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해외한인무역협회 [world-OKTA]/월드-옥타 사람들

월드옥타 천용수회장/한국 기업들, 해외동포 기업인을 활용하라

향기男 피스톨金 2008. 8. 1. 12:05

세계의 韓商 네트워크 天龍洙 코스트 그룹 회장
“한국 기업들, 해외동포 기업인을 활용하라”

"북한사업/해외사업의 살아 숨쉬는 이야기들"

                                                                           
 
  한국타이어, 미샤 화장품 호주 판매 맡아 현지에서 크게 성공
 
     29세에 호주로 이민, 1억6000만 달러의 코스트 그룹 일궈    
                                                                           

 

金 南 成      月刊朝鮮기자 sulsul@chosun.com

 

가포르 창이 공항에서 서부 호주의 중심 도시 ‘퍼스’로 가는 여객기로 갈아탔다.
퍼스가 속한 서호주(wstern Australia)는 호주 전체 면적의 3분의 1일 차지하는 가장 큰 주(州)로, 남한 면적의 약26배에 달한다. 인구는 고작 205만 명인데, 이중 150여 만 명이 퍼스에 살고 있다.
자원 大國(대국) 호주의 석유, 철광석, 석탄, 비철 금속 등 각종 지하 자원 대부분이 서호주에 매장돼 있다.
유영찬 서호주 대표부 대표는 “지난 2007년 호주의 지하자원 수출의 50%이상을 서호주가 담당했다”고 했다.

호주 취재에 동행한 윤조셉(46)박사는 호주국립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고 호주에 정착, 호주 연방정부 산업자원부 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현재는 휴직한 후 세계해외한인무역협회 傘下(산하) 국제통상전략연구원장을 맡고 있다.

퍼스 공항에는 세계해외한인무역협회(World OKTA, 이하 월드 옥타) 天龍洙(천용수 55)회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천 회장은 지난 1983년 퍼스로 이민 와서 한국, 호주, 북한에 14개 계열회사를 둔 코스트(KOAST)그룹을 일궈냈다.
코스트 그룹의 지난해 매출액은 약 1억 6000만 달러, 천 회장은 지난 1992년부터 對北(대북) 무역과 광업을 시작한 1세대 대북 사업가로, 지난해 북한과 약 6000만 달러 이상 거래를 했다. 이는 북한과 거래를 하는 기업 중 단일 기업으로서는 최대의 교역액이다.



그는 2003년 북한 지역에 설탕 공급 독점권을 따내 한 해 약 12만t의 설탕을 공급했다. 그는 설탕 외의 조미료 등 필수 생필품도 북한에 공급한다.
북한 가정에서 사용하는 조미료의 대부분이 그의 회사를 통해 공급 되고 있다. 또 천 회장의 회사는 러시아에서 디젤유, 벙커C유 등을 구입해 북한 동해안의 광산에 공급한다. ‘북송선’으로 알려진 만경봉호 에도 기름을 공급했다. 그는 “만경봉호도 요즘은 기름이 없어 함흥항에 묶여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06년 11월 제 11차 해외 한민족 경제공동체대회에서 제 14대 월드 옥타 회장에 선출 됐다.

1938년 퍼스로 이민 온 천용수 회장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찾아간 프리맨틀 港(항)에서 한 외국인 선원을 만났다.
외국인 선원은 그에게 뭔가를 계속 사달라고 요구했다.
언어가 통하지 않았던 천 회장은 외국인 선원이 원하는 것을 종이에 적어, 약국으로 달려갔다. 외국인 선원이 그에게 사달라고 요구했던 약은’알부민’이었다.

船食사업으로 사업 기반 닦아

당시 호주에서는 국가의 보조를 받아야 하는 저소득층에게 알부민을 공짜로 제공했다.
천 회장은 공짜로 받는 알부민을 외국인 선원에게 넘기고, 상당한 액수의 돈을 받았다. 그는 이 일을 계기로 항구에 정박 중인 외국 배에 각종 물품을 납품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게됐다.
이를 ‘船食(선식)사업’ 이라고 한다.

