한국인이 중국 미용시장을 뚫고 들어갈 수 있게 하고 있다.

‘이가자 미용실’을 운영하는 이규상 사장은 “1980년대 이후 중국 본토에 상륙한 홍콩의 대형 미용실은 조만간 한국 자본의 위협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에 한국의 미용산업이 진출하기 시작한 것은 한중 수교가 이뤄진 1992년부터다. 이때 우다오커우의 시자오(西郊)호텔에 ‘한국 미용실’이 들어섰다. 당시만 해도 중국인에게 한국은 먼 나라로 느껴졌던 만큼 주로 유학생을 대상으로 장사를 해야 했다.

 

◇'이가자' 이규상 사장, '전덕현' 전덕현 사장, 'FM' 송찬용 사장(왼쪽부터)

 

그러나 한국 기업의 중국 진출 붐이 일고 한국의 TV 연속극이 중국 가정에 파고들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1990년대 중반 베이징의 동북지역인 신위안리(新源里)에 유학생이 모여 만든 옌한(燕漢)이라는 미용실이 문을 열었다. 이 지역은 술집과 젊은 여성이 많이 거주하는 곳이다. 미의 열풍은 여성을 통해 번지게 마련이다. 베이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어 국내 미용 브랜드인 ‘이가자 미용실’이 중국에 진출하는 것과 때를 같이해 한국의 미용 바람이 중국 젊은 여성의 마음을 흔들기 시작했다. 이규상 사장은 “중국 여성이 몰려들 때에는 미용사들이 하루 12시간을 꼬박 서서 손님을 맞아야 했다”고 말했다.

 

중국 미용시장 진출은 국내 미용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고, 이에 따라 2000년대 들어 미용사의 외국 시장 진출이 늘어나면서 봇물을 이루고 있다. 이가자 미용실에 이어 국내 유명 미용체인인 ‘전덕현 미용실’이 중국에 진출하고 중국 내 한국미용 브랜드인 캐스팅, 리치, FM 등이 잇따라 등장했다.

 

베이징의 중심지역에 있는 바이성(百盛)백화점 내 ‘정박이 미용실’과 베이징역 인근의 ‘아이야(愛牙)’도 문을 열어 돈 많은 중국 여성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심지어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신의주와 마주보는 단둥(丹東)에도 최대 미용실인 ‘펑여우’(朋友·프렌드헤어숍)라는 이름의 한국 미용실이 들어섰다. 2년 전의 일이다. 특히 단둥의 펑여우는 재중동포와 북한 사람들에게 까지도 ‘한국 미’의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단둥에 한국미용 바람을 불어넣고 있는 펑여우(朋友)미용실. 한류 바람이 불면서 이곳에는 하루 100명 이상의 손님이 모여들고 있다.

 

◆대기업도 진출 타진=중국 내 한국 미용산업의 갈 길은 아직 멀다. 대규모 자본을 앞세워 베이징과 상하이, 광저우(廣州)를 비롯한 대도시를 초토화시키는 홍콩 미용자본과는 달리 한국의 미용업체는 아직 소규모 자본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밑천이 없으면 구멍가게밖에 할 수 없다. 중국에서 한국미용 바람이 불고 있지만 국지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전덕현 미용실의 전덕현 사장은 “바로 이 점이 중국 시장에서 뛰어드는 한국 미용산업의 한계”라고 말했다.

 

중국의 미용시장 규모는 베이징만 연간 18억위안(2억1700만달러)을 넘어서는 것으로 추정된다. 상하이, 광저우 등 대도시를 합하면 20억달러를 훨씬 웃돈다. 특히 미용산업은 파급효과가 큰 산업이다. 미용재료와 기자재, 화장품에 이르기까지 미치는 전방위 파급효과를 따지면 무한대의 부가가치를 창출해낼 수 있는 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대기업이 중국 미용시장 진출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어 주목된다.

 

베이징 동북부의 여인가(女人街)에 문을 연 ‘리치’ 미용실. 리치는 코오롱 인터내셔널이 이가자 미용실의 중국 상륙을 지휘한 이규상 사장을 앞세워 만든 미용실로, 한국의 대기업이 중국에 문을 연 1호 미용 브랜드다. 코오롱 인터내셔널은 70%의 지분을 투자했다. 그러나 아직은 중국 시장을 타진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FM 미용실의 송찬용 사장은 “홍콩 자본이 남방에서 북방 지역으로 뻗어오는 것과는 달리, 한국의 미용자본은 화북지방을 주 공략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 화북지역은 우리나라와 기후나 문화적인 배경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베이징=강호원특파원

/hkang@segye.com

 

<미용실서 본 중국인 씀씀이>

절대 돈 깎는법 없어…소비수준 상상이상

 

‘중국 사람의 씀씀이는 한국 사람과 다르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미용사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다. 국내 유명 미용 브랜드인 ‘전덕현’ ‘이가자’ 등 중국 미용실은 값이 비싸기로 소문난 곳이다. 머리 한번 깎는 값이 150∼300위안, 우리 돈으로 2만2000∼4만5000원에 이르는 액수다. 웬만한 중국인이 머리깎기에는 너무 비싼 값이다. 중국에 사는 한국인도 ‘싼 맛’에 젖어 싸게 깎는 방법을 찾기 일쑤다.

그러나 중국인은 다르다. 베이징의 한 호텔 내에 있는 한국 미용실 원장은 “중국인은 한국 미용실에서 절대 돈을 깎지 않는다”며 “한번 머리 하는 데 1000∼1500위안을 쓰는 게 예사”라고 말했다. 중국에는 그만큼 돈 많은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한국 사람이 집중적으로 모여 사는 왕징. 이곳에서도 마찬가지다. 입은 옷은 볼품 없지만 4000만∼5000만원이 넘는 고급 승용차를 몰고 다니는 중국인이 수두룩하다. 중국 생활이 7년째인 이가자 미용실의 이규상 사장은 “중국 사람은 겉으로만 봐서는 얼마나 잘사는지를 알기 힘들다”며 “중국 부유층의 소비 수준은 한국인이 상상하기 힘들 정도”라고 말했다.

 

중국 부유층이 돈쓰기를 아까워하지 않는 만큼 중국에는 최고급 미용실이 즐비하다. 중국 미용실이라도 비싼 곳은 커트요금이 300위안을 넘는 데가 한둘이 아니다. 홍콩 계열의 미용실은 특히 비싸기로 소문 나 있다. 그러나 비싼 곳일수록 손님이 많은 것도 특이한 현상 중 하나다.

 

전덕현 미용실의 남연화 원장은 “중국 시장에는 최고급에서 최하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비시장이 형성돼 있다”며 “중국 시장을 뚫자면 어떤 계층을 겨냥할 것인가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고급 시장인 경우 최고의 기술과 서비스를 갖추지 않으면 낭패 보기 십상인 시장이 중국”이라며 “머리를 깎더라도 중국을 제대로 이해하고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4>김치전쟁

한국브랜드 베이징시장 평정

 ◇중국 베이징 중심가의 최고급 백화점인 신스제 백화점 내의 종갓집김치 매장.

중국 최대 명절인 지난 춘제(春節·설날) 때였다. D, L기업을 비롯해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은 고민 끝에 중국 파트너에 김치를 선물로 보냈다. 김치가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예방에 효험이 있다는 소문이 나 있는 터에 한국 문화를 담은 가장 특색 있는 선물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김치를 받아든 중국인들은 의외의 반응을 나타냈다. 중국인마다 “팅하오(挺好:정말 좋다)”를 연발했다. 김치가 중국 상류사회에 더 이상 낯선 식품이 아닌 데다 김치 맛이 중국인을 매혹했기 때문이었다.

 

◆불붙기 시작한 김치시장 쟁탈전=중국에서 때아닌 김치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재중동포가 구멍가게식으로 만들어 팔던 중국 김치시장에 한국 김치는 물론 북한 김치까지 밀려들면서 중국 전역이 들끓고 있다. 대규모 생산업체에서 가내수공업 수준의 공장에 이르기까지 김치를 만들어 파는 곳만도 100곳이 넘는다. 몇 년 사이에 중국 김치시장이 급속히 확대된 결과다.

 

중국에 김치공장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까닭은 중국 내 한국인이 늘어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돈 많은 중국인들이 김치 맛을 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확대되는 김치시장을 배경으로 중국에서는 한국 김치가 15년 전 일본시장에 상륙할 때와 비슷한 김치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중국 내 최대 김치생산지는 칭다오(靑島). 이곳에만 20군데에 달하는 김치공장이 가동되고 있다. 이들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김치는 대부분 한국으로 보내진다. 그래서인지 정작 김치전쟁은 베이징을 주무대로 벌어지고 있다.

베이징 김치의 터줏대감은 얼마 전만 해도 길엽(吉葉), 영생(靈生) 등 조선족 김치였다. 조선족 김치는 1990년대 들어 한국인과 재중동포를 배경으로 짭짤한 돈벌이를 해왔다. 그러나 최근 상황이 바뀌고 있다. 국내 시장을 석권한 종갓집김치와 한상김치, 경복궁김치 등 한국 김치가 중국 내수시장 파고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구멍가게에 가까운 조선족 김치를 제치고 중국시장을 흔들기 시작했다.

 

이런 흐름을 주도하는 종갓집김치는 베이징 동북쪽 미윈(密云)구에 대규모 공장을 짓고 올해부터 판매전에 뛰어들었다. 종갓집김치의 목표는 중국인에게 김치를 먹이겠다는 것. 이에 따라 지난 7월부터 돈 많은 중국인이 모이는 일본 미쓰이그룹 계열 백화점인 화탕(華堂)과 신스제(新世界), 로손과 함께 대형 슈퍼체인인 징커롱(京客隆) 이커롱(億客隆) 등에 김치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베이징은 물론 상하이 칭다오 톈진 시장에서도 세 확장에 들어갔다.

종갓집김치의 이동희 상무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 중국에 스타벅스가 파고들었듯이 한국 김치도 중국인 속으로 파고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선정김치도 최근 베이징 지역에서 생산을 시작하며 중국시장 확장에 나서고 있다.

 

◆맛내기가 승부처=국내 김치 브랜드와는 달리 중국에서 탄생한 한국 김치 브랜드도 영역을 넓혀가기 시작했다. 중국시장 파고들기에 나선 이들 브랜드의 대표주자는 한상김치와 경복궁김치다.

중국 남부 구이린(桂林)에서 김치를 만들어 팔던 한상김치는 올해 초 베이징 다싱(大興)구에 공장을 세우며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한상김치는 지난 5월 베이징에 상륙한 일본계 세븐일레븐 매장에 공급되고 있다. 경복궁김치는 칭다오를 근거지로 한 한국 김치 브랜드다. 1990년대 말부터 자리잡기 시작한 경복궁김치는 칭다오와 상하이의 김치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상하이에서 시장점유율은 70%를 넘는다.

 

그러나 중국 시장에서 김치전쟁은 아직 서막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의 김치시장 규모는 현재 50억원을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런 중국 김치시장은 앞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중국인이 김치를 좋아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상김치 이은숙 사장은 “중국의 소득수준이 높아질수록 김치시장도 빠르게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전후해 중국 김치시장은 200억∼300억원대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커지는 시장에서는 경쟁도 치열하기 마련이다. 자본력과 깨끗한 이미지에서 밀리는 조선족 김치도 한국 김치 상륙에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북한 김치도 한국교민을 겨냥해 중국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일본의 ‘기무치’도 중국 진출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김치시장에 맛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치시장에서는 맛에서 뒤지면 퇴출당한다. 소규모 자본이라도 누가 맛을 잘 내느냐에 따라 시장판도가 뒤바뀔 수 있다. 이 때문에 중국 김치시장에서 벌어지는 김치전쟁은 시간이 지날수록 무한경쟁으로 빠져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베이징=강호원특파원/hkang@segye.com

 

北김치도 성공예감

해당화·묘향산 브랜드로 진출

한국교민·조선족동포 집중공략

 

북한 김치가 중국시장에 잇따라 상륙하고 있다. 중국시장은 물론 한국과 일본 수출시장을 겨냥해서다.

중국시장에서 북한김치 생산을 주도하는 곳은 평양의 조선고려호텔이다. 외화벌이에 관한 한 북한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만큼 많은 영역에 발을 뻗고 있는 조선고려호텔은 해당화김치에 이어 묘향산김치를 진출시키며 중국 김치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중국에 진출한 1호 북한 김치는 해당화김치로, 10년 전 베이징에서 문을 연 해당화식당과 함께 진출했다. 베이징 서남부 펑타이(豊臺)구에 공장이 있는 해당화김치는 지난해 연간 600여t의 김치를 생산, 일본에까지 수출했다. 해당화식당에서는 한국 관광객을 상대로 선물용 김치까지 만들어 판다. 해당화김치는 캔핀스키호텔 등 베이징의 일부 호텔에도 공급하고 있다.

 

이에 반해 묘향산김치는 올해 1월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에서 생산을 시작하며 베이징 칭다오 톈진 옌타이 등 한국교민과 재중동포를 집중 공략하고 있다. 묘향산김치 관계자는 “조선고려호텔 임직원과 조선과학원 식료연구소 연구원이 직접 파견돼 김치를 만들고 있다”며 “품질에 관한 한 최고임을 자신한다”고 말했다. 묘향산김치 공장에는 한국의 수입업자 수명이 이미 다녀갔다고 알려져 조만간 국내에도 상륙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관심거리는 북한 김치의 경쟁력이다. 해당화김치 관계자는 “조선김치와 통일김치를 비롯해 평양에만 김치공장이 10여군데 있다”며 “중국에 진출한 김치는 북한에서도 가장 맛있는 김치”라고 자랑했다

 

<5>식품도 한류열풍

한국 빵·피자 대륙 입맛 사로잡다
 ◇베이징 왕푸징 인근에 있는 미스터피자 동팡점. 이곳에는 중국 젊은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중국에 한국 식품 바람이 불고 있다. 잘살게 되면 입맛도 바뀌게 마련이다. 전통 음식보다 패스트푸드를 좋아하고 과자를 사도 색다른 것을 찾는다. 개혁·개방 이후 20년 이상 높은 경제성장률을 이어온 중국에도 이 같은 변화가 밀려들고 있다. 이처럼 바뀌는 중국인의 입맛을 한국 식품이 사로잡기 시작했다. 중국에 ‘파이 제국’을 만든 초코파이에서 피자, 심지어 빵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맛이 대륙 곳곳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

 

베이징에서 번화하기로 소문난 왕푸징(王府井)의 남쪽에는 ‘둥팡광창(東方廣場)’이라는 초대형 오피스·쇼핑타운이 서 있다. 이 건물은 홍콩재벌 리카싱(李嘉誠) 회장이 지은 것으로 베이징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이곳에는 음식경연이라도 하듯 각국의 각종 음식점이 즐비하다. 한국은 ‘미스터 피자’가 진출해 있다. 세계적인 피자 브랜드인 미국계 피자헛이 골리앗이라면 다윗에도 미치지 못할 미스터 피자 신둥팡점에는 피자를 사 먹으려는 중국의 젊은이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 인근 피자헛보다 오히려 손님이 더 많다. 200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막이 오른 중국 피자시장에 한국 피자가 파고들고 있는 것이다.

 

미스터 피자뿐만이 아니다. 파이시장에서는 초코파이를 앞세운 오리온 파이가 중국을 휩쓸고, 제빵 시장에서는 중국 내 한국 브랜드인 ‘파리 파이티스’가 떠오르고 있다.

이들이 중국에 진출한 것은 짧게는 3년, 길게는 10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중국의 파이·피자·빵 시장에는 한국세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특히 이들 시장은 중국 경제가 발전할수록 뒤바뀌는 중국인의 식생활 패턴을 배경으로 무한대로 커질 소지가 있어 중국시장에서 세를 넓히고 있는 한국 식품의 미래를 밝게 하고 있다.

 

이들 중 가장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는 곳은 피자시장이다. 미스터 피자는 중국에 진출한 지 4년째다. 롯데리아와 파파이스 등 한국의 대형 음식체인이 판판이 쓰러지고 나간 베이징 시장에서 중국 신세대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굳게 버티고 있다. 허준(許浚) 사장은 중국 피자시장에서의 영업전쟁을 “다윗의 싸움이 시작되고 있다”며 “한국의 피자 맛을 중국에 심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스터 피자는 베이징에만 젠궈먼(建國門) 왕징(望京) 등 7곳에 체인을 열었다. 12월에는 톈진에 8호점을 열 예정이다.

중국에서 피자싸움이 쉽지만 않은 것은 다국적기업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계 피자헛은 중국에 이미 120가 넘는 체인점을 열었는가 하면 피자의 사촌격인 패스트푸드 체인인 KFC, 맥도널드도 수백 군데의 점포를 개설했다. 이들 체인은 최근 중국 서부로 발을 뻗고 있다. 이들의 틈바구니에서 시장을 만들어 나간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지만, 허 사장은 “결국 맛의 싸움이며 맛에서 중국인을 사로잡는 곳이 최후의 승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파리 파이티스는 제빵 시장을 뚫고 있다.

 

3년 전 소자본으로 시작한 파리 파이티스는 베이징을 중심으로 6호점을 낸 데 이어 회원제 클럽이 프라이스마트와 N마트, 베이징의 고급 백화점인 화탕에 빵을 공급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중국 진출에 나선 세븐일레븐이 베이징에 연 8곳의 매장 한가운데에 파리 파이티스 빵이 자리잡고 있다. 세븐일레븐은 올 연말까지 베이징에만 30개 이상의 편의점 체인을 열고 외국자본의 체인사업이 공식 허용되는 내년부터 수백개의 체인점을 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파리 파이티스는 이를 이용해 본격적인 세 확장에 들어갈 계획이다.

 

국내 제빵 체인으로는 파리바케트가 상하이에 진출해 사업을 시작했다.

김천호(金千皓) 파리 파이티스 사장은 “피와 땀을 쏟지 않는 한 중국시장은 열리지 않는다”며 “한국 빵이 중국에서 성공하는 길은 최고의 품질과 맛을 유지하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의 최대 제빵 체인점은 하오리라이(好利來)다. 중상류층과 한국교민이 많이 모여 사는 왕징에는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파리 파이티스와 하오리라이가 마주보고 있다. 파리 파이티스의 빵값이 2배 이상 비싸지만 중국인조차 하오리라이보다는 파리 파이티스의 빵을 많이 사 먹는다. 한류 바람으로 한국 것이면 더 좋을 거라는 기대를 갖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중국 빵을 압도하는 독특한 ‘한국 빵 맛’이 중국인을 끌어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과 달리 파이시장은 대규모 기업인 오리온이 중국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오리온이 중국에서 만드는 파이는 초코파이에서부터 카스타드 파이, 이탈리아식 파이인 티라미수, 딸기잼으로 만든 프레시파이에 이르기까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한국 식품으로 중국인에게 가장 잘 알려진 식품이 오리온의 파이다.

베이징=강호원특파원

/hkang@segye.com

 

초코파이 띵호아!

24시간 공장 가동해도 공급 달려

올 상반기만 3500만弗어치 판매

 

 

◇중국 베이징의 최대 슈퍼마켓 체인인 징커룽 매대에 진열된 초코파이.

베이징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에게 ‘하오리여우(好麗友·좋은 친구)를 아느냐’고 물어보면 10명 중 5명은 고개를 끄떡인다. 하오리여우는 (주)오리온이 중국에서 생산하는 오리온 초코파이의 이름이다.

 

베이징의 최대 슈퍼마켓 체인인 징커룽(京客隆)에서부터 최고급 백화점인 옌사(燕莎) 백화점에 이르기까지 초코파이는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진열되어 있다. 가장 잘 팔리는 파이 식품이기 때문이다.

서해를 건넌 한국 식품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초코파이는 중국 가정을 사로잡은 가장 대표적인 식품으로 기록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베이징∼톈진 고속도로 중간 지점인 랑팡(廊坊)과 상하이에 지어진 초코파이 공장에서는 올 상반기에만 3500만달러어치가 만들어졌다. 4t짜리 트럭으로 3000대분이 넘는 규모다.

중국인이 초코파이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24시간 공장을 돌려도 물건이 달린다. 중국 전역에 초코파이를 공급하는 120개 중개상은 물량 확보를 위해 줄을 서야 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초코파이의 베이징 현지법인인 하오리여우 식품유한공사의 강기명(姜奇明) 시장 담당 매니저는 “기차가 서는 곳이면 중국 어디에서나 초코파이를 사 먹을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맹위를 떨치는 초코파이의 위력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초코파이는 중국 파이시장에서 40%를 점유하고 있다

 

<6>실크전쟁

한국업체 '최고급시장'서 한판승부

중국에서는 실크전쟁이 한창이다. 중국 기업은 물론 이탈리아 프랑스 미국의 내로라하는 의류 제조업체도 너나없이 중국 실크를 기반으로 세계시장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중국이 공급하는 실크는 세계시장의 80∼85%를 차지한다. 한국과 일본 등 일부 지역에서 생산되는 실크를 빼면 세계시장에 나도는 실크는 모두 ‘중국산’이다. 한국 실크산업도 이 틈바구니를 뚫고 중국 시장에서 한판 승부를 벌이고 있다.

 

◆쑤저우 교두보 확보 안간힘=양쯔(揚子)강을 끼고 있는 중국 장쑤(江蘇)성의 쑤저우(蘇州). 이곳은 저장(浙江)성의 항저우(杭州)와 함께 중국 최대의 실크 생산지다. ‘쑤돤(蘇緞)’이라는 이름으로 팔리는 쑤저우 실크는 중국에서도 알아주는 제품이다.

 

쑤저우 실크가 유명한 만큼 쑤저우 근교 농촌에는 가는 곳마다 뽕나무가 심어져 있다. 쑤저우 농가에서는 집집마다 실크와 관련된 일을 한다. 한국 실크산업은 이곳을 발판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쑤저우에 들어와 있는 실크 가공업체는 청보 동우 우진 한중실크 등 6∼7곳에 달한다. 이들이 쑤저우에 뿌리내리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부터다.

 

실크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사라진 이후 생산토대가 무너지고 가격 경쟁력을 잃은 국내 실크업계에 외환위기 충격까지 몰아닥치면서 국내 실크 사업자가 하나둘 중국으로 거점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들은 ‘중국에서 승부를 가려보자’는 생각으로 쑤저우 시장에 뛰어들었다. 중견기업도 있지만 소자본의 실크 가공업도 나섰다.

청보실크의 문옥주(文沃柱) 사장은 “국내에서 사용하는 원단도 이미 90% 이상이 중국에서 공급되고 있다”며 “한국 실크산업의 활로는 결국 중국을 발판으로 찾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고급시장 집중 공략=주목되는 것은 중국에서 승부수를 던지고 있는 한국 실크가 중국 고급 시장의 중심부로 들어서고 있다는 점이다.

상하이의 최고급 백화점인 태평양백화점. 이곳에 내걸린 고급 넥타이 원단의 20%는 한세실크에서 만들어진 제품이다. 한세실크가 중국에 진출한 것은 1997년. 7년여 공을 들인 끝에 중국 내 최고급 넥타이 메이커에 원단을 공급하고 있다. 중국의 유대인이라 불리는 원저우(溫州) 상인이 만드는 고급 넥타이 브랜드인 바오시냐오(報喜鳥)와 례런(獵人)이 모두 이 회사의 원단을 쓴다. 특히 80여곳의 넥타이 생산업체가 모인 중국 최대 넥타이 생산지인 청저우(乘州)의 넥타이 제조업체 중에서는 한세실크의 디자인을 모방하는 곳도 나오고 있다.

 

한세실크의 권재홍(權載洪) 현지법인사장은 “새로운 디자인이 나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유사상표가 만들어진다”며 “한세실크 제품은 모방제품의 주요 대상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청보실크는 중국 내 최고급 잠옷·여성내의 생산업체인 아이모(愛慕)에 실크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유럽의 유명 실크 메이커에 실크 원단을 공급하는 무역회사인 눠위안(諾源)에도 실크를 대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런 움직임은 중국 시장에서 한국 실크가 맹위를 떨치기 시작했음을 나타내는 신호다. 중국 기업이 실크 가공에 쓰는 돈이 단위당 60위안 정도라면 한국기업은 100위안을 쏟아붓는다. 기술이 앞서 있는데도 더 많은 제조비용을 투입하니 품질이 좋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최근 외국 유명 실크브랜드 바이어도 중국 내 한국 실크를 찾는다.

