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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람들/MB 실패에 대한 우리들의 생각 - 전여옥 인터뷰

향기男 피스톨金 2008. 6. 17. 14:39

MB 실패에 대한 우리들의 생각
- 전여옥 인터뷰
 
웬 하버드 박사와 교수들?… 청와대 사람들은
 '초대 받은 손님들'
한나라당 사람들도 무기력… 정말 샌님에 공주님에
도련님 대선 때 실제 지지자는 30%뿐… 나머지 '잠재 비토층' 70%를 간과 이 대통령은 정치 너무 몰라… 과거의 '고용 사장'식 생각 버려야

이명박 정권의 위기를 맞아 집권당인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다양한 수습책과 자기 반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대선 기간 좌파정권 종식과 우파정권 창출론을 역설했던 전여옥 전 최고위원(49·재선·서울 영등포갑)을 만나 이명박 정권 위기의 본질과 수습 방안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전 의원은 최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우리가 지난 10년 동안 고대했던 것이 ‘평화롭고 조용한 세상’이었는데 아직 그 세상은 오지 않았다.

아니 그때를 위해 우리는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는 뼈저린 각성을 하게 하는 요즘”이라고 썼다. 전 의원과의 인터뷰는 지난 6월 2일 의원회관에서 있었다. 


보수진영이 고대하던 우파정권이 들어섰지만 정권 출범 불과 100일 만에 위기를 맞고 있다. 어떤 심정인가.

“나는 이미 대통령 취임식 날부터 우파정권에 대한 굉장한 네거티브와 거부의 움직임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었다. 지금의 대대적인 반(反) 정부 움직임은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지난 10년을 주도한 좌파세력의 힘과 경험이 녹록지 않다. 문제는 이 대통령이 이 부분을 직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굉장히 순진한 비(非) 정치인이다. 정치력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여의도라는 정글에 뛰어들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정치를 몰라 화를 자초했다는 말인가.

“나는 기본적으로 이 대통령이 내건 실용주의에 대해 우려했다. 최근 인터넷에 글을 올렸지만 ‘우스운 실용주의’가 아닌 ‘무서운 실용주의’가 되기 위해서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확고한 가치 위에 섰어야 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그런 가치를 ‘낡은 것’으로 치부했다. 오히려 그런 것들을 털어버리는 게 실용주의를 잘 하는 것으로 오판을 했다. 

두 번째로 이 대통령은 정권창출에 기여한 스스로의 역량을 너무 과대 평가했다. 물론 이 대통령의 업적주의와 ‘코리안 드림’이 유권자들을 움직여 정권창출을 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50%의 지분에 불과하다. 이 대통령은 ‘아스팔트 우파’ 등 정권창출에 기여한 나머지 50%의 사람들에 대해서도 겸손하고 고마워했어야 했다. 하지만 여기저기 다니면서 공사하듯 그때그때 편의주의식으로 정권창출 세력을 대했다. 이들에게 공을 들여 보호막을 만들고 판을 다졌어야 했는데, 이 대통령은 530만표 차이를 너무 과신했다. 그러다가 고립무원의 처지에 빠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지난 대선 때 압도적으로 승리한 후보로서 어떻게 100일 만에 지지율이 20% 아래로 추락할 수 있다고 보나.

“530만표의 승리였지만 당시 투표율(63%)과 득표율(48.7%)을 감안하면 전체 유권자 중 30%만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던 셈이다. 투표를 하지 않은 유권자 중 상당수는 잠재적 비토층이었다고 봐야 한다. 이들은 누가 깃발을 날리기만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이명박 반대’를 외칠 사람들이었다. 이 대통령은 이들 비토층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 지금은 단순히 미국 쇠고기의 문제가 아니라 ‘이명박 비토’의 국면으로 봐야 한다.”                   


이 대통령 스스로 말했듯이 정권창출 세력이나 잠재적 비토층 모두와의 소통에 실패한 것 아닌가. 그 이유가 뭐라고 보나.

