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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벡키스탄,부하라에서 본 우즈벡 독립기념축제

향기男 피스톨金 2006. 1. 31. 14:08

 

                  우즈벡키스탄,

 

    부하라에서 본 우즈벡 독립기념축제

 부하라 구경의 시작점은 아르크 성이었다. 부하라 왕국의 왕이 살던 곳이라는 이 성은 7세기 경에 만들어졌다고는 하지만 현재의 양식은 16세기에 이루어진 것이다. 정면에서 바라본 성의 모습은 황토색 벽돌로 매끈하게 쌓은 모습이었다. 별다른 장식이나 채색없이 부드러운 이 성의 전경은 사막에서 마주치는 모래언덕을 연상시키고 있었다.

▲ 아르크 성의 전경
ⓒ2005 김준희
아르크 성의 내부는 전시공간과 기념품 가게로 변해있었다. 입장료는 4400 숨(숨은 우즈베키스탄의 공식화폐단위, 1숨은 한화 약 1원). 성의 정문을 통해서 들어가니 통로의 양옆은 기념품 가게다. 그곳을 빠져나오니까 널찍한 공간이 있고 여러 개의 전시실이 있고 그곳을 구경하는 서양인들이 보였다.

전시실을 하나하나 구경해보았다. 기원후 1-2세기에 사용했다는 흙 도자기와 녹슨 철검들을 포함해서 많은 유물이 있었다. 사람 키 만한 러시아 사모바르가 있고 화려한 색의 도자기와 접시, 전통악기가 있었다.

그리고 무기가 있었다. RPG 게임에 나올듯한 큰 활과 창, 도끼와 대포 그리고 대포 알이 있었다. 큰 사과 크기의 대포알부터 내 머리만한 크기의 대포알까지 다양한 크기의 대포알이 전시되어 있었다.

다른 전시실에는 코란이 전시되어 있었다. 큰 방 하나가 코란으로 덮여 있었다. 코란의 크기도 천차만별이었다. 영어사전 크기 만한 코란에서부터 피아노 악보를 연상시키는 크기의 코란까지 다양한 크기였다.

전시실을 둘러보고 나와서 성의 곳곳을 돌아다녀 보았다. 아르크 성에 오르면 시내를 바라볼 수 있다고 하기에 나도 그 기대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성의 정면에서 보는 시내는 구시가지의 반대방향이었다. 구시가지에 있는 돔과 미나레트를 보려면 성의 뒤쪽으로 가야만 한다. 하지만 뒤쪽으로 갈 수 있는 길은 없어 보였다.

어딘가 길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돌아다녀 보았지만 뒤쪽으로 통하는 길은 모두 막혀있었다. 그렇다면 성의 뒤쪽으로는 갈수 없다는 말인가. 반쯤 포기한 상태에서 성 한쪽의 의자에 앉아서 쉬고 있던 나에게 행운이 찾아왔다. 역시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법. 한 경찰이 다가오면서 나에게 말했다.

"곤니찌와!"

난 그 경찰을 바라보면서 서툰 러시아어로 말했다.

"야뽀니야 니예트, 까레야(일본인이 아니라 한국인)!"

그 경찰은 "까레야!" 하고 내 옆에 앉더니 내가 들고 있던 지도를 보면서 러시아어로 뭐라고 말을 했다. 하지만 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난 그 경찰에게 성의 뒤편을 가리키면서 그쪽으로 갈 수 없느냐는 시늉을 해보였다. 경찰은 웃으면서 1달러를 내면 자기가 데려다 주겠다고 한다.

우즈베키스탄의 다른 경찰들처럼 이 경찰도 박봉의 월급을 이런 식으로 보충하고 있었다. 왠지 부정한 일을 하는 것 같아서 찜찜했지만 이번 기회가 아니면 언제 성의 뒤편으로 갈 수 있으랴. 난 1달러에 해당하는 우즈베키스탄 지폐 1000숨을 경찰에게 주고 그를 따라 나섰다.

경찰은 성의 뒤쪽으로 통하는 철제문으로 날 데려갔다. 주위를 한번 둘러보더니 철제문을 감고 있던 쇠사슬 자물쇠를 열고 나에게 들어가라는 손짓을 했다. 난 더위도 잊은 채 카메라를 메고 걸어서 성의 뒤편으로 나아갔다.