그러나 걱정스러운 것은 앞날이다. 중국 실크산업은 워낙 빠른 속도로 추격하는지라 한국 실크의 위협 요인으로 등장하고 있다. 한세실크 박덕만(朴德萬) 부장은 “중국 국영 실크기업들이 들여온 견직기는 한국보다 오히려 앞선다”며 “이들이 어떻게 기술경쟁력을 구축해 나가느냐에 따라 한국 실크산업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청보실크의 문옥주 사장은 “중국 실크산업은 외국 기업의 기술을 빠른 속도로 흡수하고 있다”며 “3∼4년 후에는 중국 기술이 한국을 추월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쑤저우=강호원특파원/hkang@segye.com

 

한국 자수의 전초기지 '쑤저우'

 

중국 쑤저우(蘇州)에는 한국 자수상의 발길이 끊이지를 않는다. 쑤저우를 드나드는 자수상은 매월 100∼200명에 달한다. 이들은 한복 자수에서 안경집, 베갯모, 가구 자수에 이르기까지 온갖 자수 제품을 만들어 한국으로 실어나르고 있다.

 

이들이 쑤저우에 드나든 지 10여년. 이제 ‘쑤저우가 없는 한국 자수시장’, ‘한국 시장이 없는 쑤저우 자수산업’은 생각하기 힘들게 됐다. 10년이 넘도록 쑤저우에서 자수 중개 사업을 해온 황영남씨는 “한국 내 한복시장이 죽으면서 쑤저우 자수산업이 크게 위축됐지만, 아직도 쑤저우 농촌에는 한국에서 넘어오는 자수제품을 만드는 농가가 즐비하다”고 말했다.

 

쑤저우가 한국 자수산업의 기지로 변한 것은 1990년대 중반이다. 이전만 해도 쑤저우에는 일본 자수상이 드나들었다. 그러나 일본의 일반인이 입는 기모노가 면과 화섬으로 바뀐 후 쑤저우에는 한국 자수상이 일본 자수상의 자리를 대신하게 됐다.

 

한국의 자수 열풍도 쑤저우를 후끈 달궜다. 황영남씨는 “당시에는 매월 500명 이상의 한국 자수상이 쑤저우를 드나들었다”며 “호텔과 식당은 가는 곳마다 한국 자수상으로 가득 찼다”고 말했다. . 그러나 쑤저우의 자수산업은 최근 힘을 잃어가고 있다. 한국 내 한복시장이 위축되면서 일거리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쑤저우에서 자수에 직·간접으로 종사하는 농가만 1만가구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중 70%는 한국 자수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한국의 한복시장이 쑤저우 자수산업을 지탱하는 한 축을 이루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복시장이 죽으니 쑤저우 자수산업도 몸살을 앓고 있다.

 

쑤저우 자수시장의 한 관계자는 “한복시장이 죽어간다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걱정은 한국에 전통을 지켜 나가려는 마음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자수시장을 통해 보면 한국문화의 정체성이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이다

 

<7>의료산업도 한류바람 부나

세계최고 수준의 '成形수술' 대륙이 들썩

중국 땅을 밟는 한국 의사가 늘어나고 있다. 한국인이 모인 곳에는 어김없이 한국 병원이 문을 열고, 베이징을 비롯한 대도시에는 한국의 대형 병원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의료산업에 관한 한 ‘쇄국’으로 똘똘 뭉친 한국과는 달리 개방 노선을 택한 중국시장에는 한국 의료산업의 진출이 봇물을 이룰 조짐을 보인다. 한류 바람을 타고 인기를 누리는 성형외과뿐 아니라 치과, 피부과, 소아과, 이비인후과, 한의학의 진출 움직임도 꿈틀거리고 있다.

 

◆중국 진출 첨병 성형수술=상하이의 난징로(南京路)에 있는 한 성형외과에는 한국 배우 10여명의 사진이 내걸려 있다. 중국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아름다워지려는 중국 여성을 끌어 모으기 위해서다. 웬만한 성형외과에서 한국 배우를 성형 모델로 내거는 현상은 2000년대 이후 벌어진 것으로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탤런트 채림(25)씨가 쓰촨(四川)성 청두(成都)의 화메이(華美)성형외과를 대상으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고자 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중국 땅에서 달아오르기 시작한 한국의료 진출의 열기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중국시장에 뛰어든 첨병은 미를 가꾸는 의료산업이다. 다른 분야는 중국 의료기술이 만만찮은 데 반해 성형수술에 관한 한 한국 의료진의 수준이 중국을 크게 앞서기 때문이다. 성형수술을 받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는 중국의 부자는 적어도 연간 1000명선을 넘어서는 것으로 추정된다. 상하이의 ‘아이미(Eye美)’성형외과 조을제 원장은 “이 같은 현상이 한국 의료산업의 중국 진출을 촉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웬만한 대도시에는 한국 성형외과가 진출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변하고 있다.

베이징에는 올해 2월 SK가 국내 5개 병원과 합작 투자한 아이캉(愛康)의원이 문을 열었고 상하이에서도 4월 아이미성형외과가 영업을 시작했다. 아이미성형외과는 조만간 남부 쿤밍(昆明)에 성형외과와 치과 병원을 세울 예정이다.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에는 정맥류 혈관성형 전문의들이 문을 연 SK성형외과가 성업 중이다. 이들 병원을 이끌어가는 의료진은 한국에서도 내로라하는 성형외과 전문의로, 중국 의사면허를 딴 인물들이다.

 

이들 외에도 베이징의 코리아성형외과와 한국성형외과, 상하이의 염낙천미용성형외과 등이 중국의 성형 바람을 타고 진출했다. 중국에 병원을 열지는 않았지만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성형수술을 돕는 한국 의사도 한둘이 아니다.

 

◇한국 의료산업의 중국 진출이 올 들어 가속되고 있다. 베이징 차오양구에 문을 연 아이캉의원 전경(위사진)과 내부 모습(아래사진).

 

◆대규모 자본 진출=최근에는 대규모 자본 진출도 잇따른다. 대형 병원으로 가장 빨리 중국에 진출한 곳은 왕징신청병원이다. 한국인이 많이 모여 사는 베이징의 왕징(望京)거리에 있는 이 병원은 1990년대 후반 처음으로 진출했다.

지난 2월에는 SK그룹이 국내 탑성형외과·예치과·새빛안과·초이스피부과·유니온이비인후과 등 5개 병원이 만든 코리아스타 메디컬과 손잡고 중국 위생부 합작으로 세운 아이캉의원이 문을 열었다.

 

상하이에는 재중동포가 세운 한강백병원에 이어 국내 성형외과·피부과·치과 의사가 손잡고 만든 ‘뷰티 차이나’가 늦어도 올 연말까지는 문을 열 예정이다.

 

한국의 의료산업이 뛰어들 수 있는 것은 중국이 의료시장의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권을 지키기 위해 똘똘 뭉쳐 외국 의료기관의 진출을 원천 봉쇄하는 한국과는 크게 다르다. 중국에서는 투자액이 2000만위안을 넘으면 외국자본으로도 독자 병원을 세울 수 있다. 이 때문에 최첨단 의료장비와 기술을 갖춘 외국계 병원이 중국에 잇따라 진출하고 있다.

 

베이징에서는 미국계인 SOS와 VISTA, 캐나다계 산부인과 전문병원인 허무자(和睦家), 일본 자본이 합작 투자한 중일병원 등이 중국 부유층의 겨냥해 중국 내 의료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상하이에서는 2007년까지 여의도의 7배에 달하는 면적에 의료특구를 만들어 세계적인 병원을 유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중국의 국유병원도 외국자본에 넘기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중국시장에서 세계적인 의료대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아이캉의원의 정성일 원장은 “성형외과를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 한국 의료산업의 중국 진출이 아직은 초기 단계”라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시장에 진출하기 시작한 한국 의료산업에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 최근 한국 의사를 초빙해 진료·수술을 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성형외과의 경우 특히 그렇다. 일부 중국 병원에서는 한국의 성형외과 의사에게 출장 진료·수술을 요청하는 메일 공세를 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 병원의 요청을 받은 의사들은 한달에 한두 차례 중국으로 건너가 수술해주곤 한다.

 

그러나 의료사고는 항상 일어나기 마련이다. 이 같은 의료사고가 이미 일부 지역에서 발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조을제 원장은 “가끔 중국 병원에서 수술해주는 한국 의사가 의료사고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는 것은 쉽지 않다”며 “ 책임지지 않는 의료사고가 한국 의료산업의 중국 진출 기반을 순식간에 무너뜨릴 수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상하이=강호원특파원

/hkang@segye.com

 

 

"뛰어난 의료기술로 승부"

中시장 수익성 있나

중국 땅을 밟는 한국 의사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중국의 시장성이다.

한국 의료산업이 진출할 만큼 수요가 있느냐는 것은 물론이고 중국인이 비싼 의료비를 감당할 수 있느냐는 점도 문제다.

베이징 아이캉(愛康)의원의 정성일 원장은 “세상 어디서나 돈벌기가 어디 쉽겠느냐”고 말한다. 의료 서비스 가격과 중국인의 소비 특성으로 인해 중국시장 파고들기가 그리 만만치 않다는 뜻이다.

의료비 문제를 놓고 보자. 예컨대 눈 쌍꺼풀 수술비는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2000위안(30만원) 정도가 든다. 랴오닝(遼寧), 지린(吉林)성 등 동북지역이나 남부지역에서는 600∼1000위안이면 이 수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쌍꺼풀 수술 가격은 서울 강남에서만 150만원(1만위안) 안팎이다. 지방에서도 80만원(5500위안)은 줘야 한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아무리 가격을 깎아줘도 한국 병원의 진료비는 중국 병원보다 일반적으로 비싸다. 성형외과 뿐 아니라 모든 분야도 다 마찬가지다.

 

의료보험 제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중국에서 시민들이 이런 비싼 진료비를 내고 한국 병원에 가기가 쉽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정 원장은 이에 대해 “중국에서는 의료기술로 승부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비싼 진료비나 수술비를 받고 그만큼 질 좋은 서비스를 해주면 된다는 것이다. 그는 “베이징에서는 자가용을 타고 다닐 정도의 사람이면 한국의 의료 서비스를 받을 만한 소득이 있는 사람으로 봐야 한다” 며 “시장 수요는 무한하다”고 말했다.

이들의 수요를 어떻게 끌어내느냐가 문제로 남는다. 그러나 아직 중국인의 의료 수요는 성형외과를 비롯한 특정 부문에 집중돼 있다.

 

아이캉병원을 찾는 고객을 분석하면 성형외과의 경우 중국 고객 비중이 80%에 달하지만 건강검진은 70%, 피부과는 50%, 치과 안과 소아과는 20% 수준으로 떨어진다.

정 원장은 “한국 의료의 중국시장 진출 역사가 깊어지면 중국인도 한국 의료기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될 것”이라며 “그러나 더 중요한 일은 중국시장에 신용을 심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8>유통장벽을 넘는 韓商들

거미줄 판매망… '소리없는 한류'를 심는다
만리장성은 툭하면 중국을 괴롭힌 북방민족의 공격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 2400여년 전 전국시대 때부터 수많은 사람을 희생시키며 만들어진 이 장벽은 이후 2000여년 동안 중국의 가장 중요한 방어선이었다. 그러나 경제전쟁이 벌어지는 현 중국에서는 ‘유통장벽’이 만리장성을 대신하고 있다.

중국에서 물건을 팔아보겠다고 나선 외국인은 십중팔구 유통장벽에 부딪혀 주저앉고 만다.턱없이 비싼 입점비에 밑빠진 독에 물붓듯 해야 하는 유통비용이 만리장성보다 더 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도 중국의 유통장벽을 넘는 한상(韓商)들이 있다. 이들은 대기업도 엄두내기 힘든 중국시장 구석구석을 파고들고 있다.

 

◆유통장벽 뛰어넘는 한상들=중국과의 교류가 늘어나면서 베이징에 거주하는 한국인은 6만명을 육박하고 있다. 한국인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나 마찬가지지만 베이징에도 한국 가게가 들어서 있다. 낙원식품, 한양백화점, 서울마트 등 한국 물건을 파는 가게는 한두 곳이 아니다. 베이징 뿐만이 아니다. 상하이 칭다오(靑島) 다롄(大連) 선양(沈陽) 등 중국 곳곳에 한국 물건을 파는 한상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상하이에 진출한 신세계 이마트와 CJ그룹의 홈쇼핑업체인 동방CJ가 유통업 자체에 뛰어든 것이라면 이들 한상은 한국의 소비재를 중국땅에 심는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음악과 드라마 영화를 통한 떠들썩한 한류바람과는 달리 이들은 중국시장에서 ‘소리 없는 한류’를 심는 주인공이다.

중국 소비시장을 파고드는 이들 한상은 무역과 도·소매업에 걸쳐 전방위로 활약하고 있다. 식품의 경우 직접 중국 수출에 나서는 일부 기업을 제외하면 20∼30곳의 무역상이 한국 식품을 중국으로 실어나르고 있다. 중국내 한국식품 도매를 하는 곳은 10여 군데에 이른다.

 

이들은 중국내에 한국인과 조선족 상인과 거미줄 판매망을 구축, 중국 전역에 한국 식품을 공급하고 있다. 한국 식품은 이들을 통해 동쪽 하얼빈에서 서역으로 가는 관문인 우루무치에까지 흘러간다.

한국산 소비재를 중국으로 실어나르는 대표적인 한상 중 하나는 성진상사다. 성진상사가 중국으로 실어나르는 소비재는 컨테이너로 매월 30개가 족히 넘는다. 중국으로 들어가는 물건에는 라면에서 과자, 만두, 아이스크림에 이르기까지 3000종을 웃돈다. 이 식품은 베이징은 물론 상하이 선양 하얼빈 등지에 뿌려지고 있다.

 

오뚜기, 청정원, 동서식품, 샘표간장, 애경, 크라운 등 국내의 내로라 하는 14개 중견업체에서 만드는 식품도 이들을 통해 중국으로 건너가고 있다. 상하이의 한신무역, 다롄의 로디무역, 칭다오의 송화상사, 선양의 756상사도 한국식품의 중국 진출 길을 뚫고 있는 곳이다. 베이징의 낙원식품과 창룡, 옌타이(烟臺)의 청양마트, 웨이하이(威海)의 신왕, 칭다오의 송화상사와 한성 등은 이들로부터 물건을 받아 중국 곳곳에 물건을 대주고 있다.

 

베이징의 한양백화점과 서울마트도 중국 사회에 뿌리를 내린 대표적인 도·소매점이다. 그러나 소비재에 관한 한 중국의 진입 장벽은 아직 높기만 하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소비재가 중국산보다 가격이 비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중국이 외화 유출을 막으려고 소비재 수입을 억제하고, 중국 내 복잡한 유통구조가 시장접근을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한국 상품을 파는 소매업체가 모여 있는 베이징 왕징의 왕징한국성.

 

◆기술과 아이디어로 시장 공략=최근 상하이에 근거를 둔 한국의 한 유통업체가 중국 까르푸 매장에서 철수했다. 이 업체는 한국 물건을 한번 팔아보겠다고 비싼 입점비를 치르고 까르푸에 들어갔지만 남은 것은 적자뿐이었다. 대형 매장에 진출하면서 중국 정부의 감시까지 받게 되면서 안팎으로 골머리를 썩여야 하는 상황을 맞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경우는 다반사다.

 

윤진석 성진상사 사장은 “중국시장 뚫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며 “과거처럼 막무가내식 보따리장사를 통해 중국에 접근하던 시절은 이미 지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투명하지 않으면 중국시장에서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진입장벽이 높다고 해서 가능성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식품시장만 놓고 보면 중국은 한국과 입맛이 가장 비슷한 나라다. 가격에서도 중국보다는 비싸지만 일본과 유럽 식품에 비해 월등히 싸다. 베이징 까르푸 매장에 진열된 라면 중 일본라면이 한 봉지에 16위안인 데 반해 한국라면은 5∼6위안, 중국라면은 2위안 안팎이다. 워낙 비싼지라 일본라면을 고르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한국라면을 사는 사람은 많다.

 

중국 젊은층 사이에 확산하기 시작한 커피의 경우 한국산이 인기도에서 단연 으뜸이다.

한양쌀집으로 시작해 베이징에 한양백화점을 세운 이정기 사장은 “한국 사람과 중국인의 입맛은 가장 비슷하다”며 “기술과 아이디어가 있으면 중국시장은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베이징=강호원특파원

/hkang@segye.com

 

국산농산물 진출 '노크'

중국의 농산물 값은 한국의 10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참깨, 대두, 고사리, 버섯 등 중국산 1차 농산물이 국내로 밀려들고 있다. 국내 식당가에서 내놓는 김치는 90% 이상이 중국에서 들어오고 있다. 그러나 ‘한국 농산물의 중국 진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분석이 제기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농수산물유통공사의 정운용 베이징 농업무역관 관장은 “중국의 경제성장에 따라 대도시를 중심으로 고소득층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며 “한국 농업은 이들을 대상으로 중국 진출을 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과 중국 농산물이 1차농산물 시장에서 싸움을 하면 한국 농산물이 백전백패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그러나 가공분야로 옮겨가면 상황은 달라진다. 정 관장은 “중국 시장은 고부가가치가 담긴 가공식품을 중심으로 열어나갈 때만이 성공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농산물을 가공처리한 고급음료와 기능성 국수, 특수 가공된 육류·생선, 믿을 수 있는 건강식품과 같은 가공식품으로 중국시장 개척의 전열을 가다듬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인의 소득이 늘어나면 소비분야에도 ‘소비폭발’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중국의 1인당 평균소득은 약 1000달러. 그러나 베이징과 상하이, 광저우 등 경제가 발전한 대도시의 평균소득은 3000달러선을 넘어섰다.

이같은 소득 규모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전후해 배 이상 확대될 전망이다.

 

 국민소득이 6000∼7000달러 선으로 커지면 웬만큼 비싼 가공식품도 사먹게 마련이다. 특히 중국의 상위 5% 정도는 웬만한 한국사람보다 잘 산다.

정 관장은 “중국에 가공 농산물을 팔기 위해서는 중국이 못사는 나라라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며 “얕잡아보는 마음이 비즈니스의 실패로 귀결된다”고 말했다

 

<9>대륙에 뿌리내린 한국 종자산업

봄 무·고추씨 시장서 '1위 파종'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을 외치던 국내 종자산업은 외환위기 이후 몰락의 길을 걸어야 했다. 나라 경제가 도산할 위기 상황에서 종자산업이라고 온전할 리가 없었다. 국내의 토종 종자업체는 외국의 메이저 종자기업에 팔리는 운명을 맞고 ‘한국의 고유종자’라는 말은 의미를 잃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한국의 종자산업 자본은 새 시대 열기에 골몰하고 있다.

 

외환위기가 휩쓸고 간 지 7년째, 이들은 중국시장에서 다시 일어서고 있다. 다국적 종자산업의 국내 진입으로 국내시장 지키기가 무의미해져버린 상황에서 중국시장을 발판으로 한 새로운 종자싸움이 시작되고 있다.

중국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의 라이시(來西). 이곳은 중국 수출농산물의 대표적인 산지 중 하나다. 라이시에는 매년 5월만 되면 수확을 앞둔 ‘백옥춘’(白玉春·바이위춘)이라는 이름의 봄무로 온 들이 뒤덮인다.

 

이곳에서 생산된 무는 베이징과 톈진 칭다오 다롄 등 중국의 환보하이만(環渤海灣) 주요 도시를 휩쓸고 있다. 한국과 일본으로도 가공 수출된다. 라이시뿐이 아니다. 산둥성 전역과 남쪽으로는 윈난(雲南)성, 북쪽으로 네이멍구(內蒙古) 자치주에 이르기까지 백옥무는 중국 전역에 퍼져 있다.

 

중국 농민 사이에서 ‘바이위춘’이라는 말은 무의 대명사가 되다시피 했다. 작은 도시의 재래시장에 무를 사러온 아낙네도 ‘무 달라’고 하는 대신 ‘바이위춘 달라’고 할 정도다.

그러나 무를 사먹는 중국인도 백옥춘이 한국의 종자라는 것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베이징 다싱(大興)구에 자리잡은 세농종묘의 종묘연구소(사진 위)와 중국 지린(吉林)성 창춘(長春) 교외의 한 곡물창고(사진 아래).

베이징=강호원 특파원

 

◆중국에 상륙하는 한국 종자산업=백옥춘이 전 중국으로 확산하면서 상당수의 중국 중상류층은 이제 한국 무를 먹고 있다. 돈이 없어 다국적 기업에 종자산업을 내줘야 했던 한국의 종자산업이 중국에서 ‘백옥춘 신화’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백옥춘을 중국에 퍼뜨린 곳은 베이징세농종묘(이하 세농)다. 이 회사는 국내의 농우바이오가 중국에 세운 현지법인이다. 중앙종묘 흥농종묘가 멕시코의 다국적 종자기업인 세미니스에 팔리고 서울종묘가 스위스 노바티스에 넘어가는 위기 속에서도 버틴 곳이 농우바이오다. 이 때문에 농우바이오는 동부한농 종묘사업부와 토종 종자산업을 지키는 마지막 자존심으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세농종묘가 중국 베이징에 문을 연 것은 1994년. 이후 10여년이 지나면서 세농종묘는 중국 종자시장에서 ‘무시하지 못할 큰 손’으로 변하고 있다. 박상견 세농종묘 사장은 “중국의 종자시장이 농촌 인구와 면적에 비하면 그리 큰 편은 아니지만 중국 시장의 5% 안팎을 점유하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세농종묘가 중국 시장에 씨앗을 뿌리면서 봄무가 없던 중국 시장에 봄무 재배 붐이 일고 있다. 세농종묘는 이 외에도 배추 종자인 사계왕(四季王·쓰지왕)과 고추 종자인 세농청초(世農靑椒·스농칭자오), 토마토 가지 수박 참외 멜론 오이 호박 당근 종자를 중국 농촌에 대량 공급하고 있다. 특히 ‘개량신흑전 5촌’이라는 이름을 가진 당근은 중국을 휩쓸던 일본 당근을 몰아내고 중국을 석권할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세농종묘 외에도 국내의 작은 종자기업들도 한국의 종자로 중국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이들 기업 중 대표적인 곳은 현대종묘다. 현대종묘는 외환 위기를 전후해 외국 기업에 넘어간 서울·중앙종묘와 동부한농의 직원들이 만든 기업이다. 개척정신 하나로 중국 시장에 뛰어든 현대종묘는 고추 종자에 관한 한 중국시장의 1인자로 떠오르고 있다. 현대종묘의 고추 종자인 아평(雅坪)과 한광(韓光)은 중국 동북부의 지린(吉林)성에서부터 네이멍구 윈난 산시(陝西) 간쑤(甘肅) 등 중국 전역에서 위탁 생산되고 있다. 현대종묘는 지난해에만 600t의 고추를 까다롭기로 소문난 일본에 수출했다.

윤희탁 현대종묘 이사는 “중국은 한국 종자산업의 회생 여부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벌어지는 종자전쟁=중국은 농업 대국이다. 13억 인구를 먹여 살려야 하는 만큼 중국으로서는 포기할 수 없는 산업이 농업이다. 중국의 연간 농업생산량은 1680억달러. 중국 내 농산물 값이 싸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 세계 농산물의 5분의 1이 중국에서 생산된다. 윤희탁 이사는 “이 점만 놓고 봐도 중국의 종자시장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시장”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중국에는 전 세계 종자 메이저들이 진출, 치열한 시장 싸움을 벌이고 있다. 멕시코에 근거지를 둔 세미니스와 일본의 사카타와 다키 도키다, 유럽의 신젠타와 눈헴 리마그렌, 이스라엘의 하제라 등 내로라 하는 세계적인 종자기업은 모두 중국에 진출해 있다. 중국시장에서 가장 맹위를 떨치는 곳은 세미니스다. 세미니스의 중국 종자시장 점유율은 22.86%에 달한다.

 

그러나 중국 내 종자시장 규모는 아직 2000억원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박상견 사장은 이에 대해 “중국 경제가 발전하면서 종자시장도 급속히 커지고 있다”며 “중국 내 종자시장에서 이기느냐, 지느냐 여부는 한국 농업의 미래와도 직결된다”고 말했다.

무한대로 커지는 중국시장에서 얻어지는 고부가가치를 통해 한국농업 경쟁력의 기반인 종자산업의 전열을 새로 가다듬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고추 쟁탈전

국내업자 품종 국산 못지않은 품질

수입업자 사이 물량확보전 치열

 

국내로 수입되는 중국산 고추를 둘러싸고 중국에서 고추 전쟁이 한창이다. 품질 좋은 한국의 고추 종자가 중국에 진출한 이후 일부 수입업자들이 한국산으로 둔갑시킬 수 있는 고추를 확보하기 위해 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중국에서 고추를 위탁생산, 제3국으로 비싼 가격에 수출하는 일부 국내 종자업체와 수입업자 사이에 ‘고추 숨바꼭질’이 벌어지고 있다.

 

중국에서 생산되는 고추 가운데 국내 종자업체가 개발한 세농청초(世農靑椒)와 아평(雅坪), 한광(韓光)과 같은 품종은 국내 고추를 뺨칠 정도로 품질이 우수하다. 중국의 한 종자업체 관계자는 “이들 고추는 국내에서 최고로 인정받는 영양고추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개발된 종자인 만큼 생김새도 구별하기가 힘들다. 고추 수입상은 이들 고추를 수입, 국내에서 고가에 팔기 위해 위탁생산 지역을 찾아나서고 있다.

