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들/세 상 사람들

박정희 前대통령 유품 정리했던 탤런트 나한일

향기男 피스톨金 2008. 11. 30. 13:18

[왜 그는] 박근혜 前대표 피습 뒤엔 제자들 보내 경호하게 해

박정희 前대통령 유품 정리했던 탤런트 나한일

 

 

문갑식 기자 gsmoo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이 사망한 후 세상은 그를 잊거나 잊으려 했다. 청와대에서 성북동 집으로 급히 옮겨진 수천 권의 장서와 가치를 헤아릴 길 없는 자료가 뽀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 유품이 비로소 안식을 찾은 건 1982년 한 무술인에 의해서였다.


그로부터 24년 뒤 이번에는 대통령의 딸 박근혜(朴槿惠) 한나라당 전 대표가 서울 신촌 한복판에서 테러를 당했다. 이때부터 자기 제자들을 파견해 박 전 대표를 지키는 사람도 예전의 그 무술인이었다. 부녀(父女)와 기이한 인연을 잇고 있는 그는 탤런트 나한일(羅漢一·54)이다.
▲ 나한일씨가 해동검도 본관에서 대나무 베기 시범을 보이고 있다. / 정경열 기자 krchung@chosun.com
40대 이상에게 나한일이라는 이름은 50·60년대를 풍미했던 정치 주먹 유지광(柳志光)을 떠올리게 한다. 1989년 방영돼 시청률 60%를 기록했던 TV 드라마 '무풍지대'에서 그가 맡은 역이다. 나한일을 두고 뗄 수 없는 단어가 또 있다. 해동검도다. 대한해동검도협회 총재로 지난 9월 '대한명인문화예술교류회'에 의해 검도 명인(名人)으로 추대된 사람이 그다.

나한일은 충남 서천의 꽤 부유한 집에서 3남1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장항제련소 사장을 지냈다고 한다. 그런 그의 인생에 풍파(風波)가 인 것은 전주남중 3학년 때였다. 갑자기 다리가 아파 병원에 갔을 때 의사가 내린 판정은 청천벽력 같은 것이었다. "더 살기 힘들다!"

나중에 보니 단순한 류머티스 관절염이었지만 철부지 중3이 '돌팔이'의 말에 실망해 택한 길은 무작정 상경(上京)이었다. 병을 고쳐 보겠다며 서울로 와 그가 들어간 곳이 수유리 화계사다. 거기서 숭산(崇山) 스님의 제자인 원광거사(본명 김창식)를 만나 목숨을 건져 보겠다며 심검도(心劍道)를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심검도와 결별한다. 오른쪽 팔만 쓰는 한계에 복식(服飾)문제가 겹쳤던 것이다. "도복이 도포자락 같은데 꼭 앞에 불교를 뜻하는 만(卍)자를 새겨 넣는 겁니다. 상수(上手)가 되면 지켜야 할 예의범절도 지나치다 싶을 만큼 차려야 하고요. 무도와 종교는 다른 건데 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어요." 전통무술을 섭렵하면서 나한일은 서라벌고에 진학했다. 대학은 서라벌예대를 택했다.

―몸을 만져보니 굉장히 부드럽군요. 평생 무술을 했으니 연예인 중에 최고의 주먹이라고 해도 좋겠습니까?

"아니요, 그렇지 않아요. 연예인 중에 제일 센 분은 MC를 맡고 있는 임성훈 선배죠. 그 분은 쿵푸를 수십 년간 연마해오셨어요. 보기에는 단구(短軀)지만 주먹으로는 아마 연예계 최고일겁니다."

―그럼 두 번째는 됩니까?

"후배
최수종이가 저보다 더 셀 거예요."

―탤런트 최수종이?

"벗겨보면 몸이 장난이 아니에요. 축구를 해서 장딴지도 대단하고. 그 왜 있잖아요, 주먹깨나 쓸 것처럼 행동하던 친구. 그 친구가 최수종이한테 따끔한 맛을 봤다는 건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예요. 그가 최수종에게 혼난 뒤 이렇게 말했답니다. '수종아, 우리 안 본 걸로 하자'고요."

―원래 성우(聲優)를 했죠.

"연극배우가 원래 가난하잖아요. 군대 제대할 무렵 연극무대에서 효과를 담당하는 선배가 저와 상의도 하지 않고 기독교방송 성우시험에 원서를 냈어요."

―1982년 탤런트가 됐죠.

"당시 방송가에서는 성우 출신을 참 박대했어요. 라디오 호출 기호를 따 'KY 출신'이라며 뒤에서 수군거리는 거예요. 출연 기회를 잡지 못해 3년간'헌팅 맨'을 했어요. 장소 섭외를 하는 험한 일인데 그렇게 PD들과 허물없이 지내다 보니 주연 자리가 돌아오더군요."

―무슨 드라마였습니까.

"1985년
MBC 베스트셀러극장 '팔색조'라는 드라마였습니다. 그 드라마가 나중에 프랑스에서 상(賞)까지 받았어요."

―그 뒤 탄탄대로를 걸었습니까.

"그런데 그게 참 이상해요, 피아니스트, 실연남(失戀男)처럼 고민하는 지성인의 역할만 돌아오는 거예요. 오죽했으면 사망한 시인 고 기형도 기자가 신문에 저를 두고 'TV의 몽상가'라는 별명을 붙여 준 적도 있어요."

―지성인 역할에서 액션배우로 변신한 건 언제입니까.

