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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 폭설 속에 목련꽃이 피었습니다

향기男 피스톨金 2006. 1. 31. 01:20

 

 

   무등산, 폭설 속에 목련꽃이 피었습니다

 
▲ 무등산 올라가는 가로수에 목련꽃(?)이 피었습니다.
ⓒ2005 서종규
오후 5시경, 배낭을 짊어진 채 어머님 집에 들어갔습니다. 밖은 아직도 함박눈이 계속 내리고 있었습니다. 아침부터 동지죽을 끓이시느라고 분주하셨나 봅니다. 아버님은 이미 한 그릇 잡수셨고, 어머님은 눈이 빠져라 자식 오기만을 기다리시다 지쳐서 양로원에 나들이 나가셨답니다. 아버님께서 급히 양로원에 전화를 거셨습니다.

▲ 오늘 산행에서 가장 큰 발견은 가루수에 핀 목련꽃이었습니다.
ⓒ2005 서종규
“왜 이러리 늦게 왔어? 어디 간다드만 잘 댕겨왔냐?”
“예, 어머니, 무등산에 다녀왔어요.”
“뭐, 무등산, 아니 이렇게 험헌 날씨에 산에는 뭐할라고 간다냐. 응, 사람이 죽게 생겼는디, 저 봐라. 저그 텃밭에도 사람 절반이 빠진다. 사람 죽게 생겼어야. 잘못허다가는 죽는당께. 어멈한테 전화헝께 어디 나갔다고 그러더만, 간단 디가 무등산여. 암시랑토 않은 날도 힘든디, 조로케 눈이 많이 내린 날에 무슨 산이여. 지비서 자빠져 있제.”
“아니, 이런 날씨에 등산을 해야 더 재밌어요. 어머니, 동지죽이나 한 그릇 주세요. 배고파 죽겠네.”
“뭐여, 그 지랄헐지 아랐으면 죽 써 놓지 않을 것인디. 지놈 죽을라고 험헌 날씨에 산에 댕기고, 나는 새벽부터 동지죽 쑤느라고 애탄지고 모르고, 애고 썩을 놈.”

▲ 가로수는 백합나무(튤립나무)인데 열매에 날개가 있어서 그 위에 눈이 쌓였습니다.
ⓒ2005 서종규
남도에 3주째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폭설로 인하여 농가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고, 조금이라도 그 피해를 줄여보려고 군인들까지 나서서 복구에 여념이 없습니다. 헌데 또 어제 엄청난 눈이 내려 오늘 모든 학교에 휴교령이 내려졌습니다. 도로는 온통 눈에 덮여 차들이 제대로 다니지도 못하고, 고속도로에서는 몇 시간 동안 차량들이 정체되어 고통 속에서 밤을 보내야 했답니다.

한데, 죄송스럽게 또 무등산에 올랐습니다. 오전 10시 30분에 무등산 증심사 주차장에 산을 좋아하는 사람 다섯 명이 모였습니다. 요즈음은 번개산행이라고 문자를 보내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가는 산행입니다. 아침 날씨는 눈이 그쳐 맑은 하늘이 보였습니다.

▲ 목련꽃과 눈꽃이 만들어 낸 목련꽃의 모습이 똑 같습니다.
ⓒ2005 서종규
무등산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증심사 쪽으로 발길을 내디뎠습니다. 한데 길 옆에 서 있는 가로수에 목련꽃(?)이 피어 있어서 장관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겨울에 보는 너무나 신기한 장면이었습니다. 오늘의 산행은 뜻밖에 발견으로 처음부터 들뜨게 하였습니다.

무등산 증심사로 들어가는 도로에 심어진 가로수는 백합나무입니다. 높이는 보통 10~15m 정도의 큰 나무로 성장하는데, 5~6월에 녹색을 띤 노란색으로 가지 끝에 지름 약 6cm의 튤립 같은 꽃이 1개씩 핀다고 해서 튤립나무라고도 한답니다. 이 백합나무는 북아메리카 원산입니다. 미국에서는 생장이 빨라 중요한 목재나무로 쓰이나 한국의 중부 이남에서는 관상용 또는 가로수로 심는답니다.

이 백합나무 열매는 폐과로서 10~11월에 익으며, 날개가 있고 종자가 1~2개씩 들어 있답니다. 그런데 그 날개가 겨울까지 붙어 있어서, 눈이 내리자 꼭 목련꽃 모양으로 변하였습니다. 도로는 이 목련꽃이 쭉 피어서 이색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 많은 사람들이 증심사 일주문을 지나 무등산에 오릅니다.
ⓒ2005 서종규
어제부터 광주지방에 또 30cm 이상의 눈이 내렸습니다. 무등산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산행은 증심사 옆을 지나 당산나무 보리밥집 위로 중머리재 - 장불재 - 서석대 - 중봉 - 증심사의 길을 택하였습니다. 증심사 일주문을 통과하여 산에 오르는 초입부터 스패츠와 아이젠 없이는 오르기가 힘들었습니다.

