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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기행 (53)경북 의성 ‘주지몽 석류주’

향기男 피스톨金 2006. 3. 25. 21:34

 

 

                 전통주 기행] (53)

 

            경북 의성 ‘주지몽 석류주’


고대 페르시아가 원산지인 빨간색의 건강 과실.

 

매혹적인 색과 모양만큼이나 약리효과가 뛰어나 예로부터 페르시아에서 ‘생명의 과일’로 불린 석류다. 가공 식품을 많이 먹는 현대인에게 부족한 무기질과 비타민 등이 고루 함유돼 있다.

 

특히 천연식물성 에스트로겐이 들어 있어 ‘여성의 과일’로 각광받고 있다. 양귀비가 매일 반쪽씩 먹었다고 전해질 만큼 피부 미용과 갱년기 장애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석류가 사과 주산지인 경북 의성군에서 와인으로 태어나 맛과 향, 분위기를 즐기는 애주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 고장 영농조합법인 한국애플리즈가 빚는 ‘주지몽 석류주’다.

 

 

#의성 명물 옥사과와 절묘한 조화

 

석류주는 석류의 새콤함과 사과의 달고 신맛이 어우러져 부드럽고 신선한 맛이 난다. 사과와 석류가 8대 2의 비율로 들어간다.

 

경북은 우리나라 대표 과일이라 할 만한 사과의 주산지. 전국 생산량의 61%를 차지한다. 경북의 한 가운데에 위치한 의성은 한서(寒暑)의 차가 심하고 일조량이 풍부, 과즙이 많고 당도가 높은 ‘의성 옥사과’로 유명하다. 이같은 사과의 고장에서 사과전업농들이 석류주를 탄생시켰다.

 

석류주가 첫 출시된 것은 2002년 10월. 의성군 단촌면과 점곡면 일대 사과 재배 농민들이 설립, 사과와인을 생산하던 한국애플리즈가 연구를 거듭한 끝에 개발했다. 대표 한임섭씨(54)가 새로운 와인을 만들기 위해 과즙이 많고 당도가 높은 과일을 찾다 석류에 주목하게 됐다.

 

석류의 효능에 대한 연구 결과가 속속 발표되면서 ‘건강 과일’로 새롭게 관심을 모으고 있던 터라 그 동안의 와인 제조 노하우를 바탕으로 ‘석류와인’을 만들어낸 것이다. 유럽에서 와인 제조법 등을 보고 배워 전문가임을 자부하는 한씨는 “석류로 와인을 만든 것은 세계에서 처음”이라고 말했다.

 

#황토옹기서 숙성…부드럽고 신선한 와인

 

이 고장에서 생산되는 의성 옥사과와 석류로 만들어진다.

석류 껍질을 벗기고 즙을 짜낸다. 이때 씨가 부서지지 않도록 한다. 씨가 섞이면 향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짜낸 석류즙을 섭씨 18도 정도에서 2주간 발효시킨다.

 

온도를 5도 정도로 바꿔 발효를 중지시키고 가라앉은 섬유질을 빼낸 뒤 섭씨 15도 상태에서 한 달 이상 장기 숙성시킨다. 오크통보다 숙성 효과가 좋다는 황토 옹기독에서 숙성시킨다.

 

같은 방법으로 숙성시킨 사과즙과 8대 2의 비율로 브랜딩하면 16도짜리 석류와인이 된다. 사과의 달고 시원한 맛이 석류의 신 맛을 희석시켜 새로운 개념의 산뜻한 와인으로 변신하는 것이다. 입 안에 머금으면 자연이 빚어낸 향긋한 알코올 향이 느껴진다.

 

석류와 사과의 발효 미학이 빚어낸 은근한 맛에 끌리다 보면 어느결에 핑크빛 취기가 돈다. 석류의 신비가 젊음과 아름다움을 한껏 욕심내게 하는 ‘꿈의 술’이라 자랑할 만하다.

 

안주로는 생선회와 생선구이, 통닭·오리구이, 한우 소금구이 등이 좋다.

〈의성|글 최슬기·사진 김영민기자〉

 

 

 

   “수입양주와 맞서는 농업인의 자부심”

 

[경향신문 2006-03-21 15:24]    

 


-한임섭 한국애플리즈 대표-

석류주는 사과 주산지인 경북 의성군 단촌면 후평리 한국애플리즈 2,000여평의 제조장에서 빚어진다.

 

인근 점곡면에 조성된 1만2천평 규모의 농장에서 나는 석류와 이 고장 ‘의성 옥사과’로 만들어진다.

 

대표 한임섭씨와 조합원 자녀 등 직원 11명이 사과와인 외에 석류와인만 연간 70t가량 생산, 유통업체를 거치지 않고 직접 판매한다. 전국 20곳의 대리점을 통해 횟집과 일식집, 칵테일바 등에 공급한다.

