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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망해가던 회사 살린 진흥기업 전홍규 사장

향기男 피스톨金 2006. 8. 31. 16:24

 

           Interview |망해가던 회사 살린

 

                진흥기업 전홍규 사장

 

이코노믹리뷰 2006-08-31 07:51]


“인사에서 어음만기일까지
모든 걸 공개하니 살아나더군요”
 

전홍규 사장이 말하는 회사 살리는 법


- 직원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줘라
- 직원들에게 솔직해져라
- 사장이라는 자존심을 버려라
- 안정성 위주로 성장해라
- 항상 위기의식을 가져라
- 가족 같은 회사를 만들어라

 

국내 10대 종합건설회사로 그 위용을 자랑했던 진흥기업. 1970년대만 해도 진흥은 중동지역은 물론, 런던·뉴욕 등 해외시장을 개척해 온 건실한 건설회사였다.

 

하지만 1979년 오일쇼크 이후 공사대금 적체로 사세가 기울면서 1987년 산업합리화 업체로 지정됐고, 이후 12년 간 은행관리 기간을 거치며 사람들의 뇌리 속에서 서서히 지워져 갔다.

 

하지만 진흥기업은 2002년 전홍규 사장이 대주주로 취임하면서 새로운 전환기를 맞게 된다. 취임 당시 530억원의 적자를 냈던 회사는 이듬해 42억원 흑자 기업으로 돌아섰으며, 2004년에는 85억원, 작년에는 193억원의 순익을 내면서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전 사장은 이에 그치지 않고, “2010년에는 매출 1조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한다. 지난 8월 18일 후암동에 위치한 진흥기업 서울 사옥에서 전 사장을 만나, 회사가 정상화되기까지 힘들었던 그 간의 과정에 대해 들어 보았다.

 

- 4년 전 사장님이 취임할 당시만 해도 회사가 많이 안 좋았죠.

 

안 좋은 정도가 아니었죠. 회사에 돈도 없었고, 은행관리에 들어간 기간에 새로 수주한 공사도 없는 상황이었어요. 기존에 수주했던 공사들은 하나 둘 끝나가기 시작했죠. 새로 시작할 공사 물량이 없으니, 직원들이 ‘이제는 회사를 떠나야 되는 건가’라며 웅성거리는 게 내 귀에까지 들렸으니까요. 전체적으로 침체된 분위기였어요. 직원들이 회사가 정상화될 수 있을 지에 대해서도 반신반의하는 상황이었죠.

 

- 막막했겠습니다.

 

그런데 달리 생각해보면 골치 아픈 게 없어 홀가분하다는 기분이었어요. 이미 회사의 부채도 탕감하고, 직원들의 구조조정도 끝난 상태였기 때문에 해볼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 사장님은 진흥기업에 연고가 없으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어떻게 오게 됐나요.

 

창업주인 박영준 전 회장과 오래 전부터 잘 아는 사이였어요. 1974년에 군에서 전역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박 전 회장이 같이 일해보자고 제의할 정도로 오래 전부터 아는 사이였죠. 4년 전 박 전 회장이 회사가 어려워지고, 경영권이 흔들리면서 절 찾으셨어요. 그 때 저한테‘회사를 좀 맡아 달라’고 말씀을 하셨죠.

 

- 박 회장님과는 요새도 만나시나요.

 

제가 지금 쓰는 방이 박 회장님이 쓰시던 방이에요. 요새도 가끔 식사하자고 전화가 옵니다. 자주는 못 보지만, 1년에 두 세 번은 만나서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 부임하시고, 제일 먼저 하신 게 뭔가요.

 

우선 침체되어 있는 직원들의 사기를 올리는데 주력했어요. 그러기 위해 처음 한 일이 기존 임원들을 재정비 해야했죠. 당시 임원들을 모두 모아 놓고 ‘내가 여러분들을 보호해 줄 힘이 없어 미안하다’며 임원들을 전부 교체했습니다.

 

보호해 줄 힘이 없다는 건 임원들이 이미 직원들한테 거부당하고 있던 상태였다는 얘기예요. 첫 번째가 직원들의 사기진작인데, 직원들이 임원에 대한 신뢰가 없는 상태에서는 회사를 꾸려나갈 수가 없었죠.

 

- 임원 교체만으로 직원들의 신뢰를 얻기는 힘들었을 것 같아요.

