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마시는 이야기들/세계술 이모저모

[전통주 기행] (51)충남 아산 ‘짚가리술’

향기男 피스톨金 2006. 3. 7. 23:28

 

             [전통주 기행] (51)

 

             충남 아산 ‘짚가리술’


충남 아산시 선장면에 가면 촌스러운 이름의 술이 있다. 명칭은 ‘시골스럽고’ 투박하지만 맛 하나는 일품인 바로 ‘짚가리(짚동가리)술’이다.

 

다른 전통주들이 그 나름의 맛과 고풍스러움을 자랑하고 있지만 짚가리술이야말로 우리민족의 애환과 이를 극복한 고난의 역사가 고스란히 배어있는 국내 유일의 명주라 할 수 있다.

 

맑은 물과 좋은 약재들로 빚어지고 있는 짚가리술은 아산지역 특산술로서 뿐만 아니라 깔끔하고 부드러운 술맛으로 애주가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일제 밀주단속 속에서도 명맥

 

‘짚가리술’이 탄생하게 된 것은 일제가 본격적으로 술을 통제하면서부터다.

 

1909년 일제에 의해 주세법이 도입되고 1916년 강화된 주세령이 도입되면서 우리 민족은 일제의 밀주단속에 극심한 고통을 당해야 했다. 이 때문에 각 가정에서 제조된 술은 단속반원들의 손길을 피해 음지로 숨게 됐다.

 

어떤 이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산중에 술독을 묻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대청마루 밑이나 헛간에 숨기기도 했다. 때론 짚단이 쌓인 짚가리에 묻기도 했는데 이것이 바로 짚가리술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지푸라기의 묶음인 짚뭇 그리고 짚뭇의 더미인 짚가리를 술의 은신처로 이용한 것이다. 술을 빚어 술항아리를 땅에 묻거나 땅위에 놓고, 그 위에 짚가리를 쌓는 식이었다.

 

단속이 심할 때는 단속반원이 와서 쇠꼬챙이로 짚단 속을 쑤셔보아도 찾을 수 없게 깊숙이 넣기도 했다. 이렇게 짚가리를 이용해 술을 숨기면서 사람들은 자연스레 이 술을 ‘짚가리술’이라 부르게 됐다.

 

 

#보온·숙성 효과 술맛 ‘탁월’

 

짚가리는 술을 은닉하기 좋은 수단으로서 뿐만 아니라 그 맛을 내는데도 탁월한 효과가 있었다. 짚가리 속은 보온효과가 뛰어나 그 속에 있는 술의 안정적인 발효를 가능하게 했다.

 

땅에다 묻고 짚을 수북이 덮을 때는 훨씬 술 맛이 좋았다. 추수가 끝나고 빚은 술을 늦봄에야 꺼내 먹기 때문에 술이 저절로 6개월 넘게 장기 숙성될 수 있었다.

 

우리네 민속주중에는 한산소곡주 등 백일동안 숙성시키는 백일주가 있지만 땅속 짚가리술은 그 백일주보다 최소 2배 이상 더 오래 숙성되기 때문에 독특한 맛을 유지할 수 있었다.

 

짚가리술의 특징은 코끝에서 뿐만 아니라 입안에서도 향이 오랫동안 머문다는 점. 입에 대고 한 모금 마시면 달착지근하고 쌉사래한 느낌이 진한 뒷맛을 남긴다.

 

짚가리술이 아산지역에서 탄생하게 된 데에는 주변환경 여건도 작용했다. 인접한 당진군 등에서도 짚가리술이 만들어졌지만 이는 대부분 아산지역에서 전파돼 제조되기 시작한 것.

 

인근 지역중 특히 아산지역 선장면이 농토가 넓어 짚가리가 많았고 그래서 주민들이 숙성과정에 이를 쉽게 이용하게 된 것으로 보여진다. 짚가리술은 짚동가리술로도 불리는데 짚동은 짚단이나 짚뭇과 같은 뜻이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짚가리술을 짚동가리술이라 부르기도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 회갑연때 사용

 

아산지역 명주로 그칠 뻔한 짚가리술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회갑잔치에 쓰이게 되면서부터였다고 알려져 있다.

 

TV가 널리 보급되지 않았던 70년대 당시, 지방순시차 아산지역을 방문한 박전대통령이 한 할머니에게 짚가리술을 얻어 마시고 “참 맛있다”고 하자 할머니가 “누구신지는 모르지만 우리 박대통령과 똑같이 생겼다”고 말해 좌중을 웃겼다고 한다.

 

술맛에 반한 박전대통령이 그때부터 자주 짚가리술을 찾자 고위관리들 사이에서는 짚가리술이 ‘대통령주’로 불리며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글 정혁수기자 overall@kyunghyang.com〉

〈사진 정지윤기자 color@kyunghyang.com

 

 

 

 

[전통주 기행]전통 잇는 채수성·병훈 부자

[경향신문 2006-03-07 15:15]    

 

 


짚가리술의 전통을 잇고 있는 채수성·채병훈(원앙주업영농조합법인) 부자의 꿈은 하나다. 지역민의 삶과 애환이 배어있는 ‘짚가리술’을 전세계 애주가들이 즐겨 찾는 ‘명주’로 만드는 일이다.