천용수 회장은 한국에서 군대 제대 후 (ROTC) 약 4년 동안 한독제약 영업부에서 근무했다. 입사 6개월 만에 신입사원으로는 유일하게 일본 포상여행을 갔던 그로서는, 호주의 선식 사업 영업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천 회장의 이야기다.

“한국에서 경험을 발판으로 외국 선원들에게 새벽부터 밤까지 무엇이라도 구해줬어요. ‘미스터 천에게 말하면 불법적인 것을 제외하면 무엇이라도 구해준다’ 는 소문이 외국인 선원들 사이에서 돌았습니다.”

천 회장은 한국인 선원이 들어오면, 직접 김치를 담가 가져다 줬고, 호주 보석을 원하는 부유한 일본인 선장들에겐 최대한 질 좋은 보석을 싸게 공급했다. 어떤 때는 호주 술집이 어디 있는지 안내해 주기도 했다.
주문 받은 물건을 납품하기 위해 밤낮을 잊은 채 직접 트럭을 몰았다. 이렇게 몇 년을 선식 사업을 하면서 천 회장은 큰 돈을 벌게 됐다. 그는 이 돈으로 1988년 선식 사업 회사를 차렸고, 서부 호주 주요 항구에 입항하는 화물선을 상대로 선신 사업을 벌였다. 선식 사업은 입찰 경쟁방식이라, 한국의 제약 영업에서 익힌 세일즈 기법은 여기에 딱 맞았다.

당시 경쟁자였던 이탈리아계 선식 업체 회장은 이탈리아계 마피아에게 그를 청부 살해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이어 천용수 회장은 ‘리사이클(재활용 쓰레기)사업’, 즉 재활용 가능한 신문용지, 각종 종이를 수거해 동남아에 수출하는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 사업도 시작하자마자 흑자를 냈고, 이번에는 호주인이 운영하던 경쟁 리사이클 회사를 통째로 인수해 ‘그린 리사이클’이라는 회사를 세웠다.

퍼스 내에 있던 리사이클 가공공장이 비좁아, 2003년 퍼스 인근 범버리의 12만m₂대지 위에 1만 2000m₂규모의 최신형 공장을 지었다. 천 회장의 리사이클 회사는 퍼스와 서부 호주의 남부 지역 6개 (區)의 리사이클 업무를 도맡고 있다.
이들 지역에 거주하는 약 5만 가구의 호주인들은 그의 회사 로고가 새겨진 리사이클 회수통을 사용하고 있다.
천 회장은 리사이클 분야에서 지난해 약 20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한국 정부의 자원외교 비판

퍼스 프리맨틀항에서 약 1시간 30분을 달려, 퍼스 인근 범버리에 있는 천용수 회장의 리사이클 공장에 도착했다.
공장 앞에는 마침 인근 도시에서 재활용 쓰레기를 회수해 온 수거용 트럭 세 대가 공장앞에서 서 있었다.
천용수 회장 지난 1992년부터 북한에서 광산 개발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광산 사업 분야에 관심 높다.
그는 李明博(이명박)정부가 자원 외교를 추진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4~5년 전부터 중국 정부와 華商(화상)들이 여러 경로를 통해 제게 연락을 해 왔습니다. 호주의 광산 때문이 었어요. 제가 호주에서 오랫동안 사업을 한 데다 북한에서 약 20년 가까이 광산 사업을 했다는 걸 알고 있더군요. 이들은 제게 호주 광산을 소개해 줄 것을 부탁해 왔습니다. 당시는 지금보다 광산 가격이 낮았던 때라, 협상을 잘하면 좋은 가격에 각종 광산을 살 수 있었어요. 제가 이들에게 여러 건을 소개해 줬습니다.”

