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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몬테나,“따뜻한 서부” 듣던 대로네

향기男 피스톨金 2006. 3. 4. 22:58

 

                      미국 몬테나,

 

           “따뜻한 서부” 듣던 대로네


홍은택의 아메리카 자전거여행 (41)

 

 

몬태나는 굵은 산줄기가 날카롭지 않고 부드럽다. 산으로 물결쳐 가는 들판에는 키 작은 잡초들이 노란 호수를 이루고 있어 전체적으로 꿈을 꾸는 것처럼 따스한 느낌이다. 사람들도 따뜻하다. 서부다.

 

도중에 길 옆 풀섶에 털썩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나서 보니 지나가는 자동차가 나를 겨냥해 페트병을 던지고 갔다. 하지만 나를 맞추지 못했고 내 마음의 평안을 깨지 못했다.

 

페달이 저절로 돌아간다. 하루는 120㎞를 달렸고 다른 하루는 140㎞를 달렸는데 오늘은 아침에 해발고도 2000m, 저녁에 1800m짜리 고갯길을 넘고도 끄떡없었다.

 

스쳐가는 마을들의 역사도 재미있다. 287번 길 가에 있는 캐머런(Cameron)이라는 마을 식당의 식탁에서 신문기사 스크랩을 읽었다. 제리와 머나(Jerry & Myrna) 애덤스 부부가 아니었으면 이 마을도, 식당도 없었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 마을은 내가 저녁을 먹은 척 웨건 식당과 블루 문 살롱, 주유소, 잡화점, 여섯 채의 오두막집, RV 공원으로 이뤄진 초소형 마을이다. 97년 애덤스 부부는 스러져 가던 이 마을을 통째로 샀다.

 

부인 머나는 자신을 시장 겸 경찰서장으로 임명했으며 이에 질세라 남편 제리는 판사로 부임했는데 이유는 부부싸움을 하다 부인이 자신을 체포할 것에 대비, 언제든 자신을 석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나.

 

 

고속도로 갓길 달리다 뒷바퀴 펑크 또 말썽
여분의 튜브마저 공기새고 주입구 빠졌다
지나던 청년 다가놔 튜브 건네며 호의
숙박할 곳 전화 일일이 돌려 예약해주고
다음날은 자기집에서 재워주기까지!

 

몬태나 주에서는 1862년 금이 발견돼 한때 각광을 받았지만 금이 바닥나고 사람들이 떠나면서 많은 마을들이 버려졌다. 버지니아 시티(Virginia City)도 그 중 하나인데 1940년대 찰스와 수 바비(Charles & Sue Bovey) 부부가 찾아와 헌신적으로 복원,

 

지금은 마을 전체가 국립 사적지로 지정돼 있다. 근처에 있는 네바다 시티(Nevada City)와 함께 우리로 치면 민속촌을 이루고 있어 미국 전역에서 관광객들의 발길이 닿는다.

 

조그만 마을 통째로 산 부부

 

지금은 인구 130명의 버지니아 시티 일대는 채광이 한창일 당시 인구가 3만명에 이르렀다. 무장강도들이 들끓어 금을 캐도 무사히 싣고 나가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법은 침묵하거나 강도의 편이었다. 당시 이 일대의 보안관이던 헨리 플루머(Henry Plummer)는 알고 보니 무장강도의 수괴였다.

 

한 손에는 법과 다른 손에는 총을 거머쥐니 완벽한 그들의 천국이었다. 법으로 구현되지 않은 정의는 폭력으로 회복됐다. 시민들은 참다 못해 자경단원을 조직한 뒤 보안관을 비롯, 22명의 강도들을 체포하고 공개 교수형에 처했다.

나는 이곳에 들러 문득 관광객들이 뭘 보고 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복원된 19세기 마을의 껍데기만 보고 가지는 않을 것이다. 조상들이 왜 여기까지 위험을 무릅쓰고 왔는지를 알고 갈 것이다. 그 동기는 일확천금이다. 그러면서 미국인들은 이런 사적지 방문을 통해 이윤 추구를 삶의 목표로 자연스럽게 내면화하는 게 아닐까.

 

인간세상을 구하기 위해 내려온 환웅이 웅녀랑 결혼해서 단군을 낳고 이 단군이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고조선을 창건했다고 하는 것과는 확실히 다른 건국신화인 것이다.

 

뷰트(Butte)에서 1박하고 트랜스 아메리카 트레일의 사령부인 어드벤쳐 사이클링 어소시에이션이 있는 미졸라(Missoula)까지 가다가 길을 잃었다. 이 구간을 안내한 책에는 이렇게 써 있었다.

 

Exit to Dillon and Idaho Falls via I-15 South on your right

 

 


이것을 오른 쪽에 보이는, 주간고속도로 15번 남쪽 방향, 딜런과 아이다호 폴스로 빠져나가라는 말로 잘못 해석했다.

