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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장성은 달에서 보이지 않는다

향기男 피스톨金 2007. 2. 24. 11:22

 

        만리장성은 달에서 보이지 않는다
▲ 가욕관과 천산
ⓒ2007 조수영
가욕관성으로 향했다. 가욕관은 고비사막 한가운데 있는 만리장성의 서쪽관문이다. 남쪽으로는 기련산맥이 가로막고 있고, 북쪽으로는 용수산, 마종산이 막고 있어 서쪽의 여러 민족들이 쳐들어오기 위해서는 이곳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 이곳을 지나야 하서주랑을 거쳐 중원에 이르는 것이다.

천예의 요새 가욕관성... '천하웅관'으로 중국인들의 심정적인 국경

천예의 요새가 아닐 수 없다. 과거 이곳은 중국의 행정력이 미치는 서쪽 끝이었다. 좀 더 서쪽으로 가면 양관(陽關)이라는 관문이 하나 더 있긴 하지만 크기도 작거니와 군사적 중요도도 낮아 중국 사람들의 심정적인 국경은 여기까지였다고 한다.

또 중국인들은 동쪽 끝인 산해관(山海關)을 '천하제일관'이라고 하고, 서쪽 끝인 이곳 가욕관을 '천하웅관(天下雄關)'이라고 불렀다.

가욕관의 성채는 명나라 주원장 때인 1372년 빙승 장군이 몽골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세운 것이다. 성 안에는 1개 대대 약 400명의 병사가 상주했었고, 높이 10m, 두께 8m, 동서로 256m, 남북은 160m의 규모로 벽돌을 쌓았다. 철저하게 계획을 세워지었기 때문에 성이 완성된 뒤에 예상했던 벽돌 수에서 단 한 장의 차이가 났다고 전해진다.

북방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한 군사기지로 세워졌지만, 몽골고원이 청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면서 이 일대의 장성도 존재 가치를 상실하게 되었다. 이후 1958년 인민정부에 의해 개발이 이루어지기까지는 불과 30여 가구만이 사는 오지로 남아있었다.

▲ 치밀한 설계로 세워진 성곽은 설계도와 벽돌 한 장의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2007 조수영
외성과 내성의 이중구조

성의 입구는 주차장에서 500m나 떨어져 있어 뜨거운 햇살을 피해 전동차를 타야 했다.

가욕관성은 외성과 내성의 이중구조로 되어 있다. 웅장한 성문을 통과하면 또다시 성문이 나타나는 겹겹으로 싸인 요새이다. 외성의 동쪽 문으로 들어가서 내성을 통과하여 외성의 서쪽 문을 통해 서역으로 가는 것이다. 당시에도 동서의 두 개의 문을 열었다.

▲ (사진 위) 외성으로 들어서니 깎아낸 듯한 내성이 서 있다. (아래 사진 왼쪽) 외성의 동문을 통해 가욕관 성채로 들어간다. (아래 사진 오른쪽) 천하웅관이라 세겨진 비석.
ⓒ2007 조수영
'천하웅관'이라 조금은 허술해 보이는 현판이 걸려있는 동문을 통해 외성으로 들어섰다.

약간의 오르막길을 걸으니 오른쪽에 '천하웅관(天下雄關)'이라 새겨진 비석이 있고, 왼편으로 웅장한 내성이 우뚝 서 있다. 넓은 성채 안에 있는 위풍당당한 3층의 성루와 깎아낸 듯한 성벽이 인상적이다. 극장이었던 문창각(文昌閣)과 관제묘(關帝廟)가 있다.

▲ (사진 위) 극장이었던 문창각. (사진 중앙) 관우를 모시는 관제묘. (사진 아래) 관제묘의 관우장군상.
ⓒ2007 조수영
내성을 ㄷ자형으로 쌓은 까닭은?

내성에도 동서로 두 개의 문이 있다. 동쪽의 광화문(光化門)은 상서로운 기운이 동쪽에서 일어나 두루 비춘다는 의미이고, 서쪽의 유원문(柔遠門)은 회유로써 서쪽의 변방까지 안정시킨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광화문으로 들어서니 하늘을 제외한 사방이 모두 10m가 넘는 높은 성벽으로 막혀있다. 성문 앞에 ㄷ자형으로 성을 쌓아 그 옆문을 통과해야 성문을 공격할 수 있게 했다. 두터운 성 위로는 방어벽을 쌓아 사람들이 다니며 성 아래 있는 적을 공격할 수 있게 했다.

성벽 위에서 화살이라도 쏘아댄다면 완전히 독 안에 든 쥐가 되는 것이다. 내성을 이루는 문도 침입에 대비해 이렇게 겹겹으로 쌓은 것이다. 예전엔 군사들로 붐비었을 내성 안의 넓은 광장에는 뜨거운 햇살에 간신히 자라고 있는 나무와 잡초뿐이었다.

▲ (사진 위) 광화문을 통과하여 내성으로 들어선다. 군사들로 붐비었을 내성 내부 광장. (사진 아래) 가욕관성의 서쪽 누각 가욕관루. 멀리까지 만리장성이 이어져 있다.
ⓒ2007 조수영
내성의 서쪽 유원문을 통해 내성을 빠져나오니 외성의 가욕루가 보인다. 성채의 가장 서쪽에 있는 상징적인 누각이다.

누각에 오르니 서쪽으로 끝없는 사막이 펼쳐져 있고, 사막이지만 사람이 다녔을법한 길의 흔적이 성 입구로 향하고 있었다. 그 길을 따라 적의 침입을 알리는 전령이 말을 타고 달려오고 그 뒤로 모랫바람을 일으키며 수십만의 오랑캐가 달려오는 듯하다.