 

물론입니다. 진흥에는 매월 초 조회가 있어요. 내용을 보니 훈시 밖에 없었어요. 이런 조례는 필요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2002년 10월부터 조회를 경영보고로 바꿨어요. 형식적인 것은 생략하고, 아침 8시에 모여 사장이 직원들한테 한 달 간 있었던 일을 보고하는 형식이었죠.

 

- 회사가 어려운데, 그런 경영 보고가 자칫 사기를 더 떨어뜨릴 수 있지 않을까요.

 

아니에요. 솔직한 게 가장 좋습니다. 오히려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뜬소문이 나돌면 분위기가 더 나빠져요. 그 때 외부에선 별 얘기가 다 있었어요. ‘진흥이 M&A 시장 나왔다더라, 사채를 빌려 쓴다더라’. 이런 소문이 끊이지 않았죠.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오픈하는 게 그런 소문을 잠식시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요. 어음 만기일 등 모든 것을 낱낱이 공개했습니다.

 

- 신규 공사가 없는 상황에서 자금 조달하는 것도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공사 물량은 없는데, 기존 공사해 놓은 것들에 대한 보수비용은 계속 들어가는 상황이었죠. 은행에 예치된 하자보수비용조차 없었어요. 그래서 직접 2 금융권에 찾아가서 담당 과장·차장·부장들한테 인사를 드렸어요. 그러니까 조금씩 빌려주기 시작하더군요. 그때는 1 금융권에는 갈 생각도 못 했고 가지도 않았어요.

- 신규 수주를 확보하는 것도 중요했을 텐데요.

 

어느 정도 직원들이 안정을 되찾았으니, 이제 슬슬 회사 매출을 올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중점을 둔 게 공공부문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거였죠. 내부적으로 경영지표와 같은 점수 관리에 치중했어요.

 

점수가 높아야 낙찰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죠. 부임하고 다음해인 2003년부터는 서서히 신규 수주를 하기 시작했어요. 공공 공사 입찰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일부러 저가 수주를 하기도 했습니다. 대내외적으로 회사의 의지를 피력한 거였죠.

 

- 지방 수주가 많은 것 같던데요.

 

물론 수도권 사업이 좋지만, 진흥의 네임 밸류로는 물량을 확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지방의 경우는 달랐죠. 지방 경기가 안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잘만 선택하면 리스크가 그렇게 크지는 않습니다.

 

- 그렇게 말씀하셔도, 리스크가 염려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그래서 지역 물량의 경우 단독으로 하기보다 신탁회사와 함께하는 방법을 취했습니다. 그런 방법으로 최대한 리스크를 분산시켰죠. 분양이 잘 될 경우 이익이 조금 줄어들기는 하지만, 그렇다 해도 안정성이 가장 중요하니까요. 신탁을 이용한 뒤 자금 경색도 많이 사라지게 됐고, 12개 정도 되는 주택 공사 중 단 한 군데도 적자를 낸 곳이 없습니다.

 

- 올해에는 예년과 달리 이미 현장을 순찰하셨다고 들었는데요. 특별히 이유가 있습니까.

 

원래 현장을 도는 게 10∼11월께인데, 올해에는 5월 말부터 현장을 돌기 시작했습니다. 그 동안 한 해를 마감하면서 직원들을 격려해주는 차원이었지만, 올해는 ‘금년을 위기로 잡고, 하반기에 한 번 더 힘을 내자’는 의지를 담은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2년 후에 매출이 1조원까지 가기 위해서는 고삐를 바짝 조여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 진흥을 어떤 회사로 만들고 싶으신가요.

 

경영보고 시간에 직원들에게 늘 하는 말이 ‘개인과 회사가 비전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회사만을 위해서 일하라는 건 말이 안 됩니다. 같이 발전할 수 있는 조직이 되어야 직원들이 힘을 낼 수 있어요. 그리고 직원 가족들도 언제든지 들락거릴 수 있는 편안한 회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다 보면 직원들도 더 소속감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1946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난 진흥기업 전홍규 사장은 청주고·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풍림산업에서 30년 가까이 근무하면서 전무·부사장·영업본부 본부장(고문) 등을 지냈다. 지난 1999년에는 한국부동산신탁의 대표이사 사장으로 근무했으며, 2002년부터 진흥기업의 대표이사 사장으로 재임 중이다.

윤종성 기자(jsyoon@ermedi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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