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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유엔사무총장/한국의 젊은이여 꿈은 꾸되 현실감 갖고 자중자애하라"

향기男 피스톨金 2008. 7. 6. 20:07
한국의 젊은이여
꿈은 꾸되 현실감 갖고 자중자애하라"
취임 1년6개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국내 언론 첫 단독 인터뷰
세계 최고의 외교관, 유엔사무총장. 한국인으로선 최초, 역대로는 8번째로 유엔을 이끌고 있는 반기문 사무총장은 통화 중이었다.

뉴욕 맨해튼 동쪽 이스트리버 강변의 40층짜리 유엔본부 1층에선 중국 관광객들이 반기문 총장의 사진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두 차례의 보안검색을 거쳐 38층 유엔사무총장 집무실에 도착했을 때 반 총장은 미국 국무부 니그로폰테(Negroponte) 부장관의 전화를 받고 있었다. 6월 26일 오후 12시15분. 북한이 영변의 냉각탑 시설을 폭파하자 부시 미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가졌고 그 내용을 곧 바로 유엔사무총장에게 설명하기 위해 니그로폰테 부장관이 전화를 걸어왔다. 이 전화로 인터뷰는 예정보다 5분이 늦어졌다.

한국인으로 최고 국제기구의 최고직에 오른 반 총장은 취임 후 1년 반 만에 처음으로 Weekly Chosun과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191개국 회원국이 멤버인 유엔과 1만4800명의 다국적 직원을 거느린 유엔사무국을 조화와 균형을 중시하는 ‘한국적 가치’로 이끌어 지금까지 성공하고 있다고 자평했다.

인터뷰 동안 그는 특유의 겸양화법을 잃지 않았으나 한국이 세계인의 눈높이에 맞춰 국가적인 차원의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한국의 젊은이들에 대해서는 높은 이상을 꿈꾸되 현실감을 갖고 ‘자중자애(自重自愛·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하라)’하는 태도를 지닐 것을 당부했다.
 
지난 1년 반 동안 유엔사무총장으로서 많은 일을 해왔다. 그런데 유엔에 출입하는 다른 나라 기자들과 얘기해보니 반 총장에게 강한 리더십을 기대했는데 실망했다는 얘기도 한다. 어떤 기자는 그게 ‘아시안 스타일’인지도 모르겠다고 하던데.

“그런 얘기는 그전부터 들었다. 강한 리더십이 어떤 것을 말하는지 그 기준이 애매하다. 분명 서양의 리더십과 우리는 다르다. 사무총장이 될 때부터 ‘약한 리더십’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하지만 아시아적 가치, 한국적 가치를 분쟁을 해결하고 유엔을 개혁하는 데 적용해서 훌륭한 성과를 냈다. 전임자들과 비교해 보면 훨씬 좋은 성과를 낸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아시아적 가치와 한국적 가치가 무엇인가.

“우선 밸런스(balance), 즉 균형 감각이 있어야 한다. 다음에 조화와 균형을 추구하는 것이다. 분쟁 당사자들 사이에서 한쪽 편을 드는 순간, 유엔사무총장의 권위는 상처를 받는 경우가 많다. 유엔사무총장은 국가 차원의 정부가 갖고 있는 권한을 갖는 게 아니다. 도덕성과 정치적 권위로 움직이는 것이다. 인류보편의 가치라는 원칙을 지켜가면서 분쟁의 당사자들과 대화를 통해서 조화롭고 균형있게 해결하는 것이다. 서방국가가 흔히 하는 것처럼 힘으로 하는 경우 곧바로 부작용이 드러난다. 그런 경우를 많이 보지 않았는가. 일방적인 힘의 리더십이라는 게 유엔의 입장에서 보면 바람직하지 않다. 과거 사무총장들을 보면 그런 면에서 한계를 느끼지 않았나 생각한다.”

일부에선 너무 미국에 쏠려있다는 지적도 있지 않나.


“아프리카와 중동, 다른 아랍 국가 지도자나 기자들은 그 사람들의 입장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그들의 문제에 더 치중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런 것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래서 미국과 가까이 하는 거다. 실용적인 바탕 위에서 외교를 하는 거다. 미국과 일방적으로 간격을 둔다든지 하는 게 사무총장으로서 역할을 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유엔에 도움이 안 된다. 전임 사무총장들은 미국과의 관계에서 불행했었다. 1년 반밖에 안됐지만 지금 미국과의 관계가 얼마나 좋아졌는가. 중요한 것은 나와 미국과의 관계가 아니다. 유엔과 미국과의 관계다. 훨씬 큰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일방적으로 내가 친미(親美)라고 얘기하는 것 자체가 균형 잡히지 않은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증명이 될 것이다. 1년 반 사이에 이렇게 큰 성과를 낸 적이 없었다.”

