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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주먹의 전설’로 전국 휘어잡았던 조창조씨 고희연

향기男 피스톨金 2007. 11. 16. 11:03

 

전국 ‘어깨’ 2000명 서울 남산에 모인 밤
‘주먹의 전설’로 전국 휘어잡았던
조창조씨 고희연

검정 양복에 검정색 세단, 전국 각지서 총출동
700평 행사장 좁아 복도까지… 호텔 측도 “이런 광경 처음”
 
 
▲ 고희를 맞은 조창조 회장이 개량한복을 입고 하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지난 11월 5일(월) 오후 4시, 서울 남산의 그랜드하얏트 호텔. 전국 각지에서 온 2000여명의 ‘어깨’들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하나같이 굳은 표정이다. 일부는 긴장한 모습으로 주변을 살피고, 일부는 휴대폰을 꺼내 누군가의 동정을 체크하고 있다.
“큰 형님이 도착하셨습니다!”

누군가가 외친다. 일제히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눈길이 모인 곳은 검은색 대형 수입 세단. 차 문이 열리고 백발이 성성한 노신사가 모습을 나타낸다. 175㎝ 남짓 키에 당차 보이는 체형의 사내가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깍두기 머리’를 한 숱한 청년이 길 양쪽으로 50m나 도열했다. 신사는 청년들의 사열을 받으며 천천히 행사장인 그랜드볼룸(Grand Ballroom)을 향해 걸어간다. 그는 ‘당대 최고 주먹’으로 꼽히던 조창조씨다.

이 날은 조씨의 고희(古稀·70세) 축하연이 열린 날이다. 그는 무기를 쓰지 않고 오로지 맨손으로 한 시대를 휩쓸었던 ‘주먹의 전설’이다. 1990년대 초반 대구를 기반 삼아 전국의 지역 조직을 통합, 이른바 ‘전국구 시대’를 개막한 인물이다. 물론 그는 지금 현역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업계’에 대한 영향력은 여전히 막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정 지역을 거점으로 한 자신만의 조직은 갖고 있지 않지만, 후배들을 아우르는 특유의 역량과 상징적 이미지로 이 세계 ‘큰형님’으로 통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씨는 지방 각 조직 간에 알력이 생기면, 이를 조정하고 중재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조창조씨는 건달로 살아왔지만, 정치권과의 관계를 비롯해 각계각층 다양한 사람들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 전국의 '어깨' 2000여명이 집결한 서울 남산 그랜드하얏트호텔 그랜드볼룸 앞.
쏟아지는 환호와 갈채를 받으며 그가 그랜드볼룸 입구에 모습을 드러냈다. “형님” 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그가 행사장 중앙으로 나서자, 그 뒤를 따라 전국의 조직 보스들이 하나 둘 행사장으로 들어온다. 선배에 대한 예우를 표하려는 듯, 하나같이 검은색 정장 차림이다. 이렇게 지역 보스들이 다 입장하자 그 뒤로 중간 보스들이 들어온다. 그들 역시 검정색 정장을 입었다.

이날 하얏트호텔은 이렇게 검정색으로 뒤덮였다. 칠순 잔치에 맞춰 조창조씨 본인만 개량 한복을 입었을 뿐, 참석자들 대부분이 검은 양복을 입었다. 타고 온 승용차들 역시 거의가 검은색 세단이다. 호텔 관계자는 “나도 이런 모습을 보기는 처음”이라며 “평일 오후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온 적도 거의 없다”고 했다.

이날 검은 옷의 ‘어깨’들은 남산 초입부터 하얏트호텔 연회장 안팎까지 진을 쳤다. 제각각 다른 지방에서 올라왔지만 아무 충돌 없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양복 윗도리 가슴주머니에 빨간 리본을 달아 일반인과 구별되도록 했다.

 
 
행사장 입구에는 전국에서 배달된 대형 화환이 길게 늘어서 있다. 행사에 참석한 대구 출신의 한 인사는 “조창조 회장은 지인들만 불러 조용하게 모임을 갖고 싶어했는데, 예상보다 사람이 좀 많이 온 것 같다”고 했다.

그랜드볼룸엔 2000명이 넘는 하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뷔페 형식으로 마련된 만찬을 즐기기엔 자리가 너무 협소하게 느껴질 정도다. 2370㎡(717평) 규모인 그랜드볼룸을 통째로 빌렸지만, 좌석이 모자라 일부 젊은이들은 선 채로 식사하기도 했다. 한 참석자는 “그나마 상당수는 행사장 밖으로 분산시킨 게 이렇다”며 “모두 다 들어오라고 했으면 큰일날 뻔했다”고 말했다.

