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Travel)이야기들/재밋는 아프리카

인생은 여행 짐이 많으면 떠나기 어렵다"

향기男 피스톨金 2005. 11. 30. 18:24

 

        인생은 여행 짐이 많으면 떠나기 어렵다"

 

[주간조선 2005-08-09 16:11]


검은 대륙 아프리카 4만㎞ 147일간 종단 신재동씨
유럽 젊은이 5명과 트럭 타고 대륙 종단
"고독·허무·그리움 속에서

'나'찾는 것이 여행"

 

“아프리카 특유의 풋풋한 흙냄새가 풍겨왔습니다. 드디어 도착했구나

싶었죠. 2박3일간 홍해를 가로질러 수단의 수아킨(Suakin)항에 닿은

것입니다.

종일 제대로 먹지 못해 몹시 허기져 있었어요. 그런 제 눈에 아랫도리만

가린 앙상한 검은 피부가 들어왔습니다.

 

뼈만 남은 것 같은 새카만 몸뚱이, 부두 노동자들이었어요. 대번에 허기가 사라지더군요. 우린 한두 끼만 굶어도 큰일이 날 것처럼 아우성치지 않습니까? 거기에 비하면 저 앙상한 사람들은 너무나 평온해 보였어요. 체념인지 수용인지 모를 야릇한 평화가 그들에겐 있었습니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남아프리카 공화국 희망봉까지, 아프리카 대륙

4만㎞를 종단한 신재동(68)씨. 젊은 시절 직원 500명 규모의 ‘남양기업’이란 포장회사를 운영하기도 했던 그가 본격적인 여행길에 오른 것은 만 오십이 되던 1989년이었다.

 

천명(天命)을 안다는 나이에, 남들은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다는 나이에

그는 지금까지 살아온 세상을 버리고 새로운 세상을 향해 배낭을 멘 것이다. 생의 절정기에 있던 중견 CEO가 삶의 방향을 튼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항상 아쉬움이 있었어요. ‘이건 뭔가 아니다’ 싶은 마음에 항상 갈증을 느끼곤 했습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은 뭘까? 이런 생각을 항상 하고 있었어요. 그때 사업상 돈을 좀 뜯기는 일이 생겼어요. 그참에 그냥 사업은 나한테 안맞나 보다, 이렇게 생각한 거죠. 그리고선 회사를 정리하고 좋아하는 것을 향해 떠난 겁니다.”

 

“세계일주 하겠다” 밀수선 타기도

 

이후 15년간 신씨가 돌아다닌 나라는 총 129개국. 실크로드 7만㎞, 중앙아시아·유럽 42개국,

남아메리카 12개국, 러시아 바이칼, 인도·동남아 순례, 남태평양 7개 연방국 등 그동안 그의

발길이 닿은 곳은 헤아리기 힘들 만큼 많다. 역마살이란 게 있긴 있는가 봐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꿈이 세계일주였어요. 고등학교 땐 집에 있는 돈을 훔쳐 가출한 적도 있었어요.

세계일주를 하겠다며 밀수선을 탄 거예요. 파도가 높아 배가 되돌아오는 바람에 붙잡히긴 했지만.

그 덕에 한동안 학교에 가지도 못했어요. 아 그런데, 선생님이 저 보고 그러시는 거예요. 너 보통 놈

아니다. 그런 정신자세로 살아가면 이 다음에 뭘 해도 크게 될 거다라고 말이에요. 허허.

 

이번의 아프리카 종주는 영국 트랙스(Track’s)사가 기획한 것. 대륙 종단을 희망하는 각국 젊은이를 모아 트럭을 타고 대륙을 누비는 다이내믹한 프로그램이다. “40세 이상인 사람은 받아줄 수 없다고 하대요. 그래서 ‘난 다르다, 절대로 짐이 되지 않겠다’고 버텼죠.

 

결국 허락을 얻어냈습니다. 가족에겐 유서를 써놓았죠. 그렇게 런던으로 가서, 다시 카이로로 날아가 트럭으로 바꿔타고 대륙 4만㎞를 내리질러 가기 시작한 겁니다. 처음 출발할 땐 일행이 10여명 됐어요.

 

그런데 워낙 덥고 힘들고 하니까 중간에 다 떨어져 나가고 결국 유럽·뉴질랜드 청년 4명과

오스트리아 여학생 한 명만 남았습니다.”

