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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유산,눈 내린 흰세계,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향기男 피스톨金 2006. 2. 16. 17:10

                        덕유산,

 

                  눈 내린 흰세계,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 덕유산의 하얀 눈꽃과 꿋꿋한 저 능선, 그리고 파란 하늘빛이 가득한 새해가 되소서.
ⓒ2005 서종규
2006년엔 파란 하늘빛이 가득했으면 좋겠습니다. 파란 하늘빛은 투명 그 자체입니다. 덕유산 향적봉(1614m)에서 본 하늘빛이 너무 맑습니다. 하얀 눈꽃 위에 펼쳐진 파란 하늘빛이 너무 투명합니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계곡과 능선들이 손바닥 보이듯 가까이 보입니다.

향적봉을 지나 덕유산에서 가장 조망이 가장 좋다는 중봉(1594m)에 오르자 멀리 지리산 천왕봉과 반야봉까지 다 맑게 보입니다. 백암봉 - 동엽령 - 무룡산 - 남덕유산까지 이어지는 능선이 하얗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하얀 능선 위에 파란 하늘빛이 가득합니다. 파란 하늘빛이 세상을 투명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 새해엔 저 산하를 넘고 넘어 멀리 지리산의 천왕봉(맨끝 왼쪽 높은 봉우리)과 반야봉(오른쪽 봉우리)까지 투명한 세상이 되소서.
ⓒ2005 서종규
고향의 파란 하늘이 그립습니다. 그랬지요. 대나무를 휘어 삼줄로 매어 활을 만들고, 겨릅대 끝에 대나무로 깎은 활촉 끼워 화살을 만들었지요. 그리고 그 활을 들고 아침 일찍부터 보리밭에 나갔지요. 푸른 보리잎엔 아직 이슬이 방울방울 영롱한 빛을 발하고 있었지요. 누렁개도 덩달아 뒤따라 달려와서 꼬리를 흔들어 댑니다.

활시위를 당겨서 파란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복판에 화살을 쏘아 보냅니다. 하늘을 향하여 올라가던 화살은 포물선을 그리며 다시 보리밭에 떨어집니다. 보리잎에 붙은 이슬이 발등을 적셔 차갑습니다. 하지만 계속 이슬을 털며 달려갑니다. 화살을 주워서 활에 끼고 다시 파란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일찍이 정지용 시인이 노래했던 고향의 모습을 그대로 2006년에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 정지용의 <향수> 중에서


▲ 새해엔 순수와 투명이 어우러진 세상이 되소서.
ⓒ2005 서종규
지난 12월 24일(토)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아 산을 좋아하는 사람 45명이 새벽 6시 30분에 광주에서 덕유산을 향하여 출발하였습니다. 늘 꿈꾸던 덕유산 눈꽃 산행을 위하여 얼어붙은 길을 살금살금 헤치고 모두 약속시간까지 모였습니다. 88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9시 20분에 무주리조트에 도착했습니다.

하늘은 맑았습니다. 무주리조트에서 올라갈 설천봉(1520m)이 너무 가까이 보였습니다. 벌써 스키장엔 형형색색의 스키복을 입은 사람들이 스키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문명의 이기인 곤돌라는 3시간을 족히 걸려야 할 설천봉 정상까지 20여 분 만에 우리들을 올려놓았습니다. 사실 당일 코스 덕유산 산행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였습니다.

▲ 새해엔 덕유산 설천봉의 하늘처럼 맑은 세상이 되소서.
ⓒ2005 서종규
설천봉에서 내려다보는 봉우리들이 너무 가까이 보였습니다. 파란 하늘과 흰 눈꽃들이 어우러져 펼쳐진 장관에 모두 탄성을 질렀습니다. 우리들은 설천봉에서 등산 장비를 갖추었습니다. 스패츠와 아이젠을 착용하고, 장갑에 스틱까지 챙겨서 10시 20분, 향적봉을 향하여 출발하였습니다.

바람이 얼굴에 차갑게 몰아쳤습니다. 하지만 맑은 하늘만큼이나 청명한 날씨여서 차가운 바람 외엔 큰 걱정이 없었습니다. 향적봉으로 향하는 길은 3주 내내 내린 호남지방의 폭설로 온통 하얀 눈세계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나무들에 가득한 눈꽃들이 어느 바다 속 하얀 산호 군락을 바라보는 것 같았습니다.

설천봉에서 향적봉까지는 20여 분 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향적봉엔 바람이 거셌습니다. 얼굴에 따가운 바람을 제외하고는 온통 하얀 눈천지였습니다. 볼품 없는 돌탑이 하나 덩그러니 놓여 있었습니다. 파란 하늘 아래 둥그렇게 펼쳐진 세상이 너무 가까이 보였습니다. 능선과 계곡엔 하얀 눈들이 가득했습니다. 눈꽃 하나하나에 2005년의 지나간 일들이 맺혀 있습니다.