“이 대통령 캐릭터에 문제가 있다. 이 대통령을 옆에서 지켜보면 수줍어하고 내성적인 사람이다. 말을 많이 하는 것 같지만 문제가 생기면 얘기하는 사람은 따로 있을 만큼 말로 하는 걸 싫어한다. 말보다는 ‘내가 해보겠으니 두고 봐라’는 스타일에 가깝다. 과거 기업에서 익힌 실적주의라 할 수 있는데, 문제는 지금 이 대통령이 과거와 같은 고용 사장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제는 말로서 화두를 던지고 국민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정치’를 해야 한다. 하지만 이 대통령에게는 ‘정치는 말로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없었다. 옛날에
정주영 회장 밑에서 일할 때처럼 ‘제가 해보겠다’며 성실하고 순진한 자세로 일만 했다. ‘왜 내 말을 듣지 않느냐’는 국민들에게 적어도 ‘얼마나 답답하냐. 이해한다. 먹을 문제가 걸려 있지 않느냐’는 정도의 말을 해줬어야 하는데 이 대통령은 한·미자유무역협정(FTA)과 같은 업적과 성과만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야말로 정치력이 실종된 실용인데, 이런 이 대통령의 개인적 캐릭터가 문제였다고 본다.”            
 
대통령 주변도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내가 속한
한나라당부터 무기력했다. 지난 100일간 공천 등 쓸데없는 갈등만 불러일으키며 쓸데없는 사람들만 영웅으로 만들어줬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 당 사람들은 정말 샌님에다 도련님, 공주님들이다. 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좋은 옷 입고 큰 사람들 같다. 고통 받는 서민들이 ‘저 사람들도 우리랑 같은 음식 먹고 같은 고민한다’는 인식을 할지 걱정이다. 오히려 대통령은 검소하고 거친 음식도 즐기는 편이다. 대통령과 목숨을 같이한다는 자세로 어려운 서민들과 통섭했어야 했는데 너무 무기력하고 유약했다.

정부와 청와대도 문제다. 노무현 정권 때는 ‘노무현 대신 죽겠다’는 장관과 수석들이 얼마나 많았나.
노무현 대통령보다 먼저 국민들 입에 거품을 물게 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모두 대통령 뒤에 숨어만 있다. 결국 이것도 이 대통령의 실수다.”


인사에 문제가 있었다는 말인가.

“정권을 잡는 일도 피비린내 나지만 그걸 지키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고통스럽더라도 정권을 지키겠다는 절박함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대통령 주변에 있어야 한다. 정권창출에 자신의 밑천과 땀을 쏟아 부어 정권에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 차라리 시장통에 나가 산전수전 겪은 상인들을 설득해낼 수 있는 경험 있는 정치인들이 대통령 주변에 있어야 한다. 그런데 웬 하버드 박사와 교수들인가. 지금 청와대에 있는 사람들은 ‘초대 받은 손님들’ 같다. 나는 대통령이 학력 콤플렉스가 있지 않냐는 생각조차 했다.”


이번 시위는 'MB 비토' + 양극화 속 소외층 불안이 증폭된 결과
당 대표도 관리형은 곤란… 정권 수호 위해 몸 던질 사람 뽑아야

인사에서 전문성과 지식을 중시한 결과 아닌가.

“물론 지식은 아무도 빼앗아갈 수 없는 소중한 것이지만 정치에서는 지식보다 체험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이 대통령은 공자 말씀을 따랐지만 여의도에서는 여의도의 자문을 따라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실패한 인사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초반의 실수를 빨리 수정한다면 희망이 있다. 초반의 실패가 오히려 플러스가 될 수 있다.”


민심 이반의 도화선이 된 쇠고기 협상은 누구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나.

“관료들에게 60%, 청와대에 40%의 잘못이 있었다고 본다. 쇠고기 문제는 이전부터 좌파진영에서 문제를 삼고 있었던 사안이다. 성냥만 그으면 타오를 문제였는데 이런 인화성을 청와대가 간과했다. 특히 청와대는 관료들을 장악하지 못했다. 관료들을 상대로 감독, 감시, 확인하고 책임을 물었어야 했는데 사태 초반부터 대통령이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태도를 취했다. 우리가 추진하는 ‘작은 정부’에 대해서 반감과 불안감이 누적된 관료들은 어떤 문제가 일어날지 뻔히 알면서도 ‘그래, 시키는 대로 하겠다’는 직무유기성 태도를 보였다. 나중에라도 이러한 태도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책임을 물어야 한다.”        


