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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영훈 서울대 교수, 작심하고 쓴 ‘대한민국 이야기’ 정치 지도자의 잘못된 역사관이 나라 망치고있다”

향기男 피스톨金 2007. 5. 31. 13:05

 

정치 지도자의 잘못된 역사관이 나라 망치고있다”

  • 이영훈 서울대 교수, 작심하고 쓴
  • ‘대한민국 이야기’

    “한국인의 역사의식은 도덕적이며 갈등지향적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모두 대한민국은 뭔가 잘못 들어선
  • 나라라고 생각…
     김일성의 북한은 물질·정신 양쪽에서 日帝의 아들”
    • “한국인의 역사의식은 관념적이고 도덕적이며 갈등지향적이다. 정치 지도자들부터 대한민국이 뭔가 잘못 들어선 나라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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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 제2건국위원회가 만들어진 것이나, 노무현 대통령이 우리 근현대사를 ‘정의는 패배했고, 기회주의가 득세했다’고 정리한 것만 봐도 그렇다. 이런 잘못된 역사의식은 사회와 국가를 분열시키고, 선진국 진입을 어렵게 만든다.”

      이영훈(56)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 주 출간한 ‘대한민국 이야기’(기파랑 출판사)를 통해서다. 서문에 이렇게 썼다. “언제부터인가 글쓰기에 자기 검열이 걸렸다. 검열자는 한국의 난폭한 민족주의다. 당하는 사람은 사죄하거나 은퇴하거나 도망칠 수밖에 없다.”

      이 교수는 대학 울타리 안에만 있던 ‘서생’(書生)이었다. 그런 그가 2004년 TV토론에 나갔다가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위안부 동원에 협력한 민간인들의 책임도 따져야 한다”고 했는데, “일본군 성노예가 공창(公娼)의 형태였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작년 12월엔 ‘교과서포럼’이 개최한 한국근현대사 대안 교과서 세미나에서 4·19 회원들에게 멱살을 잡혔다. 그런데 왜, 다시 나선 걸까. 28일 오후 그를 만났다.

      “작년 초 출간된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편집에 관여하면서 우리 사회의 중산층이 지난 50년간 민족이니 민중이니 계급이니 일상생활과 아무 관련없는 역사로부터 얼마나 시달려왔는지를 느꼈습니다. 자유와 신뢰, 법치의 문명으로 씌어진 새로운 역사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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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이야기’의 뼈대는 탈(脫)민족주의 시각에서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비판, 극복하려 한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책세상)이다. 조선의 멸망, 일제 수탈, 친일파, 위안부, 건국, 반민특위 등 민족주의와 관련된 민감한 이슈들을 정면으로 건드린다.

      이 교수는 우리 지도자들의 부정적 역사 인식의 배후로 성리학을 꼽았다. “성리학은 일종의 근본주의 철학입니다. 사물의 인과(因果)를 한 가지 요인으로 설명합니다. 지난 60년간 한국 정치가 혼란스럽고 사회가 부패한 것은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그렇습니다. 이런 근본주의 사고에 빠져 있는 지식인들이 사회 갈등을 더욱 깊게 만들고 있는 거지요.”


    • ―21세기 한국인이 19세기 성리학적 명분론에 발목 잡혀 있다는 말입니까?

      “우린 스스로 전통을 부정하고 비판한 경험이 없어요. 우리 전통을 비판한 일제가 패망하면서 전통 자체가 미화됐고,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민족주의적으로 이용됐지요. 성리학은 인간을 도덕적 존재로 보고, 사회를 도덕 원리가 지배하는 곳으로 봅니다. 서구적 의미의 실용주의, 경험주의, 다원화된 사고와는 거리가 멀어요. 지난 몇 년간 우리 사회가 심각한 갈등을 겪은 것도 지나치게 관념적이고 도덕적인 성리학에서 온 것이 아닌가 싶어요.”

      ―국사학계에선 조선 왕조가 망한 것은 ‘강포한 도적’(일본) 때문이지 ‘선량한 주인’의 잘못은 아니라고 합니다. 이런 역사인식은 역사로부터 아무 것도 배우지 않겠다는 무책임한 자세라고 비판하는데요.

      “조선 왕조는 19세기에 이미 사실상 해체됐어요. 인구 증가로 화전민이 늘면서 산림이 황폐해집니다. 조금만 비가 와도 토사가 논밭으로 흘러 들어가 농업생산이 줄었어요. 18세기 중엽에 비해 19세기 말이면 거의 3분의 1 수준으로 생산성이 떨어집니다. 1850년대에 들어서면서 쌀값이 폭등하고, 정치·사회적 혼란으로 이어져요. 왕조는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못했구요.”