한국 정부와 기업인들에게는 연락이 오지 않았는지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제가 중국과 접촉을 하면서 ‘한국이 이대로 가다간 큰 일 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여러 번 한국 정부 쪽에 ‘어떤 어떤 광산을 선점(先占)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처음에는 듣는 척하더니 나중에는 귀찮은 티를 내더군요.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자원외교를 강화한다니까 그제서야 ‘관련 자료를 보내달라, 한 번 만나자’고 연락이 옵니다.” 천 회장은 “요즘은 한국 정부가 너무 서둔다는 느낌이 든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對北 사업 참여

“광산은 적어도 몇 년 동안 여러가지 를 살핀 후 매입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 정부 관계자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자원외교를 내세우니까, 실적을 내려고 정신 없이 달려들고 있어요. 현재 광산 가격은 이미 오를 대로 올랐습니다. 몇몇 자원은 현재가 꼭짓점을 찍고 있는지 모릅니다. 게다가 한국 정부가 뒤늦게 ‘우리 자원 외교를 한다’고 사방에 말해 놓아서, 각국 정부들이 한국에는 비싸게 팔 준비를 하고 있어요. ‘값을 높게 불러도 한국 정부는 살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거죠.”

천용수 회장의 사업 분야는 호주 내의 리사이클 사업과 한국타이어와 화장품 미샤 등 한국 제품 수입사업, 세 번째가 북한광산 개발 및 무역 사업이다.
천 회장은 자기 사업분야 가운데 대북 사업에 애착이 많았다.
천 회장은 1991년 서호주 정부 관계자로부터, 북한에서 광산 사업을 하고 있는 ‘센추리’ 라는 호주 기업을 소개받았다.
이 호주 기업은 폐쇄적인 북한의 정치 환경과 문화적, 정서적 차이에 적응하지 못해 북한 사업을 접기 직접이었다.
그는 센추리가 1986년부터 북한을 드나들며 만들어 놓은 광산 관련자료를 36만 호주 달러(약 3억 7000만 원)에 인수 했다.

“제가 운영하던 리사이클 회사의 호주인 이사였던 빌 클라인 씨의 전공이 지질학이었어요. 이 사람과 여러 차례 상의한 결과, 북한에서 금 尾鑛(미광)을 개발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미광은 금을 다 뽑아내고 남은 찌꺼기인데 精鑛(정광)에 비하면 금 함유량이 대단히 낮지만 t당 4g을 뽑아내면 채산성이 있었습니다.”

1992년 5월 천 회장은 빌 클라인 이사등과 함께 처음 방북했다. 북한에 가기 전, 당시 로렌스 서호주 총리가 북한 지도자 金日成(김일성)에게 추천서를 써주었다.

천회장은 “로렌스 전 총리의 추천서 하나만 믿고, 아무것도 모르는 북한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그는 기대 반 두려움 반의 마음으로 베이징을 거쳐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 문이 열리자 그와 직원들은 깜짝 놀랐다.
북한 해외동포영접총국 간부와 직원들이 그들을 기다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북한 당국자들은 “조총련을 제외하고는 북한을 처음 방문한 해외동포 사업가”라면서 대대적으로 환영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별다른 결실이 없었다. 광산 개발을 위해 북한을 왔지만 정작 광산에는 가지 못하고 평양 호텔에서 하루 종일 머물렀다. 천회장의 설명.

“ ‘광산에 가자’고 하면 ‘홍수가 나서 못 간다, 광산에 문제가 있어 못 간다’는 식으로 핑계를 댔습니다. 당시 2주간 평양에 머물렀는데, 평양을 벗어 나지 못했어요. 나중에 생각해 보니 당시 북한 관계자들이 우리에게 거짓말을 한 거였습니다. 북한은 평양을 벗어나려면 통행증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에게 통행증이 나오지 않은 겁니다. 제가 호주 국적을 가지고 있었지만, 한국 출신이라 믿지 못한 거죠.”

광산 찾아 북한 전역 누벼

그가 처음 방북했던 1992년은 북한과 호주가 정식 외교 관계를 맺지 않은 상태였다. 천 회장은 1992년 8월 두 번째로 북한에 들어갔다. 이때 만난 최철수라는 사람을 코스트그룹 평양지사장으로 앉히고 고려호텔 37층에 평양 지사를 세웠다.
북한 지사 설립이 마무리되자, 곧바로 코스트 북한지사 社屋(사옥)신축에 나섰다. 하지만 사옥 신축은 쉽지 않았다.
당시 북한에서 외국인 기업가가 자신의 사옥을 지은 예가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외국인은 사옥에서 숙박할 수 없다고 했다.

