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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김장수국방장관 "꼿꼿인사 북 항의에 '나 원래 그렇다'고 해"

향기男 피스톨金 2008. 1. 26. 21:31

 

            대한민국 김장수국방장관

   "꼿꼿인사 북 항의에 '나 원래 그렇다'고 해"



지난해 10월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악수할 때 허리를 숙이지 않아‘꼿꼿장수’란 별명이 붙은 김장수 장관. 그는“평양에서‘꼿꼿한 인사’를 가지고‘결례’라고 하기에‘나 원래 그렇다’고 대답했다”고 말했다. /이명원 기자 mwlee@chosun.com



지난해 10월 제2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평양 4.25 문화회관 광장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에서 김장수 국방장관이 고개를 숙이지 않고 꼿꼿한 자세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조선일보DB



유용원 군사전문기자

[인터뷰] '꼿꼿 장수' 김장수 국방장관 "유명해져 사인해달라는 사람도 꽤 있어" 盧대통령“NLL안건, 맘대로 하라” 아들은 현역 소대장… 가끔 통화 내 소유 아파트·부동산 전혀 없어
 

"뭐야? 인터뷰하러 온 거야?" 지난 15일 오후 국방부 신청사 2층 집무실에 기자가 사진기자와 함께 들어서자 김장수 장관은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 장관은 보좌관으로부터 차 한잔 하는 것으로 보고받은 상태였다. 김 장관은 그동안 여러 언론으로부터 인터뷰 요청을 받았으나 "괜한 오해를 사기 싫다"며 모두 거절해왔던 터였다.

손사래를 치며 마다하던 김 장관과의 인터뷰는 약 50분간 어렵사리 이어졌다. 그러나 김 장관은 인터뷰가 끝난 뒤에도 "새 정부의 조각 명단이 발표되기 전에 보도되면 언론 플레이 한 것으로 오해산다"며 강력히 게재 연기를 요청, 결국 26일자로 게재를 늦췄다. 김 장관에게 군 안팎의 관심이 쏠려 있는 유임설부터 물어봤다.

―유임설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유임 제의를 받았습니까?

"그런 적 없어요. 지금 그런 얘기를 할 사람이 누가 있나요. 나는 원론적인 얘기만 했습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법이다' '정권이 바뀌면 국무위원들은 모두 교체되는 것이다'라고. 그것도 딴 (외부)사람에게 한 것이 아니라 우리(국방부 내)끼리 한 것입니다."

대통령직 인수위 고위 관계자가 유임 의사를 타진했다는 얘기가 보도됐는데요.

"자이툰 파병연장안이 국회를 통과하기 전날인 지난해 12월 27일
박진 의원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박 의원이 인수위 외교통일안보 분과위 간사로 임명된 다음일 거예요. 내 기억으로는 박 의원이 '장관님 그동안 잘해주셨고 국민들도 좋아하고 인기가 좋다'고 얘기했던 것 같아요. 나는 그냥 웃었지. '아이고 장관 끝까지 잘하라는 뜻으로 알겠습니다' 그렇게 답변했던 게 다에요. "


지난 11일 이명박 당선자가 국방부를 방문했을 때 단둘이 있을 기회가 있었는데 거취와 관련된 얘기는 없었습니까?

"(손을 내저으며) 에이, 군 수뇌부 격려하러 오신 자리인데… 그런 얘기를 할 성격의 자리도 분위기도 아니었습니다."

―국방장관을 하고 싶어하는 분들이 꽤 있는데 장관이라는 자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장관은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어떤 사명이 부여될 때 되는 것이지. 오로지 임명권자가 판단할 일입니다."

화제를 그를 유명하게 만든 지난해 10월 남북 정상회담 때로 돌렸다.

―남북 정상회담으로 평양 다녀온 뒤 많은 사람들이 알아봐서 놀라지 않았습니까?