최근 실시된 세계여론조사에서 가장 신뢰 받는 지도자로 뽑혔다. 신뢰를 받는 비결이 있는가.

“사무총장을 한 지 1년 반밖에 안됐는데, 그런 평가를 받은 것에 대해 보람을 느끼는 게 사실이다. 이것은 방금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성실성을 가지고 원칙에 입각해서 조화와 균형을 이뤄간 데 대한 평가인 것 같다. 미국과 너무 가깝다고 했으면 이런 평가가 안 나왔을 것이다. 미국과 가까운 것은 실용적인 측면이다.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에서 분쟁과 가난해소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아랍 평화협상을 위해 노력한 게 평가를 받은 것 같다.”

한국인으로서 세계 최고의 외교관 지위에 올랐지만 우리나라 국민 전체로 보면 아직 글로벌 마인드와 거리가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글로벌 마인드를 막는 요소가 무엇인가.

“사무총장으로 선출되고 나서 한국을 떠나기 전인 2006년 12월에 국회 본회의에서 인사말을 한 적이 있다. 그때 한국 정부와 국민의 시야는 이제 한국을 넘어서 세계를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 속의 한국, 한국 속의 세계’를 지향해 나가야 한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의 국가이익이다. 국가이익을 수호하고, 국민의 복리안녕을 유지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 그러나 한국이 한국만 일 수는 없다. 유엔회원국이기도 하고 세계 12대 경제대국이기도 하다. 의무와 책임이 있다.

한국 국민이 그 의무와 책임에 대해 얼마나 신경 썼느냐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이 있다.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한국에 대해 기대가 컸었다. 바로 개도국처럼 못사는 나라에서 경제 민주대국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배울 게 많겠다고 생각했다. 한국은 이제 경제력이 없는 것도 아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국가에도 적용된다. 여유가 있을 때 나누는 것도 고맙고 좋은 일이지만, 여유가 많지 않을 때 나보다 더 여유가 없는 사람을 위해서 나눔을 같이하는 게 더 가치 있다.”

한국의 위상은 선진국 수준인데 아직 개발시대의 마인드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는 지금 21세기에 살고 있다. 세계인의 눈높이에 우리를 맞춰야 한다. (세계인의 기대와) 우리는 너무 차이가 많이 난다. 우리 개인의 수준은 세계 어떤 나라보다 높다. 개인의 재능, 생활, 생각하는 것 등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지지 않는다. 그런데 국민 전체적으로는 세계 사람의 눈높이에 맞추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유엔사무총장을 배출한 국가의 국민으로서 의식이 좀더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려면 어떤 계기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더 노력을 해야 한다. 솔선수범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유엔사무총장이 되면서 ‘모범을 보여 이끌자(lead by example)’를 모토로 내걸었다. 권위주의적 전통이 있는 유엔에서 수장이 몸을 낮춰 실천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또 유엔은 다자국제기구이기 때문에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다. 서로 조화하고 협동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그래서 내가 먼저 솔선수범해서 남들이 따라오게 만들고 있다.”

솔선수범하고 있는 예를 들어달라.

“개인의 몸가짐이 바르고 깨끗해야 한다. 윤리관, 생활, 행동 등에서 모범이 돼야 한다. 남이 보든 안 보든 안에서도 지키고 밖에서도 지킨다. 그래서 나를 포함해 유엔 사무국 고위직들의 재산을 공개하고 어떤 경우에도 예외 없이 출근시간을 지킨다. 일주일 이상 출장 갔다 오면 하루 쉴 수 있지만, 공항에서 바로 사무국으로 출근한다. 직원들이 처음에는 힘들어 했지만 지금은 잘 따라오고 있다.”

(반 총장은 사무총장 취임 이후 유엔의 출근시간을 오전 9시에서 7시 반으로 당겼다. 1년이 지난 뒤 직원들의 틀이 잡히자 올 들어서는 출근 시간을 30분 늦춰 8시로 운영하고 있다.)

‘붉은 악마’로 상징되는 한국의 정열적 결집성이 큰 힘이 되기도 하지만 외국인들의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힘들어 하거나 위험하게 보는 시각도 있다. 이런 한국적 특성을 어떻게 설명하는가.

“한국을 ‘역동적 민주주의(vibrant democracy)’로 부른다. 다이내믹(dynamic) 코리아, 최근에는 스파클링(sparkling) 코리아 등으로 말하는 데 우리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표어들이다. 이런 역동성은 긍정적인 요소이지만 꾸준하게 좋은 방향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건설적인 방향으로 결집되어야 한다.” 



큰 열정의 물결이 휩쓸고 지나갈 때 그곳은 이성보다는 감정의 영역이다.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방향을 잡는 게 힘들 수 있지 않은가.