▲ 눈꽃 하나하나에 새해의 소망을 기원합니다.
ⓒ2005 서종규
2005년 말 황우석 교수의 논문조작 사건이 터지고야 말았습니다. 난치병 환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던 줄기세포에 대한 기대, 그리고 황우석 교수의 논문 조작과 변명으로 인한 정신적 공항에 이르기까지…. 투명하지 못한 인간의 단면을 보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우울하게 했던 전방 초소에서 있었던 총기 난사 사건과 노충국씨 사망 사건,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과 수상의 신사 참배, 불법 도청 폭로와 관련자 수사, 쌀 수입과 농민들의 항의, 호남지방의 폭설과 피해 등 굵직굵직한 일들이 우리들을 안타깝게 했던 것 같습니다.

▲ 새해엔 덮인 눈과 같은 포근한 마음을 늘 간직하소서.
ⓒ2005 서종규
하지만 우리나라 축구 대표팀의 독일 월드컵 출전과 박지성, 이영표 선수의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의 활약이 큰 활력을 불어넣어 준 것 같습니다. 서울 청계천을 복원하여 시민의 품으로 돌려 준 일과 사립학교법 개정으로 사학이 파란 하늘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도 희망인 것 같습니다.

국제적으로 특히 미국과 파키스탄을 잇따라 강타한 허리케인과 강진, 유럽으로 상륙한 조류인플루엔자 등 기상이변이나 자연재해의 가공할 파괴력을 새삼 실감한 한 해 이리고 합니다. 그러나 북한의 핵문제를 둘러싼 6자 회담이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 덕유산 중봉, 산을 내려갈 때 더 축복 받는 세상이 되소서.
ⓒ2005 서종규
향적봉에서 중봉으로 이어진 길엔 눈꽃이 가득 했습니다. 상고대라고 하나요. 주목이나 구상나무의 죽은 나무들에 눈발이 달라붙어 있는 모습이 숙연해지기도 하구요, 소나무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눈덩이들이 애처롭기도 하였습니다. 햇빛에 보석처럼 영롱한 빛을 발하는 얼음꽃은 아직 볼 수는 없었습니다. 눈꽃이 너무 가득했기 때문에.

백암봉(1503m)이라 부르는 송계삼거리를 지나 동엽령(1320m)에 도착했습니다. 이미 도착한 사람들이 눈밭에 앉아서 점심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눈이 가득한 능선에 발로 다져서 터를 잡고 앉아서 삼삼오오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을 파란 하늘이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눈발도 날리지 않고, 바람도 잦아들었습니다.

▲ 모든 시련도 다 이겨내는 새해가 되소서
ⓒ2005 서종규
동엽령에서 식사를 마친 일행은 갈림길에 놓였습니다. 무룡산(1492m)를 넘어 삿갓골 대피소까지 6.2km를 나아가야 하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여름이라면 남덕유산을 넘어 영각사까지 갈 수 있겠지만 겨울 산행이어서 무리인 것입니다. 더구나 허리까지 빠지는 눈길을 도저히 뚫고 나갈 수가 없어서 앞서 갔던 사람들이 모두 앞 봉우리에서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동엽령에서 칠연계곡 안성매표소로 하산길을 택했습니다.

▲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란 하늘빛이 그리워
ⓒ2005 서종규
지리산을 타면서 맑은 날씨로 인한 일출과 푸른 하늘, 멀리 진주 앞 바다를 볼 수 있는 행운은 삼대가 덕을 쌓아야 가능하다고 하였지요. 눈꽃이 가장 아름답다던 덕유산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덕유산에서 멀리 지리산 천왕봉까지 투명하게 바라볼 수 있는 청명한 날씨를 맞을 행운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더구나 파란 하늘빛과 하얀 눈꽃의 조화로운 모습이 얼마나 싱그러운지요.

2006년을 맞은 우리나라 모든 분들과 지구촌 전 인류에게 이 푸른 하늘빛이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세상이 이 푸른 하늘빛처럼 맑고 투명하여지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하얀 눈꽃처럼 순수하여지길 기원합니다. 가장 정직한 흙에서 자란 마음들이 파란 하늘빛이 그리워 풀섶 이슬을 휘적시던 고향의 순수한 마음을 키워가는 2006년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 2006년엔 세상이 이 푸른 하늘빛처럼 맑고 투명하여지고, 하얀 눈꽃처럼 순수하여지길 기원합니다.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 아다지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