 

다른 관계자는 “고추 수입상이 종자 업체의 위탁생산 농가에 더 비싼 가격을 제시, 고추를 가로채는 일이 다반사”라며 “이 때문에 위탁 생산지를 감추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내 고추 위탁 생산지가 중국 오지인 서북쪽의 간쑤(甘肅)성과 남쪽의 윈난(云南)성으로까지 확대된 것도 따지고 보면 이 때문이다. 종전에 국내에 수입된 중국산 고추 품종은 주로 익도초(益都椒)였다.

 

이 품종은 중국 산둥(山東)성 칭저우(靑州)를 중심으로 퍼진 고추로, 색깔은 빨간 빛을 띠지만 맛에서는 국내 토종 고추보다 뒤떨어진다. 생김새도 국산과 구별이 가능하다.

한편에서는 저질 고추 논란도 일고 있다. 중국산 저질 고추는 김치 재료로 사용되는 다진 양념에 주로 쓰이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고추에 붙는 관세는 마른고추를 수입하면 270%가 매겨지는 데 반해 반가공 상태인 다대기와 냉동 고추는 20%대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다대기는 고춧가루 함량이 4%를 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데다 홍색2호라는 색소까지 쓰도록 허용하고 있다. 굳이 좋은 품질의 고추를 사용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중국에 진출한 일부 다대기 생산업체는 값싼 저질 고추를 다대기 원료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고추 사업자는 “중국에서 생산된다고 모두 품질이 나쁘겠느냐”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만 벌면 된다는 의식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10>대륙에 심는 한국 축산산업

최상품 한우·돼지고기로 시장석권 꿈꿔

 ◇중국 쓰촨성 짱족(藏族)자치구의 해발 3000∼4000m 고산지대에서 방목되는 흑소. 짱족자치구 정부는 이들 흑소와 양 900만마리를 가공 수출하기 위해 한국 축산업자들과 협의에 들어갔다. 유미식품의 윤병국 사장은 “흑소는 가공된 상태로 한국과 일본에 수출될 것으로 안다”며 “축산시장을 둘러싸고 한국과 중국 사이에 전에 없던 큰 변화가 일고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강호원 특파원

중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지난해 1000달러선을 넘어섰다. 한국의 10분의 1 수준이다. 그러나 돈 많은 사람 수를 따지면 한국은 중국을 따라잡지 못한다. 중국 부자는 한국 인구보다 많다고 할 정도다. 이 때문인지 중국에서도 소비 패턴에 큰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최근 몇년 사이에 중국에서는 비싼 물건이 더 잘 팔린다. 이런 흐름을 타고 최고급 육류 생산을 앞세운 한국 축산산업이 상륙하고 있다.

 

산둥(山東)성의 빈저우(濱州)시. 이곳에는 성내 최대 규모의 소고기 집산지가 만들어지고 있다. 베이징(北京) 톈진(天津) 칭다오(靑島) 다롄(大連) 등 보하이(渤海)만 주변의 대도시는 물론 한국과 일본 시장을 겨냥해서다. 이 같은 프로젝트가 추진되는 것은 소비시장이 가깝기도 하지만 고급육 생산의 최적지이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중남부로부터 산둥∼허베이(河北)∼산시(陝西)성을 잇는 지역은 맛있는 고기 생산에 가장 알맞은 기후와 토양을 갖추었다.

그러나 이 같은 움직임은 동아시아의 축산대전을 예고하고 있다.

 

옌타이(煙臺) 유미식품의 윤병국 사장은 “동아시아 축산산업에 큰 변화가 몰아닥칠 것”이라고 말했다. 그 동안 잠잠했던 중국의 축산산업이 조만간 한국과 일본 시장 공략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걸까. 한국 축산산업은 이에 밀릴세라 이미 중국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국내 축산 사업자들은 최근 베이징과 산둥성을 중심으로 하나둘씩 소고기 생산기지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중국에서 벌어지는 고기싸움=베이징 교외의 화이러우(懷柔)와 순이(順義)구 지역에는 베이징중레이(北京中磊)사료유한공사( 중레이)의 축산기지가 있다. 이곳에는 무항생제 바이오사료를 만드는 공장과 이 사료를 먹여 키우는 닭 9만마리, 돼지 3000마리 규모의 축사가 들어서 있다. 중레이가 생산하는 돼지·닭고기와 계란은 최고급으로 인정받으며 힐튼호텔 등 주요 호텔과 궈마오(國貿)·타이핑양(太平洋) 등 주요 백화점에 공급되고 있다.

중레이를 일으킨 사람은 1999년부터 바이오사료 개발에 매달린 이석민 사장이다.

 

그는 ‘라이펙’(Lifech)이라는 이름의 무항생제 활성 미생물 발효 사료로 중국 축산시장을 석권하는 꿈을 꾸고 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의 육류 공급업체로 지정받기 위한 작업에도 들어갔다. 중레이는 이를 위해 최근 친황다오(秦皇島) 시정부와 라이펙을 이용한 돼지 생산도 추진하고 있다.

 

이 사장은 “베이징올림픽 육류 공급업체로 지정받기 위해서는 베이징의 하루 돼지 소비 2만마리의 10%인 2000마리 이상을 공급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라이펙 사료를 먹인 돼지 생산지역을 산둥성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에서 돼지 개척 싸움이 벌어지는 데 반해 산둥성에서는 소고기시장 개척전이 벌어지고 있다.

고급 소고기 시장 파고들기를 시작한 곳은 웨이하이(威海)의 해성농축산과 옌타이의 유미식품이다. 해성농축산은 남원 구례지역의 농축산 자본이 산둥성에 세운 축산기지다. 2001년에 건설된 이 목장에서는 현재 500마리가 비육우로 키워지고 있다.

 

윤민호 사장은 “소 사육 규모를 앞으로 5000마리까지 늘려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규모가 커지는 중국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해서다. 유미식품은 지난해 10월 옌타이 공항 인근에서 소 사육을 시작한 이후 비육우 규모를 늘리고 있다. 칭다오에서도 한국 축산사업자들이 소 사육을 시작했다.

소 키우는 기술 하나로 중국 시장에 뛰어든 이들은 최고 육질로 승부를 걸고 있다. 중국 소는 풀을 먹고 자란다. 그런 만큼 고기 질도 떨어진다. 그러나 해성농축산과 유미식품에서는 최고 육질을 만들어내기 위해 곡물 사료를 먹이며 키토산과 땅콩까지 먹인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산둥성 인근에서는 이들에게서 소고기를 사가려는 사람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생사 갈림길에 선 한국 축산=중국에서 바라보는 한국의 축산산업은 위태롭기만 하다. 산둥성은 중국에서도 농축산물의 최대 수출기지다. 국내 최대 소비시장인 수도권과 산둥성의 거리는 400㎞에도 미치지 못한다. 거리만 따지면 영호남∼수도권 거리와 비슷하다. 소·돼지를 기르는 환경이 국내에 뒤지는 것도 아닌데 국내에 비해 땅값은 10분의 1, 인건비는 6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동질의 고기로 맞붙으면 한국산 고기가 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짜낸 생각이 ‘우수한 한우’를 기반으로 최고 품질의 고기를 만드는 것이다. 이 같은 전략은 지금까지는 성공했다. 그러나 앞으로도 그럴까. 소·돼지·닭고기를 비롯해 중국산 생육이 한국에 그대로 들어온 적이 거의 없다. 구제역과 조류독감 등 온갖 이유를 들어 중국산 생육의 수입을 억제해온 결과다. 그러나 상황은 바뀌고 있다. 중국은 산둥성을 비롯한 일부 지역을 ‘청정지역’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축산물 수출에 팔을 걷고 나서겠다는 뜻이다.

 

윤민호 해성농축산 사장은 “전문가들은 중국이 앞으로 세계 최대의 소고기 수입국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며 “한국 축산업이 살아날 길은 중국 시장으로 눈을 돌려 생존전략을 짜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옌타이=강호원 특파원

hkang@segye.com

 

"한국 축산업 살려면 中 고급육시장 뚫어야"

일반육과 30배이상 가격차

 

중국은 축산에 관한 한 한국에는 두려운 존재다. 워낙 싼 땅값과 인건비를 앞세운 중국은 가격 경쟁에서 한국을 압도한다. 이 때문에 한국 쪽에서는 틈만 있으면 중국의 축산물 유입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그렇다고 좌절할 일만은 아니다. 윤병국 유미식품 사장은 “한국 축산업은 중국 고급육 시장을 뚫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처럼 중국에서도 돈 많은 사람은 고급육을 먹는 데 돈을 아끼지 않는다.

 

중국에서도 고급육과 저급육의 가격 차이는 갈수록 벌어진다. 한국의 경우 햄버거에 쓰이는 하급 소고기 가격은 ㎏당 3000∼4000원. 그러나 최고급 소고기는 10만원을 웃돈다. 30배 정도의 가격차이다. 중국에서는 일반 소고기가 ㎏당 2100원 정도인 데 반해 고급육은 2만8000원선이다. 그러나 베이징과 상하이 등 일부 지역에서는 7만∼8만원짜리 고급육도 쉽게 팔린다. 중국에서 이 같은 현상은 2∼3년 사이에 벌어지고 있다. 최고급 고기 가격은 어디까지 치솟을지 예측하기도 힘들다. 해성농축산의 윤민호 사장은 “이미 중국시장에서는 고급육의 가격 한계가 없어졌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 베이징 인근에 있는 중레이사료의 양돈장. 이곳에서는 항생제에 오염되지 않은 돼지고기를 생산한다.

베이징=강호원 특파원

단기적인 현상이기는 하지만 사료에 쓰이는 곡물 가격은 우리나라가 중국보다 오히려 싸다. 소고기 사료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옥수수의 중국 내 가격은 미국 시카고 곡물시장보다 비싸다. 국내 곡물사료로 쓰이는 옥수수는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만큼 배합사료 가격은 한국이 중국보다 오히려 싼 것으로 전해진다. 윤민호 사장은 “그나마 싼 곡물사료 가격을 앞세워 고급육 시장 뚫기에 나서면 중국과 맞설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11>한국 인테리어 업체

대륙에 몰아치는 '건설 광풍'
'한국의 美'로 텃세 뚫는다

 ◇중국은 부동산 투자 붐을 타고 인테리어산업도 호황을 맞고 있다. 베이징 왕징 지역의 건설현장은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1980년대 말 국내에 일었던 부동산 투자 붐을 연상케 한다. 베이징=강호원 특파원

중국의 거리는 자고 나면 변해 있다. 빠른 경제발전 속에 부동산 개발 붐이 일면서 도시 곳곳에 길이 뚫리고 고층빌딩이 올라간다. 중국 역사상 찾아보기 힘든 변화가 일고 있다. 그러나 높은 진입 장벽이 가로놓인 중국에서 성공한 외국 건설기업은 그리 많지 않다. 이런 가운데에서도 중국 땅을 밟은 한상(韓商)들 사이에는 ‘인테리어제국 건설’의 꿈이 무르익고 있다.

 

몽골의 쿠빌라이가 베이징을 몽골제국의 수도로 만든 지 800여년. 베이징에는 800년만의 대변화가 몰아닥치고 있다. 베이징의 거리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건설 붐이 일고 있다. ‘핑팡(平房)’이라 불리는 낡은 붉은 단층 벽돌집이 헐리고 그 자리에 고층 아파트와 오피스빌딩이 들어서고 있다.

 

이 같은 건설 붐을 빗대어 ‘베이징은 건설 중’이라고 일컫는다. 이런 현상은 비단 베이징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상하이 광저우 톈진 칭다오 등 중국의 주요 도시는 어김없이 부동산·건설 시장이 후끈하게 달아오르고 있다.

 

건설시장이 달아오르면 인테리어 시장도 뜨거워진다. 아파트와 사무실을 분양할 때부터 내부 인테리어는 구입자가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중국시장인 만큼 중국의 인테리어산업도 사상 최대 호황을 맞고 있다. 이 틈을 ‘한국의 미’를 앞세운 인테리어산업이 비집고 들어가고 있다.

 

◆중국에서 벌어지는 인테리어 전쟁=중국의 인테리어산업은 한국의 경우와는 크게 다르다. 경험이 있으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것이 국내 인테리어사업인 데 반해 중국에서는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외국자본의 경우 특히 그렇다. 중국에서는 인테리어사업이 건설업의 일부분으로 분류돼 건설업과 똑같은 까다로운 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상황에 변화가 일고 있다.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때 한 약속에 따라 내년부터 건설시장을 개방하기로 했다. 중국 내 인테리어산업도 새로운 시장경쟁이 시작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중국에서 한국 인테리어산업의 시장경쟁을 주도하는 곳은 천해성장식과 풍진장식 두 곳이다. 이들은 한국의 미를 중국에 심고 있다. 풍진이 국내에 본거지를 둔 데 반해 천해성은 중국에서 탄생한 한국 인테리어 기업이다.

중국 인테리어시장에 가장 먼저 뛰어든 곳은 천해성이다.

 

 1994년 베이징에서 문을 연 천해성은 100% 국내 자본으로 중국 내에 한국인테리어산업을 구축해가고 있다. 한국대사관과 한국의 피자 브랜드인 ‘미스터 피자’ 등 한국과 관련된 주요 인테리어 공사를 도맡아 하고 있다. 최근에는 대규모 주상복합빌딩인 ‘씨티 21’에 대한 공사도 진행하고 있다.

 

풍진은 1997년 베이징 시장에 진출, 시장 확대에 나서고 있다. 풍진은 국내에서도 내로라하는 인테리어업체인 풍진아이디의 중국 현지법인이다. 중국 시안(西安)의 펑예(風葉)신도시아파트와 선양(審陽)의 SR신청 등 대규모 아파트 모델하우스뿐만 아니라 상하이의 나이키 본사 5개 층 공사도 했다.

 

최근에는 소규모 인테리어 사업자의 중국 진출도 늘어나고 있다. 일종의 보따리 인테리어상이다. 소규모 영세자본으로 인테리어시장을 노크하는 이들은 중국 업체나 조선족과 손을 잡고 인테리어의 꿈을 키워가는 사람들이다. 베이징 지역에만 30곳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폭발하는 중국 인테리어시장에 너도 나도 뛰어든 결과다.

 

◆‘10년 건설싸움’과 마지막 살아남은 기업=중국시장에 뿌리내리기 위한 한국 건설업체의 치열한 싸움은 지난 10년 동안 이어졌다. 결과는 그러나 참담했다. 부동산시장 개척의 꿈을 안고 중국에 진출한 건설업체는 대부분 고배를 마시고 사업을 접었다. 기술과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중국 건설시장의 토양이 워낙 척박하기 때문이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마지막 살아남은 곳은 ‘인테리어제국 건설’을 꿈꾸는 한국의 인테리어산업이다.

건설업체로서 중국에 가장 먼저 진출한 곳은 우방이다.

 

우방은 1993년 베이징에 중국과 합작으로 ‘징여우(京友)부동산’이라는 현지법인을 세우고 베이징 야윈춘(亞運村)에 징여우아파트를 건설했다. 그러나 큰돈을 벌지 못한 데다 자금 압박에 시달린 우방은 이 아파트를 끝으로 베이징시장에서 철수했다. 1990년대 후반에는 한라건설과 신화건설, 신성이 베이징 지역에 아파트와 별장 건설에 나섰지만 이들 역시 이 사업을 마지막으로 중국시장에서 물러났다.

 

한국의 건설업체들은 왜 중국시장에서 손을 떼야 했을까. 인테리어업체로 살아남은 천해성장식의 류현(柳鉉) 사장은 “건설과 인테리어를 가릴 것 없이 중국시장의 진입 장벽은 그만큼 높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무늬만 개방’이지 실제 사업을 하는 데에는 넘기 힘든 장벽이 겹겹이 가로놓여 있다는 것이다.

류 사장은 “중국에서 사업을 추진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이런저런 부담 다 치르고 난 후에는 남는 게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국은 내년부터 건설시장을 개방한다. 외국자본이 중국 내에서 75%까지 지분을 보유한 건설업체와 인테리어업체를 세워 활동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이에 따라 중국시장의 문을 두드리는 한국 기업도 늘어날 전망이다. 그러나 과거의 실패가 반복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천해성의 류 사장, 풍진의 임채운 대표 등 중국 내 한국인테리어 기업을 이끄는 이들의 말은 한결같다. “외국자본의 완전한 시장개방은 중국 기업의 몰락을 불러올 수 있는 만큼 진입 장벽은 여전히 높을 것이다

 

건자재시장 '후끈'

부동산 개발 열풍타고 수요급증

외국업체 잇단 진출… 中 대응책 고심

 

중국 건축자재 시장에서 큰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부동산 개발 붐을 타고 세계적인 건자재 유통업체가 중국에 뛰어들면서 중국과 외국의 대형 건자재 유통업체 사이에 시장쟁탈전이 불붙고 있다.

중국은 원래 곳곳에 건자재시장이 들어서 있다. 대형 건자재 할인매장에서 건자재 슈퍼체인, 재래식 시장에 이르기까지 종류도 가지가지다.

 

베이징 시내에서 가장 큰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것은 건자재시장이다. 국내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다. 이처럼 많은 건자재 시장이 들어서 있는 까닭은 중국에서는 새로 지어진 아파트를 살 때부터 내부 인테리어는 개인 몫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분양업체의 임무는 건물만 지어주는 것으로 끝나고 바닥 도배는 물론 문을 다는 일까지 개인이 마무리해야 한다. 중국 건자재시장이 세계 최대 시장으로 부상한 것은 이 때문이다.

다국적 건자재 유통업체들로서는 군침이 도는 시장일 수밖에 없다.

 

최근 외국 건자재 유통업체의 중국시장 진출이 가속화하고 있다. 영국의 B&Q(중국명·百安居), 프랑스의 르로이 머린(樂華梅蘭)에 이어 다국적 건자재 유통업체인 홈 디팟(家得寶)도 중국에 진출했다. 중국이 아직 유통시장을 완전히 열지 않은 만큼 이들은 중국의 파트너와 손을 잡고 중국시장을 파고들고 있다.

 

B&Q는 이미 중국 내에 58개 점포를 연 상태다. 한국인이 많이 모인 베이징의 왕징(望京) 인근에도 B&Q 매장이 들어서 있다. B&Q는 2010년까지 중국 내 점포망을 126개로 확장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중국시장에 발을 들여놓은 르로이 메를린은 5년 내에 1만㎡ 이상의 대형 건자재 슈퍼마켓을 20군데 이상 건설하기로 했다.

홈 디팟은 상하이와 선전에 2개 대형 매장을 내고 중국 전역으로 판매망을 확대할 움직임이다. 홈 디팟은 최근 중국의 토종 건자재 체인인 자스제(家世界)와 합작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한편 중국에 먼저 발을 뻗은 B&Q의 모기업인 킹 피셔 그룹을 사두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움찔한 쪽은 중국이다. 자칫하다가는 외국의 대형 건자재 유통업체에 건자재 시장을 송두리째 빼앗길 소지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80∼90%의 건자재가 대형 연쇄점에서 팔린다. 중국에서는 80∼90%의 건자재가 소규모 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다. 외국의 대형 건자재 자본이 중국에서 세를 넓힐수록 중국 토종 유통업체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12>뿌리내리는 한국농업

세계입맛 사로잡은 '한국 배'로 정면승부

 베이징 퉁저우(通州)구에 있는 세진농장. 이곳에서 생산된 배가 올해 베이징에 풀리면서 한국 배 선풍을 불러일으켰다.

중국은 농업대국이다. 인구가 13억에 이르는 만큼 먹는 것도 많지만 생산하는 것도 많아야 한다. 중국은 이 때문에 쌀 콩 옥수수 생산량에서 선두를 달린다. 농업대국 중국의 기반은 동부의 광활한 평원과 만주 벌판이다. 이곳은 세계적인 곡물 생산지다.

 

 한국 농업도 이곳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국내 농업이 최근 중국에 뛰어들고 있다. 비싼 땅값과 인건비로 만신창이가 되다시피 한 국내 농업의 한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활로를 열기 위해서다.

 

농업투자가 집중되는 곳은 산둥(山東)성과 베이징(北京)을 감싸는 허베이(河北)성이다. 이 지역은 과수재배에 관한 한 천혜의 적지로 알려져 있다. 연간 강수량 700㎜에 일조량이 많고 태풍도 없다. 이 때문에 과일 음료업체인 선키스트를 비롯해 세계적인 음료업체의 중국공장도 이 지역에 들어서 있다.

 

◆중국에 상륙하는 한국의 과수산업=한국 농업 가운데 중국에 가장 먼저 상륙한 것은 배 재배다. 한국의 배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종자 중 하나다. 신고 감천 화산 원앙과 같은 한국 배의 맛은 어느 나라보다 앞선다.

산둥성에서 베이징을 잇는 지역에 한국의 배 농장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산둥성의 칭다오(靑島) 옌타이(煙臺) 웨이하이(威海)에 들어선 한국 배 농장은 28곳에 달한다. 베이징 근교에도 한국 배 농장이 들어섰다. 이들은 2000년을 전후해 중국 땅에 한국 배의 묘목을 심기 시작했다.

 

한국 배 농장 가운데 대표적인 곳은 웨이하이의 해성농장과 베이징의 세진농장이다. 1994년 문을 연 해성농장에서는 1990년대 말부터 배를 심어 지난해 처음으로 배를 생산했다. 세진농장도 1999년 베이징 동쪽 퉁저우(通州)구에 7만5000평 규모의 농장을 연 뒤 4만 그루의 배나무를 재배하고 있다.

 

중국시장에서 한국 배가 선보인 지는 아직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러나 중국인은 한국 배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토종 배보다 3∼4배 비싸지만 돈 많은 중국인은 한국 배를 고른다. 세진농장의 남궁견 사장은 “시장을 어떻게 열어나가느냐가 문제지만 한국 배가 중국시장을 석권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맛에서 중국 배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한국 배의 맛 소문이 나면서 베이징 근교의 일부 중국 농가에서 한국 배 심기 바람이 불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은 한국 배 맛을 내는 데에는 실패했다. 남궁견 사장은 “배는 심기만 하면 맛이 나는 게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중국에 뿌리 내리는 한국의 유기농업=이들 배 농장 외에 베이징 북쪽 창핑(昌平)구에는 유기농법으로 중국시장을 열어가는 천수농장이 있다. 이 농장에서는 포도 딸기 복숭아 등 한국품종의 과일과 상추 배추 오이 등 채소류를 유기농법으로 재배하고 있다. 8000평 규모의 과수원에서는 거봉과 블랙올림피아와 같은 포도도 재배되고 있다.

 

이 농장은 ‘유기농업을 통한 중국시장 제패’의 꿈을 꾸고 있다. 다른 한국 농가도 유기비료를 사용하고 있지만 특히 이곳에서는 무공해 유기농산물 생산에 나서고 있다. 정성렬 천수농장 사장은 “중국 농산물의 안전성을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며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무공해 식품에 대한 관심은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무공해 유기농산물 시장이 크게 커진다는 것이다.

 

베이징시는 최근 천수농장에 토양개발·유기농법 교육에 대한 합작을 제의했다. 한수 배우겠다는 뜻이다. 천수농장은 이에 따라 베이징시가 무공해 농장으로 만들기 위해 지정한 42개 농장에 대한 현장지도를 하고 있다.

◇해성농장 윤민호사장, 천수농장 정성렬 사장(위부터)

 

◆외국인 농업투자 유치에 나선 중국=중국은 농업부문에서도 두 팔을 걷은 채 투자유치에 나서고 있다. ‘돈 있고 능력 있는 사람은 중국에 와 땅을 개발해 보라’는 식이다. 뒤떨어지는 농업기술을 끌어올리고 부족한 식량자원을 확보하자는 계산에서다.

 

중국은 최근 농업투자의 문턱을 더 낮췄다. 얼마 전만 해도 20만달러를 투자해야 100% 외국지분의 외상독자 영농법인을 인정했지만 지금은 10만달러만 투자해도 가능하다. 베이징을 비롯한 주요 지역에서는 2년간 소득세를 면제해주고 이후 3년 동안 소득세의 50%를 깎아주기까지 한다.

 

그러나 중국 농업투자는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다. 땅을 구하는 것부터 까다롭다.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싼 땅을 구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관건이지만 외국인 투자자에게는 최대한 비싼 가격을 받으려고 한다. 천수농장의 정성렬 사장은 “토지 임대료가 투자의 성패를 가르게 된다”며 “싼 토지를 구하는 것 외에도 임대료와 계약기간 등 토지임대계약 내용을 명확히 해두지 않으면 낭패 보기 쉽다”고 말했다.