"많이 알아보지요, 알아봐. 공관 뒷산에 올라 운동을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알아보고 인사도 하고 기념사진도 같이 찍으려고 했어요. 사인해 달라는 사람도 꽤 있었고. 몇 번 그러고 나니 알아보는 사람 많은 것도 부담스럽더라고. 그래서 모자 쓰고 등산을 했더니 알아보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김정일 위원장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은 것은 작심하고 일부러 그러신 거지요?

"빳빳이 서서 인사하는 것이 평소의 자연스런 내 모습은 아닙니다. (의도적으로 그랬다는 말을 직접 하기는 부담스러운 듯) 내가 의도적으로 그랬다는 말은 않겠지만…."

평양 가기 전에 예비역 장성들이 장관께 김 위원장에게 인사하지 말라고 조언해서 그랬던 것은 아닙니까?

"그런 조언은 없었습니다. 내가 결정할 수 없는 충고를 많이 받았어요. 예를 들면 '평양 정상회담에 가지 마라'는 등…."

―정상회담 뒤에 11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 국방장관 회담 때 북측에서 '꼿꼿한 인사'와 관련된 항의는 없었나요?

"회담 첫날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이 기조연설 때 '경애하는 지도자 동지께 결례한 장본인이 국방장관 회담의 남한 대표로 왔다'고 한마디 하더군요."

―그런 얘기 듣고 어땠습니까?

"기분이 몹시 나빴어요. 내가 기조발언을 할 순서가 됐을 때 '내가 뭘 결례했는지 묻고 싶다'고 반문했습니다. 회담 시간엔 해상불가침경계선 문제만 주로 얘기하다 저녁때 식사를 하면서 '도대체 내가 뭘 결례했느냐'고 따져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북측에서 '우리
국방위원회가 남조선 국방장관이 국방위원장께 인사를 하지 않았다고 항의 전화를 많이 받았다. 왜 그랬느냐'고 해요.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께서 (육로로 평양을 방문하기 위해) 군사분계선(MDL)을 걸어서 넘었을 때 영접 나온 북측 대표 인사도 노 대통령께 고개를 숙이지 않더라'고 했습니다. 북측이 다시 '그래서 그랬느냐'고 물어 '나 원래 그렇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지키느라 우리 내부적으로도 어려움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평양으로 떠나기 전 대통령께 사전보고를 하고 승인을 받았었습니다. 보고를 드린 뒤 지침을 달라고 했을 때 (노 대통령이) '국방장관 뜻대로 하라'고 해 국방장관 회담에서 여유가 있었습니다."

북한 사람들이 말을 잘하는데 언변이 달리지는 않았습니까?

"(국방장관 회담에서) 유연성, 순발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의 강점이라고 느꼈습니다. 북한은 (미리 짠) 시나리오에 의존하니 우리를 못 당하더군요. 특히 국회
상임위, 인사청문회 등에서 일문일답으로 답변하면서 단련된 것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또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에 비하면 내가 젊은 신세대 국방장관이었던 것도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나도 보수라고 하지만 원로들께서 보시면 신세대 장관이에요."

―'꼿꼿 장수' '소신 장관'으로 부각된 것에 대해 본인은 어떻게 받아들이십니까?

"(국민들에게) 고맙기도 하지만 부담스럽지요. 솔직히 내가 국민들에게 한 일이 뭐 있습니까. 무엇이 국민들에게 어필이 됐는가를 생각해보면 내가 한 일이 없어요. 나는 내 임무에 맞는 역할만 한 것인데 그렇게 어필된 것이 부담스럽습니다."

김장관은 1996년 몇 달 동안 온 나라를 뒤흔들어놓은 강릉 잠수함 침투 사건 때 육군 1군사령부 작전처장으로 최일선에서 작전을 지휘했다. 당시 이가 아픈데도 치과에 가지 못해 뒤에 틀니를 해야 했다. 
 

―지금도 틀니를 하고 있습니까?

