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들/포 토 에세이

얼쑤! 매화없는 매화타령을 부르다

향기男 피스톨金 2006. 3. 14. 23:09

 

     얼쑤! 매화없는 매화타령을 부르다
 
▲ 흑장미처럼 검붉은 빛깔을 띠는 흑룡매화가 활짝 피었습니다.
ⓒ2006 임윤수
만개한 매화소식이 불어오는 춘풍처럼 여기저기서 들려옵니다. 꽃소식에 뒤질세라 매화가(梅花歌)나 불러 볼까 하며 어깨 들썩거리며 콧노래로 흥얼거려 봅니다.

매화야 옛 등걸에,
봄철이 돌아온다.
춘설이 하 분분하니,
필지말지도 하다마는,
북경사신 역관들아,
오색당사를 붙임을 하세…

때 이른 봄에 춘설 헤치며 피어나는 매화의 기개를 칭송하는 노래인 줄 알았더니 그렇지가 않답니다. 평양의 명기 매화가 춘설(春雪)에게 연인을 빼앗기고 탄식한 노래로 짐작된다고 하니 매화가에는 정작 피어나는 매화는 들어있지 않고 연인을 빼앗긴 기생 매화의 아린 마음만 배어있는 듯합니다.

▲ 하얀 꽃이파리에 청색 꽃받침을 가진 청매화도 활짝 피었습니다.
ⓒ2006 임윤수
그러고 보니 그동안 부르던 사랑노래에도 매화가처럼 사랑 또한 들어있지 않은 게 꽤 되는 듯합니다. 지금껏 불렀던 사랑노래들이 연가나 사랑타령으로 이렇게 저렇게 불렸었지만 진정한 자비나 애틋함보다는 잿밥에 마음을 둔 공염불처럼 공허한 목탁소리 같은 뜨거움만 있었습니다.

사랑이란 고귀한 말을 하면서 속내로는 속살 더듬는 음탕함만을 연상했습니다. 지고지순한 사랑보다는 말초신경만을 자극하는 짜릿함에 익숙해졌고, 베푸는 사랑보다는 뱉어내고 쏟아내는 질펀한 유희만을 갈구했다는 게 솔직한 표현입니다.

그렇게 부르던 사랑노래에만 사랑이 빠진 게 아니라 위정자들이 부르던 애국의 선창이나 위민의 구호에도 정작 진정한 애국이나 애틋한 위민심은 빠져있는 게 아닌가 의심됩니다. 입으로는 위민(爲民)을 노래하지만 하는 짓거리를 보면 당리당략에 입신양명을 위한 술책만이 보이고 허구만이 느껴질 뿐입니다.

▲ 핀 꽃송이 보다는 분홍빛을 띤 홍매화 봉우리가 더 마음을 잡습니다.
ⓒ2006 임윤수
풀잎에 맺힌 같은 이슬이라도 여린 곤충들이 먹으면 가슴 아리게 하는 풀벌레소리가 되지만 독사가 먹으면 독이 된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똑같은 지식과 지혜일지라도 누군가가 습득하고 어떻게 실천하느냐에 따라 애국의 주춧돌이나 지렛대가 될 수도 있고, 입신양명을 위한 술책이나 처세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메스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 똑같은 메스라 할지라도 의사의 손에 들리면 생명을 살리는 도구가 되지만, 흉악범의 손에 들리면 사람을 해치는 흉기가 되듯 애국이나 사랑이란 용어도 처처에 따라 달라지기는 마찬가지인 듯합니다.

▲ 모진 풍파 겪으며 두툼해지고 거칠어 졌을 등걸사이로 피었습니다.
ⓒ2006 임윤수
떠벌리지 않고 묵묵히 실천하는 사람들이 하는 나라걱정이나 경제활동은 진정한 애국이 되겠지만 자리를 빙자해 떵떵거리려 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애국은 썩은 시궁창에서 흘러나오는 악취처럼 사람들 가슴을 멍들게 하는 악담이나 비수가 될 뿐입니다.

매화가를 접고 일부러라도 잡념 떨치려 환청으로 들려오는 날라리 소리와 장구소리에 맞춰 한 손으로 엉덩이 치며 박자 맞추고, 어깨 들썩거리며 매화타령을 흥얼거려봅니다.

▲ 활짝 핀 꽃송이와 덜 핀 봉우리가 조화롭습니다.
ⓒ2006 임윤수
인간이별 만사 중에 독수공방이 상사난이란다.
좋구나 매화로다. 어야더야 어허야 에~
디여라 사랑도 매화로다.

