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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의 축구환상곡/ 강해진 서울, '감독 하나 바꿨을 뿐인데…'

향기男 피스톨金 2007. 3. 22. 16:15

 

                  한준의 축구환상곡

 

    강해진 서울, '감독 하나 바꿨을 뿐인데…'

 

[스포탈코리아 2007-03-22 13:34]
`서울의 봄` 귀네슈와 박주영

대한민국 프로축구 최고의 흥행카드, FC서울과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격돌이 누구도 예상치 못한 서울의 대승으로 마무리됐다.
 

서울은 지난 21일 밤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펼쳐진 '삼성하우젠컵 2007' B조 2라운드 경기에서 수원을 4-1로 대파했다.

 

서울은 너무도 강했고, 경기력만으로 좌중을 압도했다. 상암을 찾은 4만명에 가까운 관중, 17대의 카메라를 동원해 A매치 급으로 진행된 축구 중계를 지켜본 시청자들. 모두가 서울의 플레이에 찬탄을 금할 수 없었다. 그것은 압도적인 승리였고, 완벽에 가까운 축구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 이제 겨우 대한민국 땅을 밟은지 3개월차에 접어든 세뇰 귀네슈(54, 터키) 감독이 있었다.

 

▲ 서울이 바꾼 한가지, 감독

 

짧은 시간 동안 정말 많은 것이 바뀐 FC서울. 그러나 정작 서울이 바꾼 것은 단 한가지는 감독을 교체하는 일 뿐이었다. 서울은 2006시즌의 실패를 디고 2007시즌을 준비하며 감독 인선 작업에 무엇보다 심혈을 기울였다.

 

과거 카메룬의 월드컵 8강일 이끈 발레리 니폼니시 감독이 부천SK(현 제주 유나이티드) 사령탑을 맡아 K리그에서 가장 세련된 축구로 르네상스 시대를 연 것 처럼, 서울 역시 국가 대표급의 최고 명장을 사령탑으로 앉히며 단숨에 최강자로서의 면모를 얻을 수 있었다. "한국 축구를 바꿔놓겠다"는 귀네슈의 호언은 허풍이 아니었다. 상암을 찾은 3만 6천여 관중은 박주영이 아니라 서울을 환호하고 있었다.

 

오래간 세계 축구의 변방에 있던 한국을 단숨에 월드컵 4강에 올린 거스 히딩크와 FC 포르투를 누구도 예상치 못한 2003/2004 챔피언스 리그 우승으로 이끈 주제 무리뉴가 떠오르는 것은 지난친 비약일까?

 

▲ 누구도 예상치 못한 서울의 독주

 

2007시즌 개막을 앞두고 대부분의 축구 전문가와 팬들은 성남과 수원을 우승 후보 첫 손에 꼽았다. 지난 해 성남은 그야말로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정상을 차지했고, 특별한 전력 손실이 없는 채로 부족한 부분을 보강하는 등 안정된 전력을 유지하며 무난히 2연패를 차지하리라 전망됐다.

 

지난 해 정규 리그와 FA컵 무대에서 모두 준우승에 그치며 분루를 삼킨 수원은 약점으로 지적된 마무리 능력을 보완키 위해 안정환, 나드손, 에두 등의 특급 공격수와 안효연, 배기종 등 특급 도우미들을 안착시키며 최고의 스타 군단을 구성했다는 이유에서다.

 

이장수 감독와의 계약을 연장하지 않고 터키의 명장 세뇰 귀네슈를 영입한 서울은 박용호, 박요셉 등 상무 입대 선수의 복귀와 드래프트를 통한 신인 선수의 영입 외에 이적 시장에서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2002 한일월드컵 3위의 성과와 그해 유럽축구연맹(UEFA)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한 화려한 커리어의 귀네슈 감독이지만 K리그 무대에 대해 파악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며, 선수 보강 작업을 펼치지 못한 점은 지난 해 컵대회 우승을 차지하고 4강 플레이오프에 오른 서울을 우승권의 뒤를 쫓는 다크호스 정도로 분류하게 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가장 많이 달라진 것은 서울이었다. 성남과 수원, 울산 등이 무패 행진을 달리면서도 시원스런 모습을 보이지 못한 반면(수원은 대전을 4-0으로 대파하는 경기를 펼치기도 했지만), 서울은 시종일관 꾸준한 경기력으로 매 경기 바람을 일으켰다.