베이징·웨이하이=강호원 특파원

hkang@segye.com

 

"국내농업 한계…대륙으로 눈 돌릴때

대륙시장 진출한 농업인들 이구동성

한국 농업의 최대 딜레마는 비싼 땅값과 인건비다. 이에 반해 중국 농업은 땅값이 싼 데다 인건비마저 싸다. 국내 농가가 자나깨나 중국 농산물의 유입을 걱정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가격경쟁에서 중국 농산물을 이길 수 없는 만큼 농산물 판매싸움이라도 붙게 되면 국내 농가는 설 땅을 잃게 될 소지도 있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농업인의 눈에도 이런 점 때문에 국내 농업의 장래가 걱정스럽기만 하다.

◇정운용 베이징농업무역관장

국내에서 농협조합장을 지낸 웨이하이 해성농장의 윤민호 사장은 “그렇기 때문에 이제 중국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에 필요로 하는 농산물 공급기지를 중국에 구축해야 한다는 뜻이다. 중국은 국내 농업자본이 진출, 농산물 생산기지로 만들 수 있는 가장 적합한 곳으로 지목되고 있다. 산둥성에서 허베이성을 잇는 지역의 농업환경은 한국과 가장 비슷하다. 윤 사장은 “국내에서 필요로 하는 농산물을 공급할 수 있는 해외기지로 중국 화북지역이 가장 적합하다”며 “국내 농업자본도 이제 해외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말했다.

 

천수농장의 정성렬 사장은 “화학비료를 많이 써 망가진 중국 농촌의 땅을 되살리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며 “3∼4년 후 베이징올림픽을 전후해 중국 농산물도 품질이 크게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초기 단계이기는 하지만 중국에 진출한 한국 농업은 판로개척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 내수시장이나 수출시장을 뚫고자 애쓰지만 중국내 복잡한 유통망으로 인해 최고 품질의 농산물을 생산해 놓고도 팔지 못하는 상황이 빚어지는 사례도 생기고 있다.

 

세진농장의 남궁견 사장은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코트라(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와 같은 기관을 통해 대규모 지원이 이뤄지지만 농업 부문에서는 마땅히 물어볼 곳조차 없다”고 말했다.

농수산물유통공사의 정운용 베이징 농업무역관장은 “투자와 판로에 관한 한 중국에 진출하는 농업인은 외톨이나 다름없다”며 이들을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관장은 “농업투자와 판로를 도와주는 일이 장기적으로 국내농업을 살리는 길”이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상황에서 농수산물유통공사의 기능을 확대해야 한다는 소리도 나온다.

중국이 해외 농업진출의 핵심지역으로 부상하는 만큼 중국내 농수산물유통공사의 기능을 국내 농수산물의 수출뿐 아니라 농업투자와 판로개척을 지원하는 조직으로 탈바꿈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13> 한국 화훼산업 시장장악 눈앞에

'꽃중의 꽃' 심비디움 대륙서 활짝피다

중국 윈난(雲南)성은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식물 자생지다. 이곳에서 자라는 고등식물 종류만 1만6000가지가 넘는다. 해발 0m에서 7000m의 고산지대, 열대에서 만년설 지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후가 윈난을 세계적인 식물박물관으로 만들고 있다. 이 때문에 윈난에는 1년 내내 꽃이 지는 날이 없다. 이 같은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윈난은 아시아 최대 화훼단지로 변하고 있다.

 

한국의 화훼산업도 윈난에서 ‘꽃 대국’의 꿈을 키우고 있다. 한국의 화훼농가가 윈난에 발을 내디딘 것은 1990년대 중반. 10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한국 화훼는 ‘윈난의 큰손’으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에 심비디움 바람을 일으키고, 심비디움 시장을 장악한 것도 한국 화훼다.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외국 농산물 막기에 버거운 국내 농업이 해외로 눈을 돌려 성공한 첫 사례다. 정운용 농수산물유통공사 베이징 무역관장은 “중국에 진출한 산업 중 심비디움 만큼 성공한 것도 드물다”고 말했다.

 

◆중국 땅에 부는 심비디움 열풍=베이징의 꽃가게가 모인 뉘런제(女人街). 음력설인 춘제(春節)를 앞두고 꽃도매상은 심비디움 주문이 폭주해 잠시 휴식을 취할 틈조차 없다. 베이징의 심비디움 도매상은 윈난과 칭다오(靑島)로부터 실려온 심비디움을 집안의 가보인 양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다듬는다. 더 비싼 값을 받기 위해서다.

 

한국으로부터 건너온 심비디움은 춘제를 앞두고 전 중국을 ‘심비디움 열풍’으로 몰아넣다시피 하고 있다.

심비디움(Cymbidium)이란 라틴어로 ‘배’라는 뜻이다. 꽃 모양이 배처럼 생긴 탓에 붙여진 이름이다. 아열대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이 난초는 ‘꽃 중의 꽃’으로 불린다. 아름답기도 하지만 키우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중국에 심비디움 바람이 일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 한국의 심비디움이 중국으로 수출되면서부터다. 부자가 많기로 따지면 한국의 몇 배나 되는지라 최고급 난인 심비디움은 중국에 상륙한 이후 선물용 꽃으로 각광 받고 있다. 춘제를 앞두고 1∼2개월 사이에 중국에서 소비되는 심비디움은 화분 100만개에 달한다. 이들 중 40%가 윈난의 한국 심비디움 재배단지에서 공급된다. 절반은 중국 동부 연안지방을 겨냥해 한국에서 건너오는 것들이다.

 

중국에서 심비디움이 인기를 누리는 이유는 3개월에 걸쳐 피어 있는 이 꽃이 단아하고 화려한 데다 이를 찾는 부자가 많기 때문이다. 심비디움 화분 1개의 소매가격은 300위안(약 4만2000원)을 호가한다. 중국 노동자의 한달 수입이 600∼1000위안이니 일반인은 쉽게 사기 힘든 꽃이다.

 

 

△쿤밍의 심비디움 온실 중국 윈난성 쿤밍에 있는 금호화훼 심비디움 온실. 이곳 한국화훼농장에서 재배되는 심비디움은 지난해 12월 말부터 베이징과 광저우 등지로 대량 공급되기 시작했다(사진 위). 꽃이 막 피기 전의 심비디움. 이 난은 이 상태에서 시장에 팔려나간다.

쿤밍=강호원 특파원

 

◆윈난에서 벌어지는 심비디움 전쟁=윈난에서 심비디움을 재배하는 한국의 화훼농가는 전쟁 중이다. ‘10년 아성’을 쌓아온 한국 심비디움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하고, 한편으로는 커지는 중국시장과 세계시장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도전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윈난성 성도인 쿤밍(昆明)에 모인 한국의 심비디움 농장은 금호(錦湖)화훼와 한국화훼센터가 세운 화중(花中)원예, 창수난원, 소심난원, 금난원 등 7∼8곳에 이른다.

 

금호화훼의 김희석 이사는 “지금은 아시아 최대 화훼시장이 일본이지만 앞으로 중국이 일본을 제치고 아시아 최대 시장으로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화훼자본이 쿤밍에 뿌리내리려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화분에 담은 꽃(분화)과 가지를 잘라 파는 꽃(절화)을 합한 중국 꽃시장 규모는 지금도 1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의 꽃시장은 빠른 경제성장에 따라 급속도로 커질 전망이다.

 

그러나 이 같은 가능성이 중국에 진출, 승부를 겨루는 한국 화훼산업에는 또 하나의 도전으로 받아들여진다. 시장이 큰 만큼 세계적인 화훼기업이 모여들고, 한편에서는 저가공세를 앞세운 중국의 화훼농가가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화중원예의 장희숙 사장은 “한국이 중국 심비디움 시장을 열었는데 문제는 어떻게 살아남느냐가 최대의 관건”이라며 “품질 경쟁에서 이기는 길밖에 없다”고 말했다. 금호화훼의 김 이사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면 중국에 진출한다고 할지라도 결코 이길 수 없다”며 “꽃 산업도 기술전쟁에서 이길 때만이 진정한 승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화훼자본은 쿤밍을 중심으로 대규모 자본을 투입, 개발에 나서고 있다. 쿤밍지역에만 심비디움 재배에 나섰던 중국 화훼농장은 10여곳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이들은 고품질 심비디움 재배에 모두 실패한 것으로 전해진다. 심비디움은 4년을 키워야 꽃을 팔 수 있는 만큼 실패에 따른 위험도 큰 농업이다. 중국의 일부 심비디움 재배농가는 한번의 실패로 영원한 추락을 부르는 ‘심비디움 재배 실패의 덫’에 걸려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국 화훼자본이 손을 대기 시작한 만큼 심비디움에서도 본격적인 싸움은 시작됐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아시아시장을 석권하느냐, 무너지느냐의 싸움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윈난성의 한국 화훼산업을 이끄는 주인공들은 심비디움 시장의 미래를 이렇게 말했다.

베이징·쿤밍=강호원 특파원

hkang@segye.com

 

'호접란'을 반면교사로

 

1990년대 개혁·개방의 문이 활짝 열린 후 중국 땅에서는 1차 난초전쟁이 벌어졌다. 호접란(胡蝶蘭)을 둘러싼 시장 쟁탈전이었다.

호접란이란 꽃이 나비처럼 생긴 난초를 말한다. 자라는 속도가 워낙 빨라 심비디움 성장기간의 절반인 1년 반에서 2년이면 꽃을 내다팔 수 있다. 난초는 성장기간이 짧을수록 투자 위험도 작아진다. 이를 뒤집어보면 호접란은 시장 진입장벽이 그만큼 낮다는 뜻이기도 하다.

 

호접란이 중국시장에 퍼지기 시작한 것은 심비디움이 상륙한 때와 같은 1990년대 중반이다. 한국 화훼산업은 호접란을 중국에 수출하며 호접란 바람을 일으키는 데 한몫 했다. 그러나 이 시장은 얼마 가지 않아 아수라장으로 변하다시피 했다. 대만산 중저가 공세가 밀려들고 중국 화훼농가가 너도나도 재배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일부 국영 농업자본은 ‘호접란이 돈 된다’는 소문을 듣고 대규모 자본을 호접란 재배에 투자하는 일도 잇따랐다.

금호화훼의 김희석 이사는 “1997년까지만 해도 화분 하나에 90위안이었던 호접란이 이제는 20위안선으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중국 안팎에서 밀려든 저가공세가 부른 결과다.

 

중국에 진출한 화훼농가가 걱정하는 것은 이 같은 사태가 반복되는 일이다. 이런 사태가 심비디움으로 확산되면 중국에 진출한 한국 화훼자본은 물론 국내에도 엄청난 타격을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대중 심비디움 수출액은 1000만달러에 달했다. 농수산물유통공사의 정운용 베이징농업무역관 관장은 “중국은 대규모 자금을 바탕으로 심비디움 조직배양실을 갖추는가 하면 일본·네덜란드 업체와 제휴해 기술을 도입하고 있으며 심지어 한국으로부터 기술을 흡수하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고 말했다.

 

농촌진흥청의 강충길 박사는 “중국의 화훼시장은 베이징 올림픽을 전후해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며 “이에 대비해 기술을 앞세운 수출·직접투자 등 전방위 진출에 나서야 할 때”라고 분석했다

 

<14>한국학원들의 전쟁

베이징중심 한국학생 유치戰 치열

 ◇중국 대학이 집중되어 있는 베이징의 우다커우(五道口) 거리.이 곳에는 중국 유학붐이 일면서 한국의 학원이 앞다퉈 생겨나고 있다.

국내기업들의 중국행이 러시를 이루고 있다. 벌써 10년이 넘는다. 국내의 만성적인 고비용 구조에 멍든 나머지 중국에서 살길을 찾아보기 위해서다.중국으로 건너가는 것은 기업만이 아니다. 학생들의 중국행도 이어지고 있다. 중국에 유학 중인 한국 학생은 4만여명에 달한다. 부모를 따라 중국에서 생활하는 학생도 수만명이다.

 

중국에 체류하는 한국 학생이 급증하면서 학원전쟁이 중국에서 불붙고 있다. 자녀교육이라면 돈을 아끼지 않는 한국 부모들은 중국에서도 자식 교육에 돈을 쏟아붓고 있다.

 

국내의 학원자본도 이를 배경으로 중국 진출에 발벗고 나서고 있다. 중국 대학 입시학원에서부터 최고급 어린이 영어유치원, 국내 대학 특례입학을 위한 전문학원, 중국 내 정규교육기관 진출에 이르기까지 학원전쟁은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

 

◆중국에 뛰어드는 학원자본과 어학시장 전쟁=학원전쟁은 베이징을 주무대로 벌어지고 있다. 베이징 거주 한국교민은 6만명선. 유동인구까지 합하면 1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에 거주하는 한국인의 3분의 1이 베이징에 모여 있는 셈이다. 베이징올림픽이 열리는 2008년이면 20만명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베이징 서북쪽의 우다커우(五道口) 거리. 이곳은 베이징(北京)대 칭화(淸華)대 어언문화대학 등 중국의 유명대학들이 모여 있다. 이 지역은 한국 학원사업이 처음 시작된 곳이기도 하지만 학원전쟁이 불붙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2003년 7500명 수준이던 베이징의 한국 유학생은 지난해에는 1만명 안팎으로 늘었다. 베이징 어언문화대학에서 공부하는 한국 유학생만 약 2000명에 이른다. 어느 곳이나 학생이 모이는 곳에는 학원이 들끓게 마련이다.

발빠른 국내 학원사업자와 일부 중국인은 1990년대 중반 이 거리에 중국어 회화와 어학시험(HSK)을 준비하는 학원을 열었다. 지구촌학원과 해연학원, 신교외국어학원이 초창기 외국어를 가르친 대표 주자다.

 

중국의 정식 외국어고등학교를 설립하면서 함께 어학원을 연 신교외국어학원은 왕징(望京), 푸싱먼(復興門)과 옌사(燕莎) 사이터(賽特) 4곳에 어학원을 열었다. 교육사업에 관한 한 가장 넓게 발을 뻗은 학원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우다커우와 한국인 밀집 거주지역인 왕징을 중심으로 중국어와 영어를 가르치는 학원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 이들 지역의 학원은 10여곳에 이른다. 외국어 교육사업이 호황을 누리자 중국 대학들이 관심을 갖고 너도나도 뛰어들고 있다. 베이징의 어언문화대학은 물론 왕징에 있는 경제간부관리학원과 청년정치학원 등은 중국어 교육프로그램을 만들어 한국인 끌어들이기에 한창이다.

 

◆중국 학원전쟁의 새 흐름=최근 중국 내 한국인을 둘러싼 학원전쟁은 어학 이외의 분야로 확산하고 있다. 국내의 내로라 하는 입시전문학원이 중국에 잇따라 발을 내딛고 유명 학습지의 상륙도 시작됐다. 4∼5년 전부터 일기 시작한 조기유학 열풍이 이제 대학입시로 이어지고 중국에 진출하는 국내 기업이 늘어난 결과다.

 

청산학원의 조영래(趙永來) 주임은 “베이징의 학원시장은 어학연수에서 입시 위주로 변하고 있다”며 “갈수록 유학연령이 낮아지면서 이 같은 경향은 더 확산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교육시장이 그만큼 커지고 있다는 뜻이다.

베이징에는 중국의 최고 명문인 베이징대, 칭화대, 런민(人民)대 입학을 목표로 하는 전문입시학원이 생기고 있다. 2001년 문을 연 청산학원과 ECC, 지난해 11월 문을 연 고려학원 등이 모두 중국 대학 입학을 전문으로 하는 학원이다. 청산학원의 경우 국내 유학생은 물론 칭다오, 옌타이, 다롄 등지에서 중국 고등학교에 다니던 한국학생도 모여들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종로학원이 중국에 진출했다. 종로학원은 한국인이 많은 왕징과 가까운 라이광잉(來廣營)에 자리를 잡았다. 베이징 종로학원의 이형일(李炯壹) 대표는 “영어·중국어·한국어 교과과정은 물론 중국대학 진학반도 만들 예정”이라고 말했다. 온·오프라인 인터넷교육업체인 메가스터디도 조만간 중국시장에 진출할 것으로 알려졌다.

 

학습지 시장도 본격적으로 개막되고 있다. 대교의 눈높이가 지난해 왕징에서 사업을 시작한 데 이어 한솔교육도 중국에 발을 내디뎠다.

갈수록 늘어나는 기업 주재원 자녀를 목표로 해서다. 중국의 교육환경이 열악한 데다 반독점적인 성격마저 띠면서 이들 학습지 가격은 국내보다 오히려 비싸다.

중국의 명문대학은 한국의 명문대학보다 세계적으로 더 알아준다. 베이징대와 칭화대, 상하이 푸단대는 세계 100대 명문대에 든다.

한국의 교육경쟁력이 떨어지면서 중국으로 건너가는 한국 유학생은 앞으로 더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또 한국 학원자본의 ‘중국 내 학원전쟁’도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최초의 한·중 합작 고등학교인 베이징신교외국어학교.(사진왼쪽)베이징 우다커우 거리의 지구촌학원.

베이징=강호원 특파원

hkang@segye.com

 

<中시장 진출 문제점은>

소자본으로 실패 가은성 커…한국식 어학교육 안통해

-이교준 신교외국어학교이사장

중국에 크고 작은 한국계 학원이 곳곳에 생기면서 살아남기 싸움도 치열해지고 있다. 적은 자본으로 중국시장에 진출한 학원일수록 특히 그렇다.

중국의 교육시장은 현재 완전히 개방되지 않은 상태다. 베이징의 경우 200만위안(약 2억8000만원) 이상 투자한 경우에 한해 교장을 중국인으로 선임하는 것을 조건으로 합자교육법인을 허용하고 있다. 투자금액이 이보다 적을 때에는 중국인이 대표로 나서는 경우가 있다.

중국인이 대표인 만큼 소유권 분쟁에서부터 잡음이 뒤따를 소지가 있다.

10년 전 한중합작 형식으로 정식고등학교인 베이징신교외국어학교의 문을 연 이교준 이사장은 “중국 내의 학원 사업은 적은 자본으로 진출하는 데 가장 큰 문제가 있다”며 “투자금이 너무 적을 때는 잘돼도 법적인 문제가 발생하고, 안 되면 어려움이 계속되는 상황이 벌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투명해도 성공할까 말까 한 중국시장에서 적은 자본으로 이루어지는 편법 투자야말로 실패의 지름길”이라고 지적했다.

이 이사장은 “특히 어학교육의 경우 언어구조상 한국과 중국의 교육방법이 전혀 다르다”며 “한국의 교육프로그램을 그대로 중국에 들여오면 십중팔구 실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15>'오지중 오지' 위구르의 韓商들

고구려의 후예들 굴착기 앞세워 서역 정벌

중국 신장(新疆) 위구르자치구의 투루판(吐魯番)과 우루무치(烏魯木齊)를 넘어서면 ‘서역’이 시작된다. 이곳은 풀 한 포기 제대로 살아 남기 힘든 불모의 땅이다. 그러나 수천년 시간의 벽을 넘어 이곳을 지나는 실크로드(비단길)는 여전히 살아 숨쉰다. 대상들이 수송수단으로 앞세웠던 낙타는 기차와 트럭으로 바뀌어 동서를 잇고 있다.

 

신장 위구르자치구의 우루무치에도 중국시장 개척을 꿈꾸는 한상(韓商)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패망한 고구려의 유민 고선지(高仙芝) 장군이 당나라 장수로 서역정벌에 나선 후 약 1200여년 만이다.

베이징으로부터 3300㎞ 떨어진 이곳은 베이징보다는 유럽이 오히려 가깝다. 톈산(天山)산맥과 타클라마칸 사막을 끼고 있어 중국에서도 오지 중의 오지로 취급받는 곳이다. 타클라마칸이란 위구르어로 ‘죽음의 바다’라는 뜻이다.

 

이곳에 한상이 발을 내딛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후반이다. (주)한화가 우루무치에 무기화학소재인 무수망초 공장을 세운 것이 처음이었다. 워낙 오지인 까닭에 지금도 이곳에서 활약하는 한상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그러나 이들 한상은 새로운 실크로드의 역사를 열고 있다. 우루무치에서 성공 신화를 만들어내는 주인공은 안문배(安文培) 대우종합기계 이사, 나동연(羅棟然) 한승무역 사장, 고광욱(高光郁) 한화염호 법인장 등이다.

 

안문배 이사는 대우종합기계가 신장병단 산하 기업과 합작해 1998년 설립한 신장대우기계 유한공사의 법인장으로 4년 만에 신장에서 대우 굴착기로 신화를 만들어 낸 인물이다. 신장 지역 굴착기 판매에서 대우는 지난해 일본의 히타치와 고마쓰를 제치고 미국의 캐터필러에 이어 2위에 올랐다. 우루무치의 건설 현장에는 ‘대우’ 마크를 단 굴착기가 곳곳에 널려 있다. 무역협회의 권도하 부장은 “한국에서 무너진 대우가 중국에서 중장비 판매 신화를 만들어 내는 것은 오지시장 개척에서 혁명에 가까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안문배 대우종합기계 이사, 고광욱 한화염호 법인장, 나동연 한승무역 사장(왼쪽부터)

안 이사는 “대규모 자본을 앞세운 미·일 기업에 비하면 대우가 무슨 여력이 있겠느냐”며 “경쟁사가 한 시간을 뛸 경우 우리가 서너 시간 뛰면 고객이 오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우 굴착기가 고장 나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즉각 출동한다”며 “자본력을 앞세운 세계적인 기업과 경쟁해 이기는 길은 이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전략으로 한대 한대 늘어난 우루무치의 대우굴착기는 600대에 이른다.

 

올해 33세의 나동연 한승무역 사장은 불모의 시장을 개척한 젊은이다. 1999년 신장자치구 인접지역인 카자흐스탄에서 유학한 그는 2001년 7월 단돈 200만원을 들고 우루무치로 들어왔다. 그는 모진 시련을 겪은 끝에 1년 만인 2002년 1000대의 린나이 보일러를 팔며 신장자치구 최대의 보일러 판매상으로 떠올랐다.

 

최근 천연가스가 공급되기 시작한 우루무치는 겨울에는 섭씨 영하 30도까지 떨어지는 곳이다. 보일러가 없어서는 안 되는 곳이기에 사업 전망이 밝지만 시장경쟁도 그만큼 치열하다. 우루무치에 진출한 보일러 대리점은 한국 일본 유럽계를 포함해 30여 군데에 달한다. 이들 대리점은 대부분 중국인이 경영한다.

 

 

◇판매를 기다리는 신장대우기계의 굴착기들. 합작회사 설립 4년만에 신장 굴착기 시장을 거의 장악했다.

“중국인에 비해 관계가 낫겠습니까, 돈이 많습니까. 내세울 게 아무 것도 없지만 문을 열심히 두드리니 열렸습니다.”

이들과는 달리 우루무치 동쪽 80여㎞ 떨어진 곳에는 소금에서 돈을 캐는 작업이 벌어지고 있다.

 

한화가 중국의 염호화공창과 합작으로 만든 한화염호의 무수망초 공장. 허허벌판 한가운데 소금호수(염호) 옆에 한화의 무수망초공장이 들어서 있다. 소금이 덩어리째 나오는 이 호수에는 물고기 한 마리 살지 못한다. 무수망초란 합성세제나 유리가공, 염색에 사용되는 무기화학소재다. 한화는 이곳에서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고품질의 무수망초를 생산하고 있다. 고광욱 한화염호 법인장은 “최근 세계 최고 품질의 무수망초를 생산해 내기 시작했다”며 “쓰촨(四川)의 무수망초와 세계시장을 놓고 새로운 경쟁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루무치를 배경으로 한 한화의 무수망초는 쓰촨에서 생산되는 것보다 비싸지만 질에서는 단연 우수하다.

 

‘불모의 땅’ 신장은 한국인에게는 낯선 곳이다. 신장지역에서 활동하는 한국인은 이들 외에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이들 한상은 “신장과 중앙아시아는 앞으로 떠오를 황금시장”이라며 “이 지역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말했다.

 

◇무수망초의 원료인 소금덩어리가 생산되는 우루무치 염호. 섭씨 영하 20도에도 얼지 않는 이 호수에서 나온 소금덩어리를 번호판도 달지 않은 트럭이 운반하고 있다. 멀리 톈산산맥 지맥이 보인다.

우루무치=강호원 특파원

hkang@segye.com

 

최대 무역중계지 '우루무치'

中·중앙亞·한국상인 북적

서쪽의 베이징으로 불려

 

신장(新彊) 위구르자치구의 우루무치(烏魯木齊)는 중앙아시아로 통하는 ‘21세기의 실크로드’의 최대 중계무역지다. 위구르어로 ‘아름다운 목장’이라는 뜻을 지닌 이 도시는 톈산산맥과 타클라마칸 사막의 혹독한 자연환경 속에도 초원으로 뒤덮인 곳이다.

 

이 도시에는 한족 상인과 위구르족 상인은 물론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가의 상인이 모여들고 있다. 이들은 우루무치에 들어선 대규모 시장에서 물건을 사들여 신장과 중앙아시아 각지로 공급하고 있다.