"처음엔 틀니를 하고 있다가 군단장 시절 윗니 5개를 임플란트 했습니다. 임플란트 비용이 비싸서 군 통합병원에서 했는데 다행히 지금 민간 의사들에게 물어봐도 별문제 없이 잘 했다고 합니다."

―이 아픈 것은 못 참는 법인데.

"강릉 잠수함 사건 때는 정말 집에 들어갈 틈이 없을 정도로 바빴습니다. 치과 갈 시간이 없었지요. 아픈 것은 계속 진통제를 먹으며 견뎠습니다."

―아들이 지금 중위입니까?

"육군 수도기계화사단에서 소대장을 하고 있습니다."(김 장관의 아들은 육군사관학교 62기 출신이다.)

―아들이 아버지 덕을 좀 보나요, 아니면 부담스러워합니까?

"부담스러워합니다. 내가 어떻게 도와줄 수 없고 네가 군인의 길을 택했기 때문에 너 스스로 극복할 과제라고 얘기하곤 합니다. 나는 지켜볼 뿐이다. 그렇다고 아버지를 바꿀 수 없지 않느냐라고요. 상급자가 (아버지를 의식해) 네게 아주 친절하게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네가 알아서 판단하고 처신해야 한다고 얘기를 합니다."

―아들이 바닥 군심(軍心)도 종종 전합니까?

"아! 많이 하지요. 주로 초급 장교들의 복지 문제, 애환 등을 얘기합니다. 아침, 저녁으로 구보 후 온수(溫水)가 안 나와 찬물로 샤워해 고생한다, BOQ(독신자 숙소)가 엉망이다, 소대원 관리하기 위해 내 봉급에서 돈 많이 쓴다, 검열이 너무 많다, 훈련시켜야 하는데 훈련 외에 잡무가 너무 많다…."

―그런 얘기 들을 때 뭐라고 하십니까?

"소대장은 원래 그렇게 하는 것이다, 국민의 군대이고 징병제로 의무 복무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 한다, 부모들은 너를 믿고 있다, 네 임무다, 우리 한국군의 특징이다, 모병제 하면 그런 일 없을 것인데 국민 개병제하에선 불가피하다, 이런 충고를 해줍니다."

―아들이 이메일로도 그런 얘기를 하나요?

"나는 이메일은 해킹 가능성 등 보안문제 때문에 쓰지 않습니다. 주로 전화로 얘기합니다. 저보다는 제 엄마에게 초급 간부들의 애환을 더 많이 얘기하는 것 같습니다. 때로는 '아버지는 이해 못 한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아들의 지휘관들이 부담스러워하지는 않습니까?

"(웃으며) 아들이 저보다 (직속상관인) 자기 중대장이나 대대장을 더 무서워하는 듯합니다. 저하고 통화하다가도 '아 지금 중대장님 오십니다'라며 전화를 바로 끊곤 합니다."

―국회 인사청문회 때 15년이나 된 1993년식 콩코드 차량이 화제가 됐습니다. 지금도 갖고 계십니까?

"갖고 있어요. 지금은 내 딸이 쓰고 있어요. 그거 하도 뉴스에 나와 소형차 하나 사야겠어요. 사실 아무것도 아닌데. 콩코드는 10만㎞를 넘게 달렸지만 아직도 쌩쌩합니다. 관용차 외에 다른 차는 없습니다."

―집도 없으시지요?

"장관 그만두면 살려고 지금 전세 구하고 있어요."

―원래 집이 없었습니까?

"내가 준장 때 일산에 31평 아파트를 샀다가 사단장 등 지휘관을 나가면서 팔았습니다. 가족은 서울에서 계속 전세를 살았고요."

―재테크와는 거리가 멀었나 보죠?

"경제에 대해 너무 모르는 게 아닌가 하는데 사실 나도 월급 나오는 거 아끼고 저축해 가면서 살았거든. 딸 용돈 줄 때도 아주 아껴서 주고. 그런데도 재주가 없어서 그런지 집 장만이 쉽지 않더라고요."

