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해외한인무역협회 [world-OKTA]/월드-옥타 사람들

한상의 대부 정진철 로열아이맥스/회장민소득 3만 달러, 해외한상이 앞장

향기男 피스톨金 2009. 1. 12. 15:34

 

[세계한상]“국민소득 3만 달러, 해외한상이 앞장선다”
한상의 대부 정진철 로열아이맥스 회장

“국민소득 3만 달러의 선진국으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중소기업 육성과 한상 활용이 필요하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본사를 두고 있는 무역회사인 로열아이맥스를 이끌고 있는 정진철 회장은 연간 1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으며 제1회 한상대회 대회장과 세계한인무역협회(OKTA) 회장 등을 역임했다. 1999년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고, 캘리포니아주 주지사와 주 상원의 표창장과 공로상을 수상했다. 또한 그는 12 1일 한국언론인연합회가 제정한 자랑스런 한국인 조국봉사부문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의 인구 비율로 볼 때 750만 재외동포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숫자라며 21세기는 영토나 국가의 개념이 없고 민족의 개념으로 네트워크가 구축되는 만큼 한국이 강한 국가로 살아남으려면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1996년 발족한 중국 화교 경제인들의 모임인 세계화상대회에는 현재 6천만 명이 참가해 활발한 네트워킹을 하고 있다.

정 회장은 중국 정부는 화상대회를 적극 지원하고 활용한다. 바로 그 힘이 오늘날 중국의 발전을 가져온 것이라며 한국 정부도 동포가 국부의 원동력이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동포정책을 수립할 것을 촉구했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 10 5일을 제1세계한인의 날로 제정했다. 750만 해외동포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해외동포들에 대한 모국의 관심을 널리 알림과 동시에 한민족으로서의 자긍심을 고양하는데 목적을 둔다는 취지다. 하지만 아직까지 해외동포들의 활약상에 비해 그들의 중요성이 국민들에게 덜 인지되고 있다고 정 회장은 지적한다.

 

우리 사회에 해외동포가 미치는 영향력에 비해 정부차원의 관심이 아직도 부족하다며 그는 미주 이민 역사가 100년 이라지만 실제로 본격적인 이민사는 40년이 채 안 된다. 미주 한인사회에 잡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인들은 질적, 양적으로 크게 성장을 해왔다. 이제 한국정부도 제대로 된 해외동포 정책을 수립해야 할 때라고 밝혔다.

 

그는 이제 동포정책이 기민(棄民)에서 벗어나야 한다한국정부는 이제껏 해외동포라는 황금덩어리를 두고도 활용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정 회장은 대기업 중심으로 짜여 진 한국 경제구조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음을 분명히 하면서 한국이 국민소득 3만 달러의 선진국으로 발돋움 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의 육성과 더불어 세계에 진출해 있는 한상들을 적극 이용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세계경제가 블록화 되면서 최근과 같은 미국발 금융위기의 파급효과는 엄청날 수밖에 없다. 유럽, 일본 등 많은 선진국들이 동반위기를 겪고 있다. 하지만 대만과 이스라엘 국가 등은 탄탄한 중소기업들이 뒤를 받치고 있기 때문에 크게 흔들리지 않고 있다. 그만큼 중소기업이 국가경제의 근간이며 뿌리인 것이다. 한상들을 활용하면 자금난과 인력난으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이 수월하게 해외진출을 할 수 있다.

 

그는 한상대회는 화상대회를 벤치마킹하면서 탄생했다고 밝혔다. 화상은 각 분야 기업인들이 1만 명 이상 모여 대회를 여는 것을 보고 한상대회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러던 중 재외동포재단의 권병현 초대 이사장이 화상처럼 우리도 한상대회를 만들어 보자고 주창해와 호응을 했다고 그는 말했다.

 

이후 미국 산호세에서 준비모임을 열었다. 당시 월드 옥타 회장이던 그는 세계한인경제인대회에서 한상대회를 열 것을 널리 알렸다. 그래서 2002년 첫 대회를 서울에서 개최를 했고 700여명의 해외 한상이 참석을 했다.

 

초기 대회는 한상의 존재를 국내외에 알리는 것이 목적이었다. 화상은 1991년에 조직됐다. 화상처럼 한상도 모국에 기여할 때가 됐으나 동포끼리의 네트워킹이 부족했다. 같은 한상이지만 재미동포와 재일동포가 서로 교류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해외동포와 또 해외와 본국간의 네트워킹을 위해 한상대회를 열게 됐다고 밝혔다.

 

한상대회는 1차 대회부터 3차 대회까지는 한상을 널리 알리고 상호 네트워킹을 하는데 중점을 두었으며 4차 대회부터는 점차 실질적인 비즈니스로 돌입하기 시작했다. 이후 5차 대회부터 본격적으로 언론의 조명을 받게 됐다. 5~6차 대회는 부산에서 열려 지역 경제에도 도움을 줄 수 있었다. 7차 한상대회는 역대 최다 참석 등 한상의 달라진 위상을 실감할 수 있었다고 정 회장은 말했다.

