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여행/항주 서호는 사람을 취하게한다
그러나 마음을 가라앉히고 앞뒤를 재보아도 전화가 불통인 것 외에는 문제는 없는 것 같았다. 상대방이 사기를 치려했다면 내가 지금 뭔가 손해를 보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짐 보따리를 내려놓고 경비소에 들어가서 사정을 이야기하니 대신 전화를 걸어 주었다. 경비원은 몇 번을 시도하다가 드디어 통화가 되었는지 무거운 배낭을 들어 주겠다면서 먼저 앞장서는 것이었다. 한참을 걸어가니 담배를 피우며 경비원에게 아는 척을 하는 남자가 나타났다. 어색해 하면서 "아들이 가게를 하는데 손님들이 계속 전화를 해서 핸드폰이 안 된 것입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내가 통화한 분은 아들이었던 것이다. 일단 안도를 하고 따라 들어가니 40평도 더 되어 보이는 꽤 넓은 아파트였다. 자수성가하여 중국에서 자리 잡은 교포로 보였다. 3살 된 손자를 안고 있는 할머니가 반가워하며 저녁밥을 차려 주었다. 서울에서 10년 넘게 살다가 손자 돌봐 주려고 중국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할머니는 그때 배운 한국요리 덕분에 민박집을 찾는 사람들에게서 '밥맛이 좋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고 자찬(自讚)을 하셨다. 말씀대로 음식 솜씨가 좋았다. 너울거리는 초록의 버드나무와 푸른 호수
천천히 단교(斷橋)를 향해 걸어갔다. 단교는 고산(孤山)으로부터 도로가 이곳에서 끊어진다고 하여 '단교'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백제(白堤)의 첫 번째 다리가 된다. 백제는 당나라 때의 시인 백락천이 항주자사로 있으면서 쌓은 제방이다. 서호의 10경에 '단교잔설(斷橋殘雪)'이 있는데, 바로 이 단교에 눈이 내리면 다리 가운데부터 눈이 녹기 시작하는데 멀리서 보면 마치 다리가 끊어진 것처럼 보인다고 하여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양쪽 둑에 가로수로 심어 놓은 올올이 가늘게 늘어진 초록의 버드나무와 푸른 호수가 너울너울 춤을 추었다. 단교를 지나는 내 마음도 너울거렸다. 신나게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내가 항주에 산다면 서호 주위를 원 없이 걷다가 필히 자전거를 배워서 백제(白堤)를 따라서, 소제(蘇堤)를 따라서 신나게 달릴 것만 같다. 소제 서쪽 끝에 이르니 '평호추월(平湖秋月)'이라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당나라 때에는 이곳에 '망호정(望湖亭)'이라는 정자가 있었다고 한다. 잔잔한 호수에 비친 가을 달을 감상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 바로 이곳이라는 데 역시 서호 10경에 드는 절경이다. 이곳 중앙공원부두에서 유람선을 탔다. 성인은 45원이다. 20여명을 태운 유람선은 천천히 호수를 가로질러 가더니 '호심정(湖心亭)'이라는 곳에 내렸다. 서호에는 호심정, 완공돈(阮公墩), 소영주(小瀛洲) 등 세 개의 섬이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작은 섬이 호심정이다. 아담한 작은 섬에 호심정, 명추정(明秋亭), 진로정(振鷺亭)이라는 세 개의 정자가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청나라 건륭 황제가 밤에 서호에서 유람하다가 호심정에 올라 끝없이 펼쳐진 아름다운 풍광을 보고 감흥이 일어 '충이(虫二)' 두 글자를 남겼다고 하는 비석이 있다. 세상과 동떨어진 성난 조수는 아침 해를 삼키고 정자 멀리 푸른 물은 청산을 껴안았네. (隔市怒潮呑旭日 遠亭綠水拱靑山) 주련에 있는 시 한 구절을 읽고 다시 배를 타고 서호에 있는 세 개의 섬 중에 가장 크다고 하는 삼담인월(三潭印月)로 향했다. 삼담인월은 호수 가운데 섬이 있고 섬 가운데 다시 호수가 있다고 하여 '소영주'라고도 불린다. 호수에 뛰어든 이, 이태백 뿐이었을까
세 개의 석탑에는 각기 5개의 큰 구멍이 있는데, 석탑 안에 불을 밝히면 15개의 구멍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이 호수에 반사되어 하늘에 있는 달과 호수에 비친 달빛과 어울려 황홀하게 아름답다고 한다. 이곳을 무대로 한 영화도 있다고 하는데 영화는 아는 것이 없어서. 문득 고등학교 때의 국어선생님이 생각났다. 우리들이 공부하기가 싫어서 "선생님 연애했던 얘기 해주세요"라고 하자, 애인과 함께 경포대를 갔던 이야기를 해 주셨다. 선생님께서는 "하늘에 떠 있는 달과 잔잔한 호수에 반사된 달빛과 두 개의 술잔에 비친 달빛, 그리고 그녀의 눈동자에 비친 달빛이 있었네"라고 낭만적인 연애담을 늘어놓자, 한창 사춘기였던 우리는 책상을 치면서 환호하다가 쉬는 시간 내내 '달빛이 몇 개였더라' 하면서 헤아린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약간 유치한 고전적인 담론이었지만 국어 선생님 덕분에 국문과를 선택한 학생도 더러 있었다.
푸른 대나무 숲길을 잠시나마 걸어갈 수 있는 풍치가 있어 좋은 죽경유통(竹徑通幽)을 지나자니, 소제를 만든 백락천의 시가 떠오른다. 스님 앉아 바둑 두는데 바둑판 위 대나무 그늘 시원하네. 대 그늘에 사람은 아니 보이고 바둑돌 놓는 소리만 똑 똑. 山僧對碁坐 局上竹陰淸 映竹無人見 只聞下子聲
유람선을 타고 다시 부두로 갔다. 풍우정(風雨亭)이란 정자에 앉아 눈앞에 끝없이 펼쳐진 연꽃을 감상하고 악묘(岳廟)로 이동했다. (오마이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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