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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빔 - 한복을 이야기하다

향기男 피스톨金 2006. 1. 30. 23:20

 

 

            설빔 - 한복을 이야기하다

 

 

 
민족의 명절 설이다. 설 풍경 하면 한복 곱게 차려 입고 집안 어른들께 세배 다니던 기억이 먼저 떠오른다.
 
옆집 영희도 철수도 고운 설빔을 입는데 나만 없다고 엄마에게 투정부리던 어린 시절을 떠올릴 때면 얼굴 가득 미소가 번진다.
 
하지만 흐뭇함도 잠시. 요즘엔 명절은 고사하고 회갑이나 칠순 잔치에서조차 한복이 사라지고 있다.
 
결혼식 폐백 때나 찾아볼 만큼 겨우 명맥을 유지할 정도.
 
한복 관련 국내 박사 1호인 한복 디자이너 원혜은(사진)씨는 “우리 옷 한복이 천대받는 시대가 안타깝다”며 말을 이었다.
 

한복에는 문화가 서려 있다

 

문화가 국가 경쟁력인 요즘. 원씨는 한민족의 문화를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 한복이라고 말한다. “의식주 문화 중 시대 상황을 가장 잘 드러내고 눈으로 가장 가까이 볼 수 있는 것이 옷이니까요.

 

” 남성의 경우 대님을 꽉 조이는 것은 음양에서 음기인 지기(땅의 기운)가 몸으로 올라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한다. 한복의 미를 대표하는 선 역시 한민족의 의식 세계에 닿아 있다.

 

한복 선은 모나지 않고 완만해 부담스럽지 않다. 원씨는 “중국 집을 봐도 선이 날렵한 데 비해 전통한옥은 완만한 선을 유지하고 있다”며 “이런 생활양식이 한복에도 그대로 적용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씨는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 옷 한복의 가치는 색상에 있다며 “고구려 벽화를 봐도 빛이 바래긴 했지만 소매 끝이나 치맛단의 색이 다른 배색임을 볼 수 있다”며 “장식을 위주로 하거나 배색 자체가 그다지 발달하지 않은 서양 옷과는 근본부터 다르다”고 주장한다.

 

어떤 이는 원단을 남김 없이 사용하려는 실용성 때문이라고도 하지만 어불성설이라고. 외국 디자이너들 역시 쉽게 접하기 힘들어 열광하는 한복 배색은 한민족만의 심미안이 작용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복에 서린 한민족의 또 다른 문화는 여유. 원씨는 처음 한복을 배우던 20여년 전을 떠올리며 “서양 옷을 만들 때에는 ‘몇 인치 길게 짧게’ 등 정형화된 단위를 사용하지만,

 

그때는 ‘손가락 중지만큼 크게’ ‘쌀 한 톨만큼 작게’ 등의 용어로 옷 짓는 법을 배웠다”며 “한복은 세심하게 만들지 않아도 어느 정도 커도 입고 작아도 입는 여유로움이 있다”고 설명한다.

 

아버지 한복을 아들이 물려 입고, 형 아우가 번갈아 입었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 자연스러움 역시 한복의 정서. 흐르면 흐르는 대로 옷 밖에 끈을 늘어뜨려 바람에 날리게 한다.

 

앞트임을 끈단추로 마무리짓는 중국의 파오·치파오나 끈을 매어 옷 안으로 정돈하는 일본의 기모노와는 차이가 있다. 샤넬 리본 등 서양의 쌍고(양쪽 리본)와 달리 외고를 쓰는 것 역시 한복의 독특한 아름다움이다.

 

한복의 호황기와 재미있는 변천사 그리고 생활한복

 

우리나라 한복 원단은 대부분 진주에서 올라온다. 최근엔 진주 원단업체의 약 80%가 문을 닫을 만큼 한복이 외면받고 있는 상황. 하지만 1980년대 중반만 해도 한복은 불티나게 팔렸다.

 

재밌는 것은 텔레비전에 비친 한복 입은 대통령 부인들의 모습이 판매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원씨는 기억을 더듬다

 

“80년대 이순자씨가 해외 순방 때 궁중 예복인 당의를 입은 것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이 많았지만 한복을 해외에 알렸다는 점에서는 평가받을 만하다”며 “다리가 불편했던 이희호씨도 공식석상에서만큼은 한복을 자주 입는 편이었다”고 회고했다.

 

당시 유치원 기념사진을 뒤져 봐도 한복 입은 어린아이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고, 웬만한 명절이나 칠순·팔순 잔치에서도 한복은 쉽게 눈에 띄었다.

 

그뿐 아니라 외국에 부임하는 대사의 부인들도 한복을 10여벌씩 준비해 나가는 게 굳어져 있었고, 청와대 하례식에서도 한복은 각광을 받았다고.

 

철 따라 맞춰 입던 한복은 사철깨끼(사철 원단을 써서 곱솔로 박아 지은 겹옷)가 나오면서 최대 활황을 맞았다.

