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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섬/백령도에 가야 하는 일곱 가지 이유

향기男 피스톨金 2007. 7. 6. 12:07

 

        백령도에 가야 하는 일곱 가지 이유
울릉도는 동해의 끝에 있나?

유치환은 그렇게 생각했던가 보다. 그는 울릉도를 두고 "동쪽 먼 심해선 밖의/ 한점 섬 울릉도로 갈거나. // 금수로 굽이쳐 내리던/ 장백의 멧부리 방울 튀어/ 애달픈 국토의 막내/ 너의 호젓한 모습 되었으리니.// 창망한 물굽이에 금시에 지워질 듯 근심스레 떠 있기에/ 동해 쪽빛 바람에/ 항시 사념의 머리 곱게 씻기우고,// (하략)"하고 노래하여 마치 울릉도가 금세 지워져 없어질 듯이 위태롭게 떠있는 것으로 묘사하였다.

그러나 울릉도는 우리나라 3153개의 도서 중에서 그 면적이 9번째에 들 정도로 큰 섬이니 '한 점 섬'이 표현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사람도 1만254명이나 거주(울릉군 홈페이지 2007년 7월 3일 참조)하고 있으니 '호젓한 모습'도 아니며, 오른쪽에 독도라는 이름 높은 아우 섬을 거느리고 있으니 '애달픈 국토의 막내'도 아니다.

물론 그의 발언은 시적 수사였겠지만, 과학적 언어로 재단한다면 유치환은 울릉도를 잘 알지 못했다고 하겠다.

울릉도, 동해의 끝이 아니다. 바닷물 아닌 땅의 끝까지 가고자 한다면, 동해에서는 독도에 가야 한다. 동해에서 가장 동쪽에 있는 섬은 바로 '독도'이기 때문이다.

독도는 울릉도에서도 동쪽으로 87.4㎞ 더 나아가야 한다. 이 섬[島]은 돌[石]로 이루어졌으므로 자연히 그 이름이 석도(石島)라 붙여졌다. 그런데 서해안과 남해안 일대 사람들이 '돌'을 '독'이라고도 말하는 데 따라 뒷날 '독도(돌섬)'로 두루 쓰이게 되었다. 이는 조선시대에 전라도 사람들이 울릉도로 많이 이주하여 살았다는 역사적 사실을 말해주는 언어학적 증거이기도 하다.

▲ 독도의 풍경. 희미하게 보이는 흰색 건물은 독도경비대.
ⓒ2007 정만진
독도가 한자로 석도(石島) 아닌 독도(獨島)로 표기된 것은 후대 사람들이 평소 독도를 동해 한복판에 외롭게[獨], 홀로[獨] 떠 있는 섬이라고 강하게 인식해온 결과이다. 하지만, 온 국민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으므로 독도는 결코 외롭지 않으며, 더군다나 동도와 서도가 사이좋게 서로 의지하고 있으니 홀로 망망대해를 지키고 있는 외딴 섬도 아니다.

거기에다가, 울릉군은 홈페이지를 통해 독도가 그렇게 멀리 외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는 점을 하루도 빠짐없이 강조하고 있다.

"울릉도에서는 독도의 조망이 가능하나 일본 오끼섬에서는 불가능하다."

표현이야 '조망' 운운하며 에둘렀지만 속뜻은 말할 것도 없이 '독도는 우리땅'이란 얘기다. 그런데 일본에서 독도가 보이든 보이지 않든 그게 우리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본래부터 지금까지 어느 한시도 빠짐없이 독도는 한결같이 '우리 땅'이었거늘!

▲ 독도 위를 새 한 마리가 날고 있다. 안정복의 영혼인가?
ⓒ2007 정만진
그렇다면, 서해의 끝은 어디인가?

제주도, 남해의 끝인가. 아니다. 남해의 땅끝은 마라도다. 가보지 못했지만 그렇게 배웠다. 1883년부터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했는데 그로부터 124년이나 흐른 2006년 12월 31일 현재 남자 54명, 여자 50명, 모두 합해서 104명이 살고 있다(2007년 7월 3일 마라리 홈페이지). 작은 섬이란 얘기다.

그렇다면, 서해의 끝은 어디인가? 흑산도인가? 전라남도는 서해의 남서쪽 땅끝이 신안군 '가거도'(일본 강점기 때 명칭은 소흑산도)라는 관광객 모집용 홍보 리플릿을 만들어 전국에 살포하고 있다. 남서쪽 끝이라고 하니 틀린 말은 아니다.

