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마시는 이야기들/세계술 이모저모

중국의 술 文化

향기男 피스톨金 2005. 11. 24. 17:57

중국의 술 文化

 

 

중국술의 종류가 일반적으로 4천종이 넘는다지만, 실제 각지역의 이름없은 지방술까지 합하면 그보다는 한참 많지 않을까 합니다. 그 수만큼

중국은 술에 대해서는 발달한 민족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중국역사의 걸출한 영웅호걸들의 면면을 보면 반드시 술에 대한 얘기가 꼽사리로 들어가 있지요.


중국은 석기시대부터 야생의 과실을 발효시켜 술을 빚어서 음용했다고 합니다. 물론 교역의 대상은 안되고 자가용이지요. 그러다가 商國과 周國시대에서 비로서 양주기술을 발달시켜서 교역의 대상으로 삼고 기술도 개발하고 했습니다.

중국인이 말하는 그들만의 술에 대한 몇가지 효용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교제 및 예의>

 

술의 교제기능에 대해서는 중국에 좋은 예가 있습니다. 주은래(周恩來)가 1954년7월 인도문제해결을 위한 스위스 제네바 회의의 성공적인 결과에 대해, 두가지의 중요한 결정적 요인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는 귀주모태(貴州茅台)이고 이는 술(酒)이였으며, 또하나는 양산박과 축영대(梁山伯與祝英臺)인데 이는 영화인 것입니다.

 

중국인들은 예로부터 국제교류에서 술을 하나의 중요한 교재의 매개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치.사회의 모든 거래는 사람이 할것이며, 이들을 서로 맻게하는 중간매개로서 술을 으뜸으로 삼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중국식당에서 음식을 시키면 종업원이 반드시 술은 무엇으로 마실것인가를 묻습니다.

 

공자(孔子)의 10대손인 공융(孔融)이 쓴 <與曺操論酒禁疏>에는 술의 정치.군사.외교부분에서의 중요한 역할을 언급했으며, <左傳 莊公二十年>에는 술의 사회적기능을 ꡒ酒以盛禮ꡓ라 했고,노광(魯匡) 은 ꡒ百禮之會,非酒不行ꡓ(모든禮에는 술 없으면 안된다)라고도 했지요.


<의약 및 건강>

 

중국은 예로부터 술을 정치.사회적 교류도구로도 많이 이용을 했지만, 의약방면의 연구도 같이 했지요. ꡒ의원어주(醫源於酒) ꡓ 라고 의학의 ꡒ醫ꡓ자를 술에서 기원했다 할정도이니까요. 술을 제일먼저 사용한 것은 마취제로 사용되었다가,점차 내복약으로 사용했으며, 여러질병을 치료한다고 했지요. <說問>에는 ꡒ醫之性然得酒而使ꡓ(醫란 술에서 나왔다.),

 

그래서 술은 질병을 치료한다(酒.所以治病也)라 하고,<漢書.食貨志>에는 술은 백약의 으뜸이다(酒.百藥之長)이라고도 했지요.

 

적당한 음주는 건강에 좋지요. 예를 들어보면 중국역사상 당나라의 ꡒ구노회(九老會)ꡓꡓ나 송나라의 ꡒ五老圖ꡓ의 사람중 술 좋아하지 않는사람이 없었으며, 평균수명 4,50대인 시대에 孔子는 76세,荀子는 82세,賀知章은 86세,柳禹錫은 71세,白居易는 74세,陸游는 86세 등으로 모두 장수를 했으며, 하나같이 술마시기를 즐겼지요.


<자극기능>

술은 사람의 중추신경을 자극하여,혈관을 팽창시켜 혈액의 순환을 돕는다고 합니다. 따라서 어떤 개인의 독특한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할수있게 하지요. 인간내면 깊숙히 잠재해있는 재치와 담력을 일시적으로 표출하도록 도움을 주는것입니다. 그런면에서 술은 중국의 많은 영웅호걸과 문학가,예술가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주선(酒仙)이라 명명된 이백은 차치하고라도 당나라의 수많은 문학가 왕유(王維),맹오연(孟浩然),두보(杜甫),하지장(賀知章),한유,유종원,유우석,백거이,두목..등등…하나같이 술을 즐겼으며, 또 하나같이 취중에 쓴 시들이 많습니다. 중국의 유명한 소설 홍루몽,삼국연의,수호전,유림외사등에 술에대한 얘기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지요.

 

특히 금병매(金甁梅)는 총 100개의 장르로 나뉘어져 있는데, 그중 98개의 장르가 술에 관해 언급되어있으며, 술마신얘기만 총 389번이나 된다합니다(히야~)..그러고 보니 성룡이 주연한 취권(醉拳)도 일리가 있는 무예인 것 같아요.


술을 마실때는 자신이 조절해서 몸에 적당히 마셔야 그 효용이 더 하는거지요. 중국에는 일반적으로 ꡒ勸戒四醉(음주의 4가지 계율)를 잘 지키면 무리가 없다고들 합니다.


첫째는 <自醉>-스스로 자제해서 마실 것.

