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들/세 상 사람들

개의 해, 그래요 기도할게요

향기男 피스톨金 2006. 1. 5. 14:38

 

       

         개의 해 그래요, 기도할게요

    
 새해 새 날이 시작되었습니다.

닭의 해가 지나가고 개의 해가 꼬리를 치며 다가왔습니다.

닭의 해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촛불을 밝혔습니다. 집안에 있는 양초를 모두 모아 교회당에 불을 밝혔습니다. 어둠과 빛의 조화를 보면서 새해에는 모든 것들이 이렇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갔으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2006 김민수
어둠이 있어 빛은 더욱 아름답습니다.

그렇다고 어둠이 상징하는 바를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삶에 다가오는 어둠의 그림자를 좋아할 수는 없는 법이겠지요.

언젠가는 자연의 어둠까지도 이유 없이 싫어했습니다.

그러나 깊은 어둠 속에서 아주 깊은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을 안 뒤에는 어둠을 조금이나마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둠이 있어 빛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안 뒤에는 빛과 어둠이 서로 하나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서로를 완전히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어느 정도 인정해 주고 감싸줌으로 인해 그 어떤 어둠, 그 어떤 빛도 만들 수 없는 아름다움을 만들어냅니다.


 
ⓒ2006 김민수
촛불은 2005년 마지막 시간에서부터 2006년 첫 시간을 이어가며 불타올랐습니다. 끝과 시작의 경계는 느낄 수 없었습니다. 단지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시계의 침이 모두 열 둘이라는 숫자를 가리키며 겹쳐지는 순간 한 해가 가고 한 해가 시작되었구나 했습니다.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야만 할 것 같은 시간입니다.

그러나 특별한 일이라는 것, 그것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겠지요. 어떤 사람들은 하루 하루를 늘 새로운 날, 생애에 단 한 번밖에 없는 특별한 날로 살아가는데, 하루가 바뀌어도 한 해가 바뀌어도 늘 그 날이 그 날인 것처럼 살아가는 이들도 있는 것이지요.

그래요.

내가 맞이한 오늘은 내 살아온 나이에 하루를 더한 아주 특별한 날입니다. 내 생애에 단 한 번밖에 없는 날이죠.


 
ⓒ2006 김민수
한 해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촛불 밝혀진 시골의 작은 교회에는 한 사람 한 사람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가져온 초에 불을 나눠 받습니다. 불을 나눠 받으며 내 삶을 힘들게 했던 모든 어둠들이 다 물러가기를 소망하고, 새해에는 좋은 일들만 가득하기를 소망해 봅니다.

어둠 속 은은한 촛불의 향연을 휘감으며 성가가 교회당을 감쌉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송명희 작사 '나'>


 
ⓒ2006 김민수
그들의 소망을 담은 촛불들이 하나둘 더해질 때마다 마음도 점점 뜨거워집니다.

그래요.

정신이 온전치 못한 딸 때문에 기도하셨군요. 이래도 저래도 헤헤 웃는 딸 때문에 마음고생이 많으시죠? 그렇게 아픈 마음 덩실덩실 춤출 수 있길 기도할게요.

그래요.

땀흘린 것이, 고생한 것이 헛수고가 아니길 바라고 있군요. 육지에 내린 폭설로 무, 당근, 감자 값이 올라갈 때에도 이러면 안 되는데 하셨던 집사님, 그 순수한 마음을 왜 모르겠어요. 이 땅의 농민들 위해서도 기도할게요.

그래요.

추운 겨울 감옥에서 지내고 있는 남편이 얼마나 걱정되겠어요. 전화위복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지난 번 면회 갔더니 평온한 얼굴이었어요. 조금만 더 기다리자구요.

그래요.

멋진 신랑감을 아직 못 만나셨군요. 새해에는 정말 멋진 남자, 그 속내까지 꽉 찬 남자 만나길 바랍니다. 주례는 제가 공짜로 해드리죠. 올해 국수 한 그릇 얻어먹길 기도할게요.

그래요.

고생하는 엄마 생각을 하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군요. 나도 알 것 같아요. 그 안타까운 마음을, 그런데 엄마라는 이름은 생각하는 것보다 강해요. 절대로 절망하지 않아요. 어머니라는 이름은 절대로 자식이 있는 한 절망하지 않아요. 기도할게요.

그래요.

아들을 낳더니 이젠 딸을 하나 낳고 싶다구요? 욕심인 것 같지만 예쁜 욕심이네요. 기도해서 될지는 모르겠지만 기왕 점지해 주실 거 예쁜 딸 주십사 기도할게요. 하나님이 "내가 삼신할미냐?" 호통 치실 것도 같네요.

그래요.

멀리 타지에 나간 아들을 위해 기도를 하셨군요. 걱정하지 마세요. 늘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살더군요. 그런 사람은 쉽게 절망하지도 않거든요. 아들 참 잘 키우셨어요. 멀리 있지만 서로 생각하며 기도하면 이뤄진답니다.

시골교회의 송구영신예배의 단편입니다.

크지 않아 한 사람 한 사람 깊은 속내에 품고 있는 소망들이 보입니다. 그래서 기도해 줄 수 있구요. 새해, 소박한 꿈을 꾸는 모든 이들의 꿈이 다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오마이뉴스 김민수 기자 2006 1 6

덧붙이는 글


기자소개 : 김민수 기자는 제주의 동쪽 끝마을에 있는 종달교회를 섬기는 목사이며 자연산문집<달팽이는 느리고, 호박은 못생겼다?>와 <내게로 다가온 꽃들 1, 2>, <희망 우체통>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오마이뉴스에 실리지 않는 그의 글들은 <강바람의 글모음>www.freechal.com/gangdoll을 방문하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