행사장 맨 앞에는 조씨와 이런저런 유명 인사들이 자리잡았고, 그 주변에 조씨 출신학교의 동문회 관계자, 각 사회단체 관계자들을 위한 좌석이 마련됐다. 그 뒤로는 각 지역 보스급들의 자리다. 조씨의 고향이 대구임을 보여주는 듯, 조씨와 가까운 테이블엔 대구와 서울 출신 보스들이 자리잡았다. 행사장 밖 복도에는 50여명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경계를 서고 있었다.

이날 행사에는 연예인도 다수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조씨와 개인적 친분이 있다는 코미디언 한무씨가 사회를 맡았고, 원로 개그맨 남보원, 가수 우연희씨 등이 무대에 올라 축하 공연을 했다.
 
그런 가운데 주인공 조씨는 자리를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일일이 인사를 나눴다. 한창 흥이 오를 즈음, 광역단체장을 지낸 한 인사가 “조창조 회장의 건강을 기린다”며 건배를 제의했다. 이 인사가 “위하여”라고 외치자 행사장 전체가 떠나갈 정도로 “위하여!”라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조씨와 오랜 친분을 유지해왔다는 전직 대학 총장은 축사에서 “조창조 회장은 늘 의리를 지키기 위해 자기 목숨을 걸었다. 나는 오늘 그 어떤 지도자보다 진실성을 가지고 살아온 조 회장에게 다시 한 번 경의를 표한다”고 치켜세웠다. 조씨도 “좋은 분들과 이렇게 함께 자리 할 수 있어 기쁘고 감사하다”고 답했다.

경찰 등 수사기관은 이날 행사에 당연히 큰 관심을 보였다. 조씨의 고희연에 다수의 정·관계 인사가 참석한다는 첩보가 입수됐기 때문이다. 첩보를 증명하듯 실제로 낯익은 인사가 여럿 눈에 띄었다. 경찰은 하지만 과거처럼 현장에 경찰력을 동원하진 않았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주먹 세계의 원로에 속하는 인물이라 비교적 조용하게 진행됐다”고 말했다.

이날 조씨는 새로운 관행을 만들었다. 축의금을 전혀 받지 않은 것. 한 참석자는 “소위 ‘축의금 잔치’는 예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관례였다”고 했다. 하지만 조씨가 이 관행에 선을 그었다. 행사장 입구에 방명록 외에 축의금 봉투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사업체를 운영하는 한 참석자는 “조씨의 이런 점이 주먹 세계 큰형님으로서 영향력을 갖게 해 주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조씨는 후배들을 챙기는 것에도 역시 ‘큰손’으로 알려져 있다. ‘손’을 씻고 사업에 뛰어든 후배들에게도 고급 차를 내 주는 등 전폭적으로 지원한다는 것. 조씨는 10년 전쯤 사실상 은퇴한 뒤로는 서울 이태원에 사무실을 내고 건설업을 하고 있다. 이날 행사에 건설업계 인사들이 상당수 참석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한다. 이날 행사 비용은 무려 1억원 가량 든 것으로 알려졌다.


[조창조는 누구] 맨손 결투 고수한 마지막 ‘낭만파’


‘70년대 시라소니’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대구가 낳은 최고의 건달’이라고도 한다. 대구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폭력세계에 몸담은 그는 1960~1970년대 낭만파 건달시대에 두각을 나타내면서 1990년대 초, 이른바 전국구 건달시대를 열었다.


조씨는 국내 최대 라이벌이자 ‘김두한의 마지막 후계자’라고 알려진 조일환씨와 최고 지위를 놓고 경합해온 인물이다. 항간에서는 1970년대 서울 명동을 점령하던 ‘신상사(신상현)’와도 호각지세였다고 평한다. 조씨의 한 측근은 “전국구 시대를 열어 지역 보스들이 친분을 나누는 계기를 만들었고, 지금도 그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조씨는 맨손 결투를 즐겼고 의리를 특히 중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명동 사보이호텔 사건과 함께 이른바 ‘칼잡이’가 등장하면서 낭만파 건달시대는 사실상 막을 내렸다. 조양은 그리고 김태촌씨 등이 등장한 시점이다.


조씨는 1991년과 2002년 두 차례 조직폭력 관련 범죄에 연루돼 구속됐다. 사업가로 변신한 이후에는 한때 돈과 관련해 수사 대상에 오른 적이 있으나, 결정적 문제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씨는 15세 연하 부인과의 사이에 아들 하나를 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기사는 weekly chosun 1980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사진 = 조영회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김대현 기자 ok21@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remnant@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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