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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하는' 정동영, '강의하는' 김근태

향기男 피스톨金 2006. 2. 16. 13:00

 

 

 

   '선동하는' 정동영, '강의하는' 김근태

 

 

 "박수 유도하는 것까지 똑같네…."
"2002년 국민경선 때는 지역마다 재미가 있었는데…."

11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열린우리당 당의장 합동토론회를 본 당직자들이 뒤에서 내뱉은 푸념이다.

집권여당의 당의장을 뽑는 전당대회가 일주일여 앞으로 다가왔다. 8명의 후보자들은 지역을 돌며 대의원들에게 한 표를 호소하고 있지만, 그들이 던지는 메시지는 거의 변화가 없어 취재진을 난감하게 한다. '오늘은 또 무슨 주제로 쓰나…'

사실 투표권을 쥐고 있는 1만2100명 대의원들의 표심은 거의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국민' 경선과 달리 '당원' 선거는 부동층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애초 마음먹은 지지자들이 분명하다. 문제는 1인 2표제인 이번 당의장 경선에서 2표의 향배. 각 후보 진영은 전당대회 당일 '현장 분위기'에 달려있는 표가 적게는 5%에서 많게는 10% 될 것으로 보고 대의원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한 '연설'에 힘을 쏟고 있다.

[김근태] 소리 지르지 않아도 호소력 있는 태도

 
▲ 지난 2일 예비경선에서 연설을 하고 있는 김근태 후보. 그는 연설에 관한 한 가장 화제에 오른다.
ⓒ2006 오마이뉴스 이종호
특히 이런저런 여론조사에서 정동영 후보와 5∼10%의 격차를 보이고 있는 김근태 후보 입장에서는 다급하다. 연설에 관한 한 가장 화제에 오르는 그다. 잘해서가 아니라 못해서다. 그리고 최근에 "김근태 장관 연설 많이 좋아졌어"라는 얘기가 돈다.

공보실의 한 당직자는 "대구 연설 이후부터 많이 달라졌다"고 평했고, 김근태 캠프에선 "이제 몸이 다 풀렸다"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2일 예비 경선에서 김근태 상임고문의 연설은 '최악'이었다.
 
그는 아예 연설 시작을 "저는 연설을 잘 못합니다"라고 시작했다. 그리고 행사가 끝난 뒤 기자들에겐 "더 노력해 점수를 따도록 하겠습니다"라는 말로 인사말을 대신했다.

당시 김 고문은 연설 도중 "저 김근태에게 박수를 주십시요"라며 박수를 유도하는 말을 여러 차례 던져 듣는 이들을 부담스럽게 했다. 이에 대해 김 고문의 연설담당 보좌관은 "말이 엉키고 분위기가 다운됐을 때 나오는 버릇"이라고 말한다.

전기고문의 후유증으로 오른쪽 목·어깨가 굳어 있고 물고문으로 콧물이 예사로 흐르는 탓에 역동적인 제스처가 안나오는 근본적인 한계도 있지만, 원인은 '주눅'이었다. 그의 측근들은 "연설 순번이 최악이었다"고 말한다.

전대협 의장 출신답게 연설력을 과시한 임종석 후보가 분위기를 한껏 띄워놓은 데다가 이후 정동영 후보 순서에서 장내 분위기는 정점에 달했다. 뒤이은 김근태 후보는 부담으로 인해 평소 실력도 발휘하지 못했다는 것. 강행군으로 인한 피로누적에 당일 심리적 부담까지 이중고가 겹쳤다.

이후 김근태 캠프에는 '이래라, 저래라' 연설에 관한 조언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안타까움을 전하는 지인들의 조바심이었다. 그러다 촛불집회 사회로 10만을 움직인 '국민 사회자' 최광기씨에게까지 연락이 미쳤다. 선거 때만 되면 각 후보들의 러브콜이 닿는 최씨에게 SOS가 간 것이다.

김 고문은 전화로 몇 차례, 만나서 한차례 과외수업을 받았다. 최광기씨는 우선 '자신감 회복'을 1순위에 뒀다. "기가 눌리고 주눅 든 상태에서는 말하는 법을 백날 가르친대 봤자 소용없다"는 게 최씨의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선 '김근태다움'을 드러내야 한다. 그 핵심은 '따뜻한 카리스마'다.

"김근태는 목소리에서 진솔하고 무게가 느껴지기 때문에 그 자체로 전달력이 있다. 굳이 소리를 지르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소리를 지를지 않을 수 없는 표현들이 연설문에 들어가 있다.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격이다. 사실에 근거한 냉정하고 차분한 메시지가 맞다. 김근태에겐 역동성 대신 단호함이 무기다. '다 버릴 수 있다'를 메시지를 진솔하고 단호하게 표현하면 된다."