눈 덮인 무등산의 모습은 첫눈이 내렸던 지난 기사(12월 4일 '눈발이 되어 서석대까지 날아갔습니다')에서 표현한 것처럼 지금도 온통 하얀 눈세계였습니다. 그리고 무등산을 찾는 사람들도 여전히 많았습니다.

12:30, 무등산 중머리재에 있는 샘터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온통 눈세계라 앉을 자리도 없었습니다. 발로 눈을 다져서 터를 만들었습니다. 보온 도시락에 담은 밥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습니다. 잠깐 쉬는 틈에 등에서 흐르던 땀은 찬 기운으로 몸에 달라붙었습니다. 발끝은 차츰 시려오기 시작했습니다.

▲ 눈길 산행의 묘미는 허리까지 빠지는 길을 걷는 즐거움이랍니다.
ⓒ2005 서종규
겨울 눈 산행은 추위가 계속 엄습하기 때문에 한 곳에 오래 머물러 있을 수가 없습니다. 자꾸 몸을 움직이기 위해서 계속 걷는 것입니다. 점심을 먹는 잠깐의 시간 동안에도 추위가 몸을 움츠리게 합니다. 보온병에 담아 간 커피 한 잔이 온 몸을 녹여 주었습니다.

오후 1:20, 장불재를 향하여 출발했습니다. 오르는 길은 온통 눈꽃 터널이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깊이 빠지는 눈길을 헤치고 오르는 발길에 힘이 들었습니다. 오전까지 맑았던 또 날씨가 흐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눈발이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오후 2:20, 장불재에 도착했습니다. 무등산 장불재는 화순 만연산 쪽으로 가는 길, 군사도로를 타고 원효사 계곡인 산장 쪽으로 가는 길, 규봉암을 돌아 꼬막재로 가는 길, 중봉을 올라 동화사터로 내려가는 길, 중머리재로 가는 길, 등 여러 갈래의 길로 나누어지는 갈림길입니다.

장불재에 도착했을 때 눈보라는 더욱 심해졌습니다. 앞은 거의 500m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장불재에서 입석대나 서석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장불재에서 가는 길들은 사람들이 다니지 않아서 거의 러셀을 하여 눈길을 헤쳐가야만 했습니다. 우리들은 산행 코스를 수정해야만 했습니다. 입석대 - 서석대에 오르지 않고, 중봉을 거쳐 다시 중머리재 - 증심사로 내려가는 길을 택했습니다.

▲ 무등산 오르는 길에 무등산 만큼이나 우뚝 선 700년된 느티나무입니다.
ⓒ2005 서종규
중봉에서 중머리재로 내려가는 길엔 발자국이 전혀 없었습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헤치고 나아가는데, 발은 허리까지 빠지기 일쑤였습니다. 짧은 길이라서 눈길 산행의 맛을 톡톡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허리까지 빠지는 눈길을 하루 종일 가는 길이라면 고역이겠지만 한두 시간 이런 길을 가는 것은 큰 즐거움입니다.

내려오는 길엔 계속하여 눈보라가 몰아쳤습니다. 중머리재를 거처 봉황대, 당산나무로 길을 택했습니다. 무등산에 오르는 초입에 커다란 당산나무가 있습니다. 수령 700년이 된 이 나무는 광주광역시에서 보호수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는데, 나무 둘레는 4.8m이고, 높이는 28m나 되는 아주 큰 느티나무입니다.

▲ 700년이 된 당산나무에 몇 마리의 까치들이 눈꽃을 쪼아댑니다.
ⓒ2005 서종규
무등산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이 당산나무 아래에서 쉽니다. 10여 년 전에는 많은 등산객들이 이 당산나무 옆에 있는 식당에서 막걸리 한 사발을 마시거나 보리밥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그 식당을 이용하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눈 쌓인 당산나무에 까치 몇 마리 열심히 눈꽃을 쪼아대고 있었습니다.

당산나무에서 어깨에 내린 눈을 털어 냈습니다. 그리고 사방을 둘러보았습니다. 세인봉 쪽으로 넘어가는 해가 달처럼 보였다가 다시 구름 속에 숨었습니다. 눈발은 계속 내리고 있었습니다. 눈발은 건너편 녹차밭에도 내리고 있었고, 계곡에 있는 증심사 위에도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 눈발이 산사를 고요 속에 멈추게 하고 있었습니다.

▲ 눈발이 증심사를 고요 속에 멈추게 하고 있었습니다.
ⓒ2005 서종규
오후 5시, 증심사를 지나 도로에 다다랐습니다. 길 옆에 있던 백합나무의 열매 받침 위에 아직도 눈이 그래도 있었습니다. 오전에 앉았던 눈이 금방 녹을 줄 알았는데, 계속 내린 눈은 그대로 목련꽃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날리는 눈발 아래 목련꽃이 활짝 핀 거리를 조심조심 걸어 내려갔습니다.

▲ 이 기사를 읽는 모든 분께 크리스마스를 맞아 이 목련꽃을 바칩니다.
ⓒ2005 서종규
[오마이뉴스 2005-12-23 10:14]    
[오마이뉴스 서종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