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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의 고향 맹자고리/중국곡부

향기男 피스톨金 2007. 2. 23. 13:09

 

             맹자의 고향 맹자고리


만약 맹자가 없었다면 공자의 사상이 이토록 세상에 널리 퍼질 수 있었을까? 공자의 사상을 세상에 널리 알린 것은 바로 맹자다.
 

맹자(기원전 372년∼289년)는 공자가 세상을 뜬 지 107년 후에 태어나서 같은 시대를 살지는 못했으나, 그의 고향은 공자가 가르침을 펴던 취푸(曲阜)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았다. 취푸에서 쩌우현(騶縣) 방향으로 약 13㎞ 정도 거리여서 버스를 타고 약 15분 정도 가면 도달한다.

 

맹자고리(孟子故里)라는 글자가 새겨진 석조 기둥이 보이는데, 이는 맹자의 옛 마을, 즉 고향이란 뜻이다.

◇맹자 초상화

이곳 풍경은 잔뜩 기대하고 온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겨 준다. 더러운 개천물이 흐르고 낡은 가옥들과 푸성귀를 키우는 텃밭이 보이는데, 진창길로 가끔 수레와 자전거가 지나갈 뿐 행인도 별로 없는 조용한 마을이다.

 

길거리에는 허름한 식당과 가게가 있을 뿐, 관광객들을 맞이하는 시설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마을 안에는 맹자 어머니가 사용했다는 맹모정(孟母井)이란 우물이 보존된 집이 있을 뿐이다.

 

맹자고리에서 길을 건너면 석조 기둥에 맹모림(孟母林)이라 쓰여진 현판이 보이고, 이곳을 통과하면 밭과 민가 몇 채가 들어선 조용한 마을이 나온다. 10분 정도 길을 따라 걷다 왼쪽 길로 접어 들면 이름 없는 무덤들이 군데군데 들어선 허름한 공동묘지가 나오고, 한쪽에 맹자 어머니 무덤이 자리 잡고 있다.

 

그 앞에 맹씨들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이 없다면 쉽게 구별조차 할 수 없는 평범한 묘일 뿐이다.

이곳은 맹자가 태어난 시절에도 공동묘지였다. 맹자는 그 영향을 받아 어릴 때부터 곡하면서 장례 놀이를 했다고 한다.

 

자식의 앞날을 걱정한 맹자의 어머니는 시장 근처로 이사를 간다. 맹자고리에서 약 7㎞ 떨어진 그곳에는 현재 기차역이 있다. 시장은 아니지만 예전처럼 번잡한 거리에 음식점과 상점들도 많이 들어서 있다.

 

맹자가 이곳에서 장사하는 흉내를 내며 공부를 게을리 하자 맹자 어머니는 다시 서당 근처로 이사를 한다. 새로 이사를 간 곳은 약 2㎞ 떨어진 곳이었다. 맹자가 이곳에서 글을 배우는데 재미를 붙여 ‘맹모삼천지교’라는 말이 나오게 된다.

 

맹자는 대학자로 성장한 후 당대의 유명 사상가들과 학문적 논쟁을 전개한다. 그 시절에 가장 유행한 학설은 노자의 제자로 알려진 양주(楊朱)의 위아설(爲我說)이었다. 양주는 세상 일에 너무 나서지 말고 자기의 털 하나라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이기적인 태도를 취했는데, 이와 정반대로 자신을 사랑하듯이 남을 사랑하라며 이타주의를 내세운 묵자(墨子)의 겸애설(兼愛說)도 인기가 있었다.

 

◇맹모림(맹자 어머니의 무덤이 있는 마을)

◇맹자 어머니 무덤

◇맹자묘(사당)

 

맹자는 이들의 극단적인 태도를 비판하며 “지금 천하는 양묵(楊墨)의 말들로 가득 차 있다. 앞으로의 사상계는 양주에게로 기울지 않으면 묵적(墨翟, 묵자의 본명)에게로 기울 것이다”라고 걱정했다고 한다.

