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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한글과 한글날

향기男 피스톨金 2007. 10. 9. 16:09

 

 

                [만물상] 한글과 한글날

조선일보 | 기사입력 2007-10-08 23:18 기사원문보기

1926년 11월 4일(음력 9월 29일) 조선어연구회는 훈민정음 480주년 기념식을 갖고 이날을 ‘가갸날’로 정했다. 세종 28년(1446년) 9월 훈민정음이 완성됐다는 세종실록에 따라 음력 9월 마지막날인 29일을 제정일로 삼았다.

 

1932년부터 양력으로 환산해 10월 29일 기념하던 한글날이 10월 9일로 바뀐 것은 1940년 ‘훈민정음 해례본(解例本)’이 발견되면서였다. 완성일이 ‘9월 상순(上旬)’으로 기록돼 있어 상순 끝날을 양력으로 계산하니 10월 9일이었다.

 

▶1990년대 중반 영국 옥스퍼드대가 세계 30여 개 주요 문자의 합리성·과학성·독창성을 평가해 순위를 매겼더니 한글이 1위였다. 미국 시카고대 매콜리 교수는 10월 9일이면 동료 교수와 학생을 초청해 한글날을 기념했다.

 

영국 리스대 샘슨 교수는 기본 글자에 획을 더해 음성학적으로 같은 계열의 글자를 파생해 내는 한글이 지구 상에서 가장 진화한 문자라며 ‘자질문자(資質文字·Feature system)’라는 새 분류를 붙였다.

 

▶한글은 정보화시대에 더 빛을 발한다.

 

타자기와 컴퓨터 자판에서 중국어나 일본어와는 비교할 수 없는 속도를 낸다. 휴대전화 문자 보내기에선 영어보다도 훨씬 빠른 괴력을 발휘한다.

 

쉴 새 없이 문자를 찍어 대는 ‘엄지족’이 생겨난 토양이 한글이다. 일자일음(一字一音) 일음일자(一音一字) 원칙인 한글은 로봇이나 컴퓨터가 음성을 인식하는 데 다른 언어보다 훨씬 정확해 ‘명령언어’로도 각광 받을 전망이다.

 

▶한글은 아직 개념적 표현이 약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는 “철학 하기에 가장 좋은 언어는 그리스어와 독일어”라고 했다. 이들 언어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이 언어권이 세계철학사를 수놓은 많은 철학자를 배출했기에 그렇게 된 것이다. 우리 학계 일각에서 ‘우리말로 학문하기’에 애쓰고 ‘우리말 철학사전’을 내놓은 것은 그래서 소중하다.

 

▶이기상 한국외대 교수는 ‘피투성(被投性·Geworfenheit)’은 ‘내던져져 있음’, ‘용재성(用在性·Zuhandenheit)’은 ‘손 안에 있음’ 식으로 서양철학 용어를 우리말로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다.

 

반면 조동일 서울대 명예교수는 동아시아의 전통을 강조하며 한자어 이해의 폭과 깊이를 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어느 쪽이든 우리의 사상이 세계적 수준에 이르고 그것이 아름답고 정확한 우리말로 표현될 때 한글은 더 완전해질 것이다.


[이선민 논설위원 sm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