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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주에 관한 5가지 오해

향기男 피스톨金 2005. 11. 24. 11:08

 

          폭탄주에 관한 5가지 오해

 

 

또다시 폭탄주 때문에 한국 사회가 뜨겁습니다. 이전에도 심심치 않게 폭탄주 드시고 사고치신 높은 분들이 아름답지 않은 뉴스를 쏟아내곤 했는데, 이번에는 대구에서 사고가 터졌지요.

 

 

오늘은 ‘터질 폭(爆), 탄알 탄(彈), 술 주(酒)’, 폭탄주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제목은 ‘폭탄주에 관한 5가지 오해’로 잡았습니다.

 

폭탄주 예찬론은 아닙니다. 그저, 이제는 ‘엄연한 한국 문화’로 자리잡은 폭탄주를 ‘오해’라는 화두로 한번 재미있게 정리해보자는 것이니, 너무 ‘오해’하지는 말아주십시오.

 

(1) 폭탄주는 군사 문화의 잔재다? (X)

 

너무나 당연해 보이지만, 사실 이 문구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폭탄주가 언제 전파됐는지에 관한 가장 유력한 정설은 ‘1983년설’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당시 춘천지검장이던, 박희태 현 국회부의장이 있습니다.

 

주당들이 가장 흔하게 알고 있는 시나리오는 대강 이렇지요.

<미국에 유학간 군인들이 외국에서 폭탄주를 배워왔고, 군대에서는 이미 유행했다. 그러다 1983년쯤 강원도의 군·검찰·안기부·경찰 등이 모인 기역 기관장 모임에서 폭탄주가 ‘민간 업계’에도 소개됐다. 이후 ‘발 넓고 입담 좋은 애주가’ 박희태씨가 폭탄주를 확산시켰다.

 

또 정계로 진출한 군인들도 폭탄주를 전파시켰다. 그러니 폭탄주는 군대에서 유래했고, 그 문화는 군사 문화의 잔재다.>

 

그런데 이 시나리오의 중심에 있는 박희태 부의장은 다음과 같은 요지의 증언을 한 바가 있습니다.

 

<춘천지검장 재임 시절이던 1983년 기관장 모임에서 폭탄주가 처음 등장한 것은 맞다. 그런데 군인들에게 배운 게 아니다. 사실 폭탄주는 어찌 보면 ‘반 군사문화’로 시작됐다. 당시 군인들은 유행처럼 양주를 맥주잔에 가득 따라 돌렸다.

 

(어휴~ 이거 한두잔 마시면 정말 핑 돌죠…) 기관장들이 ‘이렇게 먹고는 도저히 못 견디겠다’고 하던 차에, 권복경 당시 강원도 경찰국장이 불쑥 ‘매일 똑같이 양주만 먹는 것도 심심하니 이렇게 만들어 먹어보자’고 제안한 것이 바로 맥주 1잔에 양주 1잔을 섞은 폭탄주였다. 참석자들이 괜찮다고 호평했고, 이후 검찰과 군·관 등으로 퍼졌다.>

 

재밌지 않습니까? 결론적으로 ‘군사 문화의 민간 확산’으로 알려져 있는 폭탄주는, 사실 ‘군대식 음주 문화를 순화시키기 위해 내놓은 민간의 눈물겨운 아이디어’였던 셈이지요.

 

다만 모든 참석자에게 주량에 무관하게 술을 균등 강권한다는 점은, 분명히 군사 문화의 면모를 느끼게 하지요.

 

 

(2) 폭탄주는 외국 술이다?(△)

 

물론 이 말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1900년대 미국에서는 부두나 탄광 노동자들이 맥주에 위스키를 섞어 마셨다고 합니다. ‘몸을 끓어오르게 하는 술’이라는 뜻에서 ‘Boiler Maker’라고 불리는, 일종의 칵테일이지요.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맥주에 위스키 잔을 떨어뜨려 마시는 모습을 보고, ‘야, 저 친구들도 폭탄주 먹네’ 하며 웃으신 주당들도 꽤 계시지요.

하지만 이제 ‘폭탄주는 한국 술’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폭탄주를 미국 술이라고 할 수 없는 게,

 

미국에서 Boiler Maker라는 칵테일은 그리 잘 알려진 술이 아닙니다.

또 일부에서는 제정 러시아 때 시베리아로 유형간 벌목 노동자들이 추위를 이기려고 보드카와 맥주를 섞어 마신 것을 폭탄주의 기원으로 보기도 합니다. 결국 폭탄주의 ‘지적재산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모호하다는 것이죠.

 

이런 상황에서 폭탄주를 하나의 문화로 만들고, 또 이름이 나게 만든 사람들은 단연 한국인입니다. 그리고 아까 말씀드렸듯, 한국식 폭탄주가 제조되기 시작할 때 미국 등 외국의 제조법을 표절했던 것은 아닌 것으로 추정되구요.

