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들/세 상 사람들

거지가 넘쳐나는 인도 왜 부자에 대한 반감이 없을까

향기男 피스톨金 2008. 7. 13. 12:15
거지가 넘쳐나는 인도 왜 부자에 대한
반감이 없을까
힌두교 윤회사상 영향…
가난도 고통도 전생 탓으로 생각
대대적으로 기부 활동벌이는
대기업에 대한 호감도 한몫
<이 기사는 weekly chosun 2014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김승호 주인도 한국대사관 홍보참사관

 
 

인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소(牛)다. 4억마리 정도의 소 중에서 1억마리 이상이 주인이 없는 부랑우(浮浪牛)라고 한다. 그런데 인도의 수도 뉴델리를 자동차로 달리다 보면 소보다도 더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이 바로 구걸하는 아이들이다. 산발한 머리의 앳된 소녀가 자신의 아기인지 동생인지 구분이 안가는 갓난애를 업고 애처롭게 동전 한 닢을 구걸하는가 하면, 평생 세수를 하지 않은 듯 땟국이 줄줄 흐르는 소년이 싸구려 잡지와 신문을 들이대면서 차창을 부서져라 두들겨댄다.


또 손이 뭉개져 헝겊으로 감싼 문둥병 환자 같은 걸인들이 신호를 기다리는 자동차 창문으로 얼굴을 불쑥불쑥 들이밀어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도 만든다. 시내 곳곳에는 걸인들 외에도 단지 먹을 것 하나를 해결하기 위해 시골에서 남부여대(男負女戴)로 올라온 사람들의 움막촌도 쉽게 볼 수 있다. 모기와 파리가 들끓는 시궁창 같은 환경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보면 가련하다 못해 ‘인간이 이렇게 생존할 수도 있는가’ 하는 회의감마저 든다. ‘이렇게 가난한 나라가 글로벌 사회가 가장 주목하는 신흥국가(emerging country)라니…’ 하는 의문도 이 대목에서 절로 들게 마련이다.


인도의 걸인들이 던지는 또 다른 놀라움과 의문은 인도에는 양극화로 인한 갈등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는 점이다. 인도에서 여행객이나 출장자가 아닌 주재원으로 생활하다 보면 이렇게 양극화가 심한데도 부자(富者)에 대한 반감이 의외로 적다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다.

▲ 뉴델리 빈민촌 photo 조선일보 DB

언론서도 부자들 비난 기사 전혀 안 써


떠오르는 인도의 표상 중 하나인 뉴델리 인근 구르가온 골프장인 DLF의 주말 풍경이 이를 방증하는 좋은 사례다. 발전량이 턱없이 부족해 정전을 밥 먹듯 하고, 섭씨 45도가 넘는 폭염 속에서 선풍기조차 틀지 못해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상황에도 DLF골프장에서는 매주 토요일이면 대낮같이 불을 밝히고 야간 골프를 친다. 그래도 신문이나 방송에서는 이런 행태를 비난하는 보도가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


도대체 인도에서는 왜 이러한 현상이 나오는 것일까.


우선 인도인의 부자에 대한 인식이 우리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인구 80%가 믿는 힌두교의 윤회 사상은 현세의 가난과 고통이 전생의 카르마(業)로부터 연유된 것이라고 가르친다. 거꾸로 현세에 부와 명예를 누리며 사는 사람들은 전생에서 그만큼 모범적이고 영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이란 얘기다. 부자를 부자로 당연시하는 경향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둘째 이유도 역시 종교적이다. 기원전 2세기경 편찬된 마누법전은 인생의 세가지 목표를 다르마(종교적 생활규범), 아르타(부·富), 까마(성애·性愛)로 정의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아르타를 최우선으로 꼽았다. 즉 경제적 기반이 마련된 상태에서 정신적·감각적 삶을 추구하도록 권장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부에 대한 종교적 개념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큰 변화를 보이고 있지만 아직도 인도인들의 의식 속에 보이지 않는 잣대 역할을 하고 있다.


인도 대표기업 타타, 정치자금 대신 매년 1000억원 사회 기부


여기에 또 하나 이유를 추가하자면 아직 국가의 역할에 한계가 있는 인도에서 기업들이 정부를 대신해 사회적 책임을 짊어짐으로써 국민들의 마음을 얻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인도에서 가장 존경 받는 기업인 타타그룹의 사훈은 ‘선한 생각, 선한 말, 선한 행동’이다.