어떤 민심 수습책이 필요하다고 보나.

“지금 국민의 심정을 읽어야 한다. 이번 국면은 ‘이명박에 대한 비토’와 함께 양극화 속에서 소외되고 억울하고 앞날이 불투명한 사람들의 불안함이 분노로 증폭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대통령은 두 가지를 해야 한다. 단순한 인적 쇄신이 아니라 ‘그만하면 됐다’는 말이 나올 만큼 내각 총사퇴까지 고려해야 한다. 그래야 등을 돌렸던 우파들이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갈 마음이 생긴다. 또 세계화·양극화 속에서 소외됐던 사람들에 대한 파격적인 대책이 나와야 한다. 유류세를 인하하고 물가를 확실하게 잡는 등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는 서민들을 먹고살게 해줘야 한다. ‘노무현 정부와 뭐가 다르냐’는 실망감을 상쇄시킬 조치가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굉장히 따뜻하고 정서적인 사람들이다. ‘고소영’ ‘강부자’만 있는 게 아니라 정권이 나의 어려운 처지를 공감하고 있다는 소통감을 주면 떠났던 민심이 돌아올 수 있다.”              


앞으로 한나라당이 국정 쇄신의 중심에 설 수 있다고 보나.

“어떤 지도부가 들어서느냐가 중요하다. 나는 7월 3일 전당대회에서 관리형 대표를 뽑는 것에 반대한다. 이 정권을 지키기 위해 자기를 던질 수 있는 사람을 대표로 뽑아야 한다. 친박이고 친이고 간에 이 상황이 위기라는 걸 알아야 한다. 이명박 정권이 무너지면 친이나 친박이나 온전하겠는가.
박희태 전 의원도 관리형이 아닌, 진짜 대표를 하려면 살신성인 하겠다는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연히 전당대회가 요식행위가 돼서는 안 된다. 대통령 후보 경선도 처절하게 치른 마당에 당을 이끌 지도부를 뽑는 경선을 썰렁하게 치른다면 정당정치를 포기하겠다는 얘기밖에 안 된다.
지금 우리가 상대하는 야당이 두려운 존재라는 것도 알아야 한다. 지난 선거에서 탄돌이들은 다 심판받고 지금 민주당에는 경쟁력 있는 사람들만 살아남았다. 이들 80여명이 똘똘 뭉쳐 일사불란하게 나아갈 것이다. 우리는 153명이나 되지만 정치를 잘 모르는 초선이 82명이나 돼 걱정이다.


전여옥은…  1959년생. 이화여대 사회학과 졸업. KBS 기자를 거쳐 2004년 3월 한나라당 대변인으로 정치권에 영입됐다. 2004년 총선에서 비례대표 의원이 됐고, 2006년 한나라당 지도부 경선에서 최고위원에 선출됐다. 지난 4월 총선에선 서울 영등포갑에 출마해 재선 의원이 됐다.

정치권에 들어오기 전부터 ‘보수 논객’으로 알려졌고, 대변인 시절부터 ‘독설가’라는 평판을 들었다. 그에 걸맞게 적도 많다. 박근혜 전 대표 시절 대변인을 지내며 ‘측근’으로 분류되다 작년 대통령 후보 경선 때 이명박 캠프를 선택하자 박사모로부터 ‘변절자’라는 비판을 들었다. 지난 5월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광우병과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악의적인 유언비어를 겨냥,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이라고 썼다가 네티즌과 인터넷매체들로부터 ‘광우병 5적’이라는 비난을 들었다.

좌파정권 종식과 우파정권 창출을 역설해온 그는 오는 7월 지도부 경선에 나서지 않고 “백의종군할 각오”라고 밝혔다. 그는 인터뷰에서 “지난 선거를 치르면서 생각하지도 못했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았다. 그걸 잊을 수 없고 그 분들을 위해 모든 걸 던질 생각”이라며 “우리가 이대로 꿇어앉을 수 없다”고 했다.

 

< 이 기사는 weekly chosun 200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

정장열 차장대우 jrchung@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입력 : 2008.06.11 18:25 / 수정 : 2008.06.17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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