성의 뒤쪽은 폐허였다. 성의 앞쪽이 벽돌로 만들어진 매끈하고 견고한 모습이라면, 성의 뒤쪽은 마치 사마르칸드의 아프라시압 언덕을 연상시키는 모습이었다. 단단한 흙과 군데군데 솟아있는 메마른 풀들. 그리고 부서진 벽돌 구조물들. 왜 뒤쪽을 관광객들에게 공개하지 않는지 이해가 되었다.

▲ 부하라의 전경. 가운데 탑이 칼랸 미나레트
ⓒ2005 김준희
그곳에서는 부하라의 구시가지가 보였다. 칼랸 미나레트와 굼바스와 칼랸 성원의 푸른 돔이 파란 하늘 아래에서 빛나고 있었다. 카펫 바자르에서 팔고 있는 거대한 카펫과 길을 걷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조금 전의 찜찜했던 기분은 사라지고 더위도 신경 쓰지 않은 채 난 그 광경을 보면서 사진을 찍었다.

▲ 46m 높이의 칼랸 미나레트
ⓒ2005 김준희
아르크 성을 나와서 근처에 있는 노천카페에서 밥을 먹고 칼랸 성원으로 향했다. 이곳은 칼랸 성원과 그 앞에 있는 칼랸 미나레트(첨탑)로 유명한 곳이다. 특히 12세기에 만들어진 칼랸 미나레트는 부하라의 상징과도 같은 탑으로 46m의 높이라고 한다. 가까이 다가가서 본 그 탑은 사진에서 보던 것보다 더 웅장하고 높게 느껴졌다.

13세기에 이곳에 쳐들어왔던 칭기즈칸은 이 탑을 보고 감명을 받아서 파괴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또 이 탑은 '죽음의 탑'으로도 유명하다. 부하라의 왕이 사형수를 자루에 담아서 이 탑의 꼭대기에서 던져서 처형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부하라의 많은 건물들은 모두 황토색이었다.
 
단지 몇몇 돔들만 푸른색이고 아르크성도 칼랸 미나레트도 굼바스도 황토색이다. 황량한 평원 근처에 만들어진 오아시스 도시라서 그런지 건물들의 색도 모두 황토색 모래벌판을 연상하게 한다.

입장료 700 숨을 내고 들어간 칼랸 성원 자체는 큰 볼거리가 없었다. 사마르칸드의 비비하님 성원 못지않게 커다란 성원인 이곳의 내부에는 나무 한 그루가 있는 넓은 뜰이 있고 그 뜰 사방으로 기둥이 많은 회랑이 있다. 그곳에서는 몇몇 무슬림들이 기도를 하고 있었다.

▲ 칼랸 성원 내부의 뜰
ⓒ2005 김준희
햇볕을 피해서 회랑 한쪽에 앉았다. 칼랸 성원 앞에는 카펫 시장이 있고 그 옆으로 공예품과 기념품을 파는 많은 노점상들이 있다.
 
당연히 그곳을 통과해서 라비하우스로 가다보면 수많은 상인들과 아이들이 다가와서 물건을 사라고 하고, 어떤 아이들은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따라오기도 한다.
 
하지만 이 성원 안쪽은 조용하다. 상인도 없고 아이들도 없다. 보이는 것은 햇볕과 나무 한그루와 푸른 돔뿐, 들리는 것은 무슬림들의 기도소리뿐이다.

▲ 칼랸 성원 맞은 편의 미리아랍 메드레세
ⓒ2005 김준희
저녁이 되어서 다시 라비하우스로 오니 그 주위에서는 무슨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까 오늘은 우즈베키스탄의 독립기념일인 9월 1일. 타슈켄트와 사마르칸트에서는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하고 있을 시간이다. 부하라의 구시가지에서도 거기에 맞춰서 독립기념행사를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역시 부하라는 작은 곳이라서 그런지 행사라기보다는 잔치같은 분위기다. 따로 마련한 무대장치도 없고 현수막도 없다. 단지 평소보다 좀더 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좀더 많은 음식들이 준비되어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나스레딘 호자의 동상 주위에서는 짙게 화장을 하고 화려한 복장을 한 가수와 무용수가 나와서 노래를 하며 춤을 추고 있었다. 반면에 라비하우스의 다른 편은 마을 사람들이 주로 모여서 노래와 춤을 추는, 마치 마을 잔치 같은 그런 분위기였다.