정치자금을 주지 않는 기업으로 유명한 타타그룹은 매년 1억달러 이상을 교육, 문화, 병원 등 다양한 사회사업에 내놓는다. 타타그룹의 창업자인 잠셋 타타의 유언에 따라 유산의 3분의 1을 투자하여 1911년 설립한 인도과학대학(IISc)은 2명의 전직 인도 대통령 등 많은 인재를 배출해 냈다. 또 인도 동부에 있는 잠셋푸르란 도시는 타타그룹이 물과 전기를 100% 공급해줘 인도에서 가장 살기 좋다는 평가를 받는, 말 그대로 ‘기업 도시’이다. 뿐만 아니라 타타는 인도 최초로 8시간 노동제(1912년), 유급휴가제(1920년), 퇴직금제(1937년) 등을 도입한 기업이다.


국민적 존경을 받는 기업으로는 타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인도 북서부의 인구 1만 5000명의 작은 도시 필라니(Pilani)에 세계적인 대학 ‘비츠 필라니(BITS/PILANI)’를 만들고, 비를라 사르브자니크 병원 등을 지어준 것은 바로 비를라(Birla)와 고엔카(Goenka) 등 인도의 대표적 재벌들이다. 연간 200만건 이상의 신고를 받아 위급 환자를 구해주는 비상관리연구소(EMRI)를 운영하는 곳도 인도의 대표적 IT업체인 사티암이다. 사티암의 라주(Raju) 회장이 800만달러(72억원)를 내놓아 만든 뒤 지금은 정부와 공동으로 운영한다.


뭄바이에서 가장 큰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는 파트니그룹의 나렌드라 파트니 회장은 독실한 자이나교 신자로 미국 MIT에서 공부했다. 파트니 회장은 ‘비폭력’ ‘불살생’ ‘무소유’라는 자이나교의 가르침에 따라 매년 기업 이윤의 10%를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다보니 인도에는 상대적으로 반부자·반기업 정서가 적다고 할 수 있다.

▲ 인도의 IT기업인 인포시스 전경. photo 조선일보 DB

급격한 경제성장… 일부 졸부들 초호화판 생활은 눈총


그렇다고 인도의 부자들이 무조건 존경 받는 것은 아니다. 어느 나라에서나 마찬가지겠지만 인도에서도 사회가 급격히 변화하고 발전하면서 졸부들의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개인재산 490억달러인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스의 무케시 암바니 회장은 뭄바이 해변에 60층짜리 높이의 초호화 주택을 짓고 있어 세간의 눈총을 받고 있다. 헬기장, 헬스클럽, 부양(浮揚)형 정원 등을 갖춘 이 저택은 관리 인력만도 600여명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이 저택에 살 사람들은 무케시 회장과 그의 어머니, 아내, 3명의 자식 등 단 6명뿐이다. 무케시 암바니 회장은 작년 아내의 생일 선물로 5000만달러가 넘는 22인승 초호화 항공기를 구입하면서 상업적 목적으로 들여온 것처럼 위장해 500만달러 이상의 세금을 포탈하려다 세무당국에 적발되기도 했다.


개인 재산 510억달러로 현재 인도 최고의 부자인 아르셀로 미탈의 락시미 미탈 회장은 자식들의 결혼에 자신이 가진 부(富)를 유감없이 과시했다. 그는 딸 바니샤의 결혼식을 파리의 베르사유 궁에서 치렀고, 5일간 이어진 피로연 비용으로 무려 5500만달러를 지출하기도 했다. 오죽하면 한 외신에서 이 결혼식 기사 제목으로 ‘아빠, 에펠탑도 사줘’라고 붙였겠는가. 딸의 결혼식 피로연에 5500만달러를 지출한 락시미 미탈 회장은 2004년 올림픽에서 은메달 하나를 따는 데 그친 인도의 체육 발전을 위해 겨우 900만달러를 내놓아 빈축을 사기도 했다.


빈부의 양극화는 국경을 초월해 세계적 화두가 되고 있다. 인도인들이 양극화와 반부자 정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도 오랜 잠에서 깨어나 달리기 시작한 수퍼 코끼리 인도를 이해하는 좋은 키워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