최씨는 "김근태에게 맞지 않는 연설문의 내용"부터 교정했다. "폭풍우 같은" 방식의 역동적인 수식은 어울리지 않는다. 또 고문 후유증으로 경직되어 있는 몸을 커버하기 위해 손동작을 쓰라고 권유했다. 측근들은 한번쯤 웃어 보이라는 주문도 하지만 "엄중한 상황에서 절대 미소를 머금지 못하는 김근태"다.

[정동영] 순발력 강하고 메시지 쉽지만 부흥회 스타일

 
▲ 지난 2일 예비경선에서 연설을 하고 있는 정동영 후보. '연설 최강'을 자랑하지만 그에게도 단점은 있다.
ⓒ2006 오마이뉴스 이종호
최광기씨는 "김근태는 연설보다 토론·강연에 강하다면 정동영은 전형적인 선동가형"이라고 말한다. 사실 정동영 상임고문의 연설력은 상대방도 인정하는 바다. 앵커 출신인 정 고문은 암기력, 발음, 시선, 호흡 처리가 능수능란하다. 훈련된 경험치도 있지만 탁월한 순발력이 큰 강점이다.

그의 수행비서가 전한 대구에서의 에피소드. 토론회장에 도착하자마자 정 고문은 "강창덕 고문이 와 있는지 알라보라"는 주문을 했다고 한다. 수소문한 끝에 "와 계시다"고 알렸는데 정 고문은 이를 연설에 즉각 응용했다.
 
연설 도중 정 고문은 "여기 지역주의 타파의 산증인이 와 있다"며 그를 일으켜 세우자 일순간 숙연해졌고 현장 분위기는 압도됐다.

그의 측근들은 정 고문의 순발력은 대단하다고 혀를 내두른다. 지역 토론회장으로 향할 때 이동하는 차안에서 전화를 직접 걸어 지역 현안이 뭔지 묻는다고 한다. 그리고 이를 바로 연설에 차용해 차별화한다.

당의장 후보자들의 연설을 꼼꼼히 챙겨봤다는 최광기씨는 "정동영의 '국가는 부자지만 나는 가난하다'는 양극화 메시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쉽고 간결한 연설문의 조건을 갖췄다고 평가했다.

"방송인 출신이라 일단 출발이 다르다. 쉬운 말을 쓰는 훈련도 돼있다. 연설의 기본인 연설문도 사람들에게 와닿게 메시지를 재구성한다. 대중의 감각을 아는 것이다. 손동작도 자유롭고 호흡도 어떨 땐 주춤하다가도 역동적으로 치고 나가면서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하지만 단점도 있다. "연설이 소리지른다고 잘하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그렇게 높은 점수는 아니"라고 말한다. "부흥회를 보는 듯한 느낌"이라며 "선동가로서는 탁월하지만, 철학이나 깊이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표정이나 태도가 너무 강하면 "거부감이 들 때가 있다"고도 지적했다.

'정동영 캠프'에서도 고민하는 대목이다. 한 측근은 "방송용으로 갈지, 현장용으로 갈지 고민은 있다"며 "현장 분위기대로 가면 방송에서는 사나워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당의장 경선이 대의원들을 상대로 한 것이니만큼 현장 위주로 가게 된다고 덧붙였다.

[임종석·김혁규] "전대협 의장의 카리스마" vs "여유와 재치로 자신감"

▲ 지난 2일 예비경선에서 연설을 하고 있는 임종석·김혁규·김두관 후보.
ⓒ2006 오마이뉴스 이종호
▲ 지난 2일 예비경선에서 연설을 하고 있는 김부겸·김영춘·조배숙 후보.
ⓒ2006 오마이뉴스 이종호
정동영·김근태 후보 외에 '임종석의 연설'이 또 화제다. 지난 예비경선에서 임 의원은 "역시 전대협 의장 출신답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정권 재창출이 가장 큰 개혁'이라며 중도세력 대통합과 민주당과의 선거연합 등 선명한 메시지를 내세워 쩌렁쩌렁한 울림을 줬다. 마이크도 단상도 그가 연설할 때면 흔들린다.

하지만 최광기씨의 평가는 좀 다르다.

"내용은 설득력이 있지만 스타일로 보자면 80·90년대 운동권 출신의 연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시종일관 소리만 지른다고 좋은 연설이 아니다. 그런데 단상을 딱 짚고 처음부터 끝까지 내지른다. 임종석은 이제 40대가 된 가장 젊은 후보다. 그런 점을 살려서 감성적으로 호소하면 더 많은 표를 얻을 수 있을 텐데…. '젊은 이장님' 같은 머리모양도 좀 바꿨으면 좋겠다."