어저께 밤에도 나가자고 그저께 밤에도 구경 가고,
무삼 염치로 삼승 버선에 볼 받아 달람나.
좋구나 매화로다 어야더야 어허야 에~
디여라 사랑도 매화로다.

그러고 보니 매화가뿐 아니라 매화타령에서도 춘설 분분할 때 피어나는 매화는 없고 매화를 빙자한 질펀한 사랑타령만 있습니다.

흔하게 보아왔던 분홍색 꽃잎의 홍매화나 흰색 꽃잎의 백매화 뒤쪽으로 흑장미처럼 붉은색을 띤 흑룡매화가 피었습니다. 그 검붉은 빛깔이 참 열정적이고 곱습니다. 흥얼거리는 소리로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오는 매화타령에는 어느덧 흑룡매화가 주빈입니다.

▲ 훅~하고 입김이라도 불어주면 금방이라도 터질 듯 탱글탱글한 느낌입니다. 넘침과 모자람의 조화가 보입니다.
ⓒ2006 임윤수
그렇게 흥얼거리며 곱디 고운 흑룡매화를 보고 있노라니 빨간 빛깔 꽃잎 뒤로 붉은 입술 하나가 슬그머니 떠오릅니다. 뭐 그리 할 말이 많은지 흔들리는 꽃잎처럼 쉬지 않고 움직입니다.

참 역겹고 천박한 색깔입니다. 흑장미나 흑룡매화의 붉은 색깔은 이리도 아름답고 가슴조차 뜨겁게 하는데 왜 그녀의 빨간 입술에서는 하수구에서나 느껴질 것 같은 천박한 역겨움만이 느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녀의 입술이 한없이 천박하고 역겹게만 느껴지는 건 매화타령 속에 매화가 없듯 그녀의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오는 이런 저런 말들 중에 향기 같은 칭찬이나 격려보다는 악취 같은 시기와 독설이 더 많이 들어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단 생각입니다.
 
어쩌면 토사물처럼 뱉어낸 독설임을 알고도 주워담거나 거둬들이기는커녕 발뺌하거나 남의 탓으로 돌리려 하는 뻔뻔함에서 그 역겨움이 더할지도 모른단 생각입니다.

▲ 흔하게 보았던 흰색매화입니다.
ⓒ2006 임윤수
그녀 자체가 버려진 똥 덩어리라면 한 손으로 코 막고 뒷간으로 옮겼다 거름으로라도 쓰겠지만 그럴 수도 없는 망종이기에 느껴지는 악취가 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참 걱정도 팔자입니다. 아름다운 매화를 바라보며 엉뚱한 걱정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녀의 입술에 덧칠해져 있어 천박해 보이고 역겹게만 보이던 검붉은 흑장미 빛깔도 매화 향을 머금고 피어나는 흑룡매화에 담기니 아름다울 뿐입니다. 오는 봄날을 이야기하고 가는 봄날을 아쉬워들 하겠지만 정작 사람들 가슴에 남는 것은 붉은빛 꽃잎보다는 보이지 않는 향기일 뿐입니다.

그녀 또한 늙어가고 언젠가는 기억에서 멀어지겠지만 사람들의 가슴에 비수나 꼽고 악취만을 풍기는 그런 구역질나는 '한 때의 그녀'로 기억되지 않기만을 기원해 봅니다. 그녀를 위해서가 아니라 더는 정치에서 등 돌리고 싶고, 역겨움을 당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 아름답기만 한 이 붉은 색이 그녀의 입술에서는 악취 가득한 역겨움으로 느껴지니 동색이향(同色異香)입니다.
ⓒ2006 임윤수
콧바람에도 바르르 흔들리는 꽃술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내가 알고 있고 그가 알고 있을 시조 하나가 떠오릅니다. 매화타령을 흥얼거리던 입술에서는 어느덧 시조를 읊고 있습니다. 그래, 말로서 말이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

말하기 좋다 하고 남의 말을 말을 것이,
남의 말 내 하면 남도 내 말 하는 것이,
말로서 말이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

계절 따라 피는 매화, 열정적이고 아름답기만한 흑룡매화를 보면서도 위정자들의 한심한 작태나 언행을 연상하는 것은 필자 혼자만의 삭막함이길 기원할 뿐입니다. 어찌되었건 피어난 매화이니 매화 없는 타령일지라도 어깨 들썩하며 콧노래로 다시 한 번 매화타령을 흥얼거려 보렵니다.

좋구나 매화로다. 어야더야 어허야 에~
디여라 사랑도 매화로다.

[오마이뉴스 2006-03-02 09:07]    
[오마이뉴스 임윤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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