“균형과 조화, 중용을 배워야 한다. 이때 언론의 역할이 크다.”

어려운 학창시절을 거쳐 유엔사무총장에 올랐다. 요즘 우리 젊은이들도 비정규직, 취업난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젊은이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어렵기로 말하면 내가 살았을 때나 내 윗 세대가 더 어려웠다. 하지만 꾸준한 용기와 희망을 갖고 국가를 이만큼 발전시켜 놓았다. 이제 젊은 세대들이 주인이 된다. 젊은 세대들이 주인이 되기 때문에 우선 자중자애(自重自愛)하는 게 필요하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방법이기도 하다. 그래야 남의 신뢰를 받는다. 국력이 신장하고 나라가 발전하게 되면 잘못하면 ‘붕’ 뜰 수 있다. 젊은 사람에게 항상 얘기하는 것이지만 머리는 항상 구름 위에 두지만 발은 땅을 딛고 있어야 한다. 발까지 떨어져 버리면 넘어진다. 꿈은 크게 갖되 주변의 현실을 다 보아야 한다. 우리나라의 위치는 어디에 있는가, 자기의 위치는 어디에 와있는지, 우리 현실은 어디에 도달했는지 보면서 주장할 것을 주장해야 한다. 항상 균형감각이 있어야 한다.”

시간이 12시45분을 넘어가자 비서가 들어왔다. 시리아 대통령이 전화로 연결되어있다고 했다. 집무실을 빠져 나와 옆방 대기실을 지나는데 가로세로 약 1m 크기의 유리 액자에 들어있는 올리브나무 조각이 눈에 들어왔다.

영문으로 수신인이 ‘반기문 사무총장’으로 박힌 올리브나무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내 조국 레바논을 유엔이 도와준 데 대해 감사의 표시로 드립니다. 2008년 5월 15일. 레바논 종교지도자 나스랄라 피터 스페이르’.


한승수 국무총리 내외는 지난 3일 경기 성남 서울공항을 찾아 금의환향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내외를 반갑게 맞았다.

총리가 외빈을 공항에서 영접한 것은 최근 10여 년 동안 첫 사례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등 동맹 국가 정상이 국빈방한을 할 때도 외교통상부장관이 공항에서 영접을 한다.

한 총리의 이같은 배려는 반기문 총장과 10여년을 이어온 각별한 인연 때문으로, 이번 공항행도 한 총리가 직접 생각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총리가 1993년 주미대사였을 당시 반 총장은 주미공사로 한 총리와 함께 호흡을 맞췄다. 2001년 한 총리가 외교통상부장관이었던 때는 반 총장이 외교부차관으로, 한 총리가 제56차 유엔 총회의장이던 2001년에는 반 총장이 의장 비서실장을 하며 동고동락했다.
또 한 총리가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이었을 때, 반 총장은 외교정책실장으로 함께 호흡을 맞췄고, 한 총리가 비서실장직을 그만 둘 때, 반 총장은 대통령 의전수석비서관으로 청와대 근무를 이어받았다.

반 총장이 유엔사무총장이 된 후에는 한 총리가 유엔사무총장 기후변화특별대표와 물과위생자문기구 위원을 맡아 유엔에서 함께 호흡을 맞췄다.

가족간의 인연도 각별하다. 한 총리는 반 총장의 맏딸 선용씨의 결혼 때 주례를 섰다.

선용씨는 한 총리가 경제부총리이던 1996년 한 총리의 자문관이던 조윤제 전 영국대사를 보좌했다.

한 총리는 지난 2006년 10월 당시 외교통상부장관이던 반 총장이 유엔사무총장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지원했고, 반 총장이 유엔사무총장으로 내정된 후에는 반 총장과 부부동반으로 오찬을 함께하며 축하해줬다.

한 총리와 반 총장은 유엔사무총장이 되고 자신이 국무총리가 된 후에도 꾸준히 전화통화 등을 통해 서로의 안부를 물어왔다.

한 총리는 지난 4월 뉴시스 기자와 만나 "반 총장과 전화통화를 자주 한다"며 "반 총장이 요즘 아주 잘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지난 3월에는 충북지역을 방문했다가 반기문 사무총장 생가 터를 찾아 주민들과 환담을 나누고 관련 시설을 둘러보기도 했다.

한 총리는 지난2월29일 국무총리 취임사에서도 반 총장에 대해 "국제정치의 중심에서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활동하고 있다"며 "사실 반기문 총장과 개인적 인연이 깊은 저로서는 남다른 감회를 느낀다"고 말했다.

반 총장도 지난 2003년 사석에서 한 총리에 대해 "한승수 박사와 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며 "항상 존경하며 가족 같은 마음으로 모셔왔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레차니노프 / 교향곡 2번 '전원교향곡'

                               Alexsander Grechaninov 1864∼19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