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고받는 사계절이야기/주고받는 봄 이야기

시,오월의 느티나무

향기男 피스톨金 2006. 5. 15. 18:24

 

                詩 오월의 느티나무



 


오월의 느티나무
                                    
                  아이비/이기호
나는 초록 옷을 갈아입은 
길 가의 무던한 느티나무
주변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참 많다.
한나절이 지나고
다시 저녁이 오고 밤이 와도
그냥 무작정 그 자리에 
서 있어야 한다.
누구를 기다리는 것도 아니다.
누구를 배웅하는 것도 아니다.
나의 임무는 
그냥 무작정 서 있는 것.
아무리 소리쳐도
바람에 지나는 잎 새의 가녀린 
흔들림만 있을 뿐
더 이상의 소리를 낼 수도 없다.
내 유일한 즐거움은 
종일 하늘을 잡는 것이다.
오늘도 하늘만 잡았다.
무겁게 눌러진 
콘크리트 바닥에서 발을 빼고 싶다.
숨이 막힐 듯한 극한의 임무로부터
떠나있고 싶다.
초록 옷을 갈아입었지만 
떠날 친구가 없다.
모두 제 일상에 묶여
급급한 하루를 보내고, 
무심히 지나는 사람들만 
눈에 들어온다.
아는 사람을 붙들지도
불러 세우지도 못하는 나는
길 가의 느티나무 
무던함을 키운 오늘
애써 차려입은 초록 옷이 
참으로 무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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