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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인생 4막 박근혜, '조연'이 된 그의 5막은?

향기男 피스톨金 2007. 8. 20. 17:22

  

    인생 4막 박근혜, '조연'이 된 그의 5막은?

 
[머니투데이 이새누리기자]
 
박근혜 후보의 인생은 '4막'으로 구성된다. '1막'은 모친인 육영수 여사를 여의기 전까지의 청와대 시절. 22년 동안 나라운영을 어깨너머로나마 지켜볼 수 있던 시간이었다.

"수출을 늘리기 위해서는 전자산업을 집중 육성해야 한다"는 김완희 박사의 말에 대학에서 전자공학과를 선택한 것도 이때다. 대학졸업 후에는 대학교수가 되겠다는 목표로 프랑스 유학을 떠났다.

평화롭기만 했던 인생 1막은 그러나 '총성소리'와 함께 산산이 깨졌다. 1974년 8월 15일 육 여사가 문세광의 흉탄에 숨진 것. 프랑스에서 비보를 전해 듣고 급히 귀국하면서 박 후보의 인생 2막은 시작됐다.

이때부터 5년간 박 후보는
퍼스트레이디 역을 대신한다. 슬픔을 느낄 겨를도 없이 빠듯한 일정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힘든 시간은 반대로 배움의 시간이기도 했다. 아버지의 일거수일투족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기 때문. 지금 대통령을 바라보는 박 후보에겐 그 5년이 큰 자산이 됐다.

박 후보의 인생 3막은 또다른 총성으로 시작됐다. 1979년 10월 26일 부친은 김재규가 쏜 총탄에 목숨을 잃는다.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 전한 박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에 "지금 전방의 상태는 어떻습니까"라던 박 후보의 말은 유명한 일화다.

청와대에서 양 부모를 잃은 박 후보는 11월 신당동으로 이사한다. 그리고 20여년이 가까운 세월 동안
육영재단 등 사회활동에 전념한다.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독서와 글 쓰는 일에도 몰두했다. 박 후보는 공직에 있으면서 누리지 못한 자유로 인생 3막을 채웠다.

4막은 외환위기에서 촉발됐다. 98년 박 후보는 "어떻게 세운 나라인데…"라며 '달성대첩'으로까지 불리는 보궐선거전에서 당선, 정계에 입문한다.



정당개혁을 부르짖던 박 후보, 2002년 2월 한번의 위기가 찾아온다. 그가 내놓은 '정당개혁방안'을 당에서 거부한 것. 박 후보는 "당이 변하지 않고 지지해달라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일"이라며 탈당을 감행한다.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한 박 후보는
노무현 후보 등과 손을 잡으라는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성향과 정체성이 다른 후보와는 함께 갈 수 없다는 이유 때문.

이후 2002년 당시
이회창 대선후보가 박 후보에 사과, 당에서 정치개혁방안을 수용키로 하면서 이 후보의 선대위원장으로 복귀한다.

2004년 탄핵역풍 속에 당 대표직은 떠안은 박 후보는 천막당사를 거치면서 무너진 한나라당을 살린 일등공신이 됐다.

그리고 2007년 당내 경선에서 대통령직에 출사표를 던진 박 후보는 제5막을 꿈꿨다. 그리고 그는 온 힘을 다해 그만의 가진 저력을 그대로 보여줬다. 그러나 결과는 기대했던 것과 약간 달랐다. 이제 방향을 수정해야 한다. '주인공' 자리 대신 보조하는 '조연'으로 자신을 낮춰야 한다. 그의 5막 인생은 여전히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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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새누리기자 newworld@

 

 

  •             박근혜 ‘아름다운 패배’…
  •           정치적 자산 더 탄탄해졌다
  •         한나라당 ‘경선 불복후 탈당’ 악습의 고리 끊어
              승복연설 직접 구술… 측근 의원들에 자제 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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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근혜 한나라당 경선후보는 20일 패배를 승복하고 이명박 대선후보를 돕겠다고 밝혔다. 박 전 대표는 경선 불복과 탈당이 전통처럼 굳어진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경선사에서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그로서는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다. 그는 경선기간 내내 “이 후보로는 안 된다”며 “정의(正義)가 승리할 것”이라고 했다.