      이 교수는 새 책에서 “토지조사사업으로 전 국토의 40%가 일본에 넘어갔다거나 식량의 절반을 일본에 강제로 실어 날랐다는 것은 근거없는 주장”이라고 했다.

      ―일제가 토지조사사업으로 토지를 수탈하고, 식량을 강제로 뺏어간 것은 사실 아닙니까?

      “1982년 김해군청에서 토지조사사업 당시 작성된 문서가 대량 발견됐어요. 이 자료를 활용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총독부는 국유지를 둘러싼 분쟁을 다루면서 공정했어요. 전국 484만 정보의 국유지 가운데 12만7000정보만 국유지로 남았는데, 그것도 대부분 조선인 농민들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불하했습니다. 식량도 시장에서 사들인 것이지 그냥 강탈해간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왜 일제가 토지조사사업을 하면서 전 국토의 대부분을 강탈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까?

      “우리 학계에는 엄격한 심판관이 없어요. 선진 사회에선 학계를 지배하는 엄격한 심판자 그룹이 있어서 옳고 그름에 대해 판정을 내립니다. 후진 사회는 이런 심판자 그룹이 없기 때문에 뭐가 옳고 그른지를 대중은 물론 연구자도 알 수 없어요.”

      ―일제시대를 다룬 소설 ‘아리랑’을 분노와 광기로 가득한 작품이라고 비판했습니다. 350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를 지나치게 깎아내린 것 아닌가요?

      “토지와 식량 수탈, 학살 등 이 작품이 그리는 내용은 사실과는 거리가 멀어요.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었는데 학생들이 곳곳에 메모를 남겼더군요. 일본인 순사가 토지조사사업을 방해했다며 농민을 즉결 처분하는 대목에서 ‘아, 이럴 수가’ 하고 분노하는 거예요. 상업화된 민족주의가 판치면서 피해의식만 커지는 거지요. 노년보다 젊은 세대가 반일감정이 더 강한 이유는 상업화된 민족주의와 잘못된 근현대사 교과서에 따른 공(公)교육 때문입니다.”

      ―386세대를 비롯, 젊은 층에선 대한민국 건국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적지 않습니다.

      “건국과 함께 이 땅에 처음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들어서고, 개인의 재산권과 경제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자유시장 경제체제가 도입됐습니다. 우리 역사의 대전환이 이뤄진 겁니다. 우린 근대에 무임승차한 측면이 강해요.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충분히 싸우지 않고 시장경제를 받아들이느라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고교 근현대사 교과서나 ‘해방전후사의 인식’은 해방 이후 친일파들이 건국에 참여하면서 친일잔재를 청산하지 못하고 분단을 가져왔다고 주장하지 않습니까?

      “이광수, 최남선 같은 이데올로그형 협력자들은 건국과정에서 배제됐어요. 건국에 참여한 사람들은 관료, 교사, 회사원, 은행원 등 테크노크라트입니다. 근대 국가를 세우려면 근대가 요구하는 지식·기술 체계를 습득한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 식민지 근대를 통해 이런 인적 자원들이 충원된 것이지요.”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것은 사실 아닙니까?

      “우리 힘으로 해방을 얻지 못했다,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해 역사가 왜곡됐다는 이데올로기가 좌파에 의해 전파, 확산되고 있습니다. 자기 힘으로만 식민지에서 해방된 나라가 어디 있나요? 북한이 친일잔재를 청산했다는 데 정말 그런가요? 천황제 일본을 계승한 것이 북한의 수령체제 아닙니까?
    • 기무라 미쓰히코(木村光彦) 교수의 책 ‘북조선의 군사공업화’를 읽고 알았습니다만, 김일성이 남침을 결행한 데는 일제가 건설한 군사공업시설이 한몫 했습니다. 800명이나 되는 일본인 기술자들이 6·25 직전까지 북한에 억류돼 공업생산을 복구했어요. 북한 경제가 1960년대까지 앞섰던 것도 일제가 만든 생산기반 때문입니다. 김일성의 북한은 정신과 물질 양쪽 모두 일본 제국주의의 적자입니다.”
    • 글=김기철 기자 kichul@chosun.com
      사진=김보배 객원기자 iperry@chosun.com
      입력 : 2007.05.31 00:48 / 수정 : 2007.05.31 11:37
    • '대한민국 이야기'를 낸 이영훈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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