 

수준급 유망주들과 대표급 선수, 우수한 외국인 선수를 지니고도 언제나 우승권의 언저리에서 맴돌았던 서울. 그들은 귀네슈 감독이 부임한지 3개월만에 그야말로 확 달라졌다.

 

▲ 귀네슈가 바꾼 세가지

① 승리의 시작은 수비, 끝은 공격

 

귀네슈 감독은 K리그 입성과 함께 "공격 축구를 하겠다"고 호언했고, 비디오 자료를 통해 본 K리그는 수비 축구와 흥미롭지 못한 내용 때문에 관중들이 찾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공격 축구는 무엇일까? 어떤 상황에도 골문을 향해 끊임없이 공격만을 펼치는 것이 공격축구일까? 아니면 그저 많은 골을 넣는 것?

 

묘기에 가까운 기술을 앞세워 관중을 즐겁게 하는 것? 우리들이 말하는 '공격 축구'란 것은 여전히 추상적인 단어에 불과하다. 귀네슈 감독은 수원과의 경기를 대승으로 이끈 뒤 "경기가 끝날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싸우는 것이 공격 축구"라고 말했다.

 

'공격 축구'를 정의하는 것이 어떤 말이든 승리하는 팀, 필요할 때 골을 넣는 팀, 골을 많이 넣는 팀들은 하나의 공통점을 갖고 있다. 지난 시즌 K리그의 성남, 프리미어 리그 2연패를 차지했던 첼시, 올 시즌 프리미어 리그에서 독주를 하고 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 팀들은 짠물 수비를 펼치면서 막강 화력을 자랑, 리그 정상을 거머줬다. '공격 축구'의 시발점, 승리의 시발점, 강력한 공격의 시발점은 안정된 수비라는 것이다.

 

귀네슈 감독의 서울은 광주를 상대로 5골을 넣고, 수원을 상대로 4골을 넣었다. 하지만 그보다 돋보이는 것은 지난 5경기에서 4경기 연속 무실점을 기록하고 수원을 상대로 1골만을 허용한 수비력이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한국 프로 축구 최고의 스타 골키퍼로 변치 않는 활약을 보이고 있는 김병지, 부천 시절 대표팀으로 선발될 정도로 탁월한 대인방어 능력을 갖춘 김한윤, 브라질 선수 특유의 축구 센스를 갖춘 레프트백 아디, 그리고 청소년 대표와 올림픽 대표 시절에 이미 잠재력을 인정받은 김치곤과 최원권. 최후방의 골키퍼 김병지에서 출발해 '아디 - 김치곤 - 김한윤 - 최원권'으로 이어지는 수비 라인의 조직력은 그야말로 완벽에 가깝다.

 

특히 가장 인상적인 선수는 아시안게임 대표팀에서 흔들리는 수비 라인의 중심에 있었던 김치곤이다. 그는 박성화 감독이 이끄는 청소년 대표 시절 수비의 키포인트로 꼽혔던 기대주로서의 모습을 재현하며 서울에서 철벽같은 플레이를 펼치고 있다.

 

가끔 경험 부족으로 인한 실수가 눈에 띄지만 제공권 장악 능력, 위치 선점 능력에 세트 피스 시의 공격 가담 능력까지 대단하다. 라이트백으로 나서고 있는 최원권의 경우 서형욱 MBC 축구 해설 위원이 "게리 네빌을 보는 것 같다"고 평할 정도로 적절한 수비력과 공격 가담 능력을 보이고 있다. 반대편에 있는 아디 역시 적절한 조율이 돋보인다.

 

이 안정된 수비 라인은 서울이 공격에 나설시 적극적으로 라인을 끌어 올리며 미드필드와의 간격을 좁힌다. 이때 좌우측면 풀백이 번갈아가며 순간적으로 공격에 가담하고, 중원에 위치한 이민성이 수비 라인의 공백을 메워준다.

 

귀네슈 감독은 공격 상황에도 후방을 비우고 라인을 끌어올리지만 "수비 앞에 두 명의 중앙 미드필더를 세우는 데 이들이 항상 좋은 플레이를 펼친다. 공격이든 수비든 항상 1명이 수비라인 앞에 대기해야 한다는 게 내가 원하는 부분"이라고 주문한다. 그렇다고 해서 공격의 숫자가 부족하거나 속도가 떨어지지 않는다.