어쨌든, 마라도보다 약 300년 전인 1580년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해 현재 540명 정도 거주하는 가거도는 본래 '아름다운 섬'이란 뜻에서 가가도(可佳島)라 하던 것을 1896년부터는 '살만한 섬'이라 하여 '가거도(가능할 可, 살 居, 섬 島)'로 바꿔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 역시 가보지 못했다.

그런데 이 섬은 서해의 끝자락에 있으면서도(동경 125도 7분) 남해에 근접해 있는 지리적 조건 때문에 풍랑이 심하거나 폭풍우가 몰아칠 즈음에는 동지나해(동중국해)에서 고기를 잡던 중국 배들까지 피해와 말 그대로 때 아닌 파시(波市)를 이룬다고 한다. 그러나저러나, 마라도와 가거도에는 발걸음을 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눈으로 풍광을 바라보지 못했으니 단 한 장의 사진도 직접 찍어본 적이 없다.

울릉도를 지나야 갈 수 있는 동해의 독도, 제주도를 지나야 갈 수 있는 남해의 마라도, 흑산도를 지나야 갈 수 있는 서해의 가거도는 모두 작은 섬들이다. 인구는 세 곳 다 합해봐야 646명이다(독도에도 민간인이 2명 산다). 독도경비대의 숫자는 알 수가 없으니 세 섬의 사람 수를 정확하게 명기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어쨌거나 다 합해봐야 백령도의 약 1만 명에는 턱없이 모자랄 터이다.

그에 비하면 백령도는 울릉도보다도 더 커서 우리나라에서 8번째 큰 섬이다. 백령도는 소청도, 대청도보다 더 멀리 있지만, 그 섬들이 백령도보다 훨씬 작으니 이 또한 독도, 마라도, 가거도와는 천양지차다.

그뿐만 아니라 백령도는 2006년 12월 31일 현재 남자 2453명, 여자 2263명, 합해서 4716명이 살고 있는데(2007년 7월 3일 백령면 홈페이지), 주둔 군인들까지 합하면 약 1만 명 정도의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다. 그러니 독도와 마라도, 가거도와는 차원이 다른 섬이다.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도 가거도, 마라도와는 차원이 달라서 이미 신석기 시대부터로 여겨진다.

백령도에 가야 하는 이유

 
▲ 진촌리 패총. 백령도에서 확인되는 선사유적이다. 옹진군 홈페이지에 따르면 1958년 서울대학교 학술조사단이 발굴, 발표하였다고 한다.
ⓒ2007 정만진
이제 백령도에 가 보아야 하는 이유를 하나하나 정리해보아야겠다.

첫째, 백령도는 서해에서 가장 북쪽이자 가장 서쪽에 있는 섬이다. 백령도는 동경 124도 5분에 위치하고 있어 가거도보다도 더 서쪽에 있고, 북위 37도 5분에 위치하고 있어 서해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섬이다.

실제로 북한 옹진반도와 백령도의 거리는 12km에 지나지 않으니 만약 육지라면 차량으로 10분, 걸어서 세 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지척에 서로 자리하고 있다. 북한에 가장 가깝고, 중국에 가장 가깝다. 동쪽으로 독도, 남쪽으로 마라도에 가보아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서쪽으로 백령도에 가보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 땅을 두루 밟아보겠다고 작심한 사람이라면 반드시 백령도에 가보아야 하는 첫 번째 이유다.

둘째, 백령도는 통일의 땅이다. 북한과 가장 가깝게 있는 섬이니 분단의 아픔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철조망과 초소, 병사들, 출입 금지 구역, 지뢰 등이 우리의 마음속에 평화와 통일에 대한 강건한 의지를 샘솟게 해줄 것이다. 게다가 백령도는 지금은 비록 북한 땅을 마주하고 있지만 머잖아 통일조국의 서쪽 끝을 방어하는 땅이 될 테니 어찌 서둘러 방문하지 않을 것인가. 백령도는 통일을 염원하는 사람으로서 반드시 가보아야 하는 섬이다.

▲ 철조망에 가린 해안 풍경. 내륙에서는 낯설지만 백령도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픙경이다.
ⓒ2007 정만진
셋째, '백령도를 거점으로 적지인 북한땅 깊숙이까지 침투하여 인민군의 작전 교란과 미처 피난을 못하고 숨어 있던 애국 청년들의 구출 등으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전사한 군번 없는 반공 청년들의 얼을 길이 전하고자 하는 뜻에서 1961년 8월 15일 건립하였다.'

옹진군 홈페이지에 나오는 동키부대의 '반공 유격 전적비'에 대한 소개다. 백령도에 가면 동키부대가 당시 사용하던 막사와 우물도 볼 수 있다고 한다.

