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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협상 25시)정주영 회장의 수출협상비법

향기男 피스톨金 2008. 12. 12. 17:31

(국제협상 25시)정주영 회장의 수출협상비법

 

이데일리  

얼마 전, 현대중공업의 TV 광고에서 고 정주영 회장의 대학 강연 모습이 나왔다. 당시 언론에서는 정 회장이 TV 광고로 부활했다고 보도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필자는 당시 그 TV 광고를 보면서 다시금 정 회장이야 말로 불세출의 대한민국 협상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은 그가 그리스 선박 회사를 상대한 비즈니스 협상의 일화인데 요즘 기업인들도 충분히 벤치마킹 할 만하다고 본다.


세계에서 가장 지저분한 협상을 하는 나라. 비윤리적인 협상 전술을 많이 쓰는 나라 중 하나가 그리스다. 고대 폴리스로 불리는 도시국가 시절부터 좁은 영토 안에서 갖은 술수와 모략으로 생존권과 자치권을 지켜 나가야 했으며, 현대에 이르러서는 에게해와 지중해를 끼고 앉아 해상왕국을 꿈꾸며 선박왕 오나시스 등 희대의 거상들을 배출한 그리스.

세계 조선업계에서 보여 준 그리스인들의 비즈니스 협상은 일반적인 상도에 익숙해 있던 거물들조차 당혹스럽게 만드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그 중 가장 악명 높은 협상기법이 바로 ‘계약 번복’ 이다.

처음에는 상당히 매력적인 계약조건을 제시하여 우선 거래대상자로서의 입지를 굳힌다. 그리고 나선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자기 외의 다른 거래처와의 거래를 하지 못하도록 일단 상대가 원하는 조건으로 MOU 혹은 가계약을 체결한다. 상대는 일단 계약이 성사되었으니 오로지 그리스 선주와의 선박 발주 건에 전력을 다하게 된다. 한정된 조선소 생산시설 및 자재, 그리고 인력들이 그리스 선박 건조 일정에 맞춰 조정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다른 고객 선주들은 별 도리 없이 다른 조선소를 찾아 떠나간다. 얼마 후, 경쟁업체들을 다 따돌린 그리스 선주는 이미 발이 빠진 해당 조선업체를 상대로 금액, 사양, 납기 등 이미 합의한 계약 조건을 하나 하나씩 제 입맛에 맞게 조정해 나간다.

그리스 선주의 부당한 처사에 계약을 취소하고 다른 고객을 찾으려 해도 이미 다른 고객들은 다 떠나버린 상황이다. 게다가 선박건조 작업 또한 이미 시작되어 이제 와서 계약을 없던 것으로 물릴 수도 없게 된 조선업체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그리스 선주의 부당한 요구를 들어 줄 수 밖에 없게 된다.

이 같은 계약 번복 협상 기법으로 막대한 비용을 절감해서 부당한 이익을 챙기는 그리스 선사들의 비윤리적 작태는 당시 조선업체와 해운업체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았다고 한다. 그러나 거대 선단을 거느린 거대 고객인 그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는 게 업계의 정서인지라 결국은 당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예외는 있었다.
대한민국의 정주영 회장이다. 그는 이렇게 악명 높은 그리스의 거대 선주들을 상대로 다름아닌 그들이 쓴 똑 같은 계약 번복 기법을 활용해 절묘한 협상 전술을 펼친 것이다.

세계 선박 수주 시장 경쟁이 치열했던 시절인 90년대 초반. 유럽의 대형 조선소 뿐 아니라 2차 대전 후 급성장한
일본의 거대 조선소들이 우리의 최대 경쟁자였다. 우리에 비해 우수한 기술, 막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한 선진화된 시설, 그리고 강력한 로비력으로 좀 체 한국 조선업계가 세계시장에 발 붙일 틈을 주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다.

정회장의 전략은 의외로 간단했다. 단계별로 살펴보기로 하자.

1단계 : ‘일단 고객의 발을 빠트려라.

’ 우수한 제품설계, 매력적인 가격조건, 빠른 인도 기일을 제시하여 계약을 체결해서 경쟁 조선업체를 따돌리란 얘기다. 당시 현대중공업 해외영업 담당 임원의 경험담을 들어 보았다.

그는 최종 계약 협상을 위한 출국을 하루 앞둔 날, 정 회장으로부터 선주 측에 제시할 우리측의 최저 가격 안을 직접 지시 받았다고 한다. ‘수십만톤급 슈퍼 탱크 척당 가격을 3천만 달러’. 경쟁사에 비해 저렴한 가격과 빠른 납기라는 경쟁력이 있다고는 하나 결코 쉽지 않은 조건이었다. 이후 선주 측을 상대로 갖은 설득과 천신만고 끝에 드디어 수주에 성공했다고 한다. 기쁜 마음으로 수주 성공 소식을 전하는데 수화기 저편에서 들려 오는 정 회장의 새로운 지시사항. “3천5백만 달러로 올려!”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런데 어쩌랴, 담당 임원은 어떻게든 3천5백만 달러를 받아내기 위해 밤새 끙끙 앓으며 묘수를 찾아냈다고 한다.

2단계 : ‘문제를 일으켜라. 그리고, 불가피한 설계 변경, 혹은 유리한 조건을 내세워 기본 계약을 확대 조정하라.’

이미 배 한 척에 3천만 달러를 지불키로 한 마당에, 약간의 추가 비용만 들인다면 설계 개선을 통해 더 우수한 배를 보유할 수 있다는데 왜 마다하겠는가? 선주가 매력적으로 느낄 만한 추가 제안을 통해 선박 가격을 당초보다 높이는 전략인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선주는 오히려 현대가 끊임없는 개선 노력과 적극적인 고개만족을 추구하고 있다고 믿게 되어 다음 계약에서도 현대와의 추가 계약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었다.

세계 경제가 본격적인 침체 국면으로 접어든다는 국내외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우리나라의 내년도 경제성장 전망도 1%대로 주저 앉았다고 한다. 그런데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로선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수출 성장을 지속해나가야 한다.

성공적인 수출 확대를 위해선 뛰어난 기술, 가격경쟁력을 갖추어야 한다. 문제는 과잉 공급 양상이 심각하며, 특별히 차별화된 기술 및 브랜드가 많지 않으며, 가격경쟁력은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이란 거대 염가 공장에 밀리는 상황이란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기업들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고 정주영 회장이 보여 주었던 상대의 협상전술을 역이용하는 창의적이며 공격적인 전략적 협상력이 아닐까? ‘협상강국 대한민국’. 암울한 세계 경제 위기속 우리 정부와 기업의 새로운 로드맵이다.

박상기 글로벌협상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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