 

147일 동안 신씨가 쓴 경비는 총 650만원. 항공권과 숙식을 모두 포함한 금액이었다. “숙박이라는 것이 호사스러워 봐야 1인용 텐트, 아니면 슬리핑백에서 노숙을 하는 것이 다반사였으니 돈이 들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신씨가 수단 이야기를 이었다.

 

“황당한 일이 벌어진 것은 그날 밤이었습니다. 출입국관리소 직원에게 숙소를 부탁했는데,

죄수들이 있는 감방으로 우리를 데려가는 거예요. 안전하게 잘 만한 곳이 거기밖에 없다는

겁니다.

 

죄수들이 흙바닥에 가마니를 깔고 누워 눈을 부라리고 있더군요. 나름대로 험한 잠자리엔

익숙해져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이건 아니다 싶더군요. 여기선 도저히 못자겠다

싶습디다. 허허.”

 

 

샤워실 바닥에 인분·소변 투성이

 

신씨는 수단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수단은 내전으로 아수라장이 돼 있었습니다. 민박도 노숙도 마땅치가 않았어요. 불빛 하나 없는 칠흑 같은 밤을 달려 간신히 여인숙 하나를

찾았습니다. 수용소같이 으스스한 곳이었습니다. 로비 바닥 여기저기에 아무렇게나 쭈그리고 사람들이 잠들어 있더군요.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손짓 발짓으로 샤워실을 물어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웬걸 샤워실이란 것은 말뿐, 화장실과 다름이 없었어요. 바닥에 놓인 재래식 변기엔 인분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었고, 그 위로 구더기가 득시글대고 있었습니다. 바닥엔 물인지

소변인지 모를 누리끼리한 액체가 흥건하게 고여 있었고요. 그 바로 위 천장에 수도꼭지가

 덩그러니 매달려 있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잠에선 깬 신씨는 깜짝 놀랐다고 한다. “소며 염소며 사람이 모두 바닷속에 들어가 목만 내놓고 있는 거예요. 이게 웬일인가, 눈이 둥그레졌죠. 알고봤더니 너무 더워서 그렇다는 겁니다.

 

사람이건 가축이건 한낮엔 그렇게 해서 더위를 식힌다는 거예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사람들 표정이예요.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 싱글벙글 웃고 있는 거예요. 아시다시피 수단은 내전 중입니다.

서로 죽고 죽이는 살벌한 싸움터예요. 그런데도 사람들이 그렇게 천진난만할 수가 없어요.”

 

신씨의 아프리카 예찬이 이어졌다. “아프리카로 여행을 떠난 사람들은 신발도 신지 않은 어린이들이 해질녘 가축을 몰고 돌아가는 모습에서 감동을 받습니다. 하지만 진짜 아프리카를 보려면 그 어린이를 보는 데서 그치지 말고 그 뒤를 따라가봐야 합니다.

 

뒤를 쫓아가보면 염소 닭과 함께 어울려 잠자는 그들의 움막이 나오고, 밥그릇과 화덕 외엔 아무 세간도 없는 그들의 소박함이 나오고,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먹던 굼벵이를 나눠주는 그들의 인정이 나옵니다.”

 

묵언(默言)을 통해 ‘나’를 찾아

 

15년간 129개국을 돌아다닌 신씨지만 “외국어 실력은 사실 신통치 않다”고 말한다. “저희 세대에 외국어는 넘기 어려운 장벽입니다. 학원도 다녀보고 단어도 외우고 해봤습니다만 영어의 벽을 뚫는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여행을 다니다보니 말을 못하는 것이 오히려 더 좋더라고요.

 

말을 하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묵언(默言)이 되고 그것이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로 이어졌습니다.

사실 말이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닌 셈이죠. 저는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에게도 한 달에

하루 정도는 묵언을 해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신씨가 말을 이었다. “여행의 묘미는 할 일이 없다는 것, 내 시간을 내가 컨트롤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완벽한 자유를 느낄 수 있다는 것에 있습니다. 보고 싶은 사람을 그리워하면서 고독을 즐기는 것이 여행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행과 삶은 같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집이 크고 짐이 많으면 그만큼 더 떠나기가 어려워지니까요.”

 

※신씨는 147일에 걸친 자신의 이야기를 ‘알렉산드리아에서 희망봉까지 4만㎞- 아프리카 종단 기행’(현음사)이란 책에 담았다.

 

이범진 주간조선 기자(bomb@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