난 그 마을잔치 쪽을 가보았다. 이곳은 마을아이와 어른들의 무대였다. 어설픈 사회자의 진행에 따라 아이들이 나와서 노래에 맞춰서 춤을 추고 도복을 입은 아이가 나와서 태권도 시범을 보이고 있었다.

▲ 라비하우스 옆의 독립기념축제
ⓒ2005 김준희
언제 연습을 했는지 대여섯명의 아이들이 보조를 맞추어서 함께 춤을 추는가 하면, 머리를 예쁘게 땋아 올린 어린 아이도 무대를 뛰어다니며 춤을 추고 있었다.
 
주변의 노천카페에는 많은 현지인들이 앉아서 그 모습을 보면서 음식을 먹고 있다. 평소와는 달리 오늘은 술을 팔지 않는지 카페의 테이블에 술은 보이지 않았다.

한쪽에 서서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한 여인이 다가와서 테이블을 가리키며 앉으라고 권유했다. 현지 노인들이 주로 앉아있는 자리에 내가 앉으려니 왠지 어색했지만 못이기는 척 앉았다.
 
테이블에는 빵과 삼사와 챠이와 케이크가 있었다. 나도 음식을 먹으면서 그 잔치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무대 주위에는 많은 현지인들이 둥그렇게 모여서서 박수를 치며 아이들의 춤과 노래를 보고 있었다.

▲ 부하라의 학생들
ⓒ2005 김준희
저녁 7시 30분이 넘어가면서 이 무대는 온통 춤판으로 변해버렸다. 노래와 춤을 즐기는 민족답게 아이 어른 할 것없이 음악에 맞추어서 모두 뒤섞여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미 어두워진 마을에서는 메드레세 너머로 별이 보인다. 술 한 잔 마시지 않은 사람들이 흥겹게 춤을 추고 있고, 덕분에 술 한 잔 마시지 못한 나도 덩달아서 즐거워졌다.

옆 테이블에 앉아있는 할머니는 내가 한국에서 왔다니까 내게 연신 음식을 권했다. 그때마다 넙죽넙죽 받아먹었지만 배가 부른지조차 모르겠다. 학생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와서 나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고,
 
전통복장을 입은 젊은 우즈베키스탄 여인이 함께 춤을 추자고 권유한다. 왠지 오늘이 지나고 나면 모든 부하라 사람들과 친해져 있을 것 같은 그런 밤이다.

덧붙이는 글
2005년 7월 부터 10월까지 4개월간 몽골-러시아(바이칼)-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키르키즈스탄을 배낭여행했습니다.
오마이뉴스 2005-12-03 11:56]    
[오마이뉴스 김준희 기자]

 

 

Torna A Sorrento(돌아오라 쏘렌토로) / Giovanni Marradi

 
 
 
아이들 때문에 외롭지 않은 곳
[오마이뉴스 김준희 기자] 독립기념 축제랍시고 간밤 늦게까지 놀았는데도 아침에 일찍 눈이 떠졌다. 어제는 구시가지를 구경했으니 오늘은 좀 외곽으로 돌아볼 생각이다. 구시가지 바깥에 놓여진 영묘 두 군데와 쉬토라이 모이하사 궁전을 가볼 계획을 세웠다.

라비하우스에서 지도를 보고 한참을 걸어가니 공원이 나왔다. 놀이시설도 있고 많은 나무와 꽃밭이 있는 곳이다. 이 공원 한쪽으로 이스마일 사마니드 묘와 조금 떨어진 곳에 차쉬마 아윱 묘가 있다.

우선 이스마일 사마니드 묘. 9세기 사만 왕조의 이스마일 사마니가 아버지를 위해 만들었다는 이 사각형 건물은 중앙아시아 전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라고 한다. 13세기에 칭키즈칸 원정대가 이 곳에 왔을때는 이 묘가 땅속에 묻혀있었기 때문에 파괴를 면할 수 있었다. 현재의 모습은 20세기 초에 구 소련의 고고학자가 발굴한 것이다.