과거 실크로드의 중심도시로 번영한 우루무치는 ‘서역의 국제도시’로 커가고 있다. 우루무치 사람들은 이 때문에 “중국 동부에 베이징이 있다면 서부에는 우루무치가 있다”고 말한다.

 

우루무치의 인구는 약 300만명에 이른다.

우루무치를 거쳐 중앙아시아로 넘어가는 한국산 물건은 40피트 컨테이너로 매월 1500개가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2000년대 들어 우루무치를 거쳐 중앙아시아로 수출되는 한국상품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우루무치 시장에서 한국에게 달갑지 않은 이상기류가 최근 흐르고 있다. 한국산 상품이 중국산에 밀리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중앙아시아로 흘러드는 중국산은 1990년대 중반만 해도 저질·저가 상품으로 낙인찍혔지만 최근에는 상황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 유럽과 일본 설비를 들여온 중국기업이 싼 가격, 빠른 납기, 개선된 품질을 앞세워 중앙아시아 시장 공략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실크로드를 넘어 중앙아시아 시장에서 벌어지는 한중 무역전쟁에 먹구름이 드리워질 조짐이 일고 있는 것이다. 높은 임금과 비싼 물류비용마저 치러야 할 판이니 한국 상품이 중국 상품과의 경쟁에서 이길 것을 기대하기란 애초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우루무치에서 무역중계를 하는 나동연 한승무역 사장은 “우루무치를 찾는 중앙아시아 국가의 상인들 중 한국 물건보다는 중국 물건을 찾는 사람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고 걱정했다.

 

안문배 신장대우기계 법인장은 “특화된 기술을 기반으로 차별화를 추진해야 한다”며 “우루무치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중앙아시아 시장경쟁에서 이기는 유일한 길은 기술개발을 통해 가격 경쟁력의 열세를 만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16>小상품 파는 韓商들

장신구…가방…양말…대륙시장서 '승부수'

 ◇중국 내 소상품이 모여드는 전시장인 이우의 푸톈시장. 이곳에는 2만7000여 도매점포가 몰려 있다.

중국산 소상품이 세계를 휩쓸고 있다. 귀걸이 목걸이 같은 장신구에서 라이터 수저 가방 허리띠 그릇에 이르기까지 세계 어느 곳이나 중국산이 파고들지 않은 곳이 없다. 세계의 바이어도 중국으로 몰려들고 있다. 그러나 중국 소상품을 대표하는 곳은 의외로 작은 도시 이우(義烏)다. 한상들도 이 곳을 무대로 세계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이우는 저장(浙江)성 항저우(杭州) 남쪽에 자리 잡은 작은 도시다. 항저우에서 고속도로를 1시간 남짓 달리면 이우가 나타난다. 인구는 120만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곳에서 나는 소상품은 세계시장을 석권하기 시작했다.

 

중국 기업은 물론 외국 투자기업들도 너나없이 이곳으로 공장을 옮기고 전시장을 내고 있다.

고임금과 비싼 땅값, 높은 물류비용에 멍든 한상들도 마찬가지다. 소상품을 취급하는 무역상이 밀려든 데 이어 몇 년 전부터는 한국 기업도 하나둘 이곳에 생산기지를 마련하고 있다.

이우 한국상회 회장인 차봉규(車峰圭) 차스무역 사장은 “이우를 보면 중국이 만들어 나가는 세계 경쟁력을 느낄 수 있다”며 “한상도 이곳을 발판으로 세계시장을 뚫기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최대의 소상품 집산지 이우=이우는 10년여 전만 해도 볼품없는 작은 상업도시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덩샤오핑(鄧小平)이 개혁· 개방 정책을 외치던 1990년대 초반부터 이우는 상전벽해의 변화를 겪게 된다. 10여년 만에 중국 최대의 소상품 집산지로 바뀐 것이다.

 

◇최병원 이우대연실업 사장, 김성환 의봉대외무역 사장(왼쪽부터)

이우의 푸톈(福田)시장. 1, 2기로 나뉘는 이곳에는 도매점포 2만7000곳이 들어서 있다. 인근의 중국소상품성(中國小商品城)에도 5000개가 넘는 도매점포가 자리 잡고 있다. 이우의 경쟁력은 이곳에 모여드는 상품이다. 얼마나 많은 종류의 물건이 거래되는지, 이곳 상인들 사이엔 ‘이우에 없는 물건은 중국에 없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중국 상무부에 따르면 이우에는 중국은 물론 주변 국가의 10만개 기업에서 만드는 32만종 상품이 모여 있다. 라이터 가방 가죽공예품 숟가락 젓가락 포크 인형 액세서리 등등 헤아리기조차 힘들다. 값싸고 질 좋은 물건이 많으면 사려는 사람이 모여들기 마련이다.

 

이우를 찾는 외국 상인은 하루 평균 6000명. 상주하는 외국 상인도 3000명이 넘는다.

중국 최대의 상업도시인 상하이와 저장성 상인도 이우로 모여든다. 상하이에서는 새벽 4시면 상하이 상인을 태운 이우행 전세버스가 떠난다. 이들은 이우시장에서 물건을 구입해 중국 각지와 전 세계로 뿌린다.

이 때문에 중국 전역의 소상품 제조업체들은 이우 근처로 생산기지를 옮기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김성환(金聖完) 의봉무역 사장은 “국가경쟁력을 높이자면 이우가 어떻게 경쟁력을 만들어 나가는가를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푸톈시장 내에 들어서 있는 소상품 도매점포들.(오른쪽사진)

 

◆세계시장을 뚫는 이우의 한상들=이우에 한상이 모여들고 있다. 한국 기업으로 이곳에 연락사무소를 둔 곳만도 600개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소상품을 사들이고 재료를 조달하기 위해서다.

그 중에서 주목되는 것은 장신구(액세서리) 산업이다. 한상에 의해 중국에 건설된 장신구 산업의 본거지는 역시 칭다오(靑島)다.

 

그러나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이우가 한상의 새로운 장신구 본거지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이곳에는 국내 3대 장신구 제조업체 중 하나인 대연실업과 동부, 진도, 페이어리(菲歐麗) 장신구 등 한국계 장신구 제조업체 10여개가 들어서 있다.

이우 대연실업의 최병원(崔炳源) 사장은 “2000년대 이후 칭다오에 생산기지를 뒀던 한국의 장신구 산업이 이우로 옮아오고 있다”고 말했다.

 

재료 구입은 물론 판로를 확보하는 데도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칭다오 지역의 상당수 한국계 장신구 제조업체도 이우에 사무소를 열기 시작했다. 최 사장은 “이우는 중국 내에서 가장 큰 장신구 완제품·재료의 유통기지”라며 “이곳을 중심으로 장신구 시장 판도가 뒤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췄던 한국의 장신구 산업이 고비용 구조에 멍든 결과 생산기지를 칭다오로 옮기고, 이번에는 다시 이우 지역으로 이동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재미 한상들이 1000만달러를 투자해 이우의 이둥(義東)공업원 내에 한상투자구를 만들었다. 이곳에는 재미 한상에 의한 소상품 생산기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페이어리 장신구도 이곳에 300만달러를 투자해 영세하지만 기술을 가진 국내의 장신구 제조업체와 손잡고 중국시장 뚫기에 나설 계획이다.

 

이우에는 최근 한국계 양말·화장품·가방 공장도 들어섰다. 남동근 동부장신구 사장은 “이우의 소상품이 세계시장에 진출하기 시작했다”며 “이 시장을 얼마나 잘 이용하느냐에 따라 한국 소상품 산업의 운명을 가를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이우(義烏)=강호원 특파원

hkang@segye.com

 

"한국선 비싼 땅값·임금에 小상품 장사 설 자리없어"

국내 시장 실태

한국은 ‘소상품 황무지’로 변해가고 있다. 장신구에서 모자 가방 스카프 주방용품에 이르기까지 한국 내에서 생산되는 물건은 갈수록 줄어든다. 반면 중국산은 늘어나고 있다.

“바이어도 이제 한국을 찾지 않습니다. 살 물건이 없기 때문이지요.” 20년 이상 소상품을 수출해온 차봉규(車峰圭) 차스무역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차봉규 차스무역 사장

중국에 가면 마음대로 골라 물건을 살 수 있는데, 비싼 비용을 들여가며 한국에서 물건을 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차 사장도 이 때문에 무역 거점을 중국으로 옮겼다. 견디기 힘든 비싼 인건비에 비싼 땅값, 비싼 원·부자재값이 한국 땅에서 소상품 제조산업을 밀어내 ‘버린 자식’처럼 변해 버린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살 길을 찾아 나선 중소기업은 이 때문에 인도네시아 필리핀 말레이시아로 생산거점을 옮긴 데 이어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중국으로 옮겼다. 정부가 고부가치 산업을 내세우지만 고도의 기술을 요구하는 고부가치 산업은 많은 투자가 뒤따를 수밖에 없고, 대기업이나 몇몇 특수한 기업만 지탱해 나갈 수 있는 산업이다. 차 사장은 “많은 중소기업은 우리 정부와 사회의 외면 속에 한국에서 쫓겨난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더 큰 위기는 지금부터 시작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중소기업뿐 아니라 대기업도 투자선을 중국으로 돌리고 있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LG전자·화학, 포스코 등 국내 대기업 치고 중국 투자를 확대하지 않는 곳은 한 곳도 없다. 중국 내 계열사를 총괄하는 중국 본사까지 만들어지고 있다.

 

이들 대기업이 중국으로 건너가면 대기업 하나만 건너가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문제는 심각해진다. 부품을 생산하는 관련 협력업체도 모두 건너가게 된다. 국내에서 전자·자동차 부품을 조달하던 일부 다국적기업은 이 분야의 중국 투자가 늘어나면서 부품 구매선을 아예 중국으로 바꾸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의 부품업체가 중국에서 싼 값에 좋은 품질의 부품을 생산하는 데 굳이 한국에서 부품을 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중국 내 한상들은 중국으로 생산기반을 옮겨버린 소상품처럼 이번에는 그동안 한국경제를 먹여살려온 전자·자동차·철강·화학 산업의 중국 이전이 국내 경제를 ‘황무지’로 만드는 게 아니냐는 걱정을 하고 있다

 

<18>타포린 사업 한국업체

국내서 밀려나 대륙서 '제2 전성기'

 ◇한국의 타포린 제조업체들이 모여들면서 칭다오는 세계적인 타포린 생산기지로 떠오르고 있다. 칭다오 지모시에 있는 성진플라스틱의 타포린 생산공장 전경과 내부모습(아래 사진)

세계를 휩쓰는 중국산 제품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신발 의류 가구에서 TV 냉장고 에어컨 컴퓨터 LCD에 이르기까지 세계시장에는 ‘중국산 열풍’이 불고 있다. ‘싼 물건’의 대명사처럼 불린 중국산은 이제 ‘쓸 만하다’는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이 같은 변화는 기술을 가지고 중국 시장에 뛰어드는 외국 기업들에 의해 가속이 붙고 있다. 이들 외국 기업은 중국을 발판으로 새로운 세계시장 지배를 꿈꾸고 있다. 타포린을 앞세워 이 대열에 뛰어든 한상(韓商)들도 마찬가지다.

 

타포린은 일회용 방수천막 소재로 쓰이는 석유화학 제품이다. 포장마차 천막에서 농업용·산업용 포장지, 야외 깔판, 일회용 장바구니 등 쓰이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용도가 다양하다.

중국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 이곳은 2000년을 전후해 세계적인 타포린 생산기지로 변했다. 국내 타포린 제조업체들이 하나둘 생산기지를 옮겨오면서 나타난 변화다. 얼마 전만 해도 타포린이라면 ‘메이드 인 코리아’가 주류였지만 이제 칭다오산 타포린이 세계시장을 휩쓸고 있다.

 

칭다오 라이(萊)시의 성진플라스틱은 세계 타포린 시장 점유율 1∼2위를 다투는 기업이다. 그러나 이 회사도 1990년대 후반 칭다오로 공장을 옮겼다. 이길선 회장은 “시장만큼 냉혹한 곳도 없다”며 “세계 전쟁에서 살아남자면 가장 경쟁력 있는 곳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중국으로 옮긴 한국 타포린산업=한국이 세계 타포린 시장을 지배한 지 20년. 한국은 타포린산업의 황무지로 변했다. 비싼 땅값에 임금이 높아지고 일할 사람조차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국내 타포린 제조업체의 3분의 2가 중국으로 생산기지를 옮겼다.

 

그 결과 칭다오는 세계적인 타포린 제조기지로 변하고 있다. 이곳을 근거지로 하는 한국계 타포린 제조업체는 23곳에 이른다. 원단 생산과 봉제를 함께하는 곳이 13곳이고 봉제만 하는 곳도 10곳이다. 칭다오뿐만이 아니다. 다롄(大連), 톈진(天津), 쑤저우(蘇州), 선전에도 한국의 타포린 제조업체들이 진출해 있다. 한국 타포린의 중국 진출이 본격화한 것은 10년 전부터다. 그러나 2000년을 전후해 이 같은 현상이 가속되고 있다.

 

칭다오 지모(卽墨)시에서 타포린을 생산하는 민플러스의 김윤해(金潤海) 사장은 “한국 타포린산업의 마지막 도전이 칭다오를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을 기반으로 세계전쟁이 다시 시작되고 있다는 뜻이다.

현재 ‘메이드 인 차이나’의 이름으로 공급되는 타포린은 전 세계 수요량의 50% 정도를 차지한다. ‘메이드인 코리아’는 10% 남짓하다. 그러나 선진국으로 수출하는 중국산 타포린은 대부분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 생산한다. ‘타포린 대국’ 한국의 명성이 중국을 기반으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길선 회장은 “중국을 찾는 세계의 바이어들은 중국에서도 한국 공장만 찾는다”고 말했다. 품질에서 중국을 월등히 앞서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포린산업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국내의 턱없이 높은 땅값과 임금 구조에서 세계경쟁을 꿈꾼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길선 회장은 “비싼 임금도 문제지만 모두가 편한 일자리만 찾아 나서면서 사람을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며 “이로 인해 타포린산업은 외국을 전전해야 하는 ‘부유의 운명’을 맞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 내 타포린 한상들은 세계시장을 지배하는 타포린 제국 건설의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

 

◆중국에서 벌어지는 타포린 싸움=중국에서는 타포린을 둘러싼 또 다른 싸움의 기운이 움트고 있다. 국내에서 경쟁력을 잃어 중국으로 옮긴 여느 산업과 마찬가지로 타포린에서도 중국이 추격에 나설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국의 타포린 제조 기술은 세계적이다. 세계 타포린 시장의 60∼70%가 한국 기업에 의해 움직인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한국이 타포린산업에 뛰어든 것은 1970년대 말이다. 일본으로부터 기계를 들여온 뒤 한국 타포린 업계는 20여년에 걸쳐 독자적인 기술을 꾸준히 발전시켜왔다. 그러나 중국으로 건너온 뒤 상황이 바뀌고 있다. 머지않아 중국으로의 기술 이전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성진플라스틱의 박동하(朴東河) 사장은 “과거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타포린 기술을 넘겨받을 때와 비교하면 현재 중국에는 한국의 기계와 기술자가 모두 건너와 있다는 점이 다르다”고 말했다. 중국 내 한국계 타포린 생산공장에서는 중국 인력이 한국 기술자의 지도를 받으며 기계를 함께 움직이고 있다. 이런 상황은 타포린뿐 아니라 중국에 진출한 대부분의 산업이 마찬가지다. 이 같은 사실은 기술 이전을 가속시키는 한편 중국계 타포린 제조업체의 추격을 예고케 한다.

김윤해 사장은 “중국 기업이 한국의 타포린 기술을 따라오자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갈수록 기술 격차가 좁아질 것”이라며 “그런 만큼 고부가가치의 타포린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길선 회장은 “생산기지가 어느 곳이든 기술전쟁에서 이길 때만이 세계시장이 손아귀에 들어온다”고 말했다.

◇이길선 회장, 김윤해 사장(왼쪽부터)

칭다오=강호원 특파원

 

한국기업끼리 인력 쟁탈전

중국 도시 중 한국 기업이 가장 많이 진출한 곳은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시다. 이곳에는 5800개에 이르는 한국 기업이 생산기지를 구축하고 있다. 어떤 곳보다 많은 한국 기업이 모여 있는 셈이다. 그러나 최근 칭다오 투자전선에 이상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중국 최대의 공업지역인 주장(珠江)삼각주에 부는 인력난이 칭다오에도 몰아닥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간 칭다오에는 인건비가 매년 10% 정도씩 오르고 있다. 한국 기업을 중심으로 대규모 투자가 이어지면서 인력을 싹쓸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2년 이후 칭다오에 진출한 한국 대기업만 해도 LG전자 포항제철 고려강선 등 한두 곳이 아니다. 이들 대기업은 1만명이 넘는 인력을 한꺼번에 고용하기까지 한다. 조금이라도 한국 기업에서 일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우대받기까지 한다.

 

국내 대기업의 칭다오 진출은 산둥성이 칭다오∼옌타이(煙臺)∼웨이하이(威海)를 잇는 자오저우(膠州)반도에 동북아 제조업기지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우면서 칭다오 시정부가 전자 자동차 철강 조선 등 중공업 유치에 발벗고 나선 데 따른 결과다.

그러나 대기업의 진출로 그동안 칭다오를 기반으로 새로운 경쟁력을 도모하고 나섰던 국내 중소기업은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

 

칭다오 지모(卽墨)시 한국상회 관계자는 “얼마 전만 해도 채용 공고를 내면 줄을 섰지만 지금은 비싼 임금을 주고도 사람을 구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에 진출한 지 10년째인 한 의류업체의 김 모 사장은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내륙으로 들어가는 것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을 맞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칭다오의 인건비는 수당을 포함해 월 700∼800위안 수준. 이는 월 200∼300위안 하던 1990년대 중반보다 3배나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국내 대기업이 인력모집에 나서면서 인건비는 더 뛰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따라 노동집약적인 중소기업으로서는 사람 구하기도 힘든 데다 임금마저 더 줘야 하는 상황을 맞고 있다.

칭다오 라이(萊)시에서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박 모 사장은 “국내보다 비싼 전기요금과 각종 보험, 부대경비에 인건비 급등까지 감안하면 칭다오에서는 심각한 비용 상승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19>대륙 옷시장 파고드는 韓商

고급브랜드 앞세워 상류층 패션 공략

국내에 중국산 의류가 넘쳐나고 있다. 국내시장에서 팔리는 의류 10벌 중 6∼7벌은 중국산이다. 국산 섬유·의류산업이 가격 경쟁력을 잃은 후 국내시장이 중국산에 의해 초토화되다시피한 결과다. 국내 섬유·의류 제조업체들이 살길을 찾아 생산기지를 중국으로 옮긴 지도 오래다. 그러나 최근 이같은 흐름에 변화가 일고 있다. 한국산 의류가 거꾸로 중국시장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베이징에서도 물건값 비싸기로 소문난 옌사(燕莎)백화점. 이곳에는 이랜드 울시 인디언 코리아노 등 한국의 의류 브랜드가 진출해 있다. 옌사 못지않은 고급 백화점인 싸이터(賽特)백화점에도 아스트라를 비롯한 10여종의 브랜드가 팔리고 있다.

 

이들 브랜드를 파는 매장에는 중국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매출에서도 중국산과 다른 외국 브랜드 전문매장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한국 의류를 중국으로 들여오는 K&C의 이화영(李和暎) 사장은 “중국 고소득층 사이에 한국 의류 브랜드가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며 “중국 내 한국 의류시장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커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의류·패션이 중국으로 역류해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에 상륙하는 것은 고급 의류 브랜드뿐 아니다. 동대문시장을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중간 가격대 의류도 흘러 들어오고 있다. 한국과 외국으로 수출하기 위해 산둥(山東)성에 진출했던 의류산업도 판로를 중국 내수시장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한상(韓商)들이 중국 의류시장에 뛰어들면서 중국 내 의류·패션시장에 큰 변화가 일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 의류의 중국 진출이 확대되면서 한국 의류·패션 전문 매장이 중국에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베이징 왕징지역에 들어선 자허 한국상품전문매장.베이징=강호원 특파원

 

◆중국 소비시장을 파고드는 한국 의류산업=한국 의류·패션산업이 중국으로 건너간 지는 10년이 넘는다. 땅값과 임금이 뛰면서 의류 제조업체들 사이에는 1990년대 초부터 ‘국내 시장 탈출 러시’가 이어졌다.

그 결과 국내에는 의류 제조업체의 씨가 마른 데 반해 중국에 자리잡은 업체는 수천곳에 이르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산둥성의 칭다오(靑島) 옌타이(煙臺) 웨이하이(威海) 세 곳에만 1500군데의 의류 제조업체가 활동 중이다.

그러나 초토화되다시피 했던 한국 의류산업은 중국의 중·고가 의류시장을 뚫으며 되살아나고 있다. 자본과 브랜드 힘을 앞세운 고급 의류 브랜드에 이어 최근에는 중저가 브랜드도 중국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베이징 서편에 자리잡은 동물원(動物園)시장. 이곳은 베이징 남부의 무시위안과 함께 베이징 의류 도매시장 양대 산맥을 이룬다. 동물원시장에는 중국 의류시장을 여는 한상들이 집중돼 있다.

이 시장 내 상가인 톈하오청(天皓成), 중허(衆合), 진카이리더(金開利德) 세 곳에는 한국 의류 전문매장이 들어서 있다. 이들 매장은 ‘한국성’으로 불린다.

 

1990년대 후반에도 이곳에서 한국 의류가 유통됐지만, 2002∼04년 이들 상가가 문을 열면서 한국 의류·패션의 베이징 시장 진출이 본격화됐다. 이곳에서 활동하는 의류 한상은 60∼70명에 달한다. 이들은 소매를 하기도 하지만 한국산 의류를 대량으로 들여와 아예 소매상에게 넘기기도 한다.

 

여성 상품을 주로 파는 베이징의 여인가(女人街)에도 10여군데의 한국 의류매장이 들어서 있다.

동물원시장과 왕징(望京), 우다커우(五道口) 등지에서 의류 전문매장인 ‘여인천하’를 운영하는 김병이 사장은 “중국 의류시장에는 분명히 큰 변화가 일고 있다”며 “한국 의류 전문 도매상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그만큼 한국 의류가 중국시장을 깊숙이 파고들었다는 것을 뜻한다”고 말했다.

 

칭다오(靑島) 지무(卽墨)시 한국상회 회장인 김병식(金炳植) 중국YB 사장은 “중국의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고급 의류시장이 급속히 커지고 있다”며 “산둥성에 진출한 한국 의류업체들도 중국 내수시장을 겨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중국에 세워지는 한국의 대형 의류·패션상가=베이징에는 한국 의류를 파는 집단상가가 하나둘씩 들어서고 있다. 동물원시장 외에도 지난해에는 한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왕징지역에 자허(家和)백화점이 만들어졌다.

최근에는 베이징 최대 번화가에도 한국 의류·패션 전문상가가 들어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곳은 베이징 시단(西單)의 소고백화점이다.

이곳에 한국 의류·패션 전문상가 건설계획이 추진되고 있다.

베이징 최대 건설업체인 좡성(莊勝)그룹과 한국 측 사업자가

 

 손잡고 ‘동대문 의류시장을 베이징에 옮겨놓겠다’는 기본 구상으로 벌이는 사업이다.

김여화(金麗華) 좡성그룹 고문은 “산둥성에 있는 한국 의류·패션업체만 해도 수천군데”라며 “이들에게는 중국 내수시장을 뚫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조창래 베이직 솔루션 대표이사는 “소고백화점 내에 서울무역관이 들어서면 전시매장 형태로 한국 의류·패션 사업장 60∼100군데를 유치하는 방안과 아예 대규모 의류 전문상가를 만드는 방안을 놓고 최종 결정 단계에 있다”고 밝혔다.

 

베이징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왕푸징(王府井)에도 수천평에 이르는 전문 한국 의류·패션상가인 ‘한국성’ 건설 계획이 추진되고 있다. 이 계획이 진행되는 곳은 신둥안(新東安)시장의 건너편에 있다.

김병이 여인천하 사장은 “중국 경제가 발전하는 한 중국은 한국 의류·패션산업에는 기회의 땅”이라며 “한국 의류·패션산업의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한 싸움이 중국시장에서 시작되고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강호원 특파원

hkang@segye.com

 

"옛날 중국산이 아니야"

중국에서 한국산 의류를 파는 한상들 사이에는 걱정거리 하나가 생겼다. 중국에서 만들어지는 옷의 품질 추격이 갈수록 빨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의류의 품질 경쟁력이 커지면 중국으로 들어가는 한국산 의류 경쟁력은 약화되기 마련이다. 한국의 옷을 파는 한상의 입지도 그만큼 좁아진다.

