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들/세 상 사람들

경제위기, 벼랑 끝 몰린 사람들] < 1 > 10년의 절망 IMF학번

향기男 피스톨金 2008. 10. 15. 11:17

환란까지 겪고 살만한가 싶더니 또…" 젊은 아빠들이 운다

한국일보 | 기사입력 2008.10.15 02:40 | 최종수정 2008.10.15 08:32

 

[경제위기, 벼랑 끝 몰린 사람들] < 1 > 10년의 절망 IMF학번
빚내서 겨우 내집마련 했는데 '이자 폭탄'
"회사 어렵다" 소문에 구조조정 될까'덜컥'

 

회사원 황모(36)씨는 요즘 좌불안석이다. 분양 받은 아파트 중도금 기일이 곧 닥치는데 돈을 마련할 길이 막막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서울 뉴타운 지역에 24평 아파트를 분양 받았을 때만 해도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뤘다는 기쁨에 들떴다. 7년간 월급을 쪼개 부은 장기주택마련저축을 타 계약금을 내고 남은 돈을 투자했다. 하지만 1,500만원을 넣은 중국펀드는 반토막이 났다. 직접 투자한 주식은 원금의 70% 가까이를 까먹었다.

지금까지 4번의 중도금은 대출을 받아 넣었지만, 나머지 2번의 중도금은 더 이상 대출도 안 된다. 내년 초면 전세도 만기가 돌아오는데, 얼마나 더 달라고 할지 걱정이다. "연체가 되기 시작하면 신용도도 낮아지고 상황이 걷잡을 수 없어질 텐데…." 황씨는 "대학 졸업하던 10년 전의 끔찍했던 시절이 자꾸만 꿈에 나타난다"고 했다.

짓눌리는 삶

불황의 그늘이 깊어지며 30대 초ㆍ중반 이른바 'IMF 학번'이 다시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의 한복판에 맨발로 서야 했던 이들이 10년 만에 다시 겪는 벼랑 끝 삶의 공포는 다른 어느 세대보다 더 크고 깊다.

"이제 좀 살 만해지나 싶었는데…." 황씨가 대학을 졸업한 것은 98년 2월. 그 해 아버지는 회사 구조조정에 밀려 명예퇴직을 했다. 뽑아주는 곳이 없어 1년간 막노동으로 버텨야 했다. 어렵게 들어간 회사에서도 월급을 제때 받지 못할 때가 많았다. "지금도 회사 사정이 괜찮은지 항상 촉각이 곤두서요. 가장이 직장을 잃게 되면 가정이 어떻게 되는지는 이미 똑똑히 봤으니까요."

이들이 악화일로의 경제 상황에 특히 민감한 것은 내 집 마련이나 육아 등으로 경제력에 대한 욕구가 어느 세대보다 강한 탓이다. 더구나 이들은 2000년대 들어 '몇 억 만들기'로 대표되는 재테크 열풍 속에서 살아왔다. 황씨는 "집값 폭등을 목도하고 대출로 무리해서 집을 사는 경우가 많았고, 이걸 갚으려고 주식이나 펀드로 돈을 굴리는 게 우리 세대에는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고 설명했다. 99년 대학을 졸업한 강모(35)씨도 2년 전 서울 강서구에 3억원에 아파트 한 채를 장만했다.

강씨는 "절반은 대출 받고, 그래도 부족한 돈은 아내가 신용대출을 받았다"며 "금리가 올라가면서 이자부담이 갈수록 늘어 수입의 절반을 이자로 내야 해 생활이 말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삶은 갈수록 팍팍해진다. 제약회사에 다니는 윤모(33)씨는 아이들과 더 이상 놀이공원에 가지 않는다. 영화관 가본 지도, 커피를 사서 마셔본 지도 오래다. 자가용도 늘 집 앞에 세워져 있다.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고 있는 게 눈에 보여 최대한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습니다." 외환위기 당시 대우 하청업체에 다니던 아버지가 구조조정으로 퇴사한 뒤 윤씨는 아버지와 생필품 노점상을 하며 간신히 졸업했다. "또 다시 그렇게 힘겨운 시절이 온다고 생각하면 정말 두려워요."

이들은 "그나마 아직은 회사에 붙어있는 게 고마울 따름"이라고 입을 모았다.
다시 만난 실업공포

13일 오후 서울의 한 종합고용지원센터의
실업급여 교육장. 하루 두 차례 실업급여를 처음 신청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지급 절차 등을 교육하는 곳이다. 150여 좌석을 꽉 채운 '교육생'의 절반 가량은 30대로 보일 정도로 연령층이 낮다. 최근 명예퇴직 했다는 30대 중반의 한 남성은 "대출이자도 다 낼 수 없는 돈이지만 이거라도 받기 위해 신청을 했다"며 "한참을 건물 앞에서 머뭇거리다 들어왔는데 생각보다 내 또래 사람들이 많아 놀랐다"고 말했다.

아직 젊다는 이유로 IMF 학번들은 구조조정의 타깃이 되기도 쉽다. 물류회사에 다니던 아내가 최근 경기 탓에 명예퇴직을 당했다는 최모(34)씨는 "혼자 벌어서는 대출이자 내기도 버거워
마이너스 통장으로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차라리 집을 팔고 부모님 집에 들어갈까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10여년 만에 다시 전쟁 같은 취업 전선에 내몰린 이들은 '희망'이라는 말을 입에 담는 것조차 버겁다. IMF 한파를 견디다 못해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올해 초 돌아온 조모(33)씨는 아직도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

지방의 한 법대를 나온 조씨는 취업이 안돼 2000년부터 2년 간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다 영어라도 잘해보자는 생각에 미국행을 택했다. "6년 동안 미국에서 일하며, 공부하며 어렵게 경험을 쌓았는데도 취업이 어렵네요. 이제 나이 때문에 원서를 내도 면접까지 가지도 못합니다." 조씨는 "경기가 더 나빠질 거라고 해서 걱정"이라며 "한 달에 한 두 번 친구들과 외식을 할 수 있는 안정적인 생활 정도가 유일한 바람"이라고 말했다.

2000년 졸업한 김모(31ㆍ여)씨도 7,8곳의 회사를 옮겨다닌 끝에 다시 구직에 나섰지만 점점 자신감을 잃고 있다. 김쓴?취업사이트에 한 군데도 빠짐 없이 이력서를 내고 취업공고를 놓치지 않고 매주 2,3곳씩 지원하고 있다. 김씨는 "대학 졸업 때보다 요즘 취업이 더 어렵다"고 말했다.

서울북부종합고용지원센터의 유연희 팀장은 "실업급여를 신청하는 30대 초ㆍ중반 젊은이들이 최근 들어 급격하게 많아졌다"며 "경제 사정이 정말 좋지 않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 '벼랑끝 사람들' 관련기사 ◀◀◀

▶ IMF학번들에 또… 이젠 눈물마저 말랐다

▶ 버림받은 'IMF 학번'… 그들은 누구인가
▶ "환란까지 겪고 살만한가 싶더니 또…" 젊은 아빠들이 운다
진성훈기자
김혜경기자

 

 


                 프랑크_ 생명의 양식

     (파바로티 와 원트워드 소년합창단)                           


 

         
 
 

첨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