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눈부신 하늘을 시샘하듯 바다는 쉴새없이 깊고 푸른 빛을 뿜어낸다. 닿을 때마다 우윳빛 포말을 일으키며 스러지는 모래언덕을 지나 열대어 무리를 따라 나서면 형형색색의 산호숲이 펼쳐진다.
익숙했던 도시의 속도감을 잊고 자연의 숨소리에 몸을 맡기면 어느새 마음속 그늘도 사라진다. 태평양 천혜의 섬 사이판은 조급함에 사로잡힌 현대인에게 느림을 통한 휴식을 선사한다.
◇평화의 섬=인천공항에서 비행기로 4시간 남짓이면 갈 수 있는 사이판은 동서 8.8km,남북 21km의 작은 섬. 해안선 도로를 따라 자동차를 몰면 1∼2시간이면 섬 전체를 둘러볼 수 있을 정도다. 티니안 로타 등 14개의 섬과 함께 북마리아나제도연방을 구성하고 있다.
높이 473m인 타포차우산 정상을 중심으로 펼쳐진 야트막한 섬에는 야자수와 하이비스커스(붉은색 무궁화 계통의 꽃) 등 열대식물이 가득 들어서 있다.
평화와 휴식의 대명사로 통하는 이 섬도 반세기전까지만해도 포성으로 가득했었다. 1945년 연합군이 전투 종결을 선포할 때까지 일본군이 주둔한 2차 세계대전의 치열한 격전지였기 때문이다.
초소가 설치됐던 해안선에는 숙박시설이 들어서고 화염을 뿜던 중거리포는 전시물로 변했다. 인간의 욕심으로 촉발된 전쟁의 결말을 체험한 섬 곳곳에는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치열한 관광전=
일본의 오랜 주둔 역사로 연간 53만명 규모의 관광객 가운데 일본인이 33만명으로 가장 많이 찾는다. 사이판 북쪽에 있는 ‘만세절벽’과 ‘일본군 최후 사령부’ 등 과거 일본의 행적을 보려는 일본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한국인 관광객은 7만명 수준이고 중국인 3만명 등 아시아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현지 관광회사를 운영하는 양양철(48)씨는 “일본측이 사이판 북부지역 관광상품을 ‘전적지 투어’로 판매하는데 반해 한국과 중국계 회사는 자연물 중심의 ‘북부 투어’로 맞서고 있다”며 “총성은 멎었지만 관광업계에서의 보이지 않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최근 국내 건설업체인 월드건설이 일본인으로부터 현지 호텔을 인수해 테마워터파크인 ‘웨이브 정글’ 등으로 새단장을 끝내고 ‘월드리조트’로 새로 문을 열면서 ‘한국형’ 관광상품 개발도 본격화됐다.
월드리조트 박병규 총지배인은 “성수기마다 일본 관광객에 비해 호텔 예약 등에 불리한 점이 많았다”며 “한국 기업 소유의 첫 종합리조트로 관광객들이 관광과 휴식을 맘껏 즐길 수 있도록 운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여행메모=
아시아나항공에서 운영하는 인천발 사이판행 항공편은 매일 오후 8시10분 출발해 다음날 새벽 2시50분(현지시간)에 돌아오기 때문에 여정을 조절하면 주말 여가를 즐길 수 있다.
사이판 현지에선 국제면허증은 물론 우리나라 면허증으로도 자동차를 빌릴 수 있다. 단 대여회사와 차종에 따라 미화 최소 40달러에서 100달러 이상 비용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관광정보:북마리아나제도관광청 한국사무소 02-752-3189).
정동권 기자 danch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