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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신씨에 "고개 들어봐" 무례한 기자들

향기男 피스톨金 2007. 9. 22. 23:06
  • [시론] ‘무례한 언론’
  • [손태규] 신씨에 "고개 들어봐" 무례한 기자들
  • 손태규 단국대 언론홍보학부 교수
    • 손태규 단국대 언론홍보학부 교수
    • 미국의 4대 대통령인 제임스 매디슨(Madison, 1751~1836)은 200여년 전, “천사가 국민을 다스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언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간에 지나지 않는 정치인과 관리들이 필연적으로 저지르기 마련인 권력의 남용과 오용, 부정부패를 막는 방법은 언론자유밖에 없다고 그는 강조했다.

      신정아·변양균 사건, 정윤재 사건은 이러한 언론의 존재 이유를 극명하게 입증했다. 대통령이 “깜도 안 되는 의혹”이며 “소설 같은 이야기”라고 말했던 것이 정부 권력이 개입한 거대 사건이 된 것은 언론의 역할 때문이다. 당사자나 청와대 등의 강력한 부인과 으름장, 조롱, 법적 대응에 굴복하지 않고 언론은 끈질긴 추적을 벌여 권력의 비리를 밝혀냈다. 언론이 권력의 감시·비판이라는 본연의 사명을 다한 결과이다.

      그러나 언론은 고상한 사명과 그에 걸맞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사랑을 못 받고, 때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가 있다. 자기들끼리의 지나친 경쟁, 이로 인한 취재와 보도 과정의 무분별함 때문이다.

      신정아씨의 배후를 적나라하게 파헤친 언론에도 상당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신씨가 미국에서 돌아오던 날, 공항 청사는 아수라장이었다. 너도 나도 기자라고 몰려든 사람들은 서로 밀치고 악다구니를 해대며 신씨의 코앞까지 카메라를 들이댔다. 신씨는 얼굴조차 옆으로 돌릴 수 없는 신세가 되어 “고개 들어 봐”라는 말까지 들었다. 그래도 기자들은 “한마디 하라”며 신씨를 끝까지 다그쳤다. 취재라는 이름 아래 한 인간의 인격과 인권은 완전 무시되고 있었다. 검찰에 출두할 때도 기자들이 출입구의 회전문을 붙잡고 취재경쟁을 벌이는 바람에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고 한다.

      유명 인사들이 관련된 사건 때마다 으레 반복되는 이런 모습들을 지켜보면서 실망을 넘어 분노를 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다. 아무리 언론이 권력의 비리와 횡포를 폭로한다고 해도 저렇게 마구잡이로 해서는 안 된다고 혀를 찬다. 결국 국민들은 “도대체 기자들이 무엇이기에 저렇게 안하무인, 막무가내로 행동할까”라고 생각하면서 언론의 존재에 대해 회의를 품게 된다. 하찮은 실수와 잘못이 본질의 중요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꼴이다.

      기자는 남 다른 에너지와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러나 기자란 고단하고 어려운 직업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 인생의 비극과 탐욕을 캐내는 데 많은 시간과 정력을 소비한다. 자신들은 진실보도라는 정의로운 목적을 수행하기 때문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된다는 그릇된 윤리관에 매몰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기자는 자신들의 무례함과 무분별이 일으키는 고통에 무감각하거나 면역이 되기 쉽다. 예의 바르고, 질서를 존중하는 기자는 오히려 치열한 기자정신이 부족하다고 타박받기 일쑤다.

      현재 참여정부가 집요하게 취재통제 조치를 밀어붙이는 것은 기자들의 무례와 무분별에 넌더리가 난 국민들의 심정에 편승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일부 기자들의 행태를 분하게 느끼는 공무원들의 성원을 등에 업고 있는 것으로도 보인다. 그런 점에서 언론도 반성할 것은 반성하고, 취재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공동의 룰을 만들 필요가 있으면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제임스 메디슨은 “어떤 물건이든 어느 정도 잘못 사용되는 것은 불가피하며, 언론이 그 대표적인 경우”라고 말했다. 그 말의 참뜻은 언론의 실수와 잘못을 빌미로 언론 통제에 나서려는 정부 권력의 욕망에 대한 준엄한 경고였다.

      정부가 언론에 어떤 제한을 가하려 해도 이를 물리칠 수 있으려면 언론 먼저 자기 절제를 해야 할 부분도 있다. 그것은 권력의 문제를 폭로하는 데 한계를 두라는 말이 아니다. 취재·보도를 위해서는 무슨 행동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자제하라는 것이다.
  • 입력 : 2007.09.21 19:46 / 수정 : 2007.09.21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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