"제가 검도 실력을 처음 보인 건
KBS 드라마 '훠이 훠이'에서였어요. 당시 제가 율산그룹 전 회장 신선호 역을 맡았는데 PD가 휴식 중인 신선호 회장이 기타를 치는 장면을 설정해 놓은 거예요. 제가 '기타를 못 치니 내가 잘하는 걸로 하자'고 했어요. 뭐냐고 해 검도라고 했어요."

―무풍지대가 나온 건 그 이후지요.

"1989년입니다. '무풍지대'에서 정치 주먹 유지광 역을 맡은 후 광고 CF와 영화 출연 제의가 쏟아졌지요. 한다 하는 건달들이 "유지광이 한번 보고 싶다"며 청을 넣던 시절이었습니다."

그가 해동검도와 인연을 맺게 된 배경에 두 인물이 있다. 처음은 현진영화사 김원두 사장이다. 그는 당시 나한일을 염두에 둔 '월광무(月光舞)'라는 영화를 기획하고 있었다. 김 사장이 어느 날 그를 찾아와 나한일에게 조선의 무술을 집대성해 놓은 '무예도보통지'를 건네준다. 그 책을 보며 나한일은 자신이 지금까지 배웠던 여러 동작이 다 무예도보통지에 수록된 동작이었음을 알게 됐다. 한마디로 '뿌리'를 찾은 것이다.

그와 해동검도를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인물이 고 최태민(崔太敏) 목사다. 그는 나한일의 무술에 '해동검도'라는 이름을 직접 지어줬고 김원두 사장이 건네준 무예도보통지를 바탕으로 나한일이 편저를 한 '해동검도'라는 책을 출판하도록 도와주기도 했다. 그때가 1984년이다.

최 목사는 1978년 나한일이 운영하는 서초동의 작은 도장에서 새벽마다 운동을 하러 왔다. 그러던 중 나한일에게 어느 날 "옛날 것을 10%만 복원해도 장한 일"이라며 붓으로 '海東劍道'라는 네 글자를 써 왔다는 것이다.

나한일은 1982년 지인(知人)의 연결로 10·26 후
청와대에서 부랴부랴 옮겨 성북동 자택에 방치돼 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품 정리를 하게 됐다. 유품을 보관할 장소는 서울 아현동 한마음한방병원 지하로 정해졌다. 한마음한방병원은 나중에 명지대로 인수됐는데 당시 박근혜 전 대표는 이 병원에 주 2~3회 출근했다.

―박 전 대통령의 유품은 어떤 것들이었습니까.

"앨범, 비디오테이프, 몇 천 권이나 되는 책이었어요. 자료들도 많았어요."

―좋은 게 있던가요.

"그러지 않아도 저도 대통령 것인데 뭐 좋은 게 있나 하고 살펴봤지만 눈을 씻고 봐도 볼품 있는 게 없었습니다. 외제라곤 일제 세이코 손목시계와 담배 파이프, 중절모뿐이었어요."

―가장 인상적인 유품이 뭐던가요.

"신문 인쇄할 때 쓰는 종이 있잖아요. 딱 그런 모양인데 길이가 1m50㎝쯤 되고 높이가 60㎝에 달하는 두루마리가 있었어요. 펼쳐 보니 경부고속도로 설계도였습니다."

―그런 게 다 있습니까.

"그분이 군에 있을 때 토목을 했다고 하잖아요. 4H 연필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일일이 휴게소, 인터체인지를 그리고 항공사진을 그려 놓은 겁니다. 스카치테이프로 다 붙여 놓고 밑에는 몇 월 며칠 어디서 어떻게 한 거라는 메모를 붙여 놨어요. 정말 그림을 잘 그리셨어요. 저는 그 두루마리 하나만 봐도 박 전 대통령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정말 컸다고 생각했어요."

―박 전 대표가 고맙다고 하던가요.

"그분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성격이잖아요. 말하는 스타일도 원래 단답형이고요. 미소만 짓는 게 다였어요."

―쌀쌀한 성격인가요.

"그렇지는 않고요. 제가 1982년에 그 일이 있고 20년 넘게 연락을 안 했어요. 특별히 그럴 일도 없었지요. 그런데 2006년 작가 이환경씨가 SBS에서 한국근대화를 다룬 100부작 드라마를 준비한다며 박 전 대표를 소개시켜 달라고 전화를 해 왔어요."

―선뜻 전화를 했나요.

"다음날 면담이 성사됐어요. 박 전 대통령을 드라마에서 다루는 걸 허락하더니 박 대표가 이 작가에게 이렇게 묻는 겁니다.'나한일씨 역할이 뭐예요?'이 작가가'좋은 역할입니다'라고 하니 '그거 확실하게 대답하셔야 해요'라는 말까지 했어요."

―그 드라마는 끝내 만들어지지 못했지요. 만일 방영됐더라면 무슨 역할을 맡을 생각이었습니까.

"외압으로 중단됐지만 방영됐다면 저는 피스톨 박(박종규 전 청와대 경호실장) 역할을 해보고 싶었어요."

2006년 박 전 대표가 유세 중 신촌에서 테러를 당한 직후 나한일은 해동검도 소속 제자들을 박근혜 경호팀에 파견했으며 지금까지 파견이 이어지고 있다.
  • ▲ 해동검도 총재이자 탤런트 나한일씨가 박근혜 전 대표와 자신의 관계에 대해 말하고있다. / 정경열 기자


'속시원한 뉴스풀이 와이' BEST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