 

이제는 오히려 한국을 찾거나 한국인과 사업을 외국인들 사이에서 ‘대표적인 한국식 음주법’이라고 해서 폭탄주가 이름 높지요. 그래서 영어로도 ‘Boiler Maker’라고 부르는 대신, 폭탄주를 직역한 ‘Bomb Shot’으로 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화투가 일본에서 건너왔지만, 고스톱을 일본 문화라고 단정지어서 무조건 배격할 수 없는 것처럼, 미우나 고우나, 폭탄주는 이제 한국 문화의 하나가 됐지요.

 

오죽하면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까지 남측의 술 문화라면서 폭탄주 이야기를 공개석상에서 언급했겠습니까?

 

참고로, 김정일 위원장은 대단한 애주가로 알려지고 있습니다만, 북한을 탈출한 황장엽씨에 의하면, 김 위원장 본인은 그리 많은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합니다.

 

가끔씩 북한의 고위 인사들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뉴스가 전해지는 데요, 대개 본인이 직접 음주운전을 하다가 생기는 사고 때문이라고 합니다.

 

김 위원장은 종종 고위 인사들에게 “운전사를 대동하지 말고 본인이 직접 차를 몰고 오라”고 지시하고는 일종의 비밀 파티를 연다고 하는데요, 입장할 때부터 코냑 같은 독주 한잔을 원샷하고 시작한답니다.

 

그리고 김 위원장은 ‘남자가 술이 세야 일도 잘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고위 인사들은 본인의 ‘능력’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엄청나게 술을 마시게 된다는군요. 그러다가 만취하고, 그 상태에서 귀가 중에 사고가 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하루는 김 위원장이 자기 자리에 있는 코냑을 황장엽 선생에게 따라주면서 “술을 한 잔 하라”고 했답니다. 김정일 위원장의 스승 격이기도 한 황 선생은 원래 술을 못하는 체질이라 김 위원장도 술을 권한 적이 없었는데, 그날은 이례적으로 강권했다는군요.

 

그래서 황 선생이 할 수 없이 술을 받아서 마셨는데, 알고 보니 물이었답니다. 김 위원장 자리에 놓인 병에는 코냑과 똑같은 색깔의 차가 들어있었다는 거지요. 김 위원장은 부하들과 거의 똑같이 술을 많이 마시고도 취하지 않는, 대단한 주당으로 알려져 왔었는데, 황 선생

은 그 때 그 ‘비밀’을 알게 됐다고 합니다.

 

 

(3) 폭탄주는 엄청난 독주다?(X)

 

폭탄주의 알콜 함량도, 대중에게 잘못 알려진 대표적 사례입니다.

특히 방송 뉴스를 중심으로 ‘폭탄주의 알콜 도수는 20%’라는 식의 보도가 이어지면서, 많은 분들이 그렇게 알고 계시죠.

 

어떤 술 전문가도 “40% 짜리 위스키와 4~5%의 맥주를 섞어 먹으면 19%쯤의 알콜 함량이 되니 거의 소주(옛날에는 소주하면 25%였지만, 요사이는 21%짜리가 대부분이지요)를 맥주 글래스에 따라 마시는 셈”이라는 글을 썼더군요.

 

그런데, 이 분석은 틀렸습니다.

40% 짜리 위스키와 4.5% 짜리 맥주를 섞는 건 맞지만, 들어가는 맥주의 양이 훨씬 많기 때문에 대체로 알콜 함량 11~13% 정도의 칵테일이 됩니다.

 

그러니까 소주처럼 독한 술을 맥주 컵에 마시는 것은 아니고, 백세주 정도의 술을 한 컵 마시는 셈이 됩니다. 특히 요사이 유행처럼 양주를 적게 타고, 또 맥주잔의 반 정도만 채우는 폭탄주의 경우, 알콜 함량 10% 미만의 술을 반 글라스 정도 마시는 격입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술 마실 때도 정신력이 중요한데, 폭탄주 1잔 마실 때마다 ‘야, 이거 내가 소주 한 컵을 들이키네’ 이렇게 오해하면, 주눅이 들어서라도 일찍 취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폭탄주를 불가피하게 드시더라도, 너무 위축되시지 말고 즐기시라는 말씀이지요.

 

물론 백세주 1컵을 단숨에 마시는 것도 결코 적은 양은 아니지요. 또 전문가들은 맥주의 탄산 성분이 취기를 더 빨리 오게 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4) 폭탄주는 소탕되거나 추방될 수 있다?(△)

 

얼마전 한나라당 박진 의원을 중심으로, ‘폭소클럽’, 그러니까 ‘폭탄주 소탕 클럽’이라는 게 만들어졌습니다. 폭탄주를 즐기는 것으로 알려진 검찰이나 관가, 대기업, 증권가 등에서도 심심치 않게 ‘폭탄주를 추방하자’는, 최고위층의 강한 권고가 발표되지요.