 

그는 한상대회가 이제부터는 내실을 기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상연구소 등을 세워 한상의 싱크탱크를 만들어야 한다특히 비즈니스 기회를 확대해 경제효과를 극대화 하는데 신경써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의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투자유치를 늘려야 한다며 한상들의 모국 투자를 강조했다. 한상들이 이왕이면 한국제품을 더 많이 구입해 현지에 유통시키고 모국에 대한 투자도 늘여야 한다한상의 투자 유치를 위해서는 과감한 규제 개혁이 필수라고 충고했다. 아직도 모국의 규제가 많다. 사업을 무엇 하나 추진하려면 수십가지 인허가를 받아야 되는데다 강성 노조도 문제라고 지적하며 독일 노조, 영국 광산노조, 일본의 춘투도 이제는 다 강성에서 연성으로 조용해졌다. 노사가 대립해서는 공멸 밖에 없다는 것을 실감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제 “‘노동귀족이 사라져야 한다. 해외 기업들이 투자를 고려할 때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은 각종 행정 규제보다 노조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해외투자를 유치하는 것이 중요한 지에 대해 90년대 중국은 해외 화교의 투자에 조건을 달지 않았다. 오히려 세제혜택도 주었고 공장부지의 90년 무상 임대도 베풀었다. 외국인 투자의 매력은 1천만 달러 투자하면 600만 달러 이상 가져갈 수 없다. 나머지 설비, 기술은 그 지역에 남는다. 투자 받은 국가가 가져가는 것이 외국인 투자라고 단언했다.

 

중국 본토 주자의 70%를 화교들이 했다. 천문학적인 숫자의 금액을 화교들이 해외에서 벌어 본국에 투자한 것이다. 이 대목에서 정 회장은 우리 한상들도 10년 이내에 화상과 같은 조직을 갖출 것으로 기대한다. 2050년 대한민국이 세계 최고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것이고 한상이 그 가운데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해외동포 차세대 육성은 화급을 다투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동포 2세들은 자원은 우수한데 모국에 대해 관심이 없다. 1세들이 죽으면 조국과 단절이 될 수 있다차세대 연결고리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1세들이 해야 할 일이다. 아버지들이 왜 한국을 좋아하나, 왜 자꾸 한국에 들어가는 지에 대해서 실제로 느끼고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이건희 삼성 회장이 인재 한사람이 수만 명을 먹여 살린다고 말한 것처럼 한국정부도 해외에 있는 한인 두뇌 인재 유치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한인 1.5세와 2세들 중 상당수가 명문대학을 다니고 있는데 이 고급 두뇌를 유치해 글로벌시대 국가 경쟁력 제고에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 정 회장의 주장이다.

 

그는 한국인의 저력에 대해 미국 후버연구소가 50년 뒤 한국이 일본을 넘어서 미국 다음의 국가가 될 것이란 전망을 했음을 밝혔다. 그는 후버연구소는 한국의 세계에서 넘버 2가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선결 요건을 제시했는데 첫째 인구가 1억이 돼야 하고, 둘째 두뇌유치, 셋째로 교육에 대한 정부의 투자를 들었다. 한국은 남북통일과 재외동포를 합치면 8천만 명이 된다. 750만 재외동포 중에 5백만 명이 4대 경제 대국에 집중돼 있기에 인재도 넘친다. 더욱이 한국은 가계 수입의 30%를 교육에 투자하고 있다. 이는 한국과 이스라엘뿐이다. 미국, 일본도 15%이상 투자하지 않는다. 그만큼 한국은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조금만 더 노력하면 충분히 일등국가로 우뚝 설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최근 미국발 금융위기에 대해 미국이 대공황 이후 이렇게 힘든 적이 없었다. 생각보다 충격은 크다. 경제 구조를 재조정하는 중이다. 전문가들도 이렇게 심각해질 줄은 예측 못했다이제 미국 혼자만의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던 모멘텀이 무너지고 있다. 이제는 유럽과 아시아 경제 강국과 협조하지 않고는 미국이 난국을 해쳐 나갈 수 없게 됐다고 진단했다.

그는 미국의 독주가 앞으로 10년 지나면 완전히 사라질 수 있다고 예측했다. 미국의 경제 회복은 적어도 1년 반 이상이 시간이 소요될 것이며 후유증은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실제로 한국도 불황을 피부로 느끼지만 미국도 피부로 느낀다. 실물 경제에서 느끼는 어려움은 한국에서 느끼는 것과 똑 같을 정도라며 난국을 타개하려면 한국은 제일 중요한 것이 국민 통합’’이라고 말했다.

 

한국민의 저력은 어려울 때 헤쳐 나가는 지혜와 근성이 있으므로 단결 돼야 한다 지도자를 믿고 따라야 한다. 위정자, 국민, 정치가 따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한목소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회장은 우리 국민성이면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는 저력이 있다. IMF 사태에서 가장 먼저 벗어난 국민이라는 자부심이 필요하다. 반대를 위한 반대는 사라져야 한다며 통합을 거듭 강조했다.