 

이곳에서 와인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1999년 4월. 한씨가 동료 사과 재배 농민들과 영농조합법인을 설립, 1998년 12월 제조장을 짓고 사과와인과 브랜디를 처음 생산했다.

 

군 제대 후 캐나다의 종합건설업체 직원으로 유럽에서 근무한 바 있는 한씨는 프랑스에서 사과와인 제조 현장을 보고 고향 의성의 사과로 와인을 만들 구상을 했다.

 

1980년 회사를 그만 두고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사과 농사를 짓는 틈틈이 와인을 시험 제조하는 등 오랫동안 연구하고 준비한 끝에 사과와인을 출시했다.

 

그러나 초기 마케팅에 실패, 어려움이 가중되자 2001년 타개책을 찾기 위해 해외 견학에 나섰다가 일본의 한 박람회에서 본 석류 주스에 착안해 석류와인 개발에 나서게 됐다. 시행 착오를 거듭한 끝에 2002년 10월 석류주를 첫 출시했다. 반응이 좋았다. 지난해 11월부터는 미국과 일본에 수출하고 있고 올해부터는 군납도 하고 있다.

 

그동안 농산물 가공 유공자로 의성군 신지식인상·경북도 벤처농업인상 등을 받았으며 2003년에는 대통령 표창도 받았다.

 

한씨는 “석류주는 수입산으로부터 시장을 조금이라도 지키기 위한 농업인의 자부심”이라며 “새로운 수요 창출로 사과의 판로를 넓히고 석류의 대체 작목으로서 가능성을 연 효과도 크다”고 말했다. 350㎖ 들이 한병에 1만원이다. 문의 (054)834-7800~1

〈의성|최슬기기자〉

 

 

 

 

   [전통주 기행]내가 마신 ‘주지몽 석류주’

 

[경향신문 2006-03-21 15:24]    

 

나는 지금 이 글을 쓰기 위해서 석류주를 마시고 있는 중이다. 투명한 글라스에 술을 따라 먼저 코로 마셔 보았다. 늦가을 냄새가 난다.

 

풀벌레 우는 소리를 들으며 과수원을 지날 때 코에 스며드는 과육의 냄새다. 냄새는 두껍고 깊다. 다음에는 눈으로 마셔 보았다. 색깔이 고혹적이다. 검붉은 유혹이다.

 

검은 벨벳에 붉은 머플러를 두른 여인의 자태를 떠올려 보라. 석류주는 검은 벨벳과 붉은 머플러를 섞은 빛깔이다. 끝으로 입으로 마셔 보았다.

 

첫맛은 쌉쌀하고 뒷맛은 조금 달짝지근하다. 처음에 달콤하다가 뒷맛이 쓰면 사람이든 술이든 사람을 배신하거늘 석류주는 그렇지 않다. 호감이 간다. 그래서 몇 잔을 더 마셨다.

 

350㎖ 들이 반병을 혼자 비웠으나 아직 취기가 오르지 않는다. 석류주는 나의 고향술이다. 그러나 석류주를 빚는 사람이 누군지는 모른다. 고향술이라고 편애할 생각은 없다.

 

다만 고향술이라니 마음이 끌리고, 석류와 능금으로 만든 술이라니 어린 시절 석류를 먹고 얼굴을 찌푸렸던 추억과 제사상에 올리기 위해 깎은 사과 껍데기를 형제들과 다투어 먹던 추억이 떠오른다. 석류주를 마시고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일은 즐겁다.

 

그러나 석류주에는 석류 고유의 맛이 없다. 있다면 술로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니 다행이다.

 

술병 바닥을 보기 전에 마무리를 하자. 50대 남자로서 마신 석류주는 40대 후반의 성숙한 중년 여인이다. 인생이란 무엇이라고 한 마디 해도 거부감을 사지 않는 여인, 주위를 돌아보는 여유와 꾸미지 않은 품위가 있는 여인, 정감이 넘치고 조금은 육감적인 여인이 석류주이다.

 

만약 40대 남자로서 마셨다면 석류주는 완숙의 미를 갖춰가는 50대 초입의 여인이다. 30대 남자로서 마셨다면 석류주는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 같은 여인이다. 그러므로 석류주는 남자들끼리 있는 자리에 있을 술이 아니다.

 

남자와 여자가 있는 풍경에 있으면 딱 어울릴 술이다. 남자와 여자가 사랑을 이야기할 때, 남자가 여자에게 ‘작업’을 걸 때 석류주는 분위기 메이커로서의 몫을 단단히 해낼 것 같다.

 

색깔이 그러하고 맛이 그러하다. “석류주는 에스트로겐이 함유된 석류로 빚은 술이므로 여성의 건강에 매우 좋습니다.” 글라스를 ‘쨍’ 부딪치며 부드럽고 낮은 목소리로 권주해 보라. 석류주는 사랑의 밀도를 높이고 ‘작업’의 거리를 단축시키리라.

 

〈우호성|소설가·우호성역학&적성연구소장〉

 

 

 

***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 아다지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