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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에서 속세를 잊다

향기男 피스톨金 2006. 2. 16. 12:48

 

 

 

             속리산에서 속세를 잊다

 
▲ 속리산 문장대에서 내려다 본 세상
ⓒ2006 서종규
'속세를 떠난다'는 속리산을 오른 것은 행운이었다. 신라 혜공왕 때 진표율사를 만난 달구지의 소가 율사에게 절을 올리자, 달구지를 탄 사람이 진표율사의 불심에 감동하여 속세를 여의고 입산한 곳이라 하여, 세속 '俗(속)' 자와 여윌 '離(리)' 자를 썼다는 '속리산'이다.

우산 같은 모습으로 우리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정이품송(천연기념물 103호)' 한 그루만 볼 수 있었던 것도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정이품송을 살리기 위한 작업으로 보조기둥까지 설치해 놓은 사진들을 보면서 얼마나 안타까워했던가. 800년이나 된 정이품송은 염려보다는 건강해 보여 반가웠다.

▲ 800년이나 된 '정이품송'은 염려보다는 건강해 보였습니다.
ⓒ2006 서종규
팔상전(국보 55호), 쌍사자석등(국보5호), 석연지(국보 64호) 등 문화재가 많은 법주사만 생각하여도 가슴이 벅차다. 그런데 속리산 문장대를 올라 세상을 바라보고, 능선을 따라 천황봉까지 오른다는 것은 더 말할 것이 없는 즐거움이다. 속세를 떠나 자연에 깃든 산행의 즐거움이라고나 할까.

2월 5일(일) 오전 9시50분, 산을 좋아하는 '풀꽃산행팀' 3명이 속리산 청소년유스호스텔에서 출발하였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로 차량의 시동이 걸리지 않아서 애를 먹었다. 매표소 입구 산책로 가로수엔 하얀 상고대가 피었다. 아마 가로수 밑에 있는 개울의 영향을 받았나 보다. 출발이 너무 싱그러웠다.

▲ 속리산 매표소에서부터 우리의 발길을 가볍게 한 상고대
ⓒ2006 서종규
속리산에 오르는 길은 매표소 입구부터 오리숲을 지난다. 오리숲은 주로 커다란 소나무들이 길 양옆으로 우뚝우뚝 솟아 그 정취가 대단하였다. 법주사 일주문 옆에 있는 샘이 특이했다. 커다란 바위에 구멍을 내 바위 속에서 흐르는 샘으로 만들어 오가는 사람들의 갈증을 풀어 주고 있었다.

오리숲에서 법주사 입구를 거쳐 세심정 휴게소까지 약 2.7km의 길은 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로 되어 있다. 한 시간이 넘는 길을 걸어가니 지루했다. 사실 등산을 하다 보면 몇 km라도 산길을 오르는 것이 훨씬 낫지 도로를 걷는 것은 대단히 지루하다.

속리산은 곳곳에 조선 7대 임금 세조의 흔적이 남아 있다. '정이품송'에 얽힌 사연은 말할 것도 없고,
 
세조가 속리산에서 요양하고 올라 책을 읽었다는 '문장대', 법회를 열었다는 '법주사', 피부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목욕을 하고 있는데 약사여래의 명을 받고 온 월광태자라는 소년이 나타나 피부병이 완치될 것이라고 말하고 사라졌는데, 목욕 후에 피부병이 나았다는 '목욕소'도 있다.

▲ 속리산 정상엔 온통 얼음눈꽃이 피어서 신선의 세계였습니다.
ⓒ2006 서종규
10시50분, 본격적인 등산이 시작되는 세심정휴게소에 도착했다. 세심정휴게소는 문장대 방향(3.1km)과 신선대 방향(3.5km), 그리고 천황봉 방향(3.0km)으로 갈 수 있는 속리산 등산로의 갈림길이었다. 우리는 문장대에 올라 천황봉을 돌아오는 약 17km의 코스를 잡았다.

일요일이어서 등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같이 오르는 한 무리 50여명의 사람들의 입에서 '과장님'이니 '부장님'이니 하는 말들이 많이 들렸다.
 
인천에서 아침 6시에 출발하여 속리산을 등산을 하고 있는 C 회사의 사람들이라고 하였다. C 회사는 건축설비 시공을 전문으로 하고 있는 회사로 회장이 산을 좋아하여 전 직원들에게 1년에 2~3회 정도 등산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단다. 모두 즐거운 표정이었다.

속리산 문장대에 오르는 길엔 휴게소가 많았다. '이뭣고다리'를 지나 '용바위골휴게소'가 있었고, 할딱고개인 보현재에 '보현재휴게소'가 있다. 그리고 문장대 아래에 '문장대휴게소', 신선대 옆에 '신선대휴게소'가 있었다.

▲ 속리산의 바위들은 금강산에서 볼 수 있는 뾰쪽뾰쪽한 모습이 아니라 둥글둥글한 모습이었습니다.
ⓒ2006 서종규
오르는 길은 가팔랐다. 오리숲에서 보았던 소나무들이 여전히 곳곳에 자라고 있었다. 바위들의 모습도 금강산에서 볼 수 있는 뾰쪽뾰쪽한 모습이 아니라 둥글둥글한 모습이었다. 둥글둥글한 바위들이 포개져 쌓여 있는 것이다. 보현재휴게소부터 쌓여 있던 눈들이 올라갈수록 더 많아 졌다.