부하라의 다른 건물들과 마찬가지로 이 묘도 황토색이다. 단순한 사각형 건물에 돔을 얹어놓은 구조지만 벽면의 모습이 특이하다. 다른 건물들처럼 장식없이 미끈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4면 모두 다른 문양을 사용해 장식한 건물이다. 그리고 돔의 모습도 그렇다. 황토색 돔에는 뾰족한 삼각뿔이 군데군데 솟아 있어서 손바닥을 갖다 대면 찔릴것만 같은 모습이다.

▲ 이스마일 사마니드 묘
ⓒ2005 김준희
실제로 이 벽면은 햇볕의 강약과 각도에 따라 눈에 비치는 문양의 모습이 다르다고 한다. 하지만 그걸 확인하자면 여기 앉아 묘를 바라보며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할 판이다. 포기하고 다른 영묘로 향했다.

오아시스 도시이기는 하지만 관개시설이 잘된 덕에 부하라의 곳곳에는 운하가 있고 스프링쿨러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오래 전에는 물이 없어서 많은 고생을 했고 지금 내가 가고 있는 차쉬마 아윱 묘는 바로 그 전설과 연관이 있다.

'차쉬마 아윱'은 '욥의 샘'이란 뜻이다. 여기서 욥은 바로 구약성서에 나오는 욥이란 인물. 부하라의 주민들이 물이 없어서 고생을 하고 있을때 욥이 나타나서 지팡이로 땅을 내려치자 그 곳에서 샘이 터져 나왔다고 한다. 정말 전설같은 이야기다. 지금 차쉬마 아윱의 묘가 만들어진 곳이 바로 그 자리다.

▲ 차쉬마 아윱 묘
ⓒ2005 김준희
명색이 천주교 신자지만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욥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별로 알지 못한다. 욥이 살았던 곳이 지금의 팔레스타인이라는 것 정도 밖에는. 팔레스타인에서 부하라까지는 족히 수천 km의 거리다. 욥이 정말 중앙아시아까지 왔던가? 여기에 대해서는 다른 견해도 있다.

욥은 구약성서 뿐 아니라 코란에도 등장하는 인물이라고 한다. 이 건물이 만들어진 것은 14세기 이후. 그때는 이미 이 지역을 이슬람 세력이 장악하고 있던 때다. 그렇다면 그 전설의 주인공은 코란의 등장인물로 보는 것이 타당할것도 같다.

부하라 구경의 마지막은 쉬토라이 모이하사 궁전이었다. 부하라 외곽에 위치한 캬라반 바자르에서 택시를 타고 도착한 이곳은 부하라 왕국의 마지막 칸(왕)이 살았던 여름궁전이다. 19세기 말에서 20 세기 초에 러시아건축가와 현지의 건축가가 함께 만들었기 때문에 동서양의 양식이 혼합된 궁전이라고 한다.

▲ 쉬토라이 모이하사 궁전의 정문
ⓒ2005 김준희
이 곳의 입장료는 3000숨(숨은 우즈벡의 공식화폐단위, 1숨은 한화 약 1원). 유럽풍의 하얀건물을 지나서 안쪽으로 들어가니까 넓은 정원이 있고 연못과 그 앞의 2층 건물이 눈에 보인다. 이 곳 역시 지금은 박물관으로 바뀌어 있었다. 1층에는 당시에 사용하던 옷과 침대 등이 있고 라면그릇으로 사용하면 딱일 듯한 그릇들이 보였다. 화려하게 장식한 접시와 주전자도 있다.

▲ 쉬토라이 모이하사 궁전의 유럽풍 건물
ⓒ2005 김준희
그리고 많은 카펫이 있었다. 아라비안 나이트에 나오는 '하늘을 나는 양탄자'를 연상시키는 커다란 카펫부터 화장실 앞에 놓아두면 좋을 것 같은 작은 카펫까지 다양한 종류의 카펫들이 벽과 바닥에 펼쳐져있고 그것도 모자라서 구석마다 둥그렇게 말린 채 세워져 있었다.