 

외국어는 십년을 해도 감이 부족하다. 이 말 뜻은 그냥 오른쪽에 딜런과 아이다호 폴스로 가는 주간 고속도로 15번의 나들목이 있다고 설명한 것뿐이었다. 불필요한 설명을 왜 해놨는지 신경질은 나지만 빠져나가라는 뜻은 아니다. 빠져나가라고 한다면 exit를 Exit I-15와 같이 to 전치사 없이 동사로 쓴다.

 

 

오역의 대가를 톡톡하게 지불했다. 빠져나가서는 안 되는 나들목으로 빠져나가 맞바람이 부는 오르막길을 한 시간 가량 달렸다. 고개를 핸들 바에 푹 처박고 가다가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 자전거를 세웠다.

 

책을 꺼내 꼼꼼히 읽어보고 잘못을 알았다. 연 이틀 무리한 라이딩으로 몸이 피곤해 신경이 날카로운 상태여서 부아가 치밀었다. 20㎞ 정도를 돌아갔다는 생각에 몸이 더 뻣뻣해졌다. 제 길을 찾아 1번 국도를 타고 50㎞를 더 올라가니까 원형의 자전거 바퀴가 사각형으로 변한 듯하다.

 

한 발 밟기가 천근만근이다. 100㎞도 못 달리고 멈춘 것은 실로 오랜 만이었다. 몸의 태업이었다.

 

스프링 힐 캠프장 간판이 보이자 바로 들어가 텐트를 쳤다. 타이밍은 기가 막히게 맞았다. 빗방울이 텐트 지붕에 떨어진다. 비바람이 불면 솨아 하고 수만명의 군중들이 동시에 박수를 치는 것 같은, 가슴 시원한 소리가 난다. 그런데 바람 자체는 느낄 수 없다.

 

키 큰 로지폴(Lodgepole) 나무숲이 방풍림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곧게 뻗은 이 나무들이 서로 몸을 비벼대면서 바람을 이겨내는 모습은 눈물겹다.

 

머리가 띵할 만큼 차가운 샘물을 마시고 주위를 돌아보니 할아버지 오토바이족들이 캠핑하고 있다. 그들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지만 말문을 열기가 귀찮아 내처 낮잠을 잤다. 밤에 일어나 나뭇가지를 주워 모닥불을 피웠다. 깊은 산중의 어둠을 핥는 불길이 내 마음의 먼지를 닦아내는 것 같다.

 

 

표지판 오역 엉뚱한 길로 새

 

 

그리고 다음 날 물경 174㎞를 달려 미졸라에 도착했는데 어려울 때에야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까지 체감한 실로 소중한 날이다. 미졸라에 이르는 마지막 56 킬로미터 구간은 주간고속도로 90번의 갓길을 달려야 했다.

 

다른 길이 없다. 시속 130㎞로 달리는 차들 때문에 도로에는 얼씬도 할 수 없었고 갓길에는 깨진 병 조각들과 사금파리, 잔돌이 무수했다. 미졸라를 8㎞ 남겨놓은 지점에서 지뢰를 밟고 말았다. 다시 뒷바퀴다.

 

펑크가 났다. 날은 푹푹 찌는 데 짐수레를 자전거에서 분리하고 자전거를 거꾸로 세운 뒤 뒷바퀴를 빼내고 타이어에서 튜브를 끄집어냈다.

 

그때 빨간색 소형 승합차가 내 뒤에 멈춰 서더니 청년 한 사람이 웃으며 다가왔다. 갓길에 차를 세우는 것은 불법 정차다. 그는 내게 타이어의 인치를 물어보더니 내 바퀴에 맞는 20인치 튜브를 가져왔다.

 

자기의 리컴벤트(누워서 타는 자전거)가 마침 20인치 바퀴여서 여분의 튜브를 갖고 다닌다고 했다.

 

나는 여분의 튜브가 2개나 있어서 받지 않았다. 그는 말을 더 붙이고 싶은 눈치였지만 무색해져서 차로 돌아갔다. 그 사이 새 튜브에 바람을 넣었는데 공기 주입구가 떨어져나가면서 못 쓰게 됐다. 남은 마지막 튜브에 바람을 넣으려는데 또다시 공기가 샜다.

 

성한 튜브가 하나도 없게 됐다. 미졸라까지 8㎞를 자전거와 수레를 끌고 가야 한다는 뜻. 그것도 태양이 이글거리는 주간고속도로의 갓길을. 정신이 아찔해지면서 그 청년 쪽으로 돌아보았다.

