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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여행/1969개의 전설을 품은 곳, 하롱베이

향기男 피스톨金 2007. 8. 29. 10:23

 

        1969개의 전설을 품은 곳, 하롱베이

천년 자연이 빚어낸 갖가지 모양의 돌섬숲이 파노라마로
 

“비 때문에 계속 앞으로 가기가 힘든데 아무래도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베트남 하롱베이에 태풍이 들이닥쳤다. 앞좌석에 앉아 있던 가이드가 뒷좌석에 있는 나를 보고 큰소리로 외쳤다.

 

한국의 장대비와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굵은 빗방울이 쉴 새 없이 떨어졌다. 가시거리 제로였다. 운전수에게 하롱베이 전망대까지만 가 보자고 했지만 그는 더 가도 아무것도 볼 수 없다며 신경질을 냈다. 하롱베이의 첫인상은 이러했다.

 

태풍은 베트남 사람에게도 불청객이었다. 하롱베이에 태풍이 찾아오면 하노이에 묵고 있던 관광객은 하롱베이 관광을 포기한다. 하롱베이에는 한 달에도 몇 번씩 이렇게 태풍이 찾아와 상인들의 하루 장사를 망쳐놓는다고 했다. 하노이에서 출발할 때 현지 가이드가 “태풍이 오는데도 정말 하롱베이에 가겠냐”고 물었다. 나는 “당연하다”고 답했다.

 

지난 7월 5일 베트남 하노이 홍강을 지나자 자동차는 왕복 2차선 고속도로에 들어섰다. 가는 길 내내 폭염의 연속이었다. 뜨거운 햇빛을 피할 곳은 찾기가 힘들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잠깐 들러 진한 베트남 커피로 목을 축였다. 맥주잔에 끈적하고 진한 커피와 함께 날이 선 얼음조각들이 담겨 있었다. 현지인 운전기사는 맥주잔을 손에 들고 잔을 빙빙 돌리며 얼음을 녹였다. 커피는 독했다. 세 시간 걸려 하롱베이에 도착했지만 퍼붓는 빗속에서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쉬운 마음에 바이차이 선착장에 잠깐 들렀다.

 

하롱베이 유람선이 수십 척 정박해 있었다. 외국인 관광객 몇몇이 비옷을 입은 채 선박터미널 처마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2층집을 바다 위에 지어놓은 듯한 베트남 유람선이 신기해 카메라에 담았다. 비옷을 입고 있는 앳된 얼굴의 베트남 여성이 베트남 커피 한 잔을 건넸다.

 

그는 16살이라고 했다. 유람선에서 온 식구가 함께 살고 있다고 했다. 비옷 속에 개량된 아오자이처럼 보이는 하얀색 원피스를 입고 있던 그는 서투른 영어로 “내일 우리 배를 타라”고 했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이드가 하룻밤에 80달러짜리 숙소가 있는데 묵겠냐고 물어왔다. “오케이!”라고 답하자 운전수가 인근 숙소로 차를 돌렸다. 수영장과 카지노클럽까지 갖춘 리조트형 특급 호텔이었다. 태풍이 오는 바람에 예약 포기자가 많이 생겨 특급호텔을 한국돈 8만원에 묵을 수 있게 됐다.

 

객실 커튼을 젖히면 하롱베이가 한눈에 보이는 이 호텔 최고의 방이었다. 그러나 가이드는 “체크아웃할 때까지 하롱베이를 못 볼 수도 있다”고 했다.

 

다음 날 오전 8시 조용히 눈을 떠 커튼을 젖혔다. 흐린 날씨였지만 시야에 수백 개의 돌섬이 들어왔다. 자욱한 안개 속에서 돌섬은 신비해 보였다. 비는 그쳤다. 몇몇 유람선이 돌섬숲 곳곳에서 흐르다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재빨리 선착장에 나가 빈 배를 찾았다. 비가 그치자 숨어 있던 관광객이 모두 선착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비옷을 입은 베트남 소녀가 떠나가는 유람선 위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외국인 관광객을 한아름 태우고 그의 배가 선착장을 빠져나갔다. 배는 점점 안개 속으로 스며들었다. 돌섬 꼭대기만 간신히 눈에 들어왔다. 하얀 치맛자락이 바람에 펄럭이다 이내 사라졌다.

