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마시는 이야기들/세계술 이모저모

송년회 건강법, 차라리 빈속에 폭탄주를 마시자!

향기男 피스톨金 2005. 12. 9. 18:19
 
                송년회 건강법,
 
       차라리 빈속에 폭탄주를 마시자!

연말 송년회 시즌, 직장인의 가장 큰 건강 관심은 단연 술입니다. 두주불사(斗酒不辭)로 술을 마시는 사람이나, 보리 밭에만 가도 취하는 사람이나 술 걱정 하기는 매 한가지입니다.

 

어떻게 하면 건강을 축내지 않고, 요령껏 술을 잘 마실까 하는 것입니다.

 

그 때문인지 해마다 12월이 되면 신문이나 방송에선 “술을 마실 땐 안주를 충분히 먹으면서 천천히 마시라”는 기사가 단골로 등장합니다.

 

오늘은 이 만고불면의 진리를 정면 반박하며 차라리 빈속에 폭탄주를 마시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는 이유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술과 건강과의 관계에서 가장 헷갈리는 개념이 취기(醉氣)입니다. 사람들은 알코올의 양, 알코올의 독성, 알코올의 취기를 같은 개념으로 여깁니다. 많이 마시면 많이 취하고 그만큼 몸도 많이 상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술에 취했다고 건강에 해로운 것도 아니며, 때로는 취기가 알코올의 독성을 차단해 주는 훌륭한 방패막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을 잘 이해해야 연말 송년회 술 자리에서 건강을 지킬 수 있습니다.

 

술에 취하는 정도는 술 마시는 주법(酒法)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만약 안주를 충분히 먹으며 천천히 술을 마신다면 위장에서 술뿐 아니라 안주까지 분해해야 하므로 그만큼 알코올의 흡수속도가 느려집니다.

 

반대로 술을 빈속에 급하게 마시면 알코올 흡수속도가 빨라져 훨씬 빨리 많이 취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취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무조건 안주를 많이 먹으라고 권하는데, 알코올이 몸에 해를 주는 정도는 취했는지 안 취했는지 와는 별 관계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섭취한 알코올의 절대량입니다. 알코올의 독성은 얼마나 많은 술을 마셨는가에 정확하게 비례합니다. 조금 마시고 취할 수도 있고, 많이 마셔도 안 취할 수도 있기 때문에 취기와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권하는 ‘건강한 주법’은 경우에 따라 오히려 술을 더 많이 마시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만약 소주 한 병이 주량인 A씨가 평소보다 더 많은 안주를 먹으며 더 천천히 술을 마신다면 알코올 흡수속도가 느려져 제 주량의 두 배인 소주 두 병을 마시게 될 수도 있습니다. 안주 때문에 알코올의 흡수가 더뎌져 소주 한 병을 마셨는데도 뇌에선 소주 반 병만 마신 것으로 인식하고 자꾸 더 마실 것을 명령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빈 속에 빨리 술을 마시고 취해 버린다면 제 주량에 못 미치는 소주 반 병만 마셨는데도 더 이상 마실 수 없게 돼 결과적으로 건강에 도움이 됩니다.

 

물론 술을 마실 때 건강만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술을 마시며 좋은 사람들과 친밀하고 정다운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은 일이며, 때로는 한 잔 술이 머리 꼭대기까지 치민 스트레스를 해소하는데도 도움이 됩니다. 따라서 보통 사람이 보통의 상황에서 술을 마실 때는 안주를 적당하게 먹으며 천천히 술을 마시는 것이 정답입니다.

 

그러나 한번 마셨다 하면 2차 3차 4차까지 전전하며 ‘끝장’을 보고야 마는 주당(酒黨) 들이라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보통 사람에게 권고하는 ‘건강 음주법’이 이들에겐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으며, 이들은 차라리 빨리 술을 마시고 뻗어 버리는 게 건강에 더 좋을 수도 있습니다.

 

또 자기의 의사와 상관없이 술을 반 강제로 마셔야 하는 회식자리 등에선 술에 안 취하려고 하는 것보다, 차라리 빨리 많이 마시고 취해서 자 버리는 것이 결과적으로 건강에 더 좋을 수 있습니다.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은 알코올 분해가 빠르므로 웬만큼 마셔도 건강에 덜 해롭고, 못 마시는 사람은 조금만 마셔도 취하므로 건강에 해롭다고 말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설혹 말술을 마셔도 안 취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 사람의 말 못하는 간과 뇌 등 내부 장기는 엄청난 데미지를 받아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안주를 적게 먹어야 할 이유는 또 있습니다. 비만 때문입니다. 술 자체의 칼로리가 아주 높은데, 술을 마실 땐 알코올이 우선적으로 분해돼 열량으로 사용됩니다. 따라서 안주로 먹은 음식은 거의 에너지로 사용되지 못하고 고스란히 뱃살(지방)로 축적됩니다.

 

특히 안주로 많이 먹는 삼겹살, 등심, 오징어, 땅콩 등은 칼로리가 높을 뿐 아니라 동물성 지방과 콜레스테롤, 소금 성분이 많이 들어 있어 각종 성인병을 유발하는 원인이 됩니다. 따라서 안주는 무조건 저지방 고단백 음식을 가능한 적게 먹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다고 알코올 중독자처럼 ‘깡 술’을 마시라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단백질은 간이 알코올을 분해하는 중요한 에너지원이 되므로 안주를 아예 먹지 않는 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한편 술을 마시기 전에 위를 보호할 목적으로 위장약을 먹는 분이 많은데 역시 좋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약은 간에서 분해되며, 알코올 또한 간에서 분해됩니다. 따라서 간은 술과 위장약 두 가지를 분해하는 효소를 한꺼번에 내야 하므로 그만큼 혹사를 당하게 된다.

 

특히 제산제 계통의 위장약은 위는 보호할지 모르지만, 위벽에 있는 알코올 분해효소의 활동까지 막으므로 제산제를 복용하고 술을 마시면 혈중 알코올 농도가 더 높아지고 더 취하게 될 수 있다고 합니다.

 

본격적인 송년회 시즌입니다. 술은 가급적 적게 마시는 게 좋지만, 어쩔 수 없는 술 약속이라면 ‘똑똑하게’ 술을 마실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임호준기자 hjlim@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