도대체 이 많은 카펫을 어디에 사용했을까 궁금해질 정도로 많다. 궁전 내부의 벽과 바닥을 모두 덮고도 남을 듯한 카펫. 당시 이 궁전에 몇 명이나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 사람들이 하나씩 몸에 두르고 있더라도 남을 만한 분량이다.

2층 한쪽의 테라스로 나가자 그 곳은 카페로 바뀌어있었다. 한 테이블에 앉아서 차이를 마시면서 밖을 보았다. 밖에는 넓은 연못이 보인다. 예전에 이 연못은 칸의 후궁들이 수영을 하던 곳이라고 한다. 지금은 후궁 대신에 팔뚝만한 시커먼 물고기들만이 헤엄쳐 다니고 있다.

여전히 날은 덥고 하늘은 파랗다. 이 테라스는 부하라의 칸이 자주 찾았던 곳이라고 한다. 난 살아생전에 칸이 되지는 못하겠지만 그런 기분으로 이곳에 앉아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냈다.

▲ 부하라의 칸이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2층 건물과 연못
ⓒ2005 김준희
3일이 지나고 나자 부하라에서는 할 일이 없어졌다. 할 일이 없다기 보다는 부하라가 익숙해진 것이다. 부하라의 웬만한 유적들은 모두 보았고 굼바스와 거리도 많이 걸어보았고 라비하우스 근처의 노천카페에서 꼬치구이와 양고기국도 먹을만큼 먹어보았다. 볼펜과 머니를 외치며 쳐다보는 아이들에게도 익숙해졌으니 이제는 부하라를 떠날 때가 된 것이다.

부하라는 독특한 곳이다. 조용하면서도 시끌벅적한 곳이 부하라다. 라비하우스 주위의 노천카페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다보면 세상이 뒤집어지더라도 이 곳만큼은 조용함을 잃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한적한 분위기다. 하지만 여기서 몇 분만 걸어서 굼바스와 카펫 바자르에 이르면 온갖 상인과 호객을 하는 아이들 때문에 소란스럽다.

난 부하라에 마음이 끌리고 있었다. 언제나 혼자일 수밖에 없었던 타쉬켄트나 사마르칸드와는 달리 부하라에서는 혼자 돌아다녀도 쓸쓸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마도 그건 관광객을 그냥 놔두지않는 상인과 아이들 때문일 것이다. 부하라의 어느곳을 걷더라도 붙임성있게 다가오는 많은 아이들을 볼수 있다.

때로는 뭔가 물질적인 것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지만 난 이 아이들이 좋았다. 부하라에 도착해서 빨리 익숙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나에게 웃음을 보여준 아이들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만일 부하라에 다시 온다면 그건 아마 이 아이들이 보고 싶기 때문일거다.

▲ 라비하우스의 고목과 노천카페
ⓒ2005 김준희
다음 목적지는 여기서 서쪽으로 약 500km 떨어진 히바라는 곳이다. 히바는 어떤 분위기일까. 히바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까. 익숙한 곳을 떠나서 새로운 곳으로 향할때는 설레임과 함께 불안한 기대감이 생기기 마련이다. 때로는 두려움 까지도.

여행이 주는 묘미중 하나는 그런 불안한 감정들을 극복하고 낯선 환경에 적응해가는 것이다. 낯선 곳에 처음 도착해서 어색하고 불편하지만 그런 환경을 자신에게 익숙하게 만들어 가는 것. 처음 보는 거리와 처음 보는 사람과 때로는 적대적인 눈빛들이 있는 곳을 친숙하게 바꾸어 가는 것이다.

어떻게 히바에 갈까를 고민해 보았지만 딱히 답이 나오지 않았다. 부하라에 있는 여러 군데 여행사에 들러서 동행자를 구해보았지만 히바로 가겠다는 여행자는 없었다. 어쩔 수 없다. 캬라반 바자르 앞에 있는 버스터미널에 가서 일단 부딪혀 보는 수밖에.

내일 히바로 출발한다. 타쉬켄트를 떠나고 나서 계속 서쪽으로 그리고 점점 작은 도시로 이동해 가고 있다.

덧붙이는 글
2005년 7월부터 10월까지 4개월간 몽골-러시아(바이칼)-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키르키즈스탄을 배낭여행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