 

하롱베이는 전 세계인의 가슴에 베트남의 서정적 풍경으로 자리잡은 세계 최고 관광지 중 하나다. 한국에서 베트남 하노이까지 직항 비행기로 4시간30분. 하롱베이는 하노이 동쪽으로 180㎞ 떨어진 곳, 자동차로 세 시간 거리에 있다. 하롱베이에서 조금만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중국 국경이다.

수평선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돌섬이 늘어서 있었다. 돌섬숲은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을 만큼 길게 늘어져 있었다. 날이 개기 시작하자 가장 가까운 돌섬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 뒤로 희미하게 돌섬 무더기가 겹겹이 쌓여 있었다. 모두 1969개의 섬이다.


이 지역은 석회암 지대다. 돌섬은 수천 년에 걸친 침식·풍화작용을 겪은 후 지금의 기이한 돌섬숲이 됐다. 각 돌섬은 코끼리, 거북이, 사람 머리, 사람 손가락 등 제각각의 모양을 갖췄고, 이는 각 돌섬의 이름이 됐다. 지금도 이 돌섬의 밑둥은 바닷물에 계속 깎여 나가고 있다고 한다. 오랜 세월은 이 비경을 수장시키고 말 것이다.

 

하롱베이는 1994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자연유산 목록에 등재됐다. 영화 ‘인도차이나’로 서양에 알려진 이후 베트남 관광의 필수 코스가 됐다. 이 외에도 하롱베이는 영화 ‘굿모닝 베트남’, 피어스 브로스넌과 양쯔징이 주연한 영화 ‘007 네버다이’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태풍이 잦아든 아침, 하롱베이에 동이 튼다. 유람선 한 척이 돌섬숲으로 떠났다.


유람선을 타고 하롱베이 돌섬숲 속으로 깊이 들어갔다. 돌섬숲 속에 사람이 살고 있었다. 유람선은 수상마을에 잠시 정박했다. 수상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양식한 생선을 팔고 있었다.

 

수상마을 주위에서 한 베트남 여성은 작은 배에 혼자 올라 직접 노를 저어 이곳 저곳 다니며 과일과 음식을 팔았다. 움직이는 편의점이었다. 배 안에는 한국 상표가 새겨진 고추장도 있었다. 한국 관광객은 이곳에서 다금바리 회를 먹는다고 했다. 구걸을 하는 배도 있었다.

 

모자(母子)로 보이는 여성과 어린 아이가 탄 배 서너 척이 내가 탄 유람선을 빙빙 돌았다. 대여섯 살 정도로 보이는 어린 아이는 “플리즈, 달러 달러”를 외쳤다.

‘하롱(下龍)’은 ‘용이 내려왔다’는 뜻이다. 가이드는 용이 내려와 용이 휩쓸고 간 자리에 남은 흔적이 지금의 하롱베이라는 전설이 있다고 했다. 하롱베이에는 돌섬뿐만 아니라 곳곳에 석회동굴도 많다. 1993년 발견된 티엔쿵(Tien Cung·하늘의 궁전) 동굴은 내부에 온갖 조명 장치를 설치해 관광객을 맞았다. 베트남 사람들은 종유석과 석순에 일일이 이름을 붙여 이야기를 만들었다. 거북이와 사자를 닮은 종유석, 남자의 성기를 닮은 종유석에 대해 현지인이 설명했다.

 

티엔쿵 동굴뿐만 아니라 돌섬의 곳곳에는 드럼(Drum) 동굴, 길이만 2㎞가 넘는 항한(Hang Hanh) 동굴, 보나우(Bo Nau) 동굴 등도 있었다. 이 동굴은 수세기 동안 해적의 은거지가 되기도 했다고 한다. 하롱베이의 돌섬은 바닷물에 의해서만 깎여나가는 것이 아니었다. 이곳 상인들이 동굴의 종유석을 깎아 작은 기념품으로 판매하고 있었다. 

 

오후가 되자 언제 태풍이 왔었냐는 듯 구름 사이로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기 시작했다. 선상에서 간단한 점심 식사를 마칠 때 유람선은 다시 선착장에 도착했다. 배를 기다리는 관광객이 우르르 뱃전으로 몰려왔다. ▒

위클리조선 | 기사입력 2007-08-28 17:10 기사원문보기


/ 하롱베이(베트남) = 글 김경수 기자 kimks@chosun.com
사진 유창우 조선영상미디어기자 canyou@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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