 

원씨는 당시 상황을 ‘혼수철만 되면 동대문시장의 불이 꺼질 줄 모를 정도로 한복이 인기’였다고 전했다. 당시 ‘떼돈’을 번 사람도 많았지만, 어찌 보면 그때 이후 한복은 사양길로 접어들었다고.

 

한때 온 국민이 즐겨 입던 한복 역시 트렌드가 있었다. 6·25 전쟁 이후 50년대부터는 ‘섹시 코드’가 주류였다. 저고리의 옷여밈 부분의 V자가 젖가슴 골이 보일 정도로 내려왔다.

 

신여성이 눈에 띄기 시작한 60년대에는 저고리를 일부러 크게 입었다. 블루스와 같은 서양 춤을 출 때 파트너가 등에 손을 넣기 편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원씨는 전했다.

 

지금도 나이 든 할머니들 중에는 저고리를 약간 크게 입어야 한복을 예쁘게 입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은 이유다. 서양 드레스가 유행할 때에는 한복 역시 ‘A라인’(위쪽이 작고 옷 아래쪽을 향하여 넓게 퍼진 형태)이 인기인 적도 있다.

 

최근에는 동정 깃이 짧아지고 저고리가 길어지는 게 유행이다.

 

90년대부터 활동하기 불편한 한복의 단점을 보완한 생활한복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전통한복을 고집하는 이들에게는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한복의 아름다움이 망가진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하지만 원씨는 “불편해서 입지 않아 잊혀지던 한복에 눈을 돌리게 해준 것만으로도 그 공은 충분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원씨는 ‘한복이 불편해서 입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불만이 많다.

 

평상복으로야 힘들겠지만 최소한 한복의 명맥은 유지할 정도가 돼야 한다는 것.

 

얼마 전 부산에서 열린 에이펙 정상회의 때 외국 정상들은 엄밀히 말하면 생활한복을 입었다. 이들이 생활한복을 전통한복으로 알고 돌아갔을 것이 못내 아쉽다.

 

어차피 우리 옷 한복을 알리기 위해서였다면 아무리 불편하더라도 전통한복이 제격이었다는 것. 일본의 기모노 역시 사양길에 접어들었던 적이 있다.

 

하지만 한 번 입는 데 30여분 걸리고 누군가의 도움이 꼭 필요한 기모노는 외국 영화에서도 자주 등장할 정도로 평가를 받고 있다. 원씨는 “기모노에 대한 일본인의 애정과 관심이 가장 큰 이유였다”며 “이제는 한복의 아름다움에 눈을 돌릴 때”라고 말했다.

 

사양산업 한복, 미래가 필요하다.

 

한복이 사양화 됐다는 것에 이견은 거의 없다. 문제는 한복의 미래. 원씨는 “일단 전통한복 짓는 기술을 보유한 전문가들이 60, 70대 고령자가 대부분이고 기술 전수 등에 폐쇄적인 면이 짙다는 점이 문제”라며 “디자이너를 꿈꾸는 학생들도 전통한복에 대한 관심이 그다지 높지 않다”고 말한다.

 

이 같은 경향은 대학에 개설된 한복 관련 학과가 거의 없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전통 한복 연구가들의 또 다른 당면 과제는 한복의 근본적인 아름다움을 깨뜨리지 않고 산업화해 수익 창출 모델을 만드는 것. 이미 이세 미야케 등 일본 디자이너들은 기모노를 기반으로 한 컬렉션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국내 디자이너로는 이영희씨 등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아직 수익 모델은 드문 편이다.

 

한복은 분명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는 것이 지난해 프랑스 파리 프레타포르테(기성복 패션쇼)에서 한복 컬렉션을 연 원씨의 설명. 당시 외국 디자이너들이 한복을 기반으로 다양한 의상을 선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주최 측의 초청 컬렉션이다 보니 일방적인 진행 방식에다 자금까지 달려 현지 면세점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직원들을 모델로 세워야 했다.

 

주최 측에서 내세운 서양 모델들은 체형이 한복과 어울리지 않아 낯 뜨거운 컬렉션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옷 크기가 맞지 않아 치마 끝단이 뜨고, 버선을 벗은 채 무대를 걷는 모델도 있었다.

 

다만 우리나라의 다양한 한복을 선보였다는 점에서는 평가할 만했다고. 원씨는 “해외 디자이너들은 분명 한복의 선과 배색에 관심을 보인다”며 “지금처럼 국내에서 한복에 무관심하다가는 외국 디자이너가 먼저 한복을 기본으로 컬렉션을 열고 수익 모델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고 씁쓸해했다.

 

원씨는 젊은 디자이너들이 한복에 빠질 수 있도록 전통한복의 맥을 유지하는 일과 산업화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때라야 어린 시절 명절 때마다 한복 곱게 차려 입고 친척집을 오가던 추억을 우리 아이들에게 전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재영 기자 sisleyj@segye.com

 

◇왼쪽부터 1950년>>1960년>>1970년>>1980년>>1990년>>2000년>>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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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일보 2006-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