 

베이징 의류 전문점인 여인천하 김병이 사장은 “중국산과 한국산 의류의 기술 격차는 1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며 “소매 가공기술만 빼면 한국의 기술 수준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K&C의 이화영 사장도 “나이키 샤넬 캘빈클라인을 비롯한 세계 유명 브랜드치고 중국에서 생산되지 않는 게 없다”며 “중국산 의류는 기술 면에서 사실상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한중 의류 생산기술 격차가 줄어들면서 최근에는 아예 중국에서 옷을 만들어 중국 내수시장에 팔거나 국내로 들여오는 한국 브랜드까지 생겼다. 대표적인 브랜드가 지오다노와 코리아노다. 지오다노는 국내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를 끄는 데 반해 코리아노는 중국 내수시장을 파고들고 있다. 이 같은 브랜드가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은 중국의 의류 제조기술이 이미 범상치 않은 수준으로 향상됐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의류를 파는 한상들은 중국에서 모처럼 시작된 ‘한국 의류바람’이 중국의 품질 추격으로 타격을 받지 않을까 걱정한다.

 

칭다오 지무시 한국상회 김병식 회장은 “한국 의류는 질과 디자인, 브랜드 경쟁에서 중국의 추격을 받고 있다”며 “중국의 추격을 뿌리치고 경쟁우위를 어떻게 유지해 나가느냐가 한국 의류산업 운명을 가를 것”이라고 진단했다

 

<20> 광고전쟁 뛰어든 한국업체

"황금 소비시장” 아낌없는 투자

 경제가 급속히 커지면서 중국에는 광고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광고판이 늘어선 베이징 서우두(首都)공항 앞을 베이징현대가 만든 ‘쏘나타’ 택시가 지나가고 있다. 베이징=강호원 특파원

중국 경제는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경제성장률이 연간 9% 안팎에 이른다. 경제가 발전하면 소비도 늘어나게 마련이다. 이 때문에 세계는 중국을 ‘경제대국’으로뿐 아니라 ‘마지막 남은 최대 소비시장’으로 주목하고 있다.

 

돈벌이에 관한 한 뛰어난 후각을 지닌 광고업체도 저마다 중국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세계적인 다국적 광고업체치고 중국에 손발을 뻗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광고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에 뒤질세라 한국의 광고업체도 틈바구니를 비집고 들며 약진을 거듭하고 있다.

편집자주

 

베이징의 서우두(首都) 국제공항에 내리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빌보드 광고판이다. 공항을 나서면 공항 고속도로 변에 초대형 광고판들이 줄지어 있다. 삼성 LG 현대차 등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의 광고판도 다국적기업과 나란히 서 있다.

 

이들 광고판 하나의 연간 사용료는 45만∼50만달러. 각종 물가를 감안하면 다른 나라 대도시에 비해 매우 비싼 편이다. 그러나 세계적인 기업들은 막대한 비용을 마다하지 않고 광고판을 내걸고 있다. 중국 시장이 그만큼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금강기획 베이징지사장인 길호동(吉浩東) 수석국장은 “중국의 내수시장이 커지고, 기업의 시장 쟁탈전이 치열할수록 광고시장 또한 뜨거워진다”며 “중국 시장에 이 같은 현상이 본격화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흐름을 타고 한국의 광고업체들도 2000년대 들어 본격적인 상륙에 나서고 있다.

 

◆중국의 광고전쟁=중국 광고시장은 최근 전례 없는 팽창기에 접어들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 중국 내 각종 매체의 광고비 총액은 1029억위안(약 13조3770억원)에 달했다. 2003년 한 해의 광고비 총액이 1078억위안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중국 광고시장은 폭발하고 있다’고 표현해야 할 정도다.

이 같은 현상은 얼마 전만 해도 중국을 생산기지로만 생각했던 다국적기업이 소비시장으로 바라보면서 공략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지난해 1인당 평균소득은 1090달러에 이르렀다.

 

중국 광고업계에 따르면 중국 소비를 주도하는 중산층은 도시 가정의 13%로 7300만명으로 추정된다. 이들 중 상당수는 벤츠와 BMW를 비롯한 최고급 승용차를 굴리며 명품을 사 쓰는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에서는 비싸야 잘 팔리는 시장 특성이 나타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 때문이다.

 

중국 시장에서 물건을 팔려는 기업이 많으면 많을수록 광고전쟁도 치열해지기 마련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중국에는 내로라하는 세계적인 광고업체들이 모두 뛰어들기 시작했다. 그 결과 미국의 오길비 앤드 마더와 사치 앤드 사치, 그레이, BBDO, TBWA와 일본계인 덴쓰, 하쿠호도 등 대형 광고업체들은 중국에 대규모 투자를 한 채 시장 장악을 위한 사투를 벌이고 있다.

길호동 수석국장은 “이미 중국의 광고시장은 다국적기업에 의해 장악된 상태”라며 “1995년만 해도 상위 5개 광고회사 중 중국 기업이 4개였지만, 99년 이후에는 상위 5개 광고회사는 다국적 광고업체의 중국 내 합자법인이 모두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시장을 파고드는 한국광고산업=국내 광고업체로 중국에 처음 발을 내디딘 곳은 익산이었다. 옥외광고업체인 익산은 1994년 합자법인인 벤시아를 설립해 창안가(長安街) 주변에서 옥외광고를 했다.

이후 199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한국 광고산업을 대표하는 기업이 상륙했다.

 

제일기획이 ‘삼성광고’라는 이름으로 1994년 사무소를 연 것을 시작으로 LG애드는 95년, 금강기획은 96년 지사 또는 사무소를 열며 본격적인 중국 광고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국내 광고업체의 중국 내 광고싸움은 2000년대 들어서부터 본격화하고 있다. 이들 대규모 광고업체들이 전열

 

을 가다듬으면서 크고 작은 국내 광고자본의 중국 상륙이 이때부터 봇물을 이루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대규모 광고업체와 협력체계를 구축하거나 독자적인 광고 활동을 하는 중소 프로모션 업체는 베이징에만 20군데에 이른다. 이벤트·전시업체 중에서는 CNT·라첼·거성(S&I), 옥외광고업체로는 세홍기획·광보당·연훈기획 등이 대표적인 중소 광고자본이다. 길호동 수석국장은 “한국 광고산업은 2000년대 들어 중국 내수 마케팅을 본격 전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중국에 진출하는 한국 기업으로서는 없어서는 안 될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CNT의 김종세(金鍾世) 사장은 “중국 내수시장을 타깃으로 하는 기업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들 광고업체를 중국 진출의 파트너로 삼게 된다”고 말했다. 어떤 식으로든 팔고자 하는 상품을 알려야 하기 때문이다.

◇길호동 금강기획 수석국장(베이징지사)(왼쪽), 김종세 CNT사장

 

중국 4대 자동차 메이커로 부상한 현대자동차의 현지법인인 ‘베이징현대’의 성공신화에도 이들 국내 광고업체가 뒷받침하고 있다. ‘한국 차는 값싼 차’라는 중국인의 생각을 불식시키려고 생각해낸 것이 베이징현대에서 생산하는 쏘나타를 무제한 속도로 달릴 수 있는 독일의 아우토반에 올리는 기획이었다.

 

금강기획의 주도로 CNT와 중국의 이벤트·홍보·인터넷 프로모션업체가 손잡고 중국 자동차 전문기자들이 참가하는 쏘나타 아우토반 시승식을 가졌다. 베이징 현대공장에서 생산된 쏘나타 10여대도 독일로 보내졌다. 얼마 뒤 중국 언론매체에는 ‘시속 300㎞에 도전하는 쏘나타’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이후 중국 신문에는 현대차의 기사가 하루가 멀다하고 실리고 있다. 중국 시장에 뛰어든 국내의 크고 작은 광고업체들이 길을 열어놓은 결과다.

베이징=강호원 특파원

hkang@segye.com

 

中시장 뚫기 전략

소비심리 각양각색 뚜렷한 타깃있어야

 

중국을 상대로 돈벌이에 나서는 사람이 갈수록 늘고 있다. 몇년 전 만 해도 한국 교민은 10만명 정도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20만명 선을 넘어선다. 이들 중 상당수는 사업이나 거래를 하며 중국을 오가는 사람들이다.

 

특히 최근에는 중국 소비시장이 커지면서 한국 상품을 파는 사람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중국 시장의 벽이 만만치 않아 이들 중 상당수는 고배를 마시기 일쑤다. 중국에 뛰어든 사업가들 사이에서는 ‘중국에서 뿌리내리자면 수업료를 치러야 한다’ 는 소리가 당연시될 정도다.

◇삼성광고 윤홍철 사장

 

다양한 업종의 다양한 사람들과 접하는 광고업계에 종사하는 한상(韓商)들은 이에 대해 “중국에서는 철저한 준비를 하지 않으면 꼭 낭패 본다”고 말한다. 중국 시장은 결코 호락호락한 시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중국에서 광고사업을 한 지 10년이 넘는 삼성광고의 윤홍철(尹鴻哲) 사장. 그는 “중국만큼 넓고 다양한 지역과 다양한 인구, 다양한 소비심리가 공존하는 곳도 드물다”며 “중국에서 사업을 하려면 무엇을 타깃으로 할 것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느 지역 어떤 계층을 겨냥할 것인가 하는 전략이 서지 않으면 고배를 마실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그는 “중국에서 팔 수 있는 좋은 상품을 마련하는 일보다 중요한 것이 없겠지만, 무턱대고 내수를 겨냥하겠다는 전략을 갖고 중국 시장에 접근하는 것만큼 위험천만한 일도 없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현상은 유통과 광고에서도 마찬가지다. 중국 전역을 대상으로 유통망을 구축하고 광고를 하는 것은 웬만한 자금력을 지닌 기업은 엄두조차 내기 힘들다. 산둥(山東)성 인구만 남·북한 인구를 합한 것보다 많은 1억명에 육박한다. 인구를 기준으로 하면 산둥성 한 곳의 유통망을 제대로 구축하는 데에도 국내보다 훨씬 많은 비용을 들여야 한다.

 

윤 사장은 “유통망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중국에서는 일반 중소·중견 기업이 전역에 걸쳐 장사를 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라며, “얼마나 정확한 시장 목표를 설정하고 제품 개발과 유통·판촉 전략을 잘 짜느냐가 중국 사업의 성패를 가름한다”고 말했다

 

<21>부동산시장 뛰어든 韓人들

집세 아끼고 차익 남기고… 투자 봇물

 베이징의 마천루 베이징 왕징지역의 아파트. 이 주변지역에는 약 2만명의 한국인이 거주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매년 폭발적인 경제성장을 거듭하는 중국에 부동산 투자 열풍이 일고 있다. 주요 도시의 집값이 뛰면서 중국인은 너나없이 은행대출을 받아 집 사기에 나서고 있다. 자고나면 뛰는 집값에 재미를 붙인 때문인지 ‘중국의 유대인’으로 소문난 원저우(溫州) 상인은 2조∼3조위안(260조∼390조원)의 자금을 동원해 상하이 부동산시장에 불을 질러놓은 것으로 전해진다. 돈이란 수익이 높은 곳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중국의 부동산 가격이 뛰면서 국내 자금도 중국시장으로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다.

 

베이징은 중국에서도 한인이 가장 많이 사는 곳이다. 2000년대 들어 급속히 늘어난 베이징의 한인은 지난해 말 이미 6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가운데 베이징에 집을 사는 사람이 늘고 있다. 베이징이 집세 비싸기로 소문난 곳인 만큼 아예 집을 구입해 집세도 아끼고 부동산 가격 상승에 따른 차익도 남겨보자는 뜻에서다.

 

중국의 정치권력과 기업의 본부가 집중된 베이징의 부동산이 달아오른 지는 이미 오래다. 아파트 가격은 최근 2∼3년 동안 매년 10% 안팎의 상승률을 보이고 있다. 지난 1분기에도 6.6%나 뛰었다. 은행예금보다 배 이상의 수익률을 남길 수 있으니 돈 있는 사람이라면 너도나도 집 사기에 나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장삿속 밝은 돈 많은 중국인들이 이 같은 상황을 지나칠 리 없다. 베이징 부동산업계에서는 “집을 10채 이상 가진 사람도 수두룩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인이 베이징에서 집을 사기 시작한 것은 외국인에 대한 부동산 매입 규제가 풀린 지난해부터다. 중국 내 부동산시장이 관심 대상으로 떠오르면서 건설·부동산 업자의 중국 진출도 꿈틀거리고 있다.

 

 

◆뜨거운 중국 부동산시장=베이징 상하이 칭다오 등 주요도시의 부동산 투자 열기는 뜨겁기만 하다. 이들 도시는 한인이 많이 거주하는 곳이기도 해 각각 5만명 이상이 살고 있다. 한인이 많은 베이징의 왕징(望京)에서 분양되는 아파트 가격은 지난해만 해도 ㎡당 5000위안(약 150만원)대에 불과했지만 최근에는 6000∼7000위안을 넘어서고 있다.

상하이도 마찬가지다. 몇 년 전만 해도 5000위안 선에 분양되던 아파트는 1만위안 대로 치솟은 지 오래다. 서해 해변을 끼고 자리 잡은 칭다오의 아파트와 별장식 고급빌라도 ㎡당 1만2000위안을 호가한다.

 

이 같은 부동산 가격상승은 중국의 경제발전과 무관치 않다. 연간 9%대의 고속 경제성장 속에 중국인의 소득이 늘어나고 한편으로는 주택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중국 부동산가격이 급등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중국 정부도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고 싶기는 마찬가지다.

 

오죽했으면 원자바오(溫家寶) 국무원 총리가 지난 3월 베이징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부동산 가격을 제대로 잡지 못한 상하이시 정부를 경고하기까지 했겠는가. 그러나 주택시장에 관한 한 중국도 자본주의 사회와 별 차이가 없는 만큼 아파트를 중심으로 부동산시장이 요동을 치고 있다.

베이징 왕징에 있는 우리부동산 조명덕(曹明德) 사장은 “중국의 부동산가격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뛸 가능성이 있다”며 “올해에만 ㎡당 1000위안 정도는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 부동산을 사는 한인들=중국에서는 지난해부터 외국인도 장기 거주자이기만 하면 주택을 살 수 있는 길이 트였다. 이전까지 만해도 외국인 이름으로 등기하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았다. 중국 내 한인 사이에도 이때부터 부동산을 사들이는 사람이 늘어났다.

 

이 같은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중국의 주택 임대료가 국내 못지않게 비싼 데 집값은 상대적으로 싸기 때문. 주택담보 장기대출을 받으면 집값의 30∼40%만 있어도 집을 살 수 있다는 점도 주택 구입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조명덕 사장은 “이곳에 거주하는 주민 중 80% 이상이 한인”이라며 “베이징에서 개인사업을 하는 한인을 중심으로 일부 한인이 이 아파트를 산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화딩스자 단지의 임대료는 50평짜리의 경우 월 1만5000위안(약 200만원)에 달한다.

 

중국 내 유일한 한국 부동산 분양업체인 건양의 서길수(徐吉洙) 사장은 “그러나 상하이의 일부 부동산투자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한인의 아파트 구입은 실수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강호원 특파원

hkang@segye.com

 

부동산 중개업 활황

 

한국 부동산중개업의 중국 상륙이 이어지고 있다. 경기 불황이 몰아닥친 국내 부동산 중개업소가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아예 근거지를 중국으로 옮겨 사업에 뛰어드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이 인 것은 중국 내 한인이 급격히 늘어난 2000년대 들어서다.

 

중국 부동산중개시장에 뛰어든 한인은 현재 베이징에만 20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이 주로 활동하는 곳은 역시 한인이 많이 모여 사는 지역이다. 베이징에서는 왕징(望京)과 우다커우(五道口)가 대표적인 지역이다.

 

이들이 중국으로 건너온 이유는 잘만 하면 국내 못지않은 짭짤한 수입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 사이에 집을 매매하는 일이 드문 중국에서는 부동산중개업자의 수입은 대부분 임대 소개료다.

임대 소개 수수료는 일반적으로 월세의 한 달치. 일반적으로 한인 밀집지역의 임대료가 일반 중국인의 주거지역보다 비싼 데다 한인은 집을 옮기는 경우도 잦은 만큼 이들의 수수료 수입은 다른 중국인 거주지역 부동산중개업소보다 많다.

베이징=강호원 특파원

 

 

환금성은 어느 정도

중국에서 부동산을 사도 괜찮은 걸까. 부동산 투자가 불붙고는 있지만 이를 둘러싼 의견은 분분하다. 부동산 투자의 중심인 아파트의 경우 건설업체가 분양하는 새 아파트는 팔려도 개인이 구입한 아파트를 되파는 것은 여간 힘들지 않기 때문이다.

부동산 전문분양업체인 건양의 서길수(徐吉洙) 사장은 “상하이를 제외한 지역에서는 아직 2차 부동산 매매시장이 제대로 형성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서길수 사장

 

그는 “이로 인해 중국 부동산시장은 국내 시장에 비해 환금성이 떨어진다”고 덧붙였다.

2차 매매시장이란 부동산중개업소를 통해 개인 간에 아파트를 사고파는 시장을 말한다. 베이징에는 부동산 투자 붐을 타고 부동산중개업소가 곳곳에 들어서 있지만, 개인 간 주택매매는 가뭄에 콩 나듯 이뤄진다.

 

이 같은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새로 공급되는 아파트의 물량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건설 붐이 일면서 대도시 곳곳에는 아파트가 들어서고 돈만 주면 새 아파트를 얼마든지 구입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낡은 아파트를 살 이유도 없거니와 내부 인테리어를 스스로 해야 하는 까닭에 낡은 아파트를 사면 기존의 내부 장식을 뜯어내는 수고를 더 해야 한다.

게다가 등기부 등본 열람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위조 부동산등기증까지 나돌아 자칫 사기당하기 십상인 까닭에 낡은 아파트라면 아예 거들떠보지 않는 경향이 있다.

 

서길수 사장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이 가까워지면서 중국 부동산시장에도 큰 변화가 일 것”이라며 “그때쯤에는 상하이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도 2차 부동산 매매시장이 활성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22>애완견시장 파고드는 韓商

부유층 개사육 붐… 황금시장 부상

 베이징 한국 애견상점 베이징 아이스다 애완견시장 내에 있는 한국 가게에 중국 중개상들이 개를 고르기 위해 상태를 살피고 있다. 베이징=강호원 특파원

중국에 애완견 붐이 일고 있다.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부자들이 사는 고급 아파트에는 개들로 가득하다. 한 집 건너 한 집이 개를 키우고 있을 정도다. 중국 황실에서 키우던 ‘시추’에서 ‘달마티안’에 이르기까지 품종도 가지각색이다. 중국의 부자 동네가 ‘애완견 천국’으로 변한 건 몇 년 전부터다. 이 틈을 타 국내 애완견 산업도 중국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베이징시는 지난해 초 다른 나라 어느 도시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개 사육관리규정’이라는 별난 규정 하나를 만들었다. 이 규정은 베이징에서는 허가받은 않은 개를 키울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키가 35㎝ 이하로 사육허가를 받고 관리비용을 낸 개만 키울 수 있도록 하는 한편 몸집이 큰 41종은 아예 사육을 금지했다. 이 규정이 나오게 된 것은 베이징에 개가 넘치기 때문이다.

2008년 베이징 하계올림픽을 3년 남겨두고 거리가 ‘개 천지’로 뒤바뀔 판이니 보다 못한 베이징시가 애완견 사육 제한에 나선 것이다.

 

중국의 애완견 시장은 그만큼 큰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거리에 고급 승용차가 흔히 굴러다니는 것만큼이나 고급 주택가에는 수백만∼수천만원짜리 개가 공원과 주택가를 누비고 다닌다.

이 같은 현상은 개혁·개방 이후 고도 경제성장 속에 중국에도 부자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베이징에서 믿음애견(信譽犬業)을 경영하는 차병일(車秉一) 사장은 “중국에서는 개가 부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진다”며 “중국 애완견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다”고 말했다. 애완견을 앞세운 한상도 몇 년 전부터 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경제난으로 개값이 헐값이 돼버린 국내 애완견 산업의 불황을 딛고 새로운 시장을 열어나가기 위해서다. 그 결과 얼마 전만 해도 중국에서 한국으로 흘러들던 애완견이 거꾸로 중국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

 

◆중국 달구는 한국 애완견 산업=국내 애완견 산업이 중국에 진출하기 시작한 것은 6∼7년 전이다. 중국으로 건너간 국내 애완견 한상은 중국 동북지방인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과 안산(鞍山)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이 1990년대에 한국인이 많이 진출한 곳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중국에서도 유명한 개 시장이 형성된 곳이기 때문이다.

2000년대에는 베이징에도 애완견을 다루는 한상이 파고들고 있다. 베이징 화궁로(化工路). 이곳에 애완견 시장인 ‘아이스다(愛斯達) 명견시장’이 들어선 뒤 애완견 한상도 모여들고 있다. 아이스다 시장 내에만 애견상점 6군데가 한상이 직·간접으로 관여하고 있다. 베이징과 선양, 안산에서 애완견을 사고파는 한상이 하나둘 씩 늘어난 결과 지금은 50여명에 이른다.

 

주목되는 점은 최근 이들에 의해 국내 애완견이 중국으로 보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내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애완견 시장이 초토화되다시피 하면서 얼마전만 해도 중국에서 국내로 흘러들던 애완견의 흐름이 180도 뒤바뀌고 있다.

수백만∼수천만원을 호가하던 명견이 고기값도 받지 못할 정도로 폭락했으니 중국에라도 내다 팔아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얼마전만 해도 1000곳이 넘던 경기도의 애완견 가게 중 80%이상이 문을 닫았다는 사실이 국내의 애완견 시장 상황을 잘 말해준다.

 

차병일 사장은 “그래도 중국시장이라는 출구가 있는 게 국내 애완견 산업으로서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는 “엄청난 외화를 들여 사왔던 외국의 우수 품종들이 이제 중국으로 넘어가고 있다”며 “국내 애완견 산업은 이로 인해 10년 이상 후퇴하는 상황을 맞고 있다”고 덧붙였다.

중국으로 가는 한국의 애완견도 가지가지다. 푸들에서 슈나우저, 차우차우, 사모예드, 허스키 등 개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갖고 싶어 하는 명견이 대부분 포함돼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중국으로 넘어가는 애완견은 한 해에 수천마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날로 커지는 중국 애완견 시장=중국에는 개가 얼마나 많을까.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중국 애완견 시장에서는 최소 2억마리 정도는 될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인구가 13억명이니 6.5명당 한 마리의 개를 기르고 있다는 얘기다.

집집마다 개를 기르는 중국의 시골은 말할 나위없이 주요 도시에서도 한 집 건너 한 집이 개를 키운다. 중국인이 개를 좋아하는 만큼 이름난 중국의 고유 견종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차우차우와 퍼그, 시추 등이 모두 세계애견협회에 등록된 중국 종이다.

 

개에 대한 이 같은 열정이 경제 발전과 맞물리면서 중국에는 애완견 산업이 폭발적으로 팽창하고 있다. 베이징에는 애견이 20만∼30만 마리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중 3분의 1은 최근 2∼3년 사이에 불어난 숫자다.

어느 사회에서나 잘살게 되면 애완견에 대한 관심도 커지지만, 특히 중국에서는 애완견을 부의 상징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어서인지 애완견 산업의 발전 속도는 어느 나라보다 빠르다. 애완견 한상들 사이에서는 지금과 같은 속도라면 앞으로 10년 내에 세계의 명견은 중국 도시에 넘쳐나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올 정도다.

 

이 때문인지 중국에는 애완견 중개상들이 전국을 누비고 다닌다. 남부의 광저우와 선전에서 상하이 베이징 선양 하얼빈에 이르기까지 중국을 누비고 다니는 애완견 중개상은 1만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은 종자견을 구해 개농장에 넘기고, 농가에서는 새끼를 얻어 주요 도시에 비싼 가격에 내다 팔고 있다.

중국이 애완견 수입을 허용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태국과 베트남에서 남부 윈난(雲南)성으로 애완견이 들어오지만 이들 애완견은 대부분 몰래 반입된다.

 

애완견 중개상들이 한상을 찾는 이유도 정식 수입 루트를 통해 들어오는 한국의 애완견이 품질에서 다른 지역의 애완견을 압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애완견 산업은 한상에 의해 달아오르고 있다.

베이징=강호원 특파원

hkang@segye.com

 

걸음 느린 中 차우차우

'만만디' 중국인 빼닮아

■ 개와 국민성

 

애완견 산업이 폭발적으로 확대되는 중국 베이징에는 세계 각국이 자랑하는 개들이 모두 모여 있다. 낯선 땅에 오면 성격도 변하기 마련이건만 중국 땅을 밟은 개들의 성격은 그대로다. 특히 명견으로 소문난 개는 각각 원산지 나라의 국민성과 비슷한 성격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흥미를 끈다.

