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들/재밋는 잡동사니

거시기한 詩 몇 편

향기男 피스톨金 2006. 1. 27. 12:02

 

              

             거시기한 詩 몇 편   

오래 전에 우연히 읽고 재미있어 했던 詩 몇 편을 올립니다.
아마도 시를 쓰신 '곽수만'이라는 분은 취미(or two job?)로

글을 쓰는 분이 아니실지.......(추측)

혹시 이것을 보신다면... 惠諒하여 주십시요.^^


* 전복  

나는 횟집에 가면
수족관을 한참이나 쳐다본다.
오늘 횟감은 물이 좋은지 아닌지
우럭 광어 농어 도미 놀래미를
보는 척 하지만 실은
전복만 쳐다본다.

온몸을 펼쳐 수족관 유리에
착 달라붙어 있기도 하고
머리쪽의 한쌍 더듬이와 눈으로
이리저리 움직이기도 하는데
오동통하고 싱싱한 살이 미어터지는
좌우대칭의 타원형 속살을 보노라면
상당히 거시기해진다.

횟집 주인은 비싼 전복이라고
전복회를 잘게 썰어 몇점 주지만
나는 전복 한 마리를 통째로
입에 넣고 오돌오돌 씹는데
그 맛이 참으로 일품이다.
또 한마리를 통째로 먹고서
전복내장에 야채를 무쳐먹으면
그 독특한 향기와 냄새가 유별나다.

하여 나는 오늘도
미역이나 파래등 해조류만 먹고 산다는
그래서 우리의 거시기에 좋다는
전복의 감칠 맛을 잊을 수 없어
동네 횟집의 전복이란 전복은
죄다 찜한다.



* 구진포 장어  

영산강이 흐르다 한굽이 휘어돌아
또아리를 풀어 헤친 곳.
나주군 다시면 가운리 구진포!
구진포에 봄이 오면
새싹 움트는 버드나무 뿌리끝 모래밭에
빠각 빠각 우는 소리를 내는
빠가사리가 산란을 하고
장어집 딸은 장어를 잡는다.

하늘을 향해 퍼득이는 장어 머리를
나무 판대기에 못으로 박고
아가미에서 꼬리 끝까지 껍질을 벗긴다.
껍질을 벗기우고도 살아서
하얀 속살로 춤을 추는 구진포 장어!
껍질에 노란 기운이 도는 것이
진짜 자연산 민물장어인가 보다.

구진포에 봄이 오면
나는 서해안 고속도로로 함평과
고막원을 지나 구진포에 들른다.
스무살 처녀 때부터 껍질을 벗기던
장어집 딸이
어느덧 중년 여인이 된 지금도
따뜻한 손 안에 녹아내린 장어의 세월을
뼈까지 추려주기 때문이다.



* 홍어
  
홍어는 맛이 갈수록
톡쏘는 향과 맛이 최고라
거적에 덮어 일부러 썩히기도 한다.

옛날에 나주 영산포에는
목포에서 영산강 뱃길로 올라온
흑산도 홍어를 썩히는 창고가 있었는데
수컷보다는 암컷이 비싸다고
거시기를 낫으로 쳐서
길바닥에 널부러진게 홍어 거시기였다나.
그래서
만만한게 홍어냐는 말이 나왔다나.

세상살다보면
만만한 건 하나도 없고
나이가 들수록 세상을 살수록
인생살이기 더 어려워져만 가니
차라리
홍어가 아닌 가자미로 살꺼나.
홍어처럼 맛이 약간 가볼꺼나.
홍어보다 더 만만한 우리의 수만이.
오늘도 밤새 잔머리만 굴리다가
홍어회 한 접시에 막걸리를 든다.



* 갈치여인(밤낚시)    

그대 눈부신 사랑에 두 눈 멀어도 된다는
가수 이안의 물고기자리 때문인가 !
대천해수욕장에서 무창포를 지나
서산 앞바다 부사방조제 수문 언저리에
갈치 한 마리 잡아보겠다고 죽치고  있는
수마니가 한 둘이 아니다.

갈치구이 갈치조림하면
남해안에서 올라온 제주은갈치 뿐인 줄 알았는데
우리인간들 인생사 만큼이나 갈치도 살기가 힘든지
요샌 서해안까지 치고 올라와 릴낚시 한줄에
춤을 추는 은빛 갈치!
나는 그대를 갈치여인이라 부르노라.

눈부신 은빛 몸매와 등지느러미의 날렵함이
밤바다에 부서지는 별빛을 받아 곡선을 그리며
지그재그로 허리춤을 추는 나의 갈치여인!
나는 이제껏 개미허리가 최고인줄 알았는데
이제 모든 여인의 허리는 갈치허리여야 하리라.
갈치여인!
그대 지금 어느 별자리에 있는가!



* 메주  

비료푸대 찢어바른 봉창문 사이로
분질러지는 햇살에
푸르른 독기를 뿜어대는 메주.
징기즈칸의 후예들이 묻힌 흙으로
질그릇 빚듯 나신을 바르는 울리 머슴.

움푹패인 골짜기에
무명실을 자아내며
중천장을 노려보다
빛마저 바랜 공기를 호흡하다
넉자 두평 방안을 채우는
메주의 속곳에 입맞춘다.

그러거라. 그러거라.
오늘을 사는 우리 머슴은 왜 이리 힘든지.
메주를 천년이나 빚었는데도
생활이 나아지기는 커녕
이제는 메주 빚기도 힘들어
낚시는 해도 투망질은 안한다니
메주의 부스럼이나 뜯어내며
그냥 메주처럼 살거라.
천년을 살아봐야 신통찮을 몸짓으로 !



* 기러기 아빠  
  
신당은
신령을 모셔놓고 하느님햇님달님
복술무당이 점보는 곳이다.
서낭당은
무명치마 휘어감고 푸닥거리하는
당골레의 춤사위에
제 논에 물도 못대면서
남의 논에 물걱정하는 동네 이장이
상수리 껍질 벗기는 곳이다.

캐나다에 처자식 보내놓고
기러기 한평생 닮아 이곳 저곳
정처없이 떠도는 기러기 아빠.
깊어가는 가을에 가족이 그리워
기럭기럭 기러기 우는 소리를 내며
갈매기살에 한가락 뽑는 곳은
동네에 남아도는 아줌마가 나온다는
동남아 노래방이다.

오늘도
LA에 퍼득이는 엄마기러기는
가을 하늘을 수놓은 기러기 떼처럼
고향길 그리워 떼지어 다니고
동남아에 퍼득이는 기러기아빠는
서낭당 먼 하늘가로 한숨만 쉰다.
남의 논에 물걱정하면서.



* 할머니 말씀
  
어릴적 시골집 담벼락의
구렁이를 잡아다 가마니에
넣어두면 구데기가 슬었고
그 구데기를 닭에게 먹여 키운 후
그 닭을 잡아
인삼 마늘 찹쌀을 넣고
푹 고아 주셨던 할머니!

나는
닭을 먹은 것인가
구데기를 먹은 것인가
구렁이를 먹은 것인가
아무것도 안먹은 것인가

나이 오십이 다 되도록
아직도 그 무엇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손주 모습에
고향집 뒷산의
할머니는  말씀하신다.

꽃은 함부로 꺾지말고
꺾은 꽃은 버리지 말며
버려진 꽃은 줍지 말아라.
닭죽을 먹더라도
닭창자는 먹지 말아라.

-곽수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