 

그는 출발하지 않고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부랴부랴 달려가서 차 문을 두드리고 아까는 잘못했어요, 죽을 죄를 졌어요, 튜브 하나만 주세요, 그런 표정으로 튜브를 달라고 하니까 그는 그럴 줄 알았다, 하는 표정이 아니라 도움을 주게 돼서 반가운 표정으로 차 안에서 나왔다.

 

그렇게 우리의 만남이 시작됐다.

그는 친절의 극치였다. 나는 미졸라의 호스텔에서 일박할 예정이었으나 그는 그 호스텔이 문을 닫았다면서 숙박할 곳을 알아봐주겠다고 했다. 그는 먼저 출발했다. 자전거를 타고 미졸라로 들어가는 나들목이 나올 때까지 가는 동안 그는 오지 않았다.

 

그냥 가버린 게 아닐까, 그럼 미졸라로 들어가서 스스로 알아보는 게 낫지 않을까 망설이고 있는데 뒤에서 경적이 울렸다. 그였다. 그 동안 미졸라 일대의 여관들을 다 수배했다. 전화번호부에 여관 항목 부분을 다 찢어서 일일이 체크해가며 전화를 건 결과 토요일이어서 미졸라에는 빈 방이 없고 이스트 미졸라에 방이 비어 있는 것으로 확인하고 예약까지 마쳤다.

 

그의 이름은 벤(Ben). 자전거가 빵꾸 나지 않았으면 못 만났을 좋은 사람이다. 7대째 몬태나에 사는 토박이다. 제재소에서 일하는데 4일 동안 하루 12시간씩 야간 근무하고 4일은 쉬는 근무형태다.

 

그의 일은 제재소에서 만든 판자와 목재가 정부기준에 적합한지 시험하는 것이다. 미졸라에서는 이틀 머물 예정이어서 다음날은 저녁을 함께 먹었고 잠은 그의 집에서 잤다.

 

옛 금광마을 버지니아 시티 ‘미국의 민속촌’
관광객은 이곳서 뭘 보고 갈까


19세기 조상들의 일확천금을?
이윤추구를 삶의 목표로 내면화하나 보다

 

 

 


28살의 청년 벤은 놀랍게도 자녀 셋의 학부모였다. 17살에 18살이던 로니와 결혼, 슬하에 10살인 개빈(Gavin)과 7살인 마크(Mark), 아들 둘과 8살짜리 딸 캐슬린(Kathleen)을 두고 있다. 키가 훤칠한 미인인 로니는 동네 우체국 임시직원.

 

집은 미졸라에서 산 속으로 36㎞ 가량 들어간 곳에 있는데 간이건물인 트레일러 하우스다. 밤에는 코요테 우는 소리가 가깝게 들렸다. 마크와 애비, 개 두 마리가 있는데 이곳에 많은 블랙 베어가 다가오면 사납게 짖는다. 벤이 “저기 블랙 베어”라고 말만 해도 짖는다.

 

그런데 지난 봄 정작 블랙 베어가 집 안으로 들어왔을 때는 뒤꽁무니를 빼서 지금도 가족들의 놀림을 받고 있다. 로니가 후라이팬을 두드려서 블랙 베어를 쫓아냈다고 한다. 나도 이 집 가는 길에 한살배기 곰 한 마리와 큰 뿔을 단 엘크 세 마리를 연달아 봤다. 벤은 “사냥철이 되면 잡아야지”라고 말했다.

 

‘흐르는 강물처럼’ 영화속 강물

 

집 앞에는 블랙풋 리버(Blackfoot River)가 흐른다. 이 강이 바로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A River Run Through It)>의 무대가 된 강이고 여기서 촬영됐다. 이 강에서 아이들이 고무 튜브에 누워 물을 따라 몇㎞를 흘러내려간다.

 

내게는 흘러가는 게 시간으로 느껴지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는 모습을 보는 게 좋다. 사냥꾼이면서 훌륭한 낚시꾼인 벤은 이 강에서 플라이낚시로 송어를 잡는 게 시시해서 멀리 원정낚시를 다닌다고 했다. 그가 잡은 물고기들의 사진들 보니까 철갑상어(sturgeon)도 있었다. 여기에서는 민물에서만 사는 철갑상어도 있다.

 

벤은 직접 파나로사 소나무를 베어서 집을 짓고 있는 중인데 나는 그가 지은 게스트 하우스의 첫 손님이다. 우리는 밤늦도록 거지보(gazebo)라고 불리는 정자에서 장작불을 피워놓고 마가리타를 마시며 얘기를 나눴다. 그의 꿈은 소박하다.

 

제재소에서 일하면서 돈을 모아 땅을 사는 것. 29살에 벌써 아이들을 다 키우다시피 한 로니의 꿈은 시험봐서 우체국의 정식 직원이 되는 것이다. 나는 그들의 꿈이 안 이뤄지면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 아다지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