 

수비가 안정된 공격진은 보다 안정감있는 플레이를 펼칠 수 있다. 안정된 수비와 컴팩트한 미드필드진을 넘어 이를 마무리하는 공격진은 자신이 가진 재능으로 감독의 주문을 충실히 이행하며 쉴새 없이 득점 기회를 만든다.

 

신예 이청용은 볼을 다루는 탁월한 기술과 매서운 측면 돌파 능력, 매끄러운 패싱력을 보이고 있으며, 박주영은 끊임없이 상대 수비의 배후를 노리며 전방 침투를 시도하고 날카로운 결정적으로 골문을 노린다.

 

베테랑 공격수 김은중의 포스트 플레이는 여전히 견실하고, 정조국은 피지컬적인 성장세와 더불어 파괴력있는 슈팅으로 보다 한층 성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수비와 공격, 모두 약점이 없고 실수가 없으며, 톱니바퀴처럼 맞아 돌아간다.

 

② 90분의 집중력, 실수를 줄여라

 

귀네슈 감독이 서울에 부임하면서 매번 강조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패스 미스'를 줄이라는 것. 귀네슈 감독이 제일 싫어하는 것은 '패스 미스'로 알려져있다. 귀네슈 감독은 언제나 의도성 있는 패스, 준비된 패스를 요구한다.

 

귀네슈는 대구와의 개막전에서 2-0의 승리를 거둔 뒤 "100% 준비되지 않았다. 패스 미스가 있었다"고 말했고, 수원과의 경기에서 승리한 뒤 승리의 요인 중 하나로 "패스 미스가 없었다"는 점을 꼽았다. 기실 귀네슈는 광주에게 5-0으로 이긴 경기에서 부터 무실점 4연승을 달린 제주전까지 선수들의 실수와 마지막 집중력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축구 경기에서 어처구니 없는 패스 미스가 위기를 만들고 기회를 무산시키는는 장면을 우리는 많이 봐왔다. 실수를 줄이라는 귀네슈의 주문은 서울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위기를 내주지 않게 만들었다.

 

실수가 없다는 것은 선수들이 집중력을 놓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귀네슈는 수원에게 선제골을 내주고도 역전에 성공한 배경으로 "선수들이 선제골을 내줬지만 집중력을 잃지 않는 것이 주효했다"고 말했다.

 

90분간 경기에 대한 집중력을 잃지 않고, 패스 미스에 대해 강박증이 느껴질 만큼 경계하는 것. 귀네슈가 선수들에게 주문하는 것을 바로 그것이었다. 그리고 이를 충실하게 이행하며 유기적인 플레이를 펼친 서울은 공격 최전선에서 수비의 최후방까지 빈틈을 노출하지 않았다.

 

이을용과 이민성, 기성용, 이청용으로 구성된 중원은 짧은 패스와 긴 패스를 가리지 않고 적절하게 주고 받으며 중원을 장악했다. 이들 모두 기술적으로 완숙하며, 극대화된 조직력으로 패스 미스를 보이지 않는다.

 

특히 터키 무대에서 귀네슈와 한솥밥을 먹었던 이을용은 서울 복귀 이후 예전만 못하다는 얘기를 들었으나, 올 시즌 주장 완장을 부여받으며 다시 전성기에 버금가는 맹활약으로 호평받고 있다. 지금 당장 유럽의 빅리그에 뛰어들어도 손색없는 모습이다.

 

90년대 한국 축구를 관통했던 베테랑이자 2002 월드컵 4강 멤버인 이을용과 이민성, 아직 스무살도 되지 않은 미래 기성용과 이청용. 서울 중원은 패기와 노련미를 겸비했다.

 

히딩크 감독은 그의 자서전에서 "축구는 실패를 컨트롤하는 게임"이라고 했다. 유럽축구연맹(UEFA)의 신임 회장인 프랑스의 축구 영웅 미셀 플라티니는 "축구는 실수의 스포츠다. 모두가 완벽하면 스코어는 0-0이다"라고 말했다. 귀네슈 감독은 실수를 최소화하며 골문을 지켰고, 실수를 최소화하며 상대 골문을 열었다. 과연 누가, 어떻게 서울의 집중력을 흐트러지게 할 수 있을까?