 

晋國의 柳公榮이란자가 있었는데, 얼마나 폭주를 했으면 스스로도 말하기를 ꡒ나보다 술이 센 사람은 반드시 나와 술을 마셔야 하고, 나보다 술이 약한 사람도 반드시 나와 술을 마셔야 하고, 나하고 비슷한 사람도 반드시 나와 술을 마셔야 한다ꡓ

 

(比我强的不能不和我喝/不如我的不得不和我喝/和我一樣的人不可不和我喝) 라고 앞뒤 가리지 않고 술을 마셨는데, 이 양반은 반드시 취해야 그만 마셨답니다. 스스로를 조절 못해서지요. 술이 사람을 마셔 통제력을 잃어버리는 것을 경계해야 하는것입니다. 술 취해서 하는 허언과 흐트러진 자세를 경계해야지요.


둘째는<勸醉>-적당히 권할 것.

 

ꡒ勸者盡其意,飮者盡其量ꡓ(권하는자는 마음을 표시하고,받는자는 자기 주량에 따라마신다.) 라 했듯이, 상대에 자신의 마음과 경의를 표하는선에서 상대의 주량을 살필 필요가 있지요. 상대에게 무조건 많이 먹이면 좋고,상대도 자신의 주량을 넘어서게 마시는 것을 무슨 큰 기쁨과 상대에 대한 배려,존중으로 잘못알아서는 안되지요.


셋째는<賭醉>-술 시합을 하지말 것.

 

술을 마시는 것을 주량경쟁을 하듯이 서로 뽐내며 마시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돈쓰고 머리 아픈 일이지요.


넷째<媚醉>-윗사람에 아양떨지 말 것.

통상 윗사람과 술을 마시면, 주량을 떠나서 윗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않기위해 무리하게 과음을 하게 됩니다. 술은 명령계통과는 상관이 없겠지요.

옛말에ꡓ食唯半飮不廉味,酒至三分莫過頻.ꡓꡓ酒飮半酎正好,花開半吐偏姸ꡓ이라, 술뿐아니라 모든일이 다 적당해야 좋은것이라 했지요.


이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중국에는 술을 먹고 정신을 놓아버린 사람을 좀처럼 구경하기가 어렵지요. 예로부터 중국은 <酒禮><酒德>이 발달했지요. 중국문화사를 보면 고대초기에는 지위구별이 없다가, 술을 만들어 마신 다음부터 그 구별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그만큼 술을 마실 때 그 예의를 통제했지요.

 

진한시대 이후를 보면 술에대한 예의 및 통제가 상당히 엄격했던 것 같습니다.<酒戒><酒警><酒誥><酒德><酒政>등.음주를 완전히 예의 질서상의 범주에 집어넣었던것입니다. 그를 관리하는 술관원(酒官) 이라는 특별관청까지 두었지요. 周나라때는<酒政>,漢代때<酒士>,晋代의<酒丞>,齊나라의<酒吏>,梁나라의<酒庫丞>등등…


예로부터 중국인은 술을 마시는 상대와 장소,계절을 골라가면서 마셨죠. 술상대로는 고아(高雅),호협(豪俠),직솔(直率),지기(知己),고교(故交),옥인(玉人)등의 성품을 갖춘자와, 장소로는 꽃아래(花下),죽림(竹林),고각(高閣)등.분위기 있는곳에서 즐기며 마셨지요.

 

서민과는 다른 사대부 계층의 음주방식이겠지만, 이런가운데 野人취급받던 술이 淑女로 점차 변신해 갔던것이죠. 일반인들이야 정치가,관원,문학가등의 사대부들 만큼 그렇게 엄격한 酒禮는 없었지만, 그들을 따라하는과정에서 연장자에 대하 예의,지도자에 대한 존중의 酒禮가 자연스럽게 퍼져갔던 것이죠.


ꡒ酒禮가 중국음주문화의 핵심이라면, 酒德은 음주문화의 포장이다ꡓ라 했듯이, 술은 많이 마시면 惡이요,적당히 마시면 善이 되는 것입니다.

<禮記>에 ꡒ君子之飮酒也,一爵而色溫如也,二爵而言斯,三爵而衝突以退ꡓ 라(군자가 술을 마심에 한잔을 마시면 온색이 돌고,두잔을 마시면 말이 많고,석잔을 마시면 흥분을 한다) 했지요.

 

또 酒德은 술의 품질과 건강에도 관련이 있지요. 술의 품질은 아주 엄격히 통제하지 않으면 사람의 건강에 엄청난 해를 주기 때문일겁니다. 따라서 중국은 술의 품질에 관해서는 예로부터 그 통제가 엄격했지요.

 

서구에도 금주령이 있었지만 중국의 금주령과는 그 목적이 틀립니다. 중국도 각 시대에 금주령을 내린적이 많았지만, 그 원인은 전쟁시,흉작시 식량의 부족에서 비롯되었지요. 그만큼 술에대해 부정적 측면보다 긍정적 측면을 중시한 문화일겁니다.

 

 

 

 

 

***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 아다지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