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들/세 상 칼럼들

한민족, 무슨 일을 해도‘배움과 빠름’ 있었다

향기男 피스톨金 2007. 4. 3. 13:34
  • 한민족, 무슨 일을 해도‘배움과 빠름’ 있었다
  • 김병숙 경기대 교수 ‘한국직업발달사’ 펴내

                    고려땐 하인도 시 읊어…
            10년 예상 정조때 화성공사 2년9개월만에 끝내

    • 김병숙 교수는“역사적 인물들의 직업윤리는 청소년들의 진로 개척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김보배 객원기자 iperry@chosun.com
    • “어쩐지 사기를 치는 것 같았어요.” 서울 서초동에서 ‘잡 클리닉(job clinic)’을 운영하고 있는 김병숙(金炳淑) 경기대 대학원 직업학과 교수는 그렇게 말했다.

      직업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김 교수는 수많은 직업 상담을 해 오는 과정에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떤 직업이 당신에게 유망하다’는 말만 가지고는 부족했다. 도대체 우리는 누군가? 우리 민족은 어떤 직업 적성을 갖고 있는가? 김 교수는 먼저 우리의 직업에 대한 ‘역사’를 알 필요가 있었지만, 그런 책은 어디에도 없었다.

      “직접 써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그게 7년 전이다. 근·현대사가 싫어서 역사 과목과는 담을 쌓았던 문외한이었던 탓에 중학교 국사 교과서부터 줄 쳐가며 다시 공부했다. 300건이 넘는 자료를 뒤지며 날밤을 샜다. 그래서 나온 책이 1000쪽에 가까운 ‘한국직업발달사’(시그마프레스 刊)다. 선사시대부터 21세기까지 모두 24장에 걸쳐 한국 직업과 생산 시스템, 인재 양성과 노동 시장, 직업 윤리의 변화를 연구했다.

      “1950년대 이전까지 우리나라의 직업은 농업 인구가 70% 이상이었다는 점에서는 같았어요. 하지만 지금 직업이 변화하는 속도는 100년 전의 54배가 넘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직업이 새로 생겨나는 가운데, 역사로부터 무슨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김 교수는 “우선 고구려 고분 벽화를 잘 들여다 보라”고 말했다. 그 속에 기간산업의 직업들이 다 들어 있었다. 농업(신농신), 제철(야철신), 건설(마석신), 교통(제륜신)…. “국민들이 생산에 전념할 수 있도록 산업을 신격화해 일에 대한 윤리적 지침을 제시한 것이죠.”

      안악 3호분의 대행렬도는 수레와 도로를 이용한 수준 높은 물류 시스템을 보여 준다. 그게 오히려 괴나리 봇짐을 들고 걸어다녔던 조선시대에 가서는 퇴보했다는 것이다. 직업윤리와 물류 시스템이야말로 사람들이 좋은 직업을 얻을 수 있는 부(富)의 열쇠였다.

      우리의 유전자에 면면히 흐르는 ‘직업적 강점’은 무엇이었을까? “엄청난 교육 열기를 들 수 있어요.” 선사시대의 반구대 암각화만 해도 온갖 고래 종류와 해체법에 이르는 상세한 ‘교육적 정보’가 들어 있다. ‘고구려에선 말먹이꾼도 공부를 하고’ ‘고려에서는 하인들도 시를 읊는다’는 기록은 또 어떤가.

      ‘스피드’ 또한 우리의 위대한 유산이다. “조선 정조 때 화성(華城)은 완성에 10년을 예상하고 설계한 신도시였어요.” 그걸 2년9개월 만에 끝냈다. 인터넷 강국의 소질은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었다. 일등주의 강박 관념과 투쟁적 투자, 젓가락에서 보이는 정교한 ‘손끝 문화’, 드라마를 잘 만들 수 있게 하는 ‘인간 삶에 대한 끈질긴 애정’도 빼놓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이제 취업 시장에 뛰어들 젊은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미 직업시장은 소수의 직업인이 대다수의 노동생산성을 맡는 시대로 가고 있어요.” 실업자가 되거나 ‘100만 원짜리 일자리’에 머무르지 않기 위해선 ‘지식을 기반으로 한 직업인’이 돼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공부를 많이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우리 고유의 강점을 잘 살리고, 지식을 새롭게 창출해서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적용해야 한다고 김 교수는 강조했다.

       
    • 옷을 짜는 직공의 모습을 그린 고구려 고분벽화, 조선시대의 가마점.
    • 1950년대의 지게꾼과 1970년대의 버스 안내양.
    • 김병숙 경기대 직업학과 교수가 한민족의 직업적성을 총 망라한 거작 <한국직업발달사>를 펴냈다. 김교수는 "우리가 누구인지, 5천년동안 어떻게 지내왔는지 모르고 있었다"며 "고구려 고분벽화 속에 기간산업이 다 들어 있다"라고 말했다. "신농신(농업), 야철신(제철), 마석신(건설), 제륜신(교통)...이 그려져 있다"며 고구려 시대의 뛰어났던 물류시스템 등을 저작을 통해 높이 평가했다./ 조선일보 김보배 객원기자 iperry@chosun.com
  • 유석재 기자 karma@chosun.com
    입력 : 2007.04.02 23:10 / 수정 : 2007.04.03 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