반면 김혁규 의원의 연설에선 "여유와 자신감이 느껴진다"고 말한다. 김 의원은 연설 시작에 앞서 자주 애드리브를 한다.
 
예비경선 당시 조배숙 의원 바로 뒤에 나선 김 의원은 조 의원이 연설 도중 말이 꼬이는 바람에 장내에 웃음이 터진 점을 들어 "분위기를 좋게 만들어 주어 고맙다"고 인사한 뒤 연설을 시작했다. 또 대구 연설 때는 정동영 고문 다음 순서였는데 "저는 참 운이 없습니다, 연설을 제일 잘하는 정동영 후보 뒤에 있으니 제가 아무리 잘해 봤자…"라고 토로했다.

 
▲ 촛불집회 사회로 '국민 사회자'라는 별명을 얻는 최광기씨.
ⓒ2006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에 대해 최씨는 "다른 후보들에게 없는 유일한 장점"이라며 "후보들 간 날이 서있고 분위기가 경직되었을 때 이를 풀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평했다. 또한 다른 후보들이 통합이니 개혁이나 거창한 얘기를 할 때 "
 
저는 뉴욕에서 단돈 천불가지고 기발한 아이디어 하나로 사업에 성공했다"는 식의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경제 책임론'을 주창하는 것도 쉽게 와닿는다고 말한다.

또한 김두관 후보에 대해선 "안정감 있는 목소리에 연설의 기본은 갖췄지만 밋밋하고 진지해 특징 없다"며 연설문을 다시 다듬었으면 좋겠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김부겸 후보는 "또릿또릿한 음성이라 훈련을 받으면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말했고,
 
김영춘 의원에 대해선 "자주정당론이 마치 과거 총학생회 자주적 학생회 건설 주장처럼 느껴진다"며 경직성을 지적했다.

최씨는 유일한 여성 후보인 조배숙 의원에겐 직접 전화를 걸어 조언을 하기도 했다. '최초의 여성 검사'답게 "말을 늘이지 말고 짧게짧게 치시라"며 단호함과 명료함을 주문했다.

"자연스러움·솔직함·일상성·대중성 다 갖춰"
최광기가 꼽은 '국가대표급' 연설가, 노무현

 
▲지난 2002년 7월 당시 노무현 민주당 대선 후보가 경기도에서 지방선거 지원유세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거리의 사회자' 최광기씨는 '노무현 후보의 연설'을 최고로 꼽았다. 그는 자신의 저서 <밥이 되는 말 희망이 되는 말>에서 1996년 노 후보가 서울 종로에 출사표를 던졌을 당시 지원유세에 나섰던 때를 떠올리며 "나의 연설에 관한 원칙을 거의 완벽하게 충족시키는 아주 드문 경우였다"고 극찬했다.

요약하면 이렇다. 거리 연설이 도입된 첫 해라 대중들의 관심은 그야말로 썰렁했다. 정치 1번지 종로의 아침도 텅 비어 있었다.

 

하지만 최씨는 시침이 뚝 떼고 수없이 많은 군중을 상대하는 것처럼 열변을 토했다. 이어 나선 노무현 후보의 첫마디는 "정말 뻔뻔한 여자입니다, 아무래도 저런 뻔뻔한 여자를 나보다 먼저 국회로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라며 시작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최씨는 "(노무현은) '뻔뻔한 여자'처럼 가벼운 화제로 출발한 이야기를 '정치인의 뻔뻔함'으로 연결시킬 줄 알고, 그것을 다시 '뻔뻔한 세상 갈아엎기 위해서는…'이라는 말로 뒤집으며 연설의 주제를 향해 달려갈 줄 알았다"며 '노무현의 연설'을 "반전의 카타르시스가 있다"고 평가했다.

최씨는 이 책에서 대중을 상대로 한 말하기의 원칙을 ▲자연스러움 ▲솔직함 ▲일상성 ▲대중성이라 꼽으며 "노 후보는 매끄럽고 세련되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전형적인 달변가 스타일은 아니지만,

 

서민의 투박한 말씨의 가슴으로 말하는 '소신과 상식의 정치'가 마음에 와 닿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지난 대선 때 노 후보보다 학벌이 좋고 달변인 경쟁자들이 그에게 밀린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감동'에 있다"며 그 점에서 "국가대표급 연설가"라고 극찬했다.


[오마이뉴스 2006-02-13 00:35]    
[오마이뉴스 박형숙 기자]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 아다지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