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밋는~한국여행/재밋는 한국의 산

평창 피덕령 오지의 산

향기男 피스톨金 2006. 2. 17. 23:45

                     

                    평창 피덕령


여행길 풍경에서 얻는 감동의 크기는 분명 빛과 색에 달려있다. 막바지로 치닫는 겨울이 이제야 절정의 흰빛을 토해내고 있다. 12월과 1월 유독 눈이 귀했던 강원도 산골이 뒤늦게 소복한 눈세상을 만났다. 순결한 그 빛이 펼쳐놓은 그림에 내 발자국을 한 땀 한 땀 수놓으려 눈길 트레킹을 떠났다.

용평스키리조트가 들어선 강원 평창의 횡계에는 바로 윗자락의 대관령과 함께 평창과 강릉을 잇는 고개가 하나 더 있다. 피덕령이다. 이 고개를 넘어가면 강릉의 성산과 정선의 구절리를 잇는 닭목재를 만난다.
 
피덕령 눈꽃 감상길은 도암호 주변의 피골에서 시작된다. 좁지만 포장된 임도 위로 수북히 내린 눈이 푹신하다. 길 초입의 어수선한 타이어 자국에선 RV 차량들이 무모히 눈길에 도전하다 포기한 흔적이 역력하다.

어제까지 눈을 쏟아내느라 희뿌옇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파랗다. 하늘빛이 고우니 눈빛도 더욱 찬란하다. 세상에 여러 색이 있어도 마음을 즐겁게 하는데 눈빛만한 게 있나 싶다. 눈 내리면 마냥 뛰어다니는 강아지마냥 가슴이 발발대고 촐싹대기 시작한다.

고갯길의 높이가 높아지면서 바람의 세기도 강해진다. 건너편의 발왕산에서 몰아친 바람이 한줄기 ‘휙~’ 지나가자 눈길 위로 물결 모양의 흔적이 새겨진다. 사르륵 사르륵 바람이 눈에 그린 자화상이다.

눈빛에 취하고, 눈 밟는 소리에 흥겨워 한시간여 오른 눈길이 힘겨운 줄 몰랐다. 마침내 고갯길 꼭대기에 오르니 ‘강릉시 왕산면 대기4리’란 간판이 눈에 파묻힌 채 비스듬히 서있다. 피덕령 정상 ‘안반덕’이다.

‘안반’이란 떡메 칠 때 쓰는 넓고 가운데가 오목한 떡판을 말하고 ‘덕’이란 고원의 평평한 땅을 일컫는다. 고개 정상은 마치 거대한 분화구마냥 가운데가 움푹 들어간 평원이었다. 그 비스듬한 경사면에 나무라고는 드문드문 몇 그루만 서있을 뿐, 땅은 텅 비어있다.
 
이 들판이 초여름이면 눈꽃만큼 환한 감자꽃이 흐드러지고, 배추의 청청함이 물결치는 고랭지밭들이다. 산꼭대기에 조성된 드넓은 채소밭이 한겨울 흰 눈의 장막을 펼치고 ‘설국(雪國)’을 노래하고 있다.

밭들 사이사이에 7, 8채 되는 집들이 서 있고 비슷한 숫자의 저장창고가 듬성듬성 놓여져 있다. 한 집 마당에 서서 “계세요~” 여러 번 불렀지만 대답이 없다.
 
여기 주민들은 고랭지 채소 재배가 끝나면 모두 강릉의 다른 보금자리로 내려간다고 한다. 한겨울 대설주의보라도 발령되는 때면 제일 먼저 고립되는 지역이 바로 이곳 안반덕, 대기4리이기 때문이다.

바람이 산밑의 눈을 날려 올리고, 또 쌓인 눈을 날려 보내느라 가만있지를 않는다. 아무도 없는 들판에 외로움을 달래려 바람이 홀로 눈과 희롱하는 모양이다. 볕 바른 자락의 눈은 녹고 얼기를 반복했는지 살짝 표면에 얼음이 얼었다. 역광에 비치는 그 모습은 마치 은으로 만든 투구를 연상케 하듯 반짝거린다.

드넓은 눈세상은 자꾸 고개를 옷 속에 파묻게 만든다. 바람때문이 아니라 넋 놓고 바라보다 시리고 아파진 눈을 잠시 쉬게 하기 위해서다.

아무도 지나지 않은 순백의 설원 위에 내 발자국을 수놓고, 내 몸뚱이를 찍어댔다. 유치하다고 아무도 뭐라는 이 없다.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밭을 한참을 뛰어다니다 뒤돌아보면 어느새 바람이 지나온 흔적을 지우고 있다. 안반덕 설원은 그렇게 매번 새로운 하얀 도화지를 깔아놓고 있었다.