멀리 지평선이 보인다. 예전에는 죄인들을 성 밖 사막으로 내쫓았다고 한다. 저 땅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흙, 바람과 같은 가장 원초적인 자연에 의해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안쪽 성벽을 따라 성 위로 오르는 비탈길은 성문을 들어선 병사가 장군에게 소식을 전할 때 말을 타고 단숨에 올라오기 위함이다. 적이 침입했음을 다른 성에 알릴 때에는 늑대 똥을 태워 봉화로 알렸는데 비가 올 때는 파발을 보냈다. 명대에는 포를 쏘기도 했다.

가욕루를 지나 성 밖으로 나가니 비로소 가욕관성의 웅장한 모습과 멀리까지 뻗어있는 장성의 모습이 펼쳐진다. 웅장한 성채와 달리 장성은 높이가 겨우 2m밖에 되지 않는다. 이렇게 낮은 성벽으로도 적을 막을 수 있는 까닭은 서쪽의 유목민들은 말을 타고 식량으로 양들을 거느리고 오는데, 성이 가로막혀 있어 말과 양이 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 (사진 왼쪽) 안쪽 성벽을 따라 성 위로 오르는 비탈길은 성문을 들어선 병사가 장군에게 소식을 전할 때 말을 타고 단숨에 올라오기 위함이다.(사진 오른쪽) 두터운 성 위로는 방어벽을 쌓아 사람들이 다니며 성 아래 있는 적을 공격할 수 있게 했다.
ⓒ2007 조수영
▲ 장성박물관과 전시품들.
ⓒ2007 조수영
▲ 가욕관성은 외성과 내성의 이중구조로 되어 있다(직접 그림).
ⓒ2007 조수영
그러고 보면 이곳에 비가 적게 오는 것이 불리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이곳의 장성들은 대부분 갈대와 진흙을 빚어서 만든 것이므로 비가 제대로 온다면 한 번에 흘러내릴 것이다. 그러나 이 건조한 날씨가 그것을 받쳐주고 있는 것이다.

고비사막 한가운데 오아시스, 가욕관

가욕관성은 사막 한가운데 서 있다. 고비사막이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넓은 고비사막은 몽골과 중국 내몽고자치구(內蒙古自治區)의 땅을 가로질러 뻗어 있다. 고비는 몽골어로 '물이 없는 곳'이라는 뜻이다. 심한 대륙성 건조기후로 겨울은 매우 춥고, 여름은 무덥다. 자갈과 흙은 급격한 기온의 차이로 인해 풍화작용이 일어난 것이다.

잿빛이 섞인 갈색의 메마른 땅에도 '로우타우차우'라 불리는 낙타풀이 듬성듬성 자라나 꽃을 피워냈다. 콩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인 이 풀은 날카로운 가시가 숭숭 돋아나 있다. 이 가시 때문에 양떼도 먹을 수 없다. 단지 낙타만이 이 풀을 먹는다. 낙타도 이 풀을 먹을 땐 주둥이와 입안이 온통 피로 붉게 물든다고 했다. 날카로운 가시가 마구 찌르기 때문이다.

▲ (사진 왼쪽) 고비사막은 급격한 기온차로 인해 풍화작용이 일어나 자갈과 흙이 생긴 암석사막이다. (사진 오른쪽) 메마른 땅에도 낙타풀이 자란다.
ⓒ2007 조수영

결코 달에서 보이지 않는 만리장성

▲가욕관에서 산해관까지 이어지는 만리장성 ⓒ 조수영
ⓒ 조수영

 

만리장성(萬里長城)은 원래 춘추전국시대에 연나라, 조나라, 위나라 등의 각 제국이 쌓아 놓은 성을 진시황제가 하나로 연결한 것이다. 동쪽의 산해관에서 시작하여 북경의 팔달령에 있는 거용관, 대동의 안문관, 주천의 가욕관까지 6300㎞를 시황제가 완성했던 것이다.

그 후 한나라가 서쪽으로 흉노를 몰아내고 돈황 근처의 옥문관, 미란 쪽의 양관까지 496㎞를 연장하여 총 6796㎞가 된다. 중국의 1리는 500m로, 산해관에서 가욕관까지는 1만2천리, 양관까지는 약 1만3천리다.

이후 왕조들은 장성의 축조에 별로 비중을 두지 않았다. 장성을 쌓는다고 해서 북쪽 오랑캐들의 침략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경험으로 깨달았던 것이다.

장성의 축조와 복구가 계속된 것은 명대에 이르러서다. 꾸준히 반복되는 몽골의 침입을 막을 효과적인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장성을 보수하고 확장한 것이 오늘날의 모습이다. 만리장성을 쌓는데 들어간 돌과 벽돌로 높이 5m, 두께 1m가 되는 벽을 다시 쌓는다면 지구를 한 바퀴 돌고도 남는다.

또 만리장성은 달에서 보이는 유일한 구조물로 유명한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는 38만4400㎞이다. 달에서 본 지구는 대부분 하얗고(구름), 일부는 푸르며(바다), 군데군데 노란 덩어리가 있고(사막), 또 얼마간은 초록색(산야)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구일 뿐이다.

 

[오마이뉴스 2007-02-23 15:14]    

[오마이뉴스 조수영 기자]

 

 

                               Giovanni Marradi   피아노 연주곡  

                            

 

                                                          행복한 하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