 

그러나, 폭소클럽 창립멤버인 주성영 의원이 이번에 대구에서 폭탄주를 마신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폭탄주는 그렇게 잘 없어지지 않습니다.(물론 주 의원은 위스키 알잔을 빼서 마셨으니 폭탄주는 마신 게 아니라고 하지만, 이건 그냥 웃자는 말씀이겠죠?)

 

대한민국 역사상 폭탄주 때문에 벌어진 가장 심각한 대형 사고는, 아마 지난 1999년6월7일 발생한 ‘조폐공사 파업유도’ 발언 사건일 겁니다. 당시 진형구 대검 공안부장이 낮술로 폭탄주를 하고 취한 김에 ‘파업을 사실상 우리가 유도했다’고 기자에게 이야기하는 바람에 한바탕 난리가 났었지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당시에 진형구 검사장이 기자들과 낮술을 했다고 기억하시는데, 사실 그날 낮 술자리는 대검 간부들의 오찬이었습니다.

당시 검찰총장인 박순용씨가 좌장이었던 이 자리에서는 위스키 알잔 8~10잔이 돌았고, 막판에 폭탄주 3잔이 돌았습니다.

 

이 자리에서 술을 마시고 사무실로 돌아온 진형구 검사장이 기자들에게 실언을 했던 거죠.

 

진형구 검사장은 물론, 김태정 당시 법무장관까지 옷을 벗어야 했던 검찰 최대 비극 중 하나의 방아쇠를 당긴 현장에는, 매우 흥미롭게도 김종빈 현 검찰총장(당시 수사기획관), 그리고 직전 법무장관인 김승규 현 국가정보원장(당시 대검 감찰부장)도 동참했었습니다.

 

검찰과 폭탄주의 가슴 아픈 기억을 생생하게 지니고 있는 김종빈 총장 같은 분이, 강력하게 “검사끼리 폭탄주 먹지 마라”, “폭탄주는 개별적 융통성을 허용하지 않는 무식한 조직문화의 상징”이라고 경고하지만, 검찰청 주변에서 폭탄주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만큼 폭탄주의 뿌리는 이미 깊이 내린 모양입니다.

아마도 폭탄주의 혜택을 가장 많이 보는 사람들은, 술 자리를 피할 수 없는 조직의 높은 분들일 겁니다. 술자리의 좌장들은, 만약 폭탄주가 없었다면, 전통적인 한국식 잔 주고받기를 하느라 훨씬 많은 술을 마셔야 합니다.

 

이를테면, 6명이 하는 회식에서 좌장은 1대5 비율로 술을 많이 마셔야 한다는 거죠. 그러니 높은 분일수록, 폭탄주 식 음주법에 대한 유혹을 이겨내기 힘든 거죠.

 

또 폭탄주는 빠른 시간에 다 함께 취기에 젖을 수 있으므로, 오히려 그냥 소주 같은 술로 술자리를 이어갈 때보다 귀가 시간을 앞당길 수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5) 폭탄주는 만악(萬惡)의 근원이다? (△)

 

물론 폭탄주를 마시고 술에 취해서 실수도 많이 생기고, 또 건강에 해악을 끼치는 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폭탄주의 긍정적인 측면도 분명히 있습니다.

 

한국 반도체 신화의 주역인 황창규 삼성전자 사장은 “한국이 단기간에 반도체 전쟁에서 일본에 이길 수 있었던 원인으로, 팀워크를 살리는 폭탄주를 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올해로 10회째를 맞이하는 부산국제영화제도 폭탄주의 덕을 봤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상 황무지에서 출발한 부산영화제를 오늘날 아시아 최고 영화제를 일궈낸 사람은 김동호 영화제 집행위원장인데, 이 분이 국내외 인사와의 네트워크를 가꾼 가장 큰 무기는 바로 폭탄주와 엄청난 주량입니다.

 

오늘 드린 말씀의 결론은, 어차피 한국에서 폭탄주라는 문화를 일거에 소탕하거나 추방할 수 없다면, 슬기롭게 잘 이용하자는 겁니다. 오늘 드린 이런 뒷이야기도 나누시면서 천천히 즐기시는 거죠.

 

여러분, 과음하지 마십시오. 술이 원수가 아니라, 폭탄주가 원수가 아니라, 바로 과음이 사람의 명예와 건강을 앗아가는 원수입니다. 

 

출처;조선일보 갈아만든 이슈

 

 

***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 아다지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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