“결국 북한 당국에 건물을 반을 주고,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절반은 모두 사무실로 사용한다는 조건으로 50년 사용권을 받았습니다. 북한에는 건축용 자재가 없어 중국이나 홍콩에서 가지고 왔어요. 1993년9월 평양 개선문에서 300m 떨어진 곳에 코스트그룹 평양지사 사옥을 올렸습니다. 이것이 외국인이 평양에 지은 첫 업무용 건물이었습니다.”

사옥을 짓는 동안, 천 회장은 금 미광 광산을 찾기 위해 북한 전역을 돌아다녔다. 그가 찾는 미광 광산은 1년에 광석500만t을 7년 정도 캐 수지를 맞출 수 있을 만한 곳이었는데, 이런 조건에 맞는 광산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매장량이 많은 곳은 품위가 낮았고, 품위가 좋은 곳은 매장량이 적었다. 게다가 북한에서는 품위 측정이 불가능 했다. 북한광산 관계자들은 엉터리 자료를 뽑아 놓고는 “무조건 나를 믿어라. 내가 모두 책임진다”고 억지를 부렸다. 나중에 보면 그들이 주장한 품위에 한참 못 미쳤다.


참다 못한 천 회장이 “네가 뭔데 책임을 져?”라고 소리를 지른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금 미광의 샘플을 뽑아 중국을 통해 호주로 보내고, 다시 호주에서 결과 보고서를 받는 일을 반복했다. 한 번 보내서 검사 결과를 받는 데 드는 비용이 6만 호주달러였다. 교통과 전력 사정이 좋지 않은 북한에서 지방으로 이동하는 데도 엄청난 비용이 들었다. 한 번 움직일 때마다 10만 호주달러(약 1억 원)은 우습게 깨졌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한 천 회장은 북한 당국에 “헬기를 구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는 “헬기 없으면, 광산 개발이고 뭐고 다 치운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헬기는 모두 인민군 소속이기 때문에
한국 출신 외국인에게 임대해 줄 수 없다고 했다.

단천 금 미광 광산 개발 실패

결국 6개월간의 밀고 당기는 실랑이 끝에 북한 당국은 개조한 16인승 화물용 헬기를 그에게 배정했다. 그는 북한 조종사, 감시인, 스튜어디스까지 헬기에 태우고 북한 전역을 누볐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1993년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 총 사업비로 4000만 호주 달러(약 400억 원)을 예상했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호주에서 하는 다른 사업들이 잘 돼서 버텼지, 그렇지 않으면 부도가 났을 겁니다.1995년 초 북한의 차관급 인사가 북한에 스펀지를 만드는 공장이 없으니 저더러 만들어 팔라는 거에요. 북한은 솜 생산이 부족해 대체재로 스펀지를 사용했습니다.”

천 회장은 1995년 8월 북한 정무원(내각)과 합작으로 북한에 폴리우레탄(스펀지) 제조 공장인 삼흥코스트 합영회사를 세웠다. 이와 함께 북한에 각종 원자재를 공급하는 사업도 시작했다. 그는 말레이시아에서 생고무를 구입해 북한에 팔고 그 대금으로 아연괴를 받았다. 그는 생고무 무역 과정에서 현재의 북한 이용남 무역상(장관급)을 생고무 검사관으로 고용했다.