 

베이징의 명견 시장인 아이스다 내 큰손인 차병일 믿음애견 사장은 “개들이 어쩌면 그렇게도 자기 나라 국민성을 빼닮았는지 신기하기만 하다”며 “그 나라의 특성이 개를 통해 나타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차병일 사장

 

중국이 원산지인 ‘차우차우’. 춘추전국시대 연나라 왕이 500마리에게 독을 먹여 전쟁터에 내보내 적을 물게 했다는 야사가 전해오는 차우차우는 걸음이 느리기로 소문나 있다. 사자처럼 생겼지만 별로 짓지도 않는다. 너무 느려 ‘만만디’라 불리는 중국인을 그대로 빼닮은 듯하다. 티베트가 원산지인 ‘시추’도 차우차우와 성격이 비슷하다.

 

일본이 원산지인 ‘이키다’는 암수가 같은 방에 있어도 절대 살을 맞대고 자는 법이 없다. 서로 다른 방향을 보며 자고, 주인을 봐도 꼬리를 흔들지 않는다. 일본의 국민견인 ‘시바’는 성격이 사납기로 소문나 있는데 주인을 봐도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린다.

 

독일 개인 ‘로트바일러’는 다혈질로 일단 물고 보는 성격이 강인한 게르만 민족을 연상하게 한다. 이에 반해 엘리자베스 영국여왕이 애지중지했던 ‘웰시콕’의 성격은 다정다감해 누구를 보더라도 적대시하지 않는 특성을 갖고 있다.

 

◇중국에서 가장 비싼 가격에 팔리는 애완견인 흰색 차우차우. 원산지가 중국인 이 개도 애완견 산업 불황사태를 맞은 한국에서 중국으로 역수입되고 있다

 

<23>중고차 시장 주도하는 한상들

"한국車는 뭔가달라" 비싸도 '好好'
중국에는 자동차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빠른 경제성장으로 급속하게 늘어나는 돈 많은 중국인을 겨냥해 내로라하는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경쟁적으로 중국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중국에서 물러설 수 없는 한판승부에 나선 업체는 독일의 폴크스바겐, 미국의 포드, 일본의 토요타·닛산, 프랑스의 시트로앵 등 한두 곳이 아니다. 현대차는 ‘베이징현대’라는 이름으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 같은 자동차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중고차 한상도 시장 벽을 뛰어넘고 있다.

차가 많이 다니는 베이징 거리를 걷자면 한국산 승용차가 심심찮게 눈에 띈다.

 

베이징현대에서 생산하는 쏘나타와 아반떼XD(중국 이름·엘란트라) 외에도 에쿠스, 체어맨, SM5, 슈마 심지어는 국내에서는 더 이상 생산하지 않아 단종된 대우의 프린스와 에스페로, 기아차의 프라이드도 거리를 오간다. 거리에 10분 정도만 서 있어도 7∼10대의 한국산 승용차가 지나간다. 이는 베이징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니다. 상하이 톈진(天津) 칭다오(靑島) 다롄(大連) 등 한국과 가까운 대도시에서는 상황이 비슷하다.

 

‘얼마나 많은 차가 건너갔으면 이렇게 많은 한국 차가 중국 도시를 누빌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중국 대륙을 달리는 한국 차는 베이징현대에서 만든 차를 빼더라도 20만대를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 중고차 한상들이 서해를 건너 차를 열심히 실어 나른 결과다.

 

◆중국으로 건너오는 한국 중고차=한국 중고차가 중국으로 건너가기 시작한 것은 20년이 넘는다. 한중 국교 수립 이전인 1980년대 후반부터 서해를 건너기 시작했다. 초창기에는 쏘나타 르망 에스페로 프라이드가 건너갔으며, 지금은 국내에서 생산되는 차종 대부분이 팔리고 있다.

중국에서 수입하는 승용차는 월 1만대 정도다.

◇백지무역 김정운 사장(왼쪽), 동남무역 권재우 사장

 

이 중 20%는 중고차다. 한국에서 건너오는 중고차가 이 중 상당 부문을 차지하며, 대부분 2∼3년 정도 된 차들이다. 더 오래된 차는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시아로 팔려나간다.

 

중국 거리를 누비는 벤츠 BMW 에쿠스 그랜저 등 고급 승용차 중 일부도 중고차로 수입된 것들이다.

중국의 최대 자동차 수입항인 톈진항. 이곳에는 많을 때는 50대 이상의 중고차가 통관을 기다리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원화 강세로 한국 중고차 수입량은 크게 줄어들고 있다. 중국 상무부에 따르면 지난 1분기 동안 수입한 완성차 수입 규모는 2만5281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0.6%나 감소했다.

 

그래도 한국 중고차는 잘 팔린다. 톈진의 한국 중고차 수입상 중 큰 손인 김정운(金正雲) 백지무역 사장은 “중고차라고 싼 것도 아닌데 한국 중고차를 찾는 중국인은 끊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차 값 비싸기로 소문난 중국에서 새 차와 맞먹는 가격으로 팔리는 한국 중고차의 맹위는 여전하다는 것이다.

김 사장은 “한국 차를 사가는 중국인은 현지에서 생산되는 차와 한국에서 만들어진 차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실제 내부 플라스틱 소재부터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이 때문인지 중국 각지에서 한국 중고차를 사려는 딜러들은 최대 수입항인 톈진으로 모여든다. 남부 광저우(廣州) 선전 상하이에서 팔리는 한국 중고차는 대부분 이곳을 통해 수입된 차다.

 

◆중고차 중국수출시장에 부는 환율 충격=그러나 중국시장에서 한국 중고차의 위력은 과거 같지 않다. 김정운 사장은 “한국 중고차 장사를 하는 18년 동안 지금처럼 어려운 때도 드물다”고 말했다.

가뜩이나 베이징현대가 베이징에서 생산에 들어간 상황에서 달러화 약세로 원화까지 강세를 나타내면서 중고차의 가격 경쟁력이 크게 약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원·위안화 환율은 지난해 초만 해도 1위안에 약 150원이었다.

그러나 위안·달러화 환율은 고정돼 있는 데 반해 원·달러화 환율이 강세를 나타내면서 지금은 1위안이 120원 선으로 떨어졌다. 이 같은 환율 변화로 중국 내 중고차 판매가격은 약 20% 오르는 결과를 맞게 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내에 몰아닥친 불황으로 최근 1∼2년 새 국내 중고차 시세마저 5∼10% 올랐다. 중국 내 중고차 한상으로서는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김 사장은 “중국과 거래하는 다른 품목도 마찬가지지만, 중국에서 생산하는 차와 2∼3년 정도 사용한 중고차 가격이 엇비슷해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부산에서 톈진으로 중고차를 실어 나르는 동남무역의 권재우(權載右) 사장은 ‘위기가 기회’라며 “환율요인만 해결되면 중국에 새로운 중고차 수입시장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권 사장은 “톈진에서 지난해에만 한국의 중고차 수입상 3곳이 문을 닫았다”며 “이런 때 일수록 새로운 때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베이징=강호원 특파원

hkang@segye.com

 

일본 중고차는 '덜컹덜컹'

 

중국 중고차 시장에는 한국산 승용차가 끊임없이 흘러 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일본 차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한국 중고차가 중국에서 맹위를 떨치는 것도 이 같은 일본 차의 약세가 한몫 하고 있다.

 

 

◇중국에 자동차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베이징 중심 거리인 젠궈로(建國路)에는 온종일 정체가 빚어지고 있다. 이 거리를 지나는 자동차 중 한국산 차도 많이 눈에 띈다.

베이징=강호원 특파원

 

일본에도 중고차는 많다. 세계 최대 자동차 생산국인 일본은 가구당 한 대 이상 자동차를 보유한 만큼 해외에 팔 만한 중고차도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중국 시장에는 일본 중고차가 전무하다시피 하다. 이는 일본 차의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어 중국에서 운행하기 힘들고, 중일 관계가 별로 좋지 않아 수입 장벽을 넘기가 까다롭다는 두 가지 이유 때문으로 풀이된다.

김정운 백지무역 사장은 “일본 차의 운전석이 왼쪽에 붙어 있었다면 중국 자동차 시장은 일본 자동차 업체에 의해 일찌감치 평정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자동차 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한국이 1970∼80년대에 그랬듯이 중국도 외제 고급 승용차의 수입을 억제하고 있다”며 “중일 관계가 악화하기라도 하면 일본의 수출용 신차도 수입항에는 기약 없이 통관을 기다려야 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중국에 수출되는 한국 중고차는 그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한국 차가 중국 중고차 시장에서 인기를 누리고는 있지만 약점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가장 큰 약점은 한국 승용차가 질이 떨어지는 중국산 휘발유에 약하다는 점이다.

중국 휘발유는 한국산 휘발유에 비해 정제도가 크게 떨어져 1년 정도 차를 운행하고 나면 승용차 기름탱크 밑바닥에 두꺼운 찌꺼기 층이 만들어진다는 것. 김 사장은 “한국산 자동차는 이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해 고장이 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디자인과 소재, 각종 편의장치에서는 중고차라고는 하지만 한국 차가 중국에서 만들어진 웬만한 차를 앞서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권재우 동남무역 사장은 “중국에 10∼20년 된 모델을 들여와 팔아먹는 유럽계 자동차사와 비교하면 최신식으로 무장한 한국 중고차가 인기를 모으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24>스포츠 한류

왕년의 구기스타들 '한수 지도'

 ◇2008년 올림픽 개최지인 베이징시의 왕치산 시장이 2004년 아테네올림픽폐막식에서 올림픽기를 힘차게 흔들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제공

중국은 스포츠 최강국을 꿈꾼다. 경제가 커진 만큼 스포츠에서도 미국과 한판승부를 벼르고 있다. 이런 야심을 실현할 D-데이는 2008년 베이징 하계 올림픽이다. 중국은 이를 위해 대대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면에서는, 과거 한국이 그랬던 것처럼 ‘스포츠를 통한 국가 단결’을 이끌어 내려고 한다. 잠재된 정치 불안 요인을 넘어 새로운 발전 동력을 스포츠에서 찾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국의 스포츠 산업이 중국으로 건너오고 있다.

 

1995년 프로야구 올스타전에서 최우수선수(MVP)로 뽑히며 한때 한국 야구계를 후끈하게 달군 정경훈 선수. 그는 지난해 9월 중국 장쑤(江蘇)성 야구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장쑤성 정부는 그에게 오는 10월 열릴 중국 전국체전에서 우승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했다.

 

중국에서도 돈 많고 부자가 많기로 소문난 장쑤성 정부는 이를 위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지원하겠다고 다짐했다. 장쑤성 야구대표 선수들은 이때부터 정 감독의 스파르타식 훈련을 견뎌내며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정 감독뿐 아니다. 양궁 핸드볼 배구 하키 등 한국이 강세를 나타내는 종목에서는 어김없이 한국 스타들이 중국 선수를 가르치고 있다. 사회체육에서도 마찬가지다.

 

태권도를 시작으로 에어로빅과 검도의 상륙도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최근 들어 중국 전역으로 급속히 번지고 있다.

 

◆중국인을 사로잡는 한국의 스포츠산업=중국으로 건너오는 한국의 대표적인 스포츠는 역시 태권도다. 전 세계에 태권도장이 없는 나라는 없지만, ‘무술대국’인 중국에서도 태권도는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베이징에만 도장이 200곳을 넘으며, 상하이도 100여곳에 이른다.

 

중국 TV에는 태권도를 소재로 한 드라마가 자주 나온다. 한국인이 많이 모여 사는 베이징 왕징(望京) 지역에는 태권도복을 입은 중국 어린이들이 거리를 누빈다. 최근 방문한 조정원 세계태권도연맹(WTF) 총재에 대한 중국 정부와 언론의 관심은 중국에서 얼마나 태권도의 위력이 대단한지를 말해준다.

베이징체육대학의 이준희 박사는 “중국에서도 태권도는 이미 중국인의 스포츠로 변하고 있다”며 “베이징만 해도 10여명의 한국인 사범을 제외하면 중국인들에 의해 움직여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무술대국 중국을 태권도가 뒤흔들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에어로빅 역시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중국 대표팀 응원단장이었던 ‘조수진 신드롬’이 번지면서 한국 에어로빅의 상륙이 시작되고 있다.

베이징의 왕징과 우다커우(五道口) 거리에는 일본 검도가 아닌 한국 검도가 들어오고 있다. 최근 베이징에서는 한국인 사이에 검도 동우회까지 만들어지고 있다.

 

◆중국으로 건너오는 한국의 스포츠 스타들=가장 주목되는 것은 한국 야구의 진출이다.

정경훈 장쑤성 야구대표팀 감독은 한국인으로 중국의 성 대표팀을 맡은 감독 1호다. 광저우(廣州) 대표팀에는 프로야구 두산팀에서 활약했던 추성근씨가 코치를 맡고 있다.

 

이들 외에도 세미프로 야구리그에는 한국과 중국 선수의 혼합팀인 ‘희망의 별(시왕즈싱)’이 올해부터 활약하기 시작했다. 이 팀에는 경남대 출신 이명섭 감독과 현대유니콘스의 김홍집 투수 등 5∼6명의 한국 선수가 뛰고 있다.

 

출범 3년째를 맞는 중국 세미프로 야구리그는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톈진(天津), 쓰촨(四川), 희망의 별 등 6개팀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프로리그로 전환될 예정이다.

정경훈 감독은 “중국에도 야구가 시작되고 있다”며 “한중 간 야구교류는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핸드볼은 중국 남자 국가대표팀 감독에 위영만 전 상명대 감독, 베이징시 핸드볼 대표팀에는 정광욱 전 경희대 감독이 활약하고 있다. 베이징시 배구 남자대표팀 감독은 노진수 전 LG화재 감독이 맡고 있다.

정광욱 감독은 “중국의 주요 성·시에서 활동하는 한국 체육인은 한두 명이 아니다”며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까지 중국을 지원하는 한국 체육인이 더 많아 질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한국이 세계 최강인 양궁대표팀의 경우 한국 지도자들이 도맡고 있다.

 

더욱이 2004년 아테네올림픽 여자 양궁 단체전 결승에서 한국에 분패한 중국은 베이징올림픽에선 타도 한국을 외치며 한국의 양궁 기법을 전수받느라 분주하다.

중국이 한국 스포츠 스타들에게 손을 내미는 이유는 두 나라가 문화전통과 습성이 비슷해 선수 조련에서도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이다.

 

체육계 일각에서는 올림픽을 불과 3년 앞둔 중국에 엄청난 스포츠 특수가 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중국 땅을 밟는 한국 스포츠 스타들은 노하우를 전수하며 스포츠 영역에서 또 하나의 한류를 만들어내고 있다.

베이징=강호원 특파원

hkang@segye.com

 

한국 에어로빅 선풍 일으킨 조수진씨

"배출한 中 강사만 1500명"

중국의 젊은 여성 사이에는 ‘한국 에어로빅’ 신드롬이 일고 있다. 경쾌한 한국 춤곡에 맞춰 현란한 동작으로 이루어진 한국 에어로빅이 중국 여성들에게 파고들고 있다.

 

중국에 한국 에어로빅 붐을 일으키고 있는 주인공은 조수진(31)씨이다. 1994년 베이징 어언문화대학 학생으로 중국 땅을 밟은 그는 10여년 만에 중국 최고의 에어로빅 스타로 떠올랐다.

 

조씨는 1990년대 중국 에어로빅계를 휩쓸었던 마화(馬華)의 권위에 도전하고 있는 것으로 중국 에어로빅계에서는 받아들인다.

 

◇조수진(가운데)씨가 이끄는 공연단은 중국에 새로운 에어로빅의 세계를 열고 있다.

 

마화는 원리원칙에 충실한 기존 중국 에어로빅의 틀을 깨고 새로운 변형을 추구했던 중국 에어로빅계의 여걸이다.

조씨가 중국인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베이징 어언문화대학을 졸업한 직후인 1999년부터다. 당시 베이징TV 의 유선채널인 BC TV에서 에어로빅을 강의하기 시작하며 중국에 한국 에어로빅의 선풍을 일으켰다.

조씨는 “이때부터 중국인도 한국 에어로빅을 알게 됐다”며 “어느 틈엔가 한국 에어로빅이 중국에 확산되고, 에어로빅계에서도 ‘조수진’이라는 이름 석 자를 알아주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조씨는 지금도 베이징TV-6 스포츠 채널에서 월∼금요일 낮 시간에 방영되는 프로그램인 ‘징청젠선차오(京城健身操)’에서 한국 에어로빅을 지도하고 있다.

조수진씨가 주도하는 한국 에어로빅 붐이 얼마나 대단한지 최근 중국중앙방송(CCTV)이 1시간짜리 ‘다큐멘터리 조수진’을 찍고 있다. ‘한국의 영화와 노래가 중국으로 건너오고 있지만, 중국에 한국 문화를 심는 진정한 한류 스타는 조수진’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중국대표팀 응원단장이었던 그는 그해 겨울부터 2년 동안 중국농구협회(CBA) 내 중국농구 치어팀을 이끌기도 했다. 조씨가 치어팀을 이끌게 된 것도 조씨의 인기를 이용해 농구 붐을 일으켜보자는 의도에서였다.

조수진씨는 현재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지난 5월 수진무용문화전파유한공사를 만들어 문화·예술 이벤트 기획사업에 뛰어들었다.

“지금까지 저에게서 배워 강사를 할 정도의 실력을 지닌 사람만 1500명이 넘습니다. 지금 함께 활동하는 사람은 40여명이지요. 이제 우리도 뭔가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해서 이 회사를 만들게 됐어요

 

<25>만주로 가는 한인들

小상공인·유학생 '차이나 드림' 올인
 ◇중국 지린성 창춘시. 지린성은 ‘창춘 한국상업거리’를 만들며 한국 자본 끌어들이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베이징=강호원 특파원

‘중국 바람’은 변방인 동북지방에도 불고 있다. 랴오닝(遼寧)·지린(吉林)·헤이룽장(黑龍江) 3개 성에는 중화학 국유기업의 경쟁력을 되살리기 위한 뒤늦은 개혁 작업이 한창이다. 부실이 심한 국유기업을 퇴출시키고 대대적인 인력 구조조정도 진행되고 있다. 매몰찬 변화가 몰아닥치는 동북지방에는 한국인도 뛰어들고 있다. 국내에 부는 중국 바람과 함께 동북지방의 지방정부들이 한국 자본 유치에 발벗고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지린성의 성도 창춘(長春). 최근 이곳 땅을 밟는 한국인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창춘은 과거 일제의 괴뢰국가였던 만주국의 수도로, 조선 말∼일제 강점기에 만주로 떠난 한국인이 자리 잡은 곳이기도 하다. 60여년에서 길게는 100여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한국인은 다시 만주 벌판의 도시 창춘을 찾아 나서고 있다.

 

정상헌(鄭尙憲) 창춘한국인회 전 수석부회장은 “중국 바람이 만주로 불기 시작한 것 같다”며 “창춘은 중국으로 건너오는 한국인과 그들이 만들어 나가는 한인사회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축소판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창춘을 찾는 한국인은 유학생에서 개인사업가, 중소기업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이들이 맛보는 희망과 좌절도 중국 여느 지역에서 벌어지는 것과 비슷하다.

 

◆창춘 유학길에 오르는 청소년들=창춘의 중국인들은 교육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동북지방의 명문 학교가 대거 모여 있기 때문이다. 지린대학 동북사범대 창춘대학 창춘중의학원이 이 지방의 명문이다. 특히 지린대학은 중국 내 랭킹 8위의 명문이다. 고등학교도 마찬가지다. 동북사대부중은 중국 4대 명문으로, 동북지방의 내로라하는 공산당 관료의 자녀들이 다니는 것으로 전해진다.

 

창춘에 명문 학교가 모여 있는 것은 1950∼60년대 중국을 떠받치던 동북지방의 경제 번영을 말해준다.

중국으로 건너오는 국내 유학생 중 2500명이 창춘에서 공부하고 있다. 중국 내 최대 규모의 대학가가 형성된 베이징의 한국 유학생이 1만명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4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다. 주목되는 것은 창춘 지역의 한국 유학생이 무서운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03년만 해도 1300명 정도였던 유학생 수는 지난해 1800명에 이른 후 올해에는 2500명으로 불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안영만(安永萬) 지린대 동북아연구소 교수는 “지금과 같은 증가세가 계속되면 수년 내에 베이징 절반인 5000명 선으로 불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유학생이 늘어나는 현상은 비단 창춘만이 아니다. 베이징과 상하이, 산둥(山東)성 지난(濟南) 등 명문 대학이 있는 곳이면 유학오는 한국 학생이 많아지고 있다.

 

◆번창하는 창춘의 한국유학산업=창춘을 찾는 유학생이 많아지면서 유학사업도 번창하고 있다. 이들 중에는 초·중·고교생을 20∼50명씩 데리고 숙식을 제공하며 중국 대학에 들어가는 입시공부까지 시키는 곳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런 사업을 하는 곳은 창춘에만 3∼4곳에 이른다. 일종의 입시준비반인 ‘지린대 부속중학교 부속 국제어언교학학교’도 국내 초·중·고교생을 받아 중국 대학에 보내는 교육을 하는 곳이다. 중국 유학 열풍이 만주의 창춘에까지 불어 닥친 결과다. 중국 유학 바람이 초·중·고교생에게까지 퍼지면서 창춘에 유학 중인 한국 학생 2500명 중 초등학생은 100명, 중·고등학생은 300명이 넘는다.

 

창춘에 있는 대학과 유학원에서도 한국 유학생을 창춘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한국유학사업 부문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 내 여느 지역과 마찬가지로 이를 둘러싼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정상헌 전 수석부회장은 “말이 유학이지 뚜렷한 목표의식을 갖고 창춘으로 건너오는 학생은 그다지 많은 것 같지 않다”며 “유학생 중 상당수는 절제되지 않은 생활 속에 좌절의 길로 들어서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지린성의 투자 유치와 창춘 땅을 밟는 한국인=중국 동북지방의 한국자본 유치전략은 집요해지고 있다. 지린성은 지난해 창춘 중심가에 ‘한국상업거리’를 만들고 이 지역에 투자하는 한국 소자본에 대한 투자 제한을 대폭 완화했다. 시들어가는 중화학공업 기지로서의 한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경제 발전의 원동력을 찾기 위해서다.

 

이 때문인지 소상인을 중심으로 창춘에 거주하는 한국인도 늘어나고 있다. 창춘에 거주하는 한국인은 2003년 만해도 300여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창춘에 거주하는 한국인은 유학생을 제외하더라도 1000여명 선을 넘어섰다.

기업 임직원도 있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음식점 안경점 옷가게 미용기구 술집 PC방 화장품 가게를 경영하는 소상인들이다.

 

창춘한국인회 부회장인 김현구(金賢九) 용수산갈비 사장은 “창춘으로 건너오는 한국인이 최근 크게 늘어나고 있다”며 “창춘은 한국자본 진출의 초기 단계를 맞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이지만, 중국에 진출한 한국의 소상인이 성공하려면 현지인을 파고들어야 한다”며 “이에 실패하면 중국에 뿌리내리는 데 많은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한국의 대기업이 진출해 있지 않은 창춘은 가장 소비 규모가 큰 계층이 중국인이기 때문이다.

창춘=강호원 특파원

hkang@segye.com

 

창춘 '한국거리' 눈에 띄네

한국자본 유치 이벤트

로고에 한글간판 즐비

 

중국 지린(吉林)성 창춘(長春)의 중심가에 지난해 10월부터 ‘창춘 한국상업거리’가 꾸며졌다. 이때부터 창춘의 퉁광로(同光路)·룽리로(隆禮路)·구이린로(桂林路)·시캉로(西康路) 등 4개 거리에는 옌볜(延邊)조선족자치주에서나 볼 수 있는 한글 간판이 내걸리고 있다. 이 지역 상점 간판에는 한글이 중국어와 나란히 쓰여 있다. 이 지역 상점주인 대다수가 중국인이지만, 그래도 간판만은 한글로 쓰여 있다.

 

이 같은 변화는 장쑤(江蘇)성 쑤저우(蘇州) 시장을 지낸 왕민(王珉)성장이 지난해 지린성 성장으로 부임하면서부터 벌어졌다.

쑤저우 시정부가 1990년대 경제개발구를 만들면서 이곳에 가장 먼저 투자하고 나선 곳은 삼성반도체였다. 이후 외국 기업들의 투자가 이어지면서 쑤저우는 상하이 인근의 최대 공업도시로 변모하고 있다.

◇정상헌 창춘한국인회 前수석부회장

 

이런 역사를 잘 아는 왕민 성장은 오지가 돼 버린 창춘에 한국 자본을 끌어들이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추진하고 나선 것이다.

이 지역에 투자하는 한국인에 대해 독자법인을 만들 수 있는 최소 투자자본도 음식점은 10만위안(약 1200만원), 소매업은 30만위안, 도매업은 50만위안으로 낮췄다. 정상헌 전 창춘한국인회 수석부회장은 “중국의 지방정부가 한국거리를 만들고 나선 것은 중국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일”이라며 “중국 동북지방 영도자들이 한국 자본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중국 최초로 ‘한국상업거리’가 들어선 창춘시 퉁광로, 구이린로.