12시, 문장대휴게소에 도착했다. 휴게소에는 많은 사람들이 쉬고 있었다. 휴게소에는 음식을 판매하는 곳이 두 곳이 있었다. 휴게소 안에는 따뜻한 나무난로가 활활 피고 있었다. 주인은 백두대간 종주를 하는 산악팀에게 무엇인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문장대휴게소 부근은 완전한 눈세계로 변해 있었다. 문장대휴게소에서 정상까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길엔 하얀 눈이 가득하고 나무엔 온통 눈꽃이 피었다. 소나무에도 눈꽃이 가득하였다. 가지마다 하얗게 달라붙은 눈꽃은 하늘을 향하여 손짓하고 있었다.

▲ 세조가 이곳에 올라 왔는데 삼강오륜을 명시한 책 한 권이 있어 그 자리에서 하루 종일 책을 읽었다고 하여 ‘문장대’라 불렀답니다.
ⓒ2006 서종규
큰 바위봉우리가 하늘 높이 치솟아 구름 속에 감추어져 있다 하여 '운장대'라고 불렸으나, 세조가 이곳에 올라 왔는데 삼강오륜을 명시한 책 한 권이 있어 그 자리에서 하루종일 책을 읽었다고 하여 '문장대'라 바꿔 불렀단다.
 
첩첩이 쌓인 바위로 이루어진 문장대의 철계단을 올라가자, 정상은 몇 평 정도의 평평한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문장대 정상(1054m)에서 내려보는 경관은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묘봉(874m), 관음봉(982m)에서 문장대, 문수봉, 신선대, 비로봉, 천왕봉(1058m)에 이르는 백두대간 속리산의 줄기가 한눈에 다 들어왔다. 그리고 겹겹이 포개진 그 많은 능선이 수많은 가지로 뻗어 있었다.

▲ 임경업 장군이 이곳에서 7년 동안 몸과 마음을 단련하며 세웠다는 '입석대'입니다.
ⓒ2006 서종규
오후 1시, 많은 사람들이 문장대에서 곧바로 하산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팀은 천황봉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절경에 혼을 빼앗긴 고승이 청법대에서 불경 소리를 듣고 멀리 남쪽 능선을 바라보니 산봉우리에 백학이 수없이 날아와 춤을 추고 그 가운데 백발이 성성한 신선들이 앉아 놀고 있어서 쫓아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는 '신선대'를 지났다.

조선 인조 때, 임경업 장군이 이곳에 이르러 7년 동안 몸과 마음을 단련하며 장군의 기상을 닦고 있었는데 어느 정도의 단련이 그의 체력한계가 되는지를 알 길이 없었다. 그는 그것을 시험해 보고자 반석(盤石)위에 돌을 세우는 데 성공하였다는 '입석대'도 반가웠다.

▲ 이 눈꽃들은 아래가 얼음으로 되어 있고, 그 위에 눈이 쌓여 있는 독특한 얼음눈꽃을 형성하고 있었다.
ⓒ2006 서종규
문장대에서 천황봉에 이르는 백두대간 줄기에 많은 눈꽃들이 있었지만, 특히 천황봉을 오르는 길엔 눈꽃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나뭇가지에 붙은 눈꽃이 눈부셨다. 이 눈꽃들은 아래가 얼음으로 되어 있고, 그 위에 눈이 쌓여 있었다. 독특한 얼음눈꽃을 형성하고 있었다.

오후 2시, 하얀 얼음눈꽃 사이를 지나 천황봉에 올랐다. 옛날엔 천황봉에 '대자재천왕사'라는 사당이 있었다고 한다.
 
천왕신이 해마다 가을 10월 범의 날이면 법주사에 내려가서 45일 동안 머무르다가 상봉으로 도로 올라오는데, 그동안에 이 산 아래 사는 모든 주민들까지 그 신을 맞이하여 음악을 잡히고 정성껏 제사를 지냈다고 하여 붙여진 '천왕봉'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천황봉'으로 바뀌었단다.

▲ 속리산 천황봉에서 바라본 비로봉, 신선대, 문장대 등 백두대간 줄기입니다.
ⓒ2006 서종규
천하를 굽어보니 굽이굽이 펼쳐진 눈세상, 그리고 그 눈세상을 온전하게 품고 줄기줄기 갈라진 능선들, 그 사이사이 깃들어 있는 기운, 멀리 지리산 천왕봉까지 이어지는 산하에 몸을 띄워 날아가고 싶다. 속세를 떠나 세상을 잊어버릴 수밖에 없는 산이다.

오후 5시, 법주사의 풍경소리가 귀를 깨울 때까지 우리는 자연 그대로였다. 나뭇가지에 가득한 눈꽃, 가지를 감싸고 있는 얼음,
 
그 얼음 위에 튀는 햇살, 메마르기 쉬운 겨울 산행을 맑고 투명하게 밝혀준 얼음눈꽃과 상고대, 그 상고대를 자연스럽게 껴안고 있는 나무들, 속리산에서 우리는 속세를 잊고 자연 속에 깃들였다.

▲ 가지를 감싸고 있는 얼음, 그 얼음 위에 튀는 햇살
ⓒ2006 서종규
[오마이뉴스 2006-02-10 09:00]    
[오마이뉴스 서종규 기자]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 아다지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