함경남도 단천은 북한 내에서 지하자원이 많기로 유명한 곳이다. 납, 아연, 마그네사이트 등이 생산되며 금, 동, 몰리브덴, 니켈, 인회석 등도 매장된 것으로 알려졌다.
천 회장은 1995년 단천 지역에서 매장량이 풍부하고 품위가 좋은 금 미광 광산을 발견했다. 여러 차례 호주로 샘플을 보내 확인한 결과 충분히 채산성이 있었다. 그런데 단천 금 미광 광산의 광권은 북한 군부 소유였다.
천 회장은 북한 군부에 “광산에 투자할 경우, 향후 투자에 대한 보장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우리가 투자를 해서 광산에서 금이 나오기 시작할 때, 북한 군부가 꼬투리를 잡아 광산 개발권을 빼앗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북한 정부가

해외 유명 은행에 지불 보장 확인을 받아달라고 요구했죠. 북한 군부는 조선중앙은행에서 보장한다는 애기를 되풀이 했습니다. 조선중앙은행이 신용이 있습니까? 종이 쪼가리에 불과한 확인서를 어떻게 믿고 거액을 투자하겠어요.”

난제는 또 있었다. 천 회장과 북한 측은 광산 개발 이익 분담금을 7대 3으로 나누기로 합의했다. 그런데 북한 군부는 “이익금의 70%를 자기들이 가져가야 한다”고 억지를 부리기 시작했다. 이익금의 30%로는 수지를 맞추는 것이 불가능했다.
천 회장은 북한 인맥을 총동원해 백방으로 뛰었지만 북한 군부의 고집을 꺾을 수 있는 방법이 없자 그는 금광 사업을 접었다.

“정말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났습니다. 정나미가 떨어졌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단천 금광이 수익성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홍콩의 페레그린 등 유명 투자은행이 북한 군부와 접촉했더군요. 이들이 살살 꼬드겨서 북한 측이 태도를 바꾼 겁니다. 하지만 결국 페레그린도 손해를 보고 사업을 접었습니다.”



‘월드 옥타 평양무역상담회’ 개최

이후 천 회장은 남포 아연제련소를 4년 동안 임차해 아연 정광을 제련했다. 중국에서 석유를 사고, 발전기를 들여다 잠자고 있던 남포 제련소를 가동했다. 천 회장은 “아연 정광을 사기 위해 중국 전역을 안 가본 곳이 없다”고 했다. 4년여 아연 제련소를 운영했지만 공장이 낡아서 채산성이 맞지 않았다. 그는 아연 제련소를 그만 두고 함흥에 마그네슘 크링카  생산 공장을운영하고 있다. 마그네슘 크리가는 제철소용 내화 벽돌을 만드는 연료다.
금 미광 사업에서 손해를 본 후에도 투자를 계속하는 천 회장에게 북한 당국은 전폭적인 신뢰를 보였다.

그는 지난 20년간 대북 사업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두 가지 꼽았다.
첫 번째가 지난 2004년 10월 평양인민궁전에서 열린 ‘월드 옥타 평양무역상담회’다.

“당시 저는 개성 영통사 복원 공사를 지원하느라 개성에 있었는데, 갑자기 평양에서 ‘당장 들어오라’ 는 연락이왔어요. 큰일 난 줄 알고 개성에서 평양까지 허겁지겁 달려갔더니 북한의 고위 관계자가 ‘월드 옥타 주최 평양무역상담회를 열자’고 하더군요. 金正日(김정일) 국방 위원장의 허가가 떨어졌다는 겁니다.”

그러나 월드 옥타의 몇몇 간부들이 방북을 꺼려했다. 일단 신변 안전을 우려했고, 한국 정부의 눈치 때문이다. 천 회장은 한국 통일부와 국정원에 ‘무역 상담회 서명서’를 보냈고, 한국 정부의 의견을 물었다.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그는 무역상담회 준비위원장으로 42개국에서 온 162명의 해외동포 기업인들을 이끌고 평양에 들어갔다.
북한 정부는 162명의 월드 옥타 회원들을 극진히 대접했다. 평양 고려호텔에 숙소를 주고, 저녁때는 당 고위 간부들만 이용할 수 있는 가라오케에서 조니 워커 블루 수십 병을 내왔다.
월드 옥타 회원들은 “북한에도 이런 술이 있느냐”면서 놀랐다. 평양 무역상담회에는 73개 북한 회사가 나와 자신들의 생산품 목록을 소개했다. 북한 정부는 월드 옥타 회원 한 명당 상담원 한명을 붙여서, 월드 옥타 회원들이 궁금증을 즉석에서 풀어줬다. 천 회장은 북한 정부의 적극적인 모습에 놀랐다고 한다.