 

정 회장은 최근 한국은 세계 경제 13위의 대국으로 성장하면서 해외에서의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한국은 70년대만 해도 약소민족이며 가난한 나라였다. 당시에도 이미 일본은 대우를 받았으나 한국은 북한과 별 차이 없을 정도로 못살았다"며 많은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재외동포 정책이 더욱 다양화 되고 동포 현실에 맞기 위해서는 우선 다양한 연구를 통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 일환으로 국회에서는 해외동포 경제정책 연구회 2002년도에 조직됐다. 정 회장은 당시 이만섭 국회의장에게 국회에는 연구회가 160개 넘는데 재외동포에 관한 연구회가 없다며 재외동포는 한국의 부채인가 아니면 부 창출의 원동력인가를 말하며 연구회 설립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특히 앞으로 동포사회는 2, 3세의 인재들이 쏟아져 나올텐 데 이들을 모국이 끌어안기 위해서는 국회차원의 연구회가 시급하다고 강조를 했다고 말했다.

 

이후 국회의장의 전폭적인 지원하에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설득 작업을 벌였고 당시 신현태 의원이 간사를 맡고 강인섭 의원이 회장을 수락하면서 연구소가 설립돼 2002년 춘계 세미나가 국회의원 세미나실에서 처음 열리게 됐다.

 

정 회장은 세계 곳곳에 퍼져 있는 한상들끼리 네트워크가 잘 구축되면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비즈니스 기회가 많이 창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한상 네트워크를 활용해 매출 부진의 돌파구를 연 사례도 수차례 목도했다고 했다.

 

그는 또한 아이디어나 기술력은 좋으나 마케팅력이 부족한 국내 중소기업들이 한상 네트워크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생생한 현지 정보를 얻고 언어로 인한 고충을 덜 수 있어 해외시장 진출에 있어서도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750만 재외 동포는 우리나라 경제발전을 견인할 수 있는 소중한 자산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해외 유수의 대학을 졸업하고 선진 지식과 기술을 습득한 차세대 젊은 한상들과의 교류와 협력을 더욱 확대할 필요가 있다.

 

 

 

 

정진철  로열아이맥스 회장

 

미국 가발시장에 마이더스 손으로 불리는 정진철 로열 아이맥스 회장. 그는 고려대 영문과를 나와 가발무역업체미방무역에 입사해 4년 후 부사장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정부의 강력한 수출드라이브 덕에 당시 가발무역은 엄청난 성장을 거듭하지만 이후 사양산업으로 몰락하면서 회사도 문을 닫게 됐다. 그리고 그는 1978년 미국으로 건너가 다시 가발업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20년 만에 연매출 1억 달러의 기업으로 우뚝 섰다.

 

정 회장은 가발 등 미용재료는 미국에서 사치품이 아니고 일상생활용품이 되었다라며 주요 소비층이 흑인이지만, 백인들도 가발을 많이 사용한다. 미국 사회는 시간이 바로 돈으로 직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가발은 그러한 생활패턴에 딱 맞는 생활아이템이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애용자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 회장은 미국으로 건너가기 전 당시 박정히 대통령을 중심으로 배고픔만은 없애겠다고 다짐하며 전 국민이 똘똘 뭉쳤던 1960년대 수출의 역군이었다. 수출만이 살길이라며 한길만을 달려온 것이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교역국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다져졌고 정 회장 스스로도 상당한 성과를 거두기에 이르렀다. 정 회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당시 한국은 기껏해야 가발, 합판, 섬유 등 3가지 품목 정도만이 수출에 성과를 올리고 있었다. 이후 부존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 국민들은 우수한 인적자원을 바탕으로 수출에 모든 국력을 투입했고 눈부신 성장을 이뤄냈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부인 정남현 씨와 사이에 두 아들을 주고 있다. 첫째 데니얼 정 씨는 스탠포드 대학과 하버드 MBA를 거쳤으며 둘째 조셉 정 씨는 UCLA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해 학업에 열중하고 있다.

 

정 회장은 동포들끼리 서로 협력하고 상부상조해야 한다. 2세들을 위해서는 계속 투자하고 1세들은 2세들의 성장에 밑거름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회장은 2세를 위해 설립된 학교법인 남가주 한국학교의 재단 상임이사로 재직하면서 한민족의 뿌리교육, 한글교육 및 한민족 정체성 유지 계승에도 봉사하고 있다.

 

그는 한국사회복지법인 한국복지재단의 평생후원자로 매년 100만 달러를 보내고 있으며 남가주 한국불우아동후원회 이사장직을 1992년부터 16년째 수행하고 있다.

 

한인네트워크 강성철기자

<자료출처 : 한인네트워크 2008년 11월12월호 (재외동포재단)>


 

 

 

 
브람스 (Brahms)의 연주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