피덕령(평창)=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여행수첩] 피덕령

 

[한국일보 2006-02-16 19:03]    
▲ 일반 여행과 달리 눈꽃 트레킹에는 필요한 준비물이 많다. 눈길 산행에서의 작은 실수가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눈길에 운동화는 금물이다.

등산화는 발목까지 감싸는 것이어야 하고 고어텍스 등 방수기능을 갖춰야 한다. 신발 안으로 눈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위해 스패치(발목을 감싸는 각반)도 필요하다.

아이젠은 4발 이상이면 트레킹 하는데 무난하다. 겨울 산행에서 제일 피해야 하는 옷이 면제품. 쉽게 땀이 배고 오랫동안 마르지 않아 저체온증을 유발한다. 등산용 바지와 함께 겨울 바람을 막아줄 방풍재킷도 필수 항목이다.

▲ 피덕령으로 가기 위해서는 영동고속도로 횡계IC에서 나와 용평리조트 방향으로 가다가 버치힐CC 앞에서 도암댐 방향으로 좌회전해 들어간다. 이 길을 6km 가량 들어가면 수하리 피골. ‘산불조심’ 입간판과 ‘왕산면 대기4리, 안반덕 3km’ 이정표가 산으로 오르는 포장된 임도를 가리킨다.

이 고갯길이 피덕령 오르는 길이고 고개 꼭대기가 안반덕이다. 걸어서 1시간이면 올라갈 수 있다. 수하리 피골까지는 제설작업이 이뤄져도 바닥이 미끄러우니 차량 운행시 주의해야 한다. 수하리에는 ‘산골식당(033-335-1281)’을 비롯해 토종닭, 오리, 기러기 등을 주 메뉴로 하는 식당이 3개 있다.

▲ 승우여행사는 2월 매주 토, 일요일 피덕령으로 떠나는 눈꽃 트레킹 상품을 운영한다. 참가비는 3만5,000원. (02)720-8311

 

 

 

            [오지중의 오지] 안반덕

 

 

[한국일보 2006-02-16 19:03]    

안반덕에 서있는 또다른 표지판 하나는 '1996년 9월 무장공비 침투지역'이라고 적고 있다. 잠수함을 타고 왔던 강릉 안인진의 공비들이 칠성산을 거쳐 이곳 안반덕에서 하루 은거한 후 용평리조트 방향으로 도주했다고 한다.
 
안반덕은 간첩 공비들이 도주로로 삼을 만큼 오지중의 오지인 곳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꼭대기에 드넓은 채소밭이 조성된 걸까. 그 의문은 하산길 우연히 들른 식당에서 풀렸다.

피덕령 초입의 수하리 피골에서 '산골식당'을 운영하는 김금자(49), 숙자(47) 자매에게 넌지시 안반덕을 물었더니 "우리가 어릴 적 그곳에서 살았었다"고 한다. 1960년대 박정희 정권은 산속에 흩어져 살던 화전민들을 한데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랭지 농사를 권유했다.

안반덕에 올라가 땅을 개간하면 집도 지어주고 공짜로 그 토지를 불하한다는 이야기에 김씨 자매의 부친은 7남매 식솔을 이끌고 이곳에 올라왔다고 한다. 나무를 뽑고 땅을 갈아 감자다 옥수수다
 
이것 저것 심었지만 농사는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터무니 없는 소출에 가을에 주워 모은 도토리로 끼니를 때워야 했고 한겨울 나라에서 헬기로 떨궈 준 밀가루, 보리쌀로 연명해야 했다.

당시 금자씨는 지금은 폐교된 황산초등학교 매지분교로 30리 길을 걸었고 취학 연령이 안된 숙자씨도 산골 생활이 심심해서 언니를 따라 같이 다녔다고 한다.

김씨 가족은 몇 년 안돼 힘들게 개간한 안반덕을 그냥 버리고 내려오고 만다. 그 불모지였던 안반덕이 지금은 유명한 고랭지 채소밭으로 짭짤한 수입을 올리고 있다니 아쉽지 않느냐고 물었다.

"아버지도 더 이상 버틸 수 없었어요. 계속 있다가는 7남매를 굶겨 죽일 판이었는데요." 김씨 가족에겐 먹기 살기위해 올랐던 안반덕이 먹고 살기 위해 버려야 했던 진한 추억의 땅이었다.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 아다지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