무역 상담회 마지막 날 북한 정부와 월드 옥타는 “월드 옥타를 통해 모든 해외 동포 무역거래 사업을 수행할 것” 이라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후 월드 옥타 회원 기업 7~8곳이 북한과 무역 거래를 진행하고 있다.

개성 영통사 복원공사 秘話

천 회장은 개성 영통사 복원 공사에 참여한 것을 큰 보람으로 여긴다.
2003년 천태종과 북한 정부는 개성 영통사를 복원하기로 했다. 영통사 복원을 위해서는 한국과 중국에서 각종 물자와 인력을 실어와야 했다. 북한 정부는 천용수 회장에게 영통사 복원 사업의 고문을 맡아 달라고 요청했다. 그가 운영하는 코스트 북한 지사를 통해 영통사 복원에 필요한 물자와 인력 등의 통관 절차와 화물 수송, 행정 업무를 수행했다.


영통사 복원을 위해서는 기와가 중요했다. 북한 정부는 기와를 배로 운반해서 남포로 들여 오라고 했다. 그러나 선박 운송을 하니 대부분의 기와가 깨졌다. 천 회장은 배로 운송했을 때 기와가 깨지는 모습을 비디오로 촬영해서 북한 관계자들에게 보여줬다. 그제서야 육로 운송을 허가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수십 만 장의 기와가 트럭25대에 실려 임진각에서 개성까지 육로로 운송돼 언론의 관심을 모았다. 영통사 복원위원장이었던 천태종 무원 스님의 이야기다.

“대형트럭 25대가 기와를 싣고 북한으로 넘어가는데, 정말 壯觀(장관)이었습니다. 처음으로 육로를 이용해 개성까지 간다는 설렘도 대단했어요. 과거 鄭周永(정주영)현대 회장이 소떼를 끌고 방북하는 것 이상으로 의미 있는 일이었다고 생각 합니다. 천용수 회장이 북한 정부를 설득하지 못했다면 영통사 복원은 불가능 했을 겁니다.”

천 회장은 최근 북한에 가발공장을 건설하는 등 지속적으로 북한에 투자하고 있다. 지난해 그의 회사는 북한에서 약 6000만달러의 매출액을 올렸다. 그는 북한에 투자하려는 한국 기업들에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북한은 체제의 특수성 때문에 한국이 아닌 제3국의 보증인을 통해 사업을 하고 싶어합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제3국의 보증인이 컨설팅을 해주고 양쪽 입장을 정리해 주는 겁니다. 북한과 계약을 할 때는 절대 한 번에 돈을 다 주면 안되고, 단계별로 계약을 해서 단계별로 나눠 줘야 나중에 문제가 안 생깁니다.”

서부 호주의 남쪽 도시인 퍼스에서 동부 태평양 연안에 있는 시드니까지는 여객기로 무려 4시간이 걸렸다. 시드니에는 천 회장이 한국 제품을 수입해다가 호주에 판매하는 사업장이 있었다. 천용수 회장은 한국을 드나들며 한국의 타이어 제품을 눈여겨봤다. 한국산 타이어는 질이 좋고 가격 경쟁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호주내에서 판매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1998년, 그는 시드니에 있는 한국타어어 지사에 “서부 호주 지역에 대한 타이어 판매권을 달라”고 요구했다.
서울에 있는 한국타이어 본사에서 실사팀이 파견돼 천 회장의 재무 상태와 회사의 영업실적을 살펴 본 후 서부 호주의 한국타이어 판매권을 줬다.

한국 타이어, 미샤 화장품 호주 판매

천 회장은 한국타이어만 취급하는 대리점을 열고 능력 있는 호주인 영업 사원을 고용해 대대적으로 판촉을 시작했다.
남들이 쉬는 토요일에도 비상체제로 영업을 했다. 그가 타이어 판매권을 인수할 당시, 한국타이어 브랜드 이미지는 C급이었지만, 현재는A급으로 올라갔다. 판매액도 지난해 월350만 달러, 1년에 4000만 달러를 넘어섰다. 한국타이어는 올해 초 호주 동북부 퀸즐랜드州㈜의 판매권을 천 회장에게 맡겼다.