 

그러나 ‘창춘 한국상업거리’가 만들어진 후 이 지역에서 한국의 소상인들이 오히려 내몰리는 상황을 맞고 있다. 한국거리를 만들면서 부동산 붐이나 맞은 것처럼 중국인 집주인들이 너도나도 가게 임대료를 턱없이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름만 ‘한국상업거리’이지 이 지역에서 사업을 하는 한국인은 오히려 줄고 있다. 이 때문에 창춘 한인사회에서는 성급하게 한국거리 조성 실패론이 나오고 있기도 하다

 

 

<26>중국 만화시장 두드리는 한인들

"문화·정서 비슷" 한류바람 '솔솔

 ◇전창진 판다카툰 사장(왼쪽) 이희현 선임연구원

중국에 만화 전쟁의 막이 오르고 있다. 개혁·개방 이후 다양한 문화적인 욕구가 폭발하면서 청소년들 사이에 만화가 급속히 번지고 있다. 대만과 홍콩 만화는 물론 해적판으로 나돌던 일본 만화도 본격적으로 중국에 뛰어들고 있다. 13억 인구의 중국시장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만화를 앞세운 문화전쟁이 시작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 만화도 이에 뒤질세라 중국으로 건너오고 있다.

 

베이징의 대학생 거리인 쉐위안로(學院路). 이곳에서는 만화를 보는 청소년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대학생을 주 고객으로 하는 우다커우(五道口) 서점가에도 서가 한가운데에 만화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서점 만화서가에는 ‘신암행어사(新暗行御史)’도 꽂혀 있다. 한국 만화다. 이 만화는 일본 내 판권을 사들인 한 일본 출판사가 중국에서 출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류 바람을 타고 원수연 화백의 ‘풀하우스’는 중국 해적판이 나돌고 있다. 중국에서 정식으로 출판된 적은 없건만 중국인이 이를 무단 번역해 전역에 뿌리고 있다.

 

한국 만화가 이렇듯 알게 모르게 중국으로 넘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에는 한국만화가협회와 만화 작가들이 중국에 만화법인을 만들면서 중국 시장 진출이 본격화하고 있다. 만화계 일각에서는 ‘만화 한류 바람을 일으켜 보자’는 의욕에 찬 목소리도 흘러나오고 있다.

한국만화가협회 부설 만화문화연구소의 이희현 선임연구원(서울창작 상무)은 “중국 만화시장은 급속하게 커지고 있다”면서 “중국 시장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불황에 신음하는 국내 만화산업을 부흥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으로 건너오는 한국 만화=한국 만화가 중국에 건너오기 시작한 것은 3∼4년 전이다. 2000년대 들어 경제 불황에 컴퓨터게임과 일본의 만화 덤핑까지 겹치면서 한국 만화산업은 기진맥진한 상태다. 1만2000개를 넘던 만화가게가 1000개 정도밖에 남지 않았으니 국내 만화산업의 불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는 짐작하고도 남을 만하다. 이 같은 불황을 넘기 위해 한국 만화산업은 중국 시장을 뚫기 시작했다.

 

2002년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에서는 한중 만화합자법인 판다카툰(선양우의 판다만화유한공사)이 만들어졌다. 이 회사는 ‘그리스·로마 신화’ ‘안데르센 동화집’을 낸 전창진 화백의 전진프로덕션이 중국에 만든 합자법인이다. 판다카툰은 2003년 선양미술출판사와 그리스·로마 신화 11권을 6만부 발행했다. 이때를 전후해 해적판을 포함한 한국 만화가 간간이 출간됐지만, 이 만화의 출판은 한국 만화의 중국 공식 진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듬해 1월 만화 ‘엽기적인 그녀’도 중국에서 출판됐다. 판다카툰은 지난 4월 광저우 화싱(花星)출판사와 손잡고 9권짜리 안데르센 동화집 18만권, 베이징 중국소년아동출판사와는 유아 만화교재 ‘왈왈(玩兒玩兒)’을 내놓았다.

 

지난해 8월에는 박봉성 화백과 한국만화가협회가 한중 합자법인 아주만화발전유한공사를 산둥(山東)성 옌타이(煙臺)에 열었다. 아주만화발전은 산둥성 지난(濟南)의 지난출판사와 손잡고 한국 만화 4종을 중국판으로 정식 출판할 예정이다.

지린(吉林)성 창춘(長春)에는 한국만화가협회 만화문화연구소가 올해 직접 진출, 중국 만화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중국에 부는 ‘만화 한류’=한국 만화의 중국 진출은 아직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그러나 만화에서도 한류 바람이 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중국 내 만화산업의 인프라가 워낙 척박한 만큼 한국 만화가 중국 만화문화의 빈 공간을 비집고 들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판다카툰의 전창진 화백은 “한국의 만화 역사가 40년인 데 비해 중국의 만화 역사는 10년 정도에 불과하다”며 “한중은 문화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많은 점에서 유사하다는 사실이 한국 만화가 중국에서 개화기를 맞을 가능성을 뒷받침한다”고 말했다. 이희현 선임연구원은 “지적재산권 보호를 강화하려는 중국 상황이 한국만화로서는 오히려 기회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순정·서정 만화는 특히 중국에서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지난해 ‘제우(街舞)’라는 이름으로 지린(吉林)미술출판사에서 출판한 김수용 화백의 ‘힙합’과 중국에서 해적판으로 나돌고 있는 원수연 화백의 ‘풀하우스’는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

한류 바람을 타고 있는 국내 연예인 이야기를 만화로 만드는 작업도 진행되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는 만화가협회와 손잡고 댄스그룹 ‘동방신기’를 주인공으로 하는 만화를 만들어 중국 시장에 뿌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또 가수 다나를 ‘달려라 다나’라는 만화 형태로 만드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달려라 다나는 ‘달려라 하니’의 주인공 하니를 다나로 바꾼 만화다.

 

이희현 선임연구원은 “중국인의 정서와 철저한 시장조사를 기반으로 중국 시장에 진출하면 한국 만화산업도 새로운 ‘만화 한류’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강호원 특파원

hkang@segye.com

 

중국 만화시장도 해적판 천국

 

중국은 해적판 천국이다. 영화 음반시장은 물론 만화시장에도 해적판이 판을 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은 만화산업의 중국 진출에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의 만화 독자는 최소 1억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아직 초기 단계의 시장이지만 만화를 보는 인구만 따지면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규모다.

 

이처럼 거대시장으로 커지는 중국에서 해적판이 나도는 것은 중국의 만화산업 인프라가 부족한 데다 비싼 원고료와 인세를 주고 해외 만화를 들여오기에는 만화상들이 워낙 영세하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에서 자체적으로 만들어지는 만화는 10%선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나머지는 일본과 대만, 홍콩 만화로 메워지고 있다. 특히 일본 만화는 중국 만화시장의 70∼80%를 점유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은 중국의 만화산업 역사가 10년 안팎인 만큼 자체 만화 공급이 수요를 충족시키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중국에선 돈벌이가 될 만한 만화 해적판을 시장에 뿌리는 일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만화가협회 만화문화연구소의 이희현 선임연구원은 “이 같은 상황을 놓고 보면 중국에서 출판을 통해 큰 이익을 남기는 것은 현재로서는 기대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중국 만화업계에서는 중국 내 일본 만화도 열이면 아홉은 해적판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렇다고 중국 만화사업이 막막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대형 출판사와 손을 잡고 출판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대형 출판사는 대부분 정부 산하 출판사다. 전창진 판다카툰 사장은 “이들 출판사의 경영 상황은 국내 출판사보다 더 안정적”이라고 말했다. 만화를 출판하면 해적판이 뒤따라 나와 큰 돈 벌기는 힘들지만 출판사가 망해 돈을 받지 못하는 일은 드물다는 것이다.

 

판다카툰이 손잡은 광저우(廣州) 화싱(花星)출판사와 중국소년아동출판사 선양(瀋陽)미술출판사, 아주만화발전유한공사와 협력 관계에 있는 지난(濟南)출판사, 김수용 화백의 ‘힙합’을 펴낸 지린(吉林)미술출판사, 박봉성 화백의 ‘삼국지’를 펴낸 창춘(長春)미술출판사 등은 모두 지방정부 산하 출판사다.

이런 점 때문에 일본도 창춘미술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도라에몬’ 출판을 준비 중이다

 

<27>석재시장 장악한 한인들

'아사달의 후예들' 만리장성 돌산 큰손되다
 ◇중국 석재광산이 모여 있는 산둥성 핑두의 돌산. 이곳에 있는 다쩌산(大澤山)은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주변 지역에는 200여 군데의 석재광산이 흩어져 있다.

국내 석재산업은 황무지로 변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국내에 돌 캘 곳이 사라지고 임금까지 오르면서 석재산업은 설 땅을 잃고 있다. 이 때문에 석굴암을 만든 석공의 후예들은 삶의 터전을 중국으로 옮기고 있다. 돌 채취에서부터 가공, 무역에 이르기까지 석재 한상의 주무대가 중국으로 바뀌고 있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국내 건축현장에서 쓰이는 돌은 십중팔구 중국산이 차지하게 됐다. 석재산업에서도 모진 ‘중국바람’은 불고 있다.

 

중국 산둥(山東)성의 칭다오(靑島)와 옌타이(煙臺)의 접경에는 다쩌산(大澤山)으로 불리는 돌산이 있다.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이 산은 곳곳이 파헤쳐져 벌집 모양을 하고 있다. 석재를 채굴한 뒤의 흔적이다. 이곳이 중국의 창강(長江) 이북 지역에서는 가장 큰 석재 생산기지가 있는 지역이다.

 

이곳에 있는 석재 광산만도 200군데가 넘는다. 이 산을 둘러싸고 칭다오쪽의 핑두(平度)와 옌타이쪽의 라이저우(萊州)에는 석재 가공공장 수천 곳이 들어서 있다. 한국으로 수입되는 핑크빛 띤 화강암인 포천석 계열의 돌도 이곳에서 대량으로 생산된다.

이 지역에는 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의 석재상도 뛰어들기 시작했다. 석재광산과 가공에 손을 대며 산둥성의 ‘큰 손’으로 성장한 이들도 적지 않다.

◆무너지는 한국의 석재산업=90년대 초까지만 해도 국내 석재산업은 아시아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했다. 한국 사람들의 돌 깎는 손재주가 남달랐기 때문이다. 70∼80년대에는 일본의 석재 수입물량이 넘치면서 한국에서 생산·가공된 석재는 비싼 가격에 팔렸다. 그러나 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의 석재산업은 설 땅을 잃어갔다.

 

덕양광산 중국본부의 이정웅(李正雄) 사장은 “비싼 임금 때문에 국내에서 이루어지는 석재 시공에까지 중국기술자를 들여오는 판에 한국 석재산업이 설 땅이 있겠느냐”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고임금에 더해 석재 개발로 인한 환경 훼손을 막기 위한 규제가 강화되면서 석재광산과 공장은 하나둘씩 문을 닫고 있다. 국내에 남아 있는 석재 광산은 이제 손을 꼽을 정도다. 포천석을 생산하는 경기 포천 운천 등 몇 곳을 제외하면 국내에 있는 석재광산은 아예 자취를 감추고 있다.

 

중국에서 석재 원석을 수입 가공하는 ‘애생’의 김학선(金鶴善) 전무는 “국내 석재상은 모두 중국 인도네시아 베트남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며 “날이 갈수록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사용되는 석재의 90%는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그 중 90%가 중국으로부터 들어온다. 나머지는 스페인과 이탈리아 그리스 등에서 들어오고 있다. 김 전무는 “국내 석재산업은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 빠져들고 있다”며 “중국의 자원을 어떻게 이용하느냐가 한국 석재산업의 최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으로 가는 석재 한상들=석재 한상은 이제 중국으로 옮겨오고 있다. 중국에서 활동 중인 석재상은 최소 200∼3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중 일부는 아예 중국에서 원석 채굴권까지 따내 중국에서의 재기를 꿈꾸고 있다.

 

중국 산둥성에서 한국인에 의해 운영되는 석재광산은 6∼7곳. 가공공장도 6군데 있다. 라이저우에 광산을 개발 중인 덕양광산도 그 중 한 곳이다. 덕양광산은 국내 동성엔지니어링(대표 박승구)이 투자한 광산이다. 이정웅 사장은 “중국도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석재 채굴을 제한하기 시작했다”며 “그럴수록 더 많은 자본을 앞세워 석재자원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환위기의 한파가 지나간 뒤 2000년 석재사업을 시작한 애생도 중국 내 석재 광산사업을 검토 중이다. 중국에 생산기지를 두고 있는 거산석재는 칭다오 핑두에 광산과 가공공장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석재 한상이 중국으로 모여드는 이유는 중국이 세계 석재시장의 큰 손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석재업계에서는 이제 ‘모든 석재는 중국으로 통한다’는 말이 일반화하고 있다. 중국을 배경으로 하지 않으면 석재 장사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중국에는 현재 푸젠(福建)성의 샤먼(厦門), 광둥(廣東)성의 광저우(廣州)·선전, 랴오닝(遼寧)성의 다롄(大連), 산둥성 핑두·라이저우 등지에 대규모 석재 교역시장이 들어서 있다. 산업을 한데 모아 놓는 집중화 전략 결과다. 특히 샤먼의 경우 중국에서 나는 화강암뿐 아니라 대리석을 비롯한 외국산 석재도 싼 값에 유통된다. 샤먼 석재시장은 터키 이집트 이탈리아 브라질 인도 등 70여개국의 수입·수출상이 300개가 넘는 석재전문 판매장을 열고 있다.

 

이정웅 사장은 “한 군데만 가면 모든 것을 볼 수 있으니 세계 바이어들이 모일 수밖에 없다”며 “이 같은 경쟁력이 싼 임금과 함께 중국을 세계적인 석재산업기지로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거산석재의 김경재(金庚在) 사장은 “유럽의 돌을 구하는 석재상도 샤먼으로 갈 정도로 샤먼은 이제 세계적인 석재시장이 됐다”고 말했다.

 

이 같은 소용돌이 속에 우리나라의 중국석재 의존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칭다오에서 석재 무역을 하는 신광석재의 심은영(沈銀英·여) 사장은 “중국은 한국 건축시장에 석재를 공급하는 최대 공급처로 떠오른 지 오래로, 중국에 대한 의존도는 절대적”이라며 “중국이 환경규제를 강화하면서 국내 건축시장에 타격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칭다오=강호원 특파원

hkang@segye.com

 

중국 석재상 북한 진출 러시

국내 환경규제강화로 새 시장 눈돌려

한인들 "품질보증 못해" 신중한 자세

 

중국 석재자본의 북한 진출이 최근 봇물을 이루고 있다. 외화벌이에 나선 북한이 석재광산개발에 외자를 끌어들이기 시작하면서 중국 석재상이 잇따라 북한에서 석재 채굴에 나서고 있다.

 

중국 석재상이 북한에 진출한 것은 2∼3년 전부터다. 현재 북한에서 원석을 채취, 가공하는 중국 석재기업은 10여 군데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황해도 지역에 집중 투자를 하고 있다. 이들은 하얀색 계열의 화강암인 이른바 가평석을 주로 채굴·가공해 전량 일본으로 수출하고 있다. 황해도에서 나는 석재는 질이 좋기로 소문나 있으며 건축 내·외장재 중 최고급으로 평가받고 있다. 북한에서 석재를 채취·가공해 일본에 파는 중국 석재상들은 중국산 석재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석재를 일본에 넘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석재상이 북한에 발을 뻗게 된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석재를 개발, 수출하도록 특별지시를 내린 이후 석재산업에 관한 한 외국기업의 투자를 규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중국 석재상들이 발빠르게 북한으로 몰려들고 있다. 석재업계에서는 중국이 환경규제를 강화할수록 북한의 석재광산 개발이 봇물을 이룰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한국 석재자본은 아직 북한에 들어간 곳이 한 곳도 없다. 중국에서 활동 중인 한국 석재상 중 일부는 북한 진출을 꾀하고 있지만 정부지원 없이 북한에 뛰어들 경우 투자안전성을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활동 중인 한 석재상은 “석재는 직접 보고 품질을 평가, 생산해야 한다”며 “북한에 장기 거주하면서 석재의 품질을 감독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섣불리 북한에 투자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석재업체들 사이에서는 북한에 진출, 질 좋고 값싼 석재를 국내로 들여올 수 있도록 다각적인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편 개성 인근에서는 석재개발이 금지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개성 인근에는 땅굴이 많아 잘못 석재 채취를 허용할 경우 북한의 군사기밀이 외부에 새 나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28>가구시장 뛰어든 한상들

"신황금시장" 300여업체 '노크'
 ◇산둥성 웨이하이에 있는 대화목업의 불단 생산공장에서 현지 근로자들이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한국 등 유명 가구 메이커들의 진출이 늘어나면서 중국산 가구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웨이하이=강호원 특파원

중국은 가구 대국이다. 세계시장에 수출되는 가구의 8할을 차지할 정도로 중국산 가구는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손재주가 좋은 중국인은 아무리 좋은 최고급 가구라도 싼값에 똑같이 만들어낸다. 이런 경쟁력을 바탕으로 중국에 세계적인 가구생산기지가 조성돼 남부 광둥(廣東)성과 화동의 저장(浙江)성, 화북의 산둥(山東)성에는 국제시장에서 가구를 거래하는 큰손들이 모여들고 있다. 한상도 이곳에 뛰어들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중국을 기반으로 세계경쟁에 나서기 위해서다. 산둥성 웨이하이(威海). 이곳에는 1990년대 중반부터 한국의 가구업체가 건너오기 시작했다. 지금은 10여곳이 모여 있다. 바다에 접해 있어 목재수입은 물론 가구 수출도 용이하기 때문이다.

웨이하이 서쪽 환추이(環翠)구에는 있는 대화목업도 중국으로 생산기지를 옮긴 곳 중 하나다.

1만6000평의 대화목업 공장에서 생산되는 불단은 전량 일본으로 수출된다. 일본 10가구 중 1가구가 이 불단에 부처님을 모실 정도로 대화목업은 일본 불단시장 내에서 큰손이다. 불단이란 일본에서 가정마다 부처님을 모시기 위해 설치하는 가구다. 대화목업뿐 아니다. 세계시장에 도전하는 한국의 가구업체들이 너도나도 모여들고 있다.

 

강영일(姜永逸) 대화목업 회장은 “기업이 살아 움직이기 위해서는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며 “1990년대 중반 이후 건너오는 한국의 가구·목재 산업은 중국에서 새로운 경쟁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과 중국의 가구·목재 산업=국내 가구·목재 산업은 ‘10년 불황’이 이어지고 있다. 1997년 말 불어닥친 외환위기를 전후로 시작된 가구산업의 불황으로 수많은 업체들이 쓰러지는 운명을 겪었다.

 

보루네오 동서 바로코 우아미 노송가구 등 이름난 가구업체들도 이때부터 하나둘씩 아픔을 겪었다.

이런 상황은 국내 가구 수요가 줄어듬에 따라 전례없이 치열한 시장경쟁이 벌어진 결과다. 아파트가 고급화되면서 웬만한 가구는 붙박이로 설치되고 있다. 가구를 따로 사는 가정은 갈수록 줄어든다.

 

외환위기 이후 돈 씀씀이가 눈에 띄게 줄어든 것도 가구 불황을 몰고온 원인 중 하나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값싼 중국산 가구가 국내에 몰려들면서 내수를 기반으로 하는 가구업체는 더욱 경쟁력을 잃었다.

한샘가구 중국본부의 김영근(金榮根) 상무는 “사회가 풍요해지면 오히려 개인의 가구 수요는 줄어든다”며 “국내 가구시장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많은 중견업체들이 쓰러지고 그 자리를 소형업체가 대신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 시장은 판이하다. 중국에는 가구산업의 황금기가 시작되고, 세계적인 가구 브랜드도 몰려들고 있다. 독일의 알노, 이탈리아의 노빌리아 등 유명 가구 브랜드는 물론 세계적인 가구 유통업체도 잇따라 중국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1980∼90년대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중국에서도 소득이 늘어나면서 가구 수요가 폭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으로 건너오는 한국가구=한국 가구산업의 중국 진출은 사라지는 시장과 약화하는 경쟁기반, 떠오르는 중국 가구시장이 빚어낸 결과다. 기업이 살아남자면 한푼이라도 싸고 질 좋은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옌타이 삼비목업의 홍영호 사장은 “1990년대 중반 이후 국내 시장에서 무한 가격경쟁이 벌어지면서 국내 가구산업의 중국 진출은 더 빨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의 가구업체는 200∼300군데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칭다오(靑島) 웨이하이(威海) 옌타이(煙臺) 등 한국과 가까운 산둥성 연해 지역에만 100곳이 넘는 가구업체가 진출해 있다. 이들 업체는 현지에서 직접 가구를 생산하거나 위탁생산을 하는 형태로 뿌리내리고 있다.

 

불단과 가구를 생산하는 대화목업은 1990년대 중반 중국에 진출했다. 가구·목재 산업에 관한 한 중국 진출 1세대 기업이다. 부처님을 집안에 모시는 관습을 가진 일본의 불단 시장에서 7∼8%를 점유하고 있다. 강종규(姜宗奎) 대화목업 상무는 “공예품 수준의 섬세한 수공을 요구하는 불단도 마찬가지지만, 수공이 많이 들어가야 하는 비싼 가구일수록 중국을 발판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강영일 대화목업 회장, 심은영 칭다오쉐라이 사장, 김영근 베이징한샘 법인장

 

항저우(杭州)와 칭다오를 발판으로 하는 쉐라이(雪萊)가구도 마찬가지다. 이 업체는 한중 합작 가구 브랜드로 스페인풍 가구를 만들고 있다. 쉐라이 칭다오총판의 심은영(沈銀英) 사장은 “중국 내수시장을 겨냥하는 한국 가구업체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며 “중국에서 가구를 생산하는 한국인은 이제 국내 판매를 목표로 하기보다는 중국 내수시장과 세계시장으로 타깃을 옮기고 있다”고 말했다.

 

쉐라이 가구는 중국 내수시장을 겨냥해 중국에서 직접 생산한다.

최근에는 국내에서 큰손으로 통하는 대형 가구업체들의 중국 진출도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국내 부엌가구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한샘가구가 2003년부터 중국 내수판매에 뛰어든 데 이어 종합가구업체인 파르마도 칭다오에 공장을 만들었다. 과거 오리표로 인기를 모은 엔엑스도 2003년을 전후해 베이징 시장에 진출, 중국 내수시장 뚫기에 나서고 있다. 이들 업체는 한결같이 ‘중국 가구시장에서 한판 겨루어 보자’는 야심을 불태우고 있다.

베이징·웨이하이=강호원 특파원

 

고급가구 수요 급증 올 시장규모 81조원

베이징·상하이등 중심 구매 크게 늘어

 

중국의 가구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소득이 늘어나고 부동산 개발 붐이 일면서 중국에서도 본격적인 가구 소비 시대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국의 집안 장식은 주로 조립식 가구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베이징과 상하이 등 주요 도시의 일인당 평균소득이 3000달러(약 300만원) 선을 돌파하면서 완성가구를 사들이는 가정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베이징 건축장식협회 가구장식위원회의 통계에 따르면 올해 베이징의 가구·건자재 시장은 6500억위안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원화로 환산하면 81조원에 이르는 규모다. 건설업체가 아파트 내장을 위해 구입하는 건자재와 개인이 구입하는 가구·건자재가 모두 포함돼 있는 수치다. 그러나 10%는 개인이 구입하는 가구로 추정되고 있다. 이들 가구는 베이징 곳곳에 널려 있는 가구·건자재 시장을 통해 팔려나간다. 중국의 가구·건자재 시장은 2000년대 이후 매년 20%씩 커지고 있다.

 

중국의 가구시장이 커지면서 세계적인 대형 가구 유통업체도 잇따라 중국에 진출하고 있다. 영국의 B&Q(중국명 바이안쥐·百安居), 프랑스의 르로이 메를린(러화메이런·樂華梅蘭)에 이어 다국적 건자재 유통업체인 홈 디팟(자더바오·家得寶)도 중국에 진출했다. B&Q는 이미 58개의 점포를 열었다.

 

중국 가구·건자재 업계는 주택 건축 시장보다 가구·건자재 시장이 더 큰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베이징시장에서는 100위안 상당의 주택을 팔면 130∼150위안어치의 가구·건자재가 팔리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한샘가구의 중국지역 책임자인 김영근(金榮根) 상무는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 완성가구 소비가 늘어난다”며 “중국은 가구 소비 확대 단계에 들어서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가구시장이 황금시장으로 부상할 수 있다는 뜻이다.

베이징·웨이하이=강호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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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차오양구에 있는 한 가구상가. 베이징을 비롯한 중국 대도시에는 대형 가구시장에 곳곳에 들어서 있다

 

Giovanni Marradi 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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