 

맹자는 인간은 선천적으로 선하다는 성선설(性善說)을 내세우며 네 가지 선한 마음씨인 4단(四端)이 있다고 주장했다. 곤경에 처한 사람을 측은하게 여기는 측은지심(惻隱之心), 의롭지 못한 일에 대해 부끄러워 하는 수오지심(羞惡之心), 남을 공경하고 사양하는 사양지심(辭讓之心),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을 갖고 태어나는데 이 마음을 배양하여 4덕(四德),

 

즉 군자가 행하여야 할 인의예지(仁義禮智)에 도달하는 것을 교육의 역할이라고 보았다. 또한 이 같은 마음을 갖고 정치하는 것을 왕도(王道) 정치라 했고, 군주가 왕도 정치를 하지 못할 때에는 백성이 군주를 쫓아낼 수도 있다고 했다.

 

◇맹자소학(맹자초등학교)

◇쩌우현 기차역 부근(옛 시장 동네)

 

맹자는 학문을 익힌 후, 약 15년 동안 천하를 주유하며 공자처럼 자신의 사상을 실현하려 했으나 군주들은 그의 가르침을 좋아하지 않았다. 결국 맹자도 스승 공자처럼 고향으로 돌아와 제자들을 키우며 만년을 보낸다.

 

맹자가 학문을 닦았던 마을에는 현재 그를 모시는 사당인 맹묘(孟廟)가 있고, 그 옆에는 후손들이 살았던 맹부(孟府)가 있다. 지금도 맹묘 근처에는 ‘맹자소학(孟子小學)’이라는 초등학교가 있는데, 학교에 드나드는 아이들을 지켜보노라면 약 2400년 전 이곳에서 서당에 다녔던 어린 맹자의 모습이 절로 연상된다.

 

여행작가(blog.naver.com/roadjisang)

 

맹자의 어머니처럼 야단치며…

>> 여행 에피소드

맹묘 근처에 갔을 때는 마침 점심 시간이었다. 맹자소학교 아이들이 나와 소나무를 기어오르고, 딱지치기를 하고, 문방구점에서 구경을 하는 등 다들 노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학교 앞 반듯한 돌 위에 책과 공책을 놓고 뭔가를 하는 아이가 있었다. 엄마로 보이는 젊은 여인이 야단치며 미처 하지 못한 숙제를 시키는 것 같았다.

 

슬그머니 다가가 사진을 찍는 나를 아이가 발견했으나, 힐끔힐끔 보면서 엄마가 시키는 숙제를 계속했다. 맹자의 어머니도 공부는 하지 않고 늘 상여꾼이나 장사치를 흉내 내는 맹자를 꽤나 야단쳤을 것이다.

 

그들 모자의 모습을 보며 맹자의 어머니도 저 여인처럼 맹자의 공부를 돌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맹자의 자취가 서린 곳에 왔다는 감상 때문일까, 이곳의 교육열이 예사롭지 않게 보였다.

 

>> 여행 정보

맹자고리는 공자의 고향인 취푸의 버스터미널에서 쩌우현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약 15분쯤 가면 된다. 정류장이 따로 있는 곳이 아니므로 버스 차장에게 미리 행선지를 말해야 한다. 맹자 어머니의 무덤은 맹자고리에서 길을 건너 20분쯤 걸어 들어간다.

 

이곳을 구경하고 도로에서 다시 쩌우현 방향으로 버스를 타면 약 10분 후 기차역 근방에 도착한다. 맹묘는 여기서 택시를 타고 5분 정도 걸린다. 쩌우현은 취푸에서 머물며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다. 맹자의 무덤이 있는 맹림은 북쪽으로 약 25㎞ 떨어진 사기산(四基山)에 있다.

[세계일보 2007-02-23 10:06]    

 

 

[세계일보 2007-02-23 10:00]    
                            Giovanni Marradi   피아노 연주곡  

                            

 

                                                          행복한 하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