이어 천 회장은 한국산 화장품과 보안용품을 들여다 판매를 시작했다. 2002년 한국에서 일을 보던 천 회장은 저가 화장품으로 돌풍을 일으키던 ‘미샤’를 발견했다. 그는 처음 호주에 왔을 때 호주 상공인협회장에게 들었던 애기가 생각났다.
 “여자를 상대하는 장사와 먹는 장사는 절대 망하지 않는다.” 그는 당시 미샤 사장이었던 徐詠筆(서영필) 현 회장을 찾아가 “미샤는 국제 경쟁력이 있으니 브랜드 그대로 수출해 주겠다”고 제안했다. 천 회장은 2003년 9월 미샤 1호점을 시드니에 오픈했다. 천 회장은 자신의 딸을 마케팅 담당으로 앉히고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을 구사했다.


호주에서는 보기 드물게 샘플 제공, 시연회 등 각종 이벤트 행사를 열었고, 호주 자궁암 협회, 심장병 협회에 기부도 했다.
미샤는 예상보다 2배가 넘는 매출을 기록했다. 미샤는 현재 9호점까지 늘어났는데, 천 회장은 향후 3년 내에 미샤 대리점을 50개, 5년 내에 100개로 늘릴 예정이다. 그는 2002년에 엑심텍이라는 보안장비회사를 설립하고, 한국 벤처기업에서 보안용 카메라와 모니터를 조립해 들여와 OEM 방식으로 팔고 있다.

천 회장은 월드 옥타 회원 기업들을 자신처럼 한국 기업의 현지 대리점, 또는 지사화하는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해외 지사 설치 여력이 없는 한국 기업과 월드 옥타 회원을 1대 1로 묶어 한국 물건을 판매하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중소기업청과 연계해 수출을 원하는 국내 기업과 월드 옥타 회원사의 사업 내용을 조사해 정보를 제공하고 만남을 주선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해외동포기업인들을 신뢰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 문제에 대해 천 회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해외동포 支社化

“대다수 동포 기업인들, 특히 월드 옥타회원 기업들은 이미 그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어느 정도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월드 옥타은 KOTRA의 지원으로 출범했고, 지식경제부에 법인등록이 되어 있는 단체입니다.
KOTRA, 무역협회, 지식경제부에 문의하면 월드 옥타 기업인들의 신뢰도는 금방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는 “내가 한국타이어나 미샤 등을 호주에서 판매하지 않았으면, 한국 기업은 호주에 수출할 기회를 놓쳤을 것아니냐”고 말했다.

“제가 하는 일은 해외동포 기업인 활용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라고 보면 됩니다. 저희 월드 옥타 기업인들뿐만 아니라, 해외동포 기업인들은 현지에서 적응하여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을 이용하면 비용도 절감되고, 신속하게 정보를 얻을 수 있어요.

 

한국타이어나 미샤처럼, 자신들이 지사를 설립할 여력이 없는 한국기업들이 해외동포 기업인들을 활용하면 상호 윈-윈 할 수 있어요. 큰 욕심 내지 말고, 지사화 사업만이라도 잘 활용하면 대한민국 경제가 놓치고 있는 엄청난 부가가치를 쉽게 얻을 수 있을 겁니다.”

                                                                                                                                                                 
< 약 력 : 천 용 수>


⊙ 1953년 서울 출생.
⊙ 건국대졸업                                                                                                                                        
                                                                                                                                                              
⊙ 現 코스트 그룹 회장, 세계해외한인무역협회(월드옥타) 14대 회장                                                                    
                                                                                                                                                                 
⊙ 상훈 : 무역의 날 표창(무역협회), 자랑스런 중소기업인상(중소기업청), 세계한인 무역인 대상(KOTRA),                
             남북교류 국무총리상(통일부), 서부호주 한인회 표창(대통령), 무역진흥 공로 표창(산업자원부장관)

<자료출처 : 월간조선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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