 

채씨 부자의 ‘술 만들기’는 정말 우연찮게 시작됐다. 잘 나가던 직장생활을 그만 두고 시작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특히 법인설립자이자 부친인 채수성씨의 삶은 더 그렇다.

 

1984년까지만 해도 채씨는 건설업자로서 외길인생을 걸었다. 사업을 하면서 정부주도의 개발 붐을 타고 돈도 꽤 벌었다. 하지만 천직은 다른 곳에 있었나 보다. 새로운 사업구상차 1985년 중국에 가면서 술은 그에게 숙명이 됐다.

 

“한길만 달려와 너무 지쳐있었고 그래서 전환점이 필요한 시기였다. 중국에 들어가 각지를 돌며 그네들의 생활과 문화를 샅샅이 훑어봤다. 그러면서 다양한 음식문화에 놀랐고 특히 술에 대한 중국인들의 애착을 보면서 뭔가 ‘감’이 잡혔다”

 

판단이 서자, 그는 톈진의 한 주류공장을 인수해 5년간 실험을 계속했다. 성과도 잇따랐다. 대추 등을 이용해 빚은 술이 세계주류박람회에서 본상을 수상했다. 중국의 대표적 술인 이과두주도 그의 손을 거치면서 상품화됐다.

 

이들 부자는 요즘 우리 술의 맛과 향을 연구하는데 여념이 없다. 다행히 반응도 좋다. 국내는 물론 중국, 말레이시아 등 해외판로도 활기를 띠고 있다.

 

채수성씨는 “술은 맑은 물로 빚어야 하는데 이곳 선장면 신성리 일대는 옛 신라시대부터 으뜸마을로 불릴 정도로 물 맛이 좋고, 약효가 뛰어나다. 콘텐츠가 충분하기 때문에 앞으로 포장만 잘하면 세계시장을 공략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정혁수기자〉

 

 

광둥성에서는 대나무통 술인 태가주를 만들어 인기를 끌었다.

“운명은 소리없이 주인을 찾아온다”는 말이 그에게 현실이 된 것이다.

overall@kyunghyang.com

 

 

 

 

    [전통주 기행]내가 마신 ‘짚가리술’

[경향신문 2006-03-07 15:15]    

 

 

 

“술 한 잔 먹세 그려, 또 한 잔 먹세 그려, 꽃 꺾어 셈하며 무진 무진 먹세 그려. 이 몸이 죽은 후면…뉘 한 잔 먹자 할꼬(중략).”

 

정철의 사설시조 장진주사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네 선조들은 술이 삶의 전부였는가 보다.

 

“죽은 후에 뉘우치면 무엇 할꼬, 아무 소용이 없지 않은가”라고 술에 대한 간절함을 전하고 있으니 말이다.

 

내 어릴 때 기억은 이렇다. 술을 밥보다도 더 좋아하시는 어르신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 끼니 때마다 술이 찬 나오듯 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항상 윗목에 항아리를 솜이불에 묻어두고 술을 빠르게 띄워 술이 떨어지지 않도록 ‘주모’ 노릇을 했다.

 

짚 속에 파묻어두면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니 부득이 그렇게 윗목에 둘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물론 짚가리 속에도 나름대로 술을 보관해 놓고 익을 때를 기다렸다.

 

어느날 밖에서 놀다 들어온 나를 보고, 늘 술을 곁에 달고 사시는 작은 아버님께서 상 앞으로 부르신다. 그리곤 술을 한 대접 주시는데, 어린 마음에 안 마시면 혼이 날게 뻔하고, 마시자니 겁도 나고 그래서 망설이는 데 얼른 마시지 않는다고 호통이시다.

 

에라! 눈 딱 감고 마시고는 이내 잠이 들었다. 지금 기억으로는 그것이 짚가리 술이다.

 

누룩의 배합 비율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노란색에 가깝고, 향이 강한 것도 아니고 딱히 무슨 향이 있다고 하기도 어렵다.

 

마치 우리네 세상살이처럼 그저 모난데도 없이 두루뭉술한 느낌이다. 그러나 코끝에서 그리고 입안에서 오랫동안 향이 머문다.

 

좋은 술이 그러하듯이 기분 좋게 취하고 숙취에도 사람의 속을 부대끼게 하지도 않는 그런 술이다.

 

아직도 우리고장 선장지역 일부 농가에서는 이 술을 빚어 설이나 추석 때 고향을 찾은 사람들과 정담을 나누며 마시고 있는데 지금은 볏짚을 구하기 어려워 예전과 같은 방법으로 담글 수는 없으나 그 맛은 변함없이 전수되어 오고 있다.

 

 

〈김준배|전 아산시요식업회장〉

 

 

 

 

***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 아다지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