 

③ 실력우선, 주전 유니폼에 나이는 없다

 

"모든 선수는 준비되어야 하는 상태라는 게 내 지론이다. 내 앞에서 훈련할 때 자신이 준비한 것을 보여야 경기에 나갈 수 있다. 준비 된 상태라면 나이는 아무 상관 없다. 유니폼은 내가 주는 게 아니라 선수가 가져가는 것이다."

 

주전 포지션의 무한 경쟁. 귀네슈의 입장을 명쾌하게 보여주는 정답이다. 한편으로는 2002 월드컵의 4강 신화를 이끈 히딩크의 단호함을 연상케한다. 귀네슈 역시 2002 월드컵에 히딩크와 함께 4강 신화를 이끌어내며 명장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그동안 유럽 축구의 변방에 있었던 터키의 돌풍 역시 한국의 돌풍과 일맥 상통하는 면이 있다.

 

귀네슈 감독은 2007 시즌 개막을 앞두고 2개월 남짓한 준비 기간 동안 어떠한 스타 선수 영입에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며 "지금 선수들로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물론 이미 서울에는 어린 유망주들이 즐비하고, 대표급 스타 선수들이 자리하고 있었지만 새로운 팀을 맡는 감독으로선 이례적인 반응이었다. 대신 그는 동계 전훈에 온 신경을 기울였고, 기존의 선수 구성의 틀에 손을 댔다.

 

귀네슈 감독이 들고나온 올 시즌 서울의 선발 명단은 그동안의 면면과 다른 것이었다. 지난 3년간 고작 4경기에 나설 수 있었던 19세의 이청용이 당당히 오른쪽 측면 미드필더 포지션에 이름을 올렸고, 18세에 불과한 기성용은 중원에 섰으며, 그동안 중앙 수비수로 나서던 이민성이 미드필더로 이름을 올렸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19세 이청용과 18세 기성용의 활약이다. K리그 무대에서 설익은 지휘봉을 잡으며 검증되지 않은 선수들을 곧바로 실전의 최전선에 내세운다는 것은 예상치 못한 일. 게다가 이제 막 프로 무대에서 첫 걸음마를 내딛는 선수들이다.

 

하지만 귀네슈는 이들의 과감한 기용에 대해 "전지훈련에서 정말 열심히 한 선수들"이라며, "기술적으로 뛰어나고 미래가 밝다. 어리지만 내가 믿고 있는 선수들"이라고 평하며 힘을 실었다.

 

수비 보직을 맡던 기성용은 볼을 다루는 탁월한 감각과 투지 넘치는 몸싸움에 매서운 패싱력까지 겸비해 중원의 새로운 황태자로 떠올라 청소년대표에서 곧바로 올림픽대표와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기에 이르렀다. 현재 청소년 대표팀에 소속된 이청용 역시 K리그 최고의 측면 공격수로 평가받기에 이르렀다.

 

기성용과 이청용이 떠오르며 밀려난 것은 지난 시즌까지 K리그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평가받던 히칼도와 두두다. 서울의 가장 위협적인 공격 무기로 평가받던 '프리킥 마술사' 히칼도가 정상 컨디션임에도 벤치에 명단에 들지 못하고 있으며, 지난 여름에 이적해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끈 역군 두두가 후반 교체 멤버로 밀려났다.

 

검증된 선수들을 과감히 제외하고 아직 모든 것이 첫걸음인 어린 선수들의 기용. 게다가 귀네슈의 선발 명단에 이름을 올린 선수 가운데 수비수 아디를 제외하고는 모두 한국 선수들로만 구성해 이런 경기를 만들었다. 귀네슈 감독의 무한 경쟁 선발 원칙은 서울을 K리그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팀으로 만들었다.

 

▲ '귀네슈' 서울의 위력, K리그 삼킬까

 

이제 겨우 5경기, 속단은 이르지만 첫 단추를 너무도 완벽하게 끼워낸 서울의 귀네슈 폭풍은 진정 무섭다. 귀네슈 폭풍은 K리그의 판도 자체를 바꿀만큼 위력적이다. 이제 성남의 독주에 대한 견제가 아니라, 서울의 독주를 누가 막을 것이냐가 올 시즌 K리그 최고의 화두로 떠오를지 모를 일이다. 부임 3개월만에, 시즌 개막 1달만에 K리그 무대를 뒤흔든 귀네슈의 서울의 올 시즌 행보에 관심이 모아진다.

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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