어찌 가보고 싶지 아니한가. 특히 나는 30년 전 바닷가 철조망 앞에서 M16을 들고 보초를 서는 병사였다. 내가 초병으로 근무했던 지역은 그 이후 공단으로 바뀌면서 철조망도 없어지고 군 부대도 철수했다. 백령도에는 예나 지금이나 해병대가 주둔하고 있고, 바닷가 근무를 서고 있다. 나의 선배들과 후배들이 분단의 현실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는 백령도,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기필코 가보아야 하는 곳이다.

넷째, 신석기 때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한 백령도는 아득한 저 옛날 고구려가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을 물리쳐 삼천리 금수강산의 자존심을 지켜주었던 유서깊은 역사적 무대다. 자고로 나라가 자주독립을 유지하려면 외세의 침입을 막아내어야 한다. 백령도는 오랜 역사를 통해 우리에게 자존의 존엄성을 깨우쳐주는 곳이다. 중국 땅으로 가는 바다의 길목 백령도에서 서해바다를 바라보며 다시 한번 민족의식을 가다듬어야 한다.

다섯째, 고구려 장수들은 백령도 서쪽 끝 두무진에서 투구를 쓰고 칼을 든 채 당나라를 바라보며 작전회의를 했을 것이다. 그들의 모습이 그대로 화신한 양 거대한 바위들로 남아 있는 두무진은 '제2의 해금강', '서해의 해금강'이라 칭송받는 명승이다(국가 지정 명승 제8호).

어찌 직접 눈으로 확인하여 그 즐거움을 만끽하지 않으랴. 나는 내 눈을 즐겁게 하여 정신까지 상쾌하게 해줄 의무가 있다.

마음만은 한없이 상쾌하다

 
▲ 투구 모양의 기암괴석들. 두무진 포구 앞 바다 속에는 이런 모양의 바위들이 많이 모여 있다. 마치 장군들이 회의를 하고 있는 듯하다.
ⓒ2007 정만진
여섯째, 백령도 앞바다는 심청이 빠져 죽은 인당수다. 백령도에서 바라보면 눈으로 바로 확인되는 북한땅 옹진반도의 서쪽 끝은 장산곶이고, 그 앞바다는 인당수다. 백령도 앞바다가 곧 심청이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고 빠져 죽은 인당수인 것이다. 그래서 백령도에는 1999년 인당수가 잘 보이는 곳에 심청을 기리는 기념관(심청각)과 동상이 세워졌다.

그뿐만 아니라, 심청이 부활한 곳도 백령도 땅이다. 그러니 당연히 백령도에 가보지 않을 수 없다. 국어나 문학 교과서에서 그토록 심청전을 배웠고, 효도를 실천해야 인간답다고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으면서 심청의 죽고, 다시 부활한 백령도에 가보지 않는대서야 말이나 되는가.

일곱째, 백령도에는 비행기가 뜨고 내릴 수 있는 모래사장이 있다. 세계에 단 두 곳밖에 없는데 그 중 한 곳이 바로 백령도의 사곶해변이다. 다른 한 곳은 이탈리아의 나폴리 해변이다. 그러나 나폴리의 것은 아주 규모가 작아 사곶해변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모래사장에서 달리기 연습을 하면 일반 운동장에서 실제 경기를 할 때 속력이 잘 나오는 것은 모래사장이 사람이 밟아도 푹푹 빠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곶해변의 모래밭은 비행기도 이착륙을 할 수 있다니! 어찌 가보고 싶은 마음이 요동을 치지 않겠는가!

새벽 4시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인천을 향해 출발한다. 인천부두에 가서 백령도행 배를 타려면 대구에서는 늦어도 지금은 일어나야 한다. 몸은 좀 무겁지만 마음만은 한없이 상쾌하다. 마치 군대 복무를 마치고 제대하는 날만 같다.

백령도는 군인들이 많이 있는 분단 조국의 현장인데 왜 그곳을 방문하는 내 기분은 이처럼 가벼울까. 아마 후방에 근무하는 병사들이 철책선에서 고생하는 전방의 군인들을 볼 때 이상하게 미안해지는 심리와도 같을 듯하다. 분단 조국을 살면서 아직 한 번도 백령도에 가보지 않았다는 것이 마음의 짐으로 남았던 모양이다. 이제 그 짐을 벗는 날이니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제대하는 기분이 드는 것인가! 오마이뉴스 | 기사입력 2007-07-05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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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eauty and the Beast (미녀와 야수,1991)
                                     yoshikazu mera, counter-ten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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