―땅이나 다른 거 갖고 계신 것도 없나요?

"없어요. 헬기 타고 다니면서 저 많은 고층 아파트, 이 넓은 땅에 내 땅, 내 아파트 하나 없구나 하면서 스스로 측은하게 생각될 때도 있지만 내가 헛산 게 아니다, 한눈은 안 팔고 살았구나 생각합니다."

김 장관은 이 말 뒤에 "허허허" 하며 특유의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합참 작전본부장(중장)에서 대장으로 진급할 때 당시 연합사부사령관의 도중하차로 뜻하지 않게 자리가 생겨 진출하신 뒤 육군참모총장, 국방장관으로 승승장구했습니다. 운이 좋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까.

"그래요, 운이지요. 요즘
일본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관련 소설을 보는데 운이라는 것도 준비된 사람에게 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합참 작전본부장 때의 경우만 해도 열심히 일했다고 봅니다. 자이툰부대 파병지역을 키르쿠크에서 아르빌로 변경했는데 지금 보면 잘했지 않느냐, 당시 키르쿠크로 정했다면 지금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군인의 입장이 아니라 국민 입장에서 보면 잘됐다, 다행이라고 봅니다."

―오랜 지휘관 생활 중 지켜온 지휘 철학이 있습니까?

"통솔 차원에서 내가 가장 항상 강조한 점은 본인과 가족 등 최측근에 대해선 엄격해라, 대신 예하 지휘관과 참모들에 대해선 여유를 주라는 것이었습니다. 업무적인 차원에서는 '불필요한 것은 하지 마라, 꼭 필요한 것만 확실하게 해라'고 했습니다. 업무 간소화시키고 단순화시키고 통합시키라는 것입니다.

사단 작전참모가 바쁜 자리라고 하는데 내가 사단장 할 때는 오후 5시 되면 다 나와서 나와 함께 목욕탕에서 목욕했고, 참모 중의 한 사람은 내 등을 밀며 스킨십을 했습니다. 사단급 부대는 (정책)검토 보고나 논문연구 하는 곳이 아니다, 상부지시 받고 수행하는 곳이다 했어요. 검토 연구는 정책부서에서 하는 것이지요. 그리하지 않으면 참모, 보좌관들이 업무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부하들에게 꽤 인기가 있었겠습니다.

"(손을 저으며) 에이, 인기는 자기에게 도움 되면 좋게 봐서 올라가고 힘들고 고달프고 하면 나쁘게 봐서 떨어지는 그런 것 아니오. 하지만 아무리 힘들고 밤샘을 하더라도 인정받으면 힘들지 않고 사기가 올라갑니다. 전방부대의 작전상황을 제외하곤 과제가 있을 때 며칠 전 임무를 줘 여유를 갖고 일하도록 했습니다.

군단장 시절 우리 군단이 전투지휘훈련(BCTP)에서 전 육군 중 1등을 했는데 훈련 준비할 때 보니까 참모들이 난리였어요. 자기들 할 일 외에 군단장 할 일까지 챙겨주느라고. 그래서 '너희들은 헛일 하고 있다. 내가 할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너희들이 할 일이나 해라'고 했어요. 업무를 대폭 줄여줬지요. 업무를 단순화, 슬림화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군 원로나 선배 중 존경하는 분은 없습니까?

"지금까지 내가 4성 장군 되고 국방장관까지 되는 데 많은 분들이 도움을 줬는데 특정인을 거명하는 것보다는 사례로 들고 싶습니다. 내게 원칙을 가르쳐준 스승과 선배님들이 계셨고요, 제 잘잘못을 지적해주시고 발탁해 주신 분도 있고 친구 같은 선배도 계셨습니다. 업무에 모범을 보여주신 분도 있었고. 여기에 이른 것은 '김장수'가 똑똑해서라기보다 많은 분들이 날 지도해주신 덕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기가 높아서 앞으로 정치권에서 영입 제의가 있을 것이란 얘기가 많은데요, 정치에 관심이 있으십니까?