      박 전 대표는 그러나 이날 자신이 그토록 비판했던 사람을 도와 정권교체를 이루겠다고 했다. 자신을 지지해줬던 당원들을 향해서는 “경선 과정의 모든 일들을 이제 잊읍시다” “저와 함께 당의 화합에 노력하자”고 했다. 이명박 후보 지지자들로부터도 뜨거운 박수를 받은 박 후보의 승복 연설은 박 후보의 본인의 작품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인근 메시지 팀장은 “박 후보는 이겼을 때와 졌을 때, 두 가지 경우에 대비한 연설문을 갖고 올라갔는데 승복 연설은 박 후보가 구술한 내용을 그대로 정리한 것”이라고 밝혔다.


    • 박 후보가 어려운 결심을 한 것은 경선 승복이라는 민주주의 원칙과 정권교체라는 한나라당의 숙원을 다른 무엇보다 상위 가치로 여겼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원칙을 강조해 온 그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박 전 대표가 과연 승복하고 이 후보를 도울 수 있겠느냐고 갸우뚱거렸지만, 캠프 핵심 인사들은 한결같이 “박 후보는 누구보다 열심히 당선자를 도울 것”이라고 했다.
    • 김무성 조직총괄본부장은 “박 후보가 어떤 사람이냐. 원리원칙대로 할 것”이라고 했다. 박 전 대표는 이날 저녁 자택을 찾아온 유정복·유승민 의원에게 “캠프 인사들에게 ‘감사하고 미안하다. 그러나 제 의도와 달리 흥분하거나 다른 얘기를 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를 전해 달라”고 당부했다.

    • ▲ 박근혜 한나라당 경선후보가 20일 경선 결과에 대한 승복 연설을 한 뒤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 관건은 박 전 대표가 선대위원장직을 수락하느냐 여부이다. 이명박 대선후보는 이미 박 전 대표에게 선대위원장을 맡아줄 것을 공개적으로 제안했다. 박 전 대표가 이 후보로부터 공식 제의가 올 경우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하는 캠프 인사들이 많다. 박 전 대표는 이날 “당원으로서 백의종군하겠다”고 했지만, 정권교체에 밀알이 되겠다는 얘기이지 선대위원장 자리를 맡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라고 캠프 인사들은 해석했다.

      정치적 자산이자 부채이기도 한 ‘박정희의 딸’로서 아버지에 이어 대통령에 도전한 박 전 대표는 비록 이번엔 졌지만 정치적인 자산은 단단히 다졌다고 봐야 한다. 실제 선거인단 투표에서는 이명박 후보를 432표 앞섰다. ‘당심(黨心)은 박근혜’라는 공증된 깃발을 확실히 꽂은 것이다. 최병렬 상임고문은 “이 후보에게 한참 뒤졌던 박 전 대표의 간절한 호소에 대의원과 당원, 일반국민 등 선거인단이 막바지에 궐기를 한 것”이라고 했다.

    • 20일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린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에서 이명박 후보에게 패한 박근혜 후보가 경선패배를 인정하였다. /조선일보 사진부 VJ 이재호 기자
    • 20일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결과 발표과정은 한편의 잘 짜여진 드라마였다. 이명박, 박근혜경선후보와 나머지 두 후보를 모아놓은 발표현장. 갖은 억측과 기대(?)를 깔끔히 져버리고 경선승복을 단호히 결심한 박근혜경선후보는 "쿨"했다. /조선일보 이진한기자
    • 주용중 기자 midway@chosun.com
      입력 : 2007.08.21 00:50 / 수정 : 2007.08.21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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