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라 속에서 히말라야를 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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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을 앞둔 며칠간 호남지역에는 계속 눈이 내렸다. 폭설로 인해 미리 짜놓은 덕유산 종주 일정이 차질을 빚지는 않을까 걱정됐다. 특히 험준한 남덕유산과 삿갓재까지의 등산로는 고도차이가 크다. 지도에는 4시간 소요되는 것으로 표기되어 있지만 이런 눈길에는 언감생심이다. 러셀(등산에서, 큰 눈이 와서 쌓였을 때 눈을 쳐내어 길을 트면서 나아가는 일:편집자 주)마저 되어 있지 않다면 참으로 낭패다. 이런저런 걱정을 안고 12월 17일 오전 8시 30분 사당역을 출발했다.
남덕유-stairway to hell 유례없는 12월의 폭설과 영하 10도를 밑도는 강추위로 이번 산행은 천당 아니면 지옥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이번 산행은 천당과 지옥이 공존했다. 서둘렀지만 오후 1시 50분이 되어서야 영각사 매표소를 통과했다. 삿갓재까지 6시간을 예상한 터라 최소 2시간 이상은 야간산행을 해야 했다. 1000고지 정도에 이르자 눈보라가 미친듯 불어 댄다. 안경알이 눈에 얼어 붙어 더 이상 쓸 수가 없다. 눈썹도 허옇게 얼어붙고 눈물도 얼어 붙었는지 눈이 따갑다.
오후 4시 10분. 마침내 남덕유 정상이다. 예상보다 강한 바람과 눈보라가 몰아친다. 아직 일몰 전이었지만 시계는 불과 4~5m도 안된다. 동계용 중등산화에 두 켤레의 양말을 신었지만 발이 시리다. 잠시도 서 있을 수 없어 정상에서는 사진 한 장 찍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멀고도 험한 삿갓재 가는 길 보름이 엊그제였으므로 쨍한 달빛아래 눈길을 걷는 낭만을 기대했지만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등산로가 아닌 곳을 잘못 밟으면 허리까지 눈이 찬다. 아이젠을 착용했지만 서너 걸음에 한걸음은 뒤로 미끄러진다. 이러기를 얼마나 반복했던가? 문득 죽음이라는 것이 무척 가깝게 느껴진다. 나중에 삿갓재에 이르러서야 알았지만 영하 20도라고 하니 강풍을 감안한다면 체감온도는 영하 30도 이하였던 것이다.
삿갓재 대피소, 지옥을 빠져나오다 오후 8시. 마침내 저 아래 붉은 수은등이 켜진 삿갓재 대피소가 보인다. 검고 긴 지옥의 터널을 막 빠져 나온 것이다. 지친 사람들은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대피소에서 몸을 녹인다. 더러는 추위에 두려움에 안도감에 눈물을 흘린다. 아, 모두 살아 돌아왔구나.
오전 9시. 아침식사를 마치고 다시 종주길에 나선다. 날씨는 청명하다. 차고 맑은 공기가 바람과 함께 뺨을 때린다.
오후 1시 5분. 동엽령에 이르렀다. 4.1km의 길을 약 2시간 30분만에 도착한 것이다. 아주 느린 속도는 아니었지만 문제는 피로가 누적되면서 계속 속도가 떨어지고 있었다. 곤도라가 있는 설천봉까지는 약 5km. 예상시간은 3시간. 곤도라 운행여부를 문의하기 위해 운행사무소로 연락을 해 봤다. 4시 30분까지 운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4시까지만 운행한단다. 곤도라를 타고 하산하려면 4시까지 설천봉에 닿아야 한다. 시간이 빠듯하다. 체력소모와 속도의 추이를 봐서는 곤도라 운행시간까지 도착하기 힘들다고 의견을 모은다.
다들 쌩쌩하다. 일부 대원들이 무릎통증을 호소하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빠른 속도로 하산했다. 칠연폭포를 지나 매표소에 도착하자 오후 3시 15분. 다시 눈발이 굵어지는 덕유산 자락을 막 빠져나온다. 말하자면 이것은 '생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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