"인기나 여론은 안개와 같은 존재입니다. 안개는 산들바람에도 말 그대로 안개 걷히듯이 한순간에 날아갈 수가 있지요. 인기나 여론은 연속성이 없다고 봅니다."

'소신 장관'으로 유명한 김 장관이지만 그런 평가를 혼란스럽게 하는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전직 군수뇌부가 강력히 반대했던 전시 작전통제권(
전작권)의 한국군 전환(이양) 시기를 합의한 것이나, 선거용이라는 비판이 일었던 군 복무기간 단축을 결정한 것 등이 이에 해당된다.

―전직 군수뇌부나 보수단체가 전작권 전환 시기 합의에 강력히 반대했는데 2012년 4월로 합의한 것은 결국 상부의 지시에 따른 것 아닌가요?

"장관 취임 전에 전작권 전환 시기는 '2009년 10월 15일 이후 2012년3월15일보다 늦지 않은 시기'로 한미간에 합의된 상황이었고 미측은 전환 시기가 2009년이면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전작권 단독행사를 위해 정보·첨단 타격전력 확보 등 우리 군의 능력구비와 유리한 안보상황 조성을 전제로 최소 5, 6년이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한미 국방장관 회담 때 최종 시기를 2012년 3월 15일보다 더 늦은 2012년 4월 17일로 합의한 것입니다. 최상의 합의였다고 생각합니다."

 


―국방개혁에 따라 병력감축이 이뤄지는 상황에서 보수층이 우려하는 군 복무기간 단축을 결정하셨는데 그 배경은 무엇입니까?

"군 복무기간 단축은 매 선거 때마다 이슈화가 됐습니다. 장관에 취임했을 때 대체복무 제도와 복무기간 단축이 사회적 관심사였어요. 군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국가적 차원에서는 청년 인적자원의 조기 사회진출을 유도하고 국방개혁에 따른 병력감축으로 발생하는 잉여자원 해소를 위해 결심했습니다. 지난해 대선에서도 정치적으로 쟁점화되지 않은 데서 나타나듯이 충분히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봅니다."


◆김장수 장관은…

광주 출신으로 광주일고를 졸업했다. 그는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 서울대에 들어갈 수 있는 실력이었지만 여러 집안 사정으로 육사 진학을 결심했다"고 했다. 육사 27기로 임관한 뒤 야전군인의 길을 주로 걸어왔다.

육사 27기로 소위 계급장을 단 뒤 9사단 대대장, 7사단 5연대장, 수도방위사령부 작전처장, 1군사령부 작전처장, 6사단장, 합참 작전기획부장, 7군단장, 합참 작전본부장, 한미연합사부사령관, 육군참모총장을 지냈다. 사관학교 시절을 포함해 41년째 군생활을 하고 있다.

96년 강릉 잠수함 사건 때 1군 작전처장 했던 것이 특히 추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는 "초기에 차단선, 봉쇄와 전장(戰場)군기 문제가 있었는데 1주일이 지나니까 군기가 잡혔다"며 "산나물 채취 중인 민간인이 희생되는 등 민간인 피해가 생겨 아쉬웠지만 침투한 25명을 모두 잡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유용원 군사전문기자 bemil@chosun.com]

 

 

Tol & Tol - Last Night Serenade

 

 

                                      

   

                                   

                        
                                     조국 대한민국의 현재 시간입니다.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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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억속에 남을 즐거운 이시간을 위하여
                            따뜻한 가족 들과  마음과 마음에
                               기쁨이 함께 할 수 있도록
                              서로 이쁜 사랑들